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에너지를 깨우며

부장가 아사나 (코브라 아사나)

by 박진희

부장가 아사나 (코브라 자세)는 요가를 하다 보면 빠지지 않고 마주하게 되는 동작이다. 요가에 막 입문하여 아무것도 모를 때에도 이 자세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엎드린 상태에서 어깨 아래 손을 짚고 상체를 들어 올린다. 어깨가 따라 올라가지 않게 내리고 팔은 사선으로 길게 에너지를 보내며 치골은 지긋이 바닥을 눌러준다. 이렇게 하는 아사나라는 것은 많이 듣고 봤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저 눈으로 보고 따라 하기엔 그렇게 어렵지 않아 보이는 동작 중 하나였다.


누구나 한참 돌도 씹어 먹을 만큼 체력이 왕성하던 시절에는 몸의 원리를 몰라도 그저 조금만 따라 움직여도 몸을 잘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20대 초반에 이 자세를 배워해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정수리가 당장이라도 하늘을 향해 올라갈 듯 상체가 쭈욱 펴졌다. 하체와 골반은 단단하게 땅을 지탱했고 가뿐하게 척추를 길고 높게 쓸 수 있었다. 그때 생각을 하며 부장가에 도전했다. 그러나 가슴을 쫙 펴기는 커녕 팔을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팔꿈치가 바깥으로 향하며 접혀 있었고 머리는 바다에서 고작 주먹 한 두 개 높이 정도 들어 올려져 있었는데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이 아사나를 할 때 체크해야 하는 어깨, 명치, 치골, 다리 등의 위치는 내게 멀고 먼 곳에 있었다.


처음에 한 달은 이 상태로 계속했던 것 같다. 모두들 편안히 여러 차례 호흡을 하는 동안 나는 한 호흡도 버티지 못하고 내려오길 반복했다. 그러나 그냥 이게 내 몸이려니 하며 받아들였다. 유일하게 내가 잘했던 것은 내가 못한다고 좌절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팔이 조금 펴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바닥에서 팔꿈치까지 바닥에 붙이고 상체를 일으키는 정도에서 머물렀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나자 조금씩 상체가 더 펼쳐졌다. 처음에는 아직도 몸이 굳어 있어 팔의 힘으로 상체를 들어 올리려 했다. 그러다 보니 어깨가 솟구치듯 올라갔다. 호흡을 내쉬며 어깨를 뒤로 보내면 요추가 가라앉으며 통증이 느껴졌다. 아사나가 깊어질수록 내가 이 자세를 하지 못했던 이유는 단지 허리가 아프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과 어깨도 많이 굳어있어서 어깨를 뒤로 보내 명치를 활짝 펴는 게 어려웠고, 자꾸만 어깨와 팔에 힘이 들어가니 유연하게 힘을 내려놓아야 할 허리도 펴지 못하고 힘을 붙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척추에 좋은 자세지만 척추뿐 아니라 어깨와 가슴을 펴는데도 도움이 되는 자세였고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자기 자리에서 올바르게 사용되었을 때 완성할 수 있는 자세였다. 요가의 다른 아사나들도 그러할 것이다. 어느 한 곳의 힘만 잘 쓴다고 되는 게 아니라 조화롭게 각자의 정확한 자리에서 에너지를 쓰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부장가는 ‘뱀’이란 뜻이다. 이 아사나는 머리를 세우고 있는 코브라 같다 하여 코브라 자세라고도 불린다. 신화에 따르면 이 코브라는 독으로 생명을 해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 혹독한 고행을 이어가며 명상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를 본 신이 그의 소원대로 세상을 떠받들도록 했다. 그리하여 굳게 똬리를 틀어 세상의 아랫부분을 받치고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러한 뱀의 유연함과 굳건한 똬리 속에는 요가 철학도 반영된다.


탄트라 (고대 힌두교 경전) 시각에서 뱀은 우리 안에 잠재된 우주 에너지를 의미한다. 이 에너지는 ‘똘똘 감긴 것’이라는 의미의 쿤달리니라 불린다. 쿤달리니는 깨어나게 되면 척추 아래에 머문다. 쿤달리니가 잠들어 있을 때, 우리는 의식이 각성하지 않은 채로 무감각하게 살아가게 된다. 다양한 연습을 통해 요기는 쿤달리니를 깨워 척추를 통해 정수리까지 끌어올리는 시도를 하게 된다.
(<요가, 몸으로 신화를 그리다>, 미래의 창)


쿤달리니는 인간 안에 잠재된 우주 에너지라고 한다. 내 안에 깃들어있는 나만의 생명력이자 삶의 원천이 되는 에너지들인 것이다. 그것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끊임없이 몸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깨워 내 안에 잠재된 에너지를 충분히 발휘하며 살아가는 것이 요가에서 말하는 삶의 자세인 것 같다. 요가를 하든 하지 않든, 내가 가진 내면의 힘과 육체적 한계도 모르는 채 그저 주어진대로 살아가기보다 나를 좀 더 알아가고 잠재된 힘을 끌어 더 나은 방향을 나아가게 하는 게 필요하다. 결국 내가 가장 나답게 살기 위해선 내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채우고 비우는 시간이 중요하다. 단순해 보이는 이 자세에서 나를 깨울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니 호흡을 보다 소중하고 깊게 내쉬게 된다. 몇 달 전보다 나아진 나를 보며 모르고 지냈더라면 변함없었을 내 안의 에너지들을 생각해본다. 조금이라도 달라진 나를 찾았으니 나의 요가 수련은 잘 되어가고 있는 것이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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