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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Nov 11. 2020

나의 책방 창업기 2

인테리어 수난기

모든 인테리어를 우리 손으로 하기로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책방 준비에 들어갔다.
우선 가정집으로 쓰였던 촌집을 상업공간으로 바꾸기 위해서 장판을 걷어내고 촌스러운 벽지를 떼어내는 일부터 해야 했다. 아무 공구도 갖고 있지 않은 터라 철물점부터 가는 것으로 인테리어 작업의 서막을 올렸다. 벽지 제거용 칼이 따로 있기에 구매하고 망치, 사포 등등 간단한 소도구들을 잔뜩 구매해왔다. 벽지는 옛집의 세월만큼이나 겹겹이 발라져 있었다. 어느 방은 8겹의 벽지가 두꺼운 벽처럼 붙어있기도 했다. 벽지 제거하다 두 달은 지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일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집을 보며 한숨을 내쉬던 그때, 공사 상황을 살피러 친구가 찾아왔다. 우리에게 이 집의 존재를 알려준 세계여행에서 만났던 그 친구였다. 친구는 이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하냐며 집에 공구가 많이 있으니 빌려주겠다고 했고, 다음날 우리 기준에서는 중장비급은 되어 보이는 다양한 도구들을 잔뜩 싣고 왔다. 손으로 문지르지 않아도 윙 돌아가는 샌딩기부터 나무를 자를 수 있는 전기톱, 철 등을 자를 수 있는 이름 모를 장비까지 우리의 작업을 업그레이드시켜줄 신문물이 도착한 것이었다. 구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뛰어넘어 발전한 것처럼 작업이 빨라지고 손쉬워졌다. 셀프 인테리어를 하면서 중요한 점을 깨닫게 되었는데 바로 장비를 가진 친구와 트럭을 가진 친구가 엄청 소중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 하늘의 복을 다 받고 태어났는지 바로 주변에 장비 많이 가진 친구와 트럭을 가진 친구가 하나씩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빛의 속도로 벽지를 제거하고 바닥을 칠하고 책방의 하이라이트인 서가를 만들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옛집의 틀을 그대로 살리고 책방을 하기로 마음먹었기에 기초공사에 큰 비용과 시간을 쓰지는 않았다. 천장도 그대로 두고 조명만 바꿔달았고 벽도 페인트 칠을 하고 아끼던 옛 책을 붙여 활자에 둘러싸인 공간을 만들었다. 서가를 만드는 것에 비하면 이런 기초공사는 그다지 힘든 작업은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서가를 둘 것인가 오랫동안 고민했다. 벽 전체를 서가로 에워싸게 만들까, 방 하나만 서가를 둘까, 아니면 가장 긴 벽에 서가를 길게 만들 것인가, 그렇다면 카운터나 사무실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이런 수많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 방이 4개인 구조이니 각각의 방을 다른 느낌의 공간으로 마치 4개의 책방에 온 것 같이 만들어보자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방 하나는 서가로 둘러싸여 온통 책에 덮여 있는 기분이 들 수 있게 만들기로 했다.

서가의 높이는 250cm 이상이 되어야 했고, 두 개의 벽면을 가득 채우는 서가를 만들어야 했다. 정말 막막했다. 가구를 만들어본 적이라고는 이케아에서 조립식 책상과 서랍 정도 만들어본 게 다인데 어떤 종류의 나무를 얼마나 사야 하는지, 그걸 어떻게 붙여 책장으로 만들어낼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서가만큼은 전문가에게 맡겨볼까 하고 알아보았으나 한 푼이라도 아껴 책을 더 사야 하는 우리에겐 크나큰 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어떻게든 스스로 만들어보기로 결심하고 먼저 책방을 차려 운영하고 있는 친구에게 조언을 요청했다. 역시 많이 보고 많이 물어보고 조언을 하나하나 귀 기울여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 여러 사람들에게 얻은 조언을 바탕으로 나무를 고르고, 더듬더듬 살펴가며 설계도를 어설프지만 마당에서 일일이 자르고 칠하고 도면에 맞게 이어 붙여 서가를 완성했다. 서가의 높이가 조금씩 다 다르긴 하지만 서투른 실력으로 만들어냈다는 뿌듯함이 컸다. 완성해낸 것이 스스로 대견해서 이것만큼은 자랑하고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서가가 둘러싸인 공간을 만들어놓고 보니 빨리 책을 꽂아두고 싶어 안달이 났다.

두 달 동안 우여곡절 끝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이제 큰 틀을 잡게 되었다. 이제 커튼, 화분, 구석구석의 작은 서가들만 배치하면 되었다. 중요한 인테리어는 끝난 것이다. 나머지 서가들의 위치나 구조는 이제 우리의 큐레이션 방향에 따라 결정될 사항이었다. 우리 책방의 꽃인 책 큐레이션을 고민할 시간이 다가왔다.



커터칼로 벽지를 제거하다 샌딩기를 이용하니 철기시대로 도약한 기분. 역시 작업은 장비빨!
조악한 작업환경이지만 그래도 도전했고 마침내 서가를 직접 만들어냈다.
서가가 완성되고 큰 틀을 갖춰가는 책방의 모습
지금의 서가 모습. 작가의 방 컨셉으로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의 모습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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