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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Nov 15. 2020

나의 책방 창업기 (3)

책방 큐레이션 이야기

거실 하나, 방 넷의 구조를 가진 집 모양 그대로 책방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벽을 허물고 하나의 큰 공간을 만들까 고민도 해봤지만 옛집이 가진 정취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최대한 집의 원형을 살려 쓰고 대신 좁아진 각각의 공간에 다양한 콘셉트를 부여하기로 했다. 네 개의 방마다 각기 다른 책방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큐레이션을 했다.

첫 번째, 거실은 책방의 첫 얼굴이다. 이곳은 우선 미학적으로 예뻐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 책방에서 가장 과한 인테리어를 한 곳이다. 예쁜 커튼도 두었고 샹들리에도 달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보여줄 책은 베스트셀러와 신간들이었다. 물론 우리의 베스트셀러는 서울의 대형서점과는 사뭇 다르다. 주로 우리 책방에서 많은 관심을 얻은 책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대형서점이나 언론에서 많이 주목하는 책들도 몇 권씩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주관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입맛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신간 코너는 우리가 고여있는 책방이 아닌 끊임없이 책들이 숨을 쉬고 오가는 공간임을 보여주기에 중요한 코너이다. 신간 도서에 대한 투자는 작은 책방에서 많은 부담을 안게 한다. 마진이 별로 없는 책방에서 얻어지는 수익을 고스란히 재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은 책방들은 신간을 주문할 때, 여러 번 심사숙고하여 최대한 팔릴 만한 책을 추리고 또 추린다. 그렇게 하다 보니 다양한 책을 주문하기 어렵고 주인장의 취향이나 특정 주제만 몰두한 책들을 고르기 십상이다. 다양한 신간을 많이 주문하다 보니 처음엔 책방이 어려웠다. 적지만 수입이 들어오자마자 고스란히 새 책 구매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았기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1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이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 빛을 보는 것 같다.

두 번째는 기획 전시의 방이다. 이곳에는 움푹 들어간 벽이 있는데 예전에 벽장으로 쓰이던 공간이다. 안으로 깊이 들어가 있어 그곳에 서가를 만들면 책을 꺼내 보기가 불편할 것 같았다. 이 버려진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다 전시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가상의 책장을 그려 넣고 중간에 빈 공간에 책을 전시했다. 여러 주제로 두 달간 전시하고 책을 판매했다. 첫 기획은 당시 대한민국을 들뜨게 했던 영화 ‘기생충’을 깊게 보는 주제로 큐레이션 하였다. 영화 속에 담겼던 키워드들 빈부격차, 혐오, 주거 등을 다룬 책들을 깊이 있게 소개했다. 그 후로는 지역작가와 협력하여 책과 함께 다양한 주제들을 풀어내고 있다. 단순히 바라보던 사물도 책과 연결될 수 있는 고리가 있었다. 책으로 그 사고의 범위를 넓히는 바람을 담아 다양한 기획전을 시도하는 공간이다.

세 번째, 작가의 방은 직접 만든 서가로 둘러싸인 공간이다. 이곳은 일명 작가의 방이라 이름 붙였는데, 작가의 집필공간에 앉아 글을 쓰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책상 옆에는 이달의 작가 코너가 있는데 두 달에 한 번씩 작가를 선정하여 책을 소개하고 작가의 책을 필사한다. 책에 둘러싸여 책의 향기를 맡으며 조용한 창가 책상에 앉아 서걱서걱 펜 소리를 들으며 필사를 하다보면 다른 잡념이 사라지고 책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책방 오픈 전,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책 한 페이지 정도 필사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고 가장 애정하는 시간이다.

네 번째는 큐레이션의 방이다. 이곳에는 아주 오래된 가구들이 있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나 봤을 법한 가구들 속에 현재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핵심 키워드들이 담겨 있다. 키워드는 그냥 뽑은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검색을 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골랐다. 그 키워드들이 현재 사회가 처해있는 문제이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키워드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수시로 바뀐다. 사회는 시시각각 변하며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문제들도 다양하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 서가를 쭉 들여다보기만 해도 대한민국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책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가 더 나아져야 개인의 삶도 나아질 수 있다는 마음을 담아 만든 서가이다.

다섯 번째는 휴식의 방이다. 이곳에도 마찬가지로 벽장 공간이 있는데 여기서는 방석을 깔아 잠시 책을 읽고 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차나 커피를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 테이블이나 소파를 둘 수 없었다. 서가를 더 많이 만들어 책을 더 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다소 협소하더라도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또 이 방에는 아이들 책이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책을 읽는 모습이 책방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 생각한다. 많은 아이들이 도란도란 책을 읽는 그런 모습을 상상하며 꿈을 키워나갈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책방 공간 큐레이션까지 마치고 드디어 책방을 오픈했다. 많은 것을 고민하고 담아내려 애썼지만 결국 이런 노력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분들,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분들이 없다면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결국 책방이든 어떤 공간이든 그곳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모이지 않으면 계속 유지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이만큼 담아냈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여기 와주신 분들의 귀한 발걸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분들이 다 귀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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