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pe Diem (까르페디엠)

by 박진희

며칠 전, 팔에 타투를 했다. 생애 첫 타투인데 큼지막한 것으로 하나, 작지만 잘 보이는 곳에 하나, 이렇게 두 개를 새겨 넣었다. 몸에 평생 간직해야 할 타투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의미 깊은 일일 것이다. 나 역시 그저 예쁜 모양을 각인하는 것을 넘어 달라진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작업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타투를 하고 싶었지만 선뜻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교사였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는 보수적인 사회에서 교육 공무원이 타투를 한다는 것은 쉽게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타투를 시도해 볼 생각조차 갖지 못했다. 나는 교사가 되려는 노력을 진작에 포기했는데도 언젠가 이룰 수 있을 희망을 품으며 몇 년을 더 보냈다.

사실, 교사 자격증을 받은 이틀 후 나는 수술을 했다. 수술이 끝나고 나면 이 자격증으로 날개가 달린 듯, 내 꿈을 이루는 발판을 닦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고 마음은 무너져 내렸다. 마음을 다독이려 여행을 다녔고, 시골살이를 하며 몸을 돌봤고, 지금은 다른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또 다른 꿈을 이뤘다. 나의 삶이 원했던 결과와는 다르게 흘러갔고 이미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 다르게 살아가게 되었는데도, 아직도 가슴 한 켠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려 노력할 거라 생각했다. 책방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곳에서도 나의 꿈은 계속 이뤄지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왜 그렇게 학교라는 공간에 갔으면 하는 미련을 갖는지 모르겠다. 이룬 적 없는 꿈이라 더 아득하게 미련이 남는 것일 수도 있고, 그만큼 간절하게 원했던 꿈이라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그런 미련이 아주 작게 마음 구석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앞날은 혹시 모르니 하는 마음으로 타투는 마지막 고려 대상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지난 11월 초, 정기적으로 받는 검사 결과를 받아 들고 다소 충격을 받았다. 몸속에 작게 남아있던 종양이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 것 같으니 없애자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사이 기술이 발달했는지 큰 수술이 아니라 작게 극소 부위만 수술을 할 수 있어 금방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수 있다고 했다. 대신 전신마취를 하고 신경이 타 손상될 가능성도 염두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 병원에서는 척추뼈며 골반 뼈며 다 제거하고 잘라내야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할 수 있다니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그래도 나는 무서웠다. 신경이 다치기라도 해서 다리를 마음대로 못 쓰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이 몰려왔다. 의사 선생님은 발목 아래의 신경이니 큰 장애는 아니라는데 발목 아래는 괜찮고 다리 전체는 큰 문제고 하는 기준이 어디 있단 말인가. 특히나 다리가 불편하여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고 살아왔던 아빠를 지켜봐 왔기 때문에 내겐 이게 크고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불안함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결과가 달라질까. 이럴 땐 그저 받아들이고 나은 방향으로 해결되리라 믿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믿고 기대하는 힘, 잘 되길 바라며 기도해주는 많은 사람들의 작은 마음들이 모이면 정말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는 또다시 내 삶이 전화위복 될 것이라 믿으며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병원 일정을 잡고 집으로 돌아와 여러 생각에 들었다. 병을 얻고 여행을 떠났을 때 느꼈던 것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사람의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 병을 얻어서 갑자기 다른 삶을 살 수도 있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급작스런 사고를 맞이할 수도 있다. 어제 보았던 사람들이 곁에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하루를 가장 소중하고 가장 행복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배워왔다. 이것은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Carpe Diem (까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잡아 가장 충실하게 살라는 의미다.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이 가르침대로 지금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타투를 하기로 결심했다.


내게 이 타투는 노력하지도 않았고 다시는 다가오지도 않을 교사의 꿈을 이제는 놓겠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 제주의 작은 책방이 내 삶이고, 꿈이고, 희망임을 다시금 새기는 의미도 있었다. 그리고 다음 달 받을 수술이 물론 잘되리라 믿지만, 혹시나 무엇이 잘못되더라도 나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 어떤 두려운 일이 다가오더라도 나는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처럼 유연하고 굳게 이겨내길 바랐다. 그래서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와 태양, 그리고 그 기반인 땅과 물을 형상화하여 새겼다. 또 중심을 잃지 않게 뿌리를 의미하는 물라다나 차크라를 새겼다. 직업이 나의 행복을 대신하거나 무엇을 이루거나 이루지 못해 남들과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고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나의 능력과 행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들과 다르다고 비교하거나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순간, 몸과 마음은 무너진다. 단단한 기반 안에서 내가 더 많이 가진 것을 보는 눈을 갖고,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조용히 흘려보내는 평온함을 갖길 원한다. 내 몸에 새긴 작은 문양들이 내가 힘들어 무너지려는 순간마다 갈 길을 정확하게 보여주리라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내 안의 에너지를 깨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