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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Nov 29. 2020

마음을 가득 담은 책 선물

책방을 하기 전에는 누군가 생일이나 특별한 날에 어떤 선물을 받고 싶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책 선물’이라고 답했다. 읽고 싶었던 책이 아니어도 좋고, 갖고 있던 책을 또 받아도 좋았다. 대게 책 선물로 내가 읽지 못했거나 전혀 알지 못했던 책을 많이 받았고,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선물 받은 책은 열심히 읽으려 애썼다. 선물 받은 책은 상대방이 내게 통째로 보내준 또 다른 삶의 단편이었다. 작가의 이야기와 선물 보내준 사람의 마음이 합쳐져 들리는 것 같아 더 의미 있게 읽혔다.


이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서인지, 책 선물을 하는 손님들을 보면 괜스레 내가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며 더욱 흐뭇하다. 우리 책방에는 포장이 되어있는 책인 블라인드 북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서 여러 권의 책을 고른 분들이 꽤 많다. 한 분이 5-6권의 블라인드 북을 구매하시면 선물을 하는 것인지 꼭 여쭤본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답이 선물하기 위해 골랐다고 한다. 책에 적힌 키워드를 하나하나 살피며 선물 받을 사람에게 필요한 책을 고르는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책 받으시는 분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말에 이 책은 어떤 사람에게, 저 책은 또 어떤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선물할 거라고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이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이 선물하는 책이라면 어떤 책이 랜덤으로 나오더라도 기쁘지 않을까.


오늘은 친구로 보이는 손님 셋이서 함께 책방에 들어와 블라인드 북 코너에 멈춰 섰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더니 각각 한 권씩 책을 골랐다. 계산을 마치고 세 사람의 대화를 살짝 듣게 되었는데 각자 서로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골라 선물하는 것이었다.

이거 네 책이야. 내가 마음 담아 골랐어.”

작고 귀여운 말 한마디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계산을 하면서 손님과 자주 마주하다 보면 선물하려는 징후가 발견되곤 한다. 같은 책을 여러 권 구매한다거나, 특별히 어떤 책은 모서리가 닳을까 애지중지 다루는 모습을 보거나, 취향이 사뭇 다른 책이 껴있거나, 친구에게 “00 생각나서”라는 말을 하거나, 이런 경우에는 선물을 하기 위해 고른 책일 확률이 높다. 그럴 때는 슬쩍 “혹시 선물하시는 건가요? 포장해드릴까요?”하고 묻기도 한다. 바쁠 때 포장을 하는 일은 수고스럽기도 하지만, 이 작지만 예쁜 마음을 조금 더 사랑스럽게 담아 보낼 수 있다면 이 정도 포장이야 무엇이 어렵겠는가. 책을 구매한 손님도 화사하게 웃고, 그 선물을 받을 분들도 화사하게 웃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책을 고르신 분이 얼마나 오랫동안 책방에서 꼼꼼히 책을 살폈는지, 받는 분의 마음과 상황을 생각하며 그에 잘 맞는 책을 고르려 몇 바퀴를 돌며 책을 골랐는지, 이 책의 문장들이 받는 분의 마음속에서 큰 힘이 되어 더 나아진 삶을 살아가게 만들지, 그 수많은 고민이 담긴 작은 선물이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가 머리맡에 두고 간 선물 <플란다스의 개>를 수십 번 읽으며 책이 주름질 정도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그 책을 읽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조잘조잘 책 이야기를 하는 나의 모습을 보던 부모님의 기분을 상상해본다. 산타 할아버지가 되어 보낸 작은 선물이 큰 감동이 되어 돌아왔을 때, 부모님도 무척 흐뭇하고 행복하지 않았을까. 이런 모습을 생각하니 책은 작지만 강한 힘을 가졌다.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책 속에 담긴 삶으로 초대하여 더 깊은 세상을 알게 해주기도 한다. 이 작고 작은 종이들의 틈 사이로 피어오르는 온기의 힘을 느껴본다. 선물할 일이 많은 겨울, 이 따스한 온기들이 많이 퍼져나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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