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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Dec 06. 2020

제주에서 책방하면 행복할까요?

책방에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원래 제주 분이세요? 아니면 이주민이세요?”라는 질문이다.

제주 이주 열풍이 불어 쉽게 이주 장벽이 낮아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삶의 터전을 바다 건너의 섬으로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어떻게 큰 마음을 먹고 제주에 그것도 중산간 작은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많이 묻는다. 모르는 사람에게 길고 많은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 간단하게 그냥 좋아서 정착했다고 말하지만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꽤나 많은 나의 삶을 이야기해야 만한다. 책방은 나의 사업장이기도 하지만 나의 삶의 결과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20년 넘게 서울의 한 집에서 살았다. 머릿속에 나침반이라도 존재하는 것처럼 서울의 어느 동네를 가면 어디서 무슨 버스를 타야 하는지 검색하지 않아도 훤히 알 만큼, 잘 모르는 동네에 가도 어느 쪽에서 택시를 타야 하는지 대강은 알만큼 서울에 대해서는 눈이 밝았다. 대도시이지만 그야말로 고향이기 때문이다. 스무 살이 넘어 이사를 하긴 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했던 것이었고 28살까지 벗어난 적이 없이 살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고, 시골 할머니 댁의 추억 같은 것도 없어 시골의 낭만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한 곳에서 오래오래 사는 것이 편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은 정반대였다. 낯선 곳을 탐험하길 좋아했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 남편의 모험가 기질 덕분에 혼자였으면 벗어나지 못했을 나의 울타리를 벗어나 다양한 삶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세계 여행을 떠날 수 있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아는 이가 하나 없는 지리산 자락의 시골마을에 자리를 잡고 살아보았고, 또 그 경험 덕분에 제주에서도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과거의 경험들이 없었더라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디서 살든 눈에 보이는 좋은 점 이면에 어려운 점들이 존재했고, 그것을 감내하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었다.


제주가 좋아 정착하고 싶어 하고, 여기서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게 작은 책방을 하나 열고 싶다고 하는 분들이 종종 찾아온다. 여기서 책방 하면 완벽할 것 같다는 말에 우리는 책을 정말 좋아한다면 그저 독자로 남으라고 조언한다. 책방의 일은 독서가 아니다. 생계가 달려있는 상업 공간이므로 고여있으면 안 된다. 늘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고 일해야 한다. 나도 책을 정말 좋아하지만 느긋하게 독서의 즐거움을 누린 지 오래되었다. 게다가 독서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다른 카페에 가서 읽는 것이 훨씬 편안하다. 해야 할 일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임대 계약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고, 불편하게 만드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한껏 보고 살고 있다. 그럼에도 제주에서 책방을 하는 이 삶이 너무나 행복하다. 빽빽한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 않던 푸른 하늘, 매일 보아도 똑같지 않은 구름, 거친 생각을 잔잔하게 가라앉혀주는 파도 소리, 그리고 안부를 물으며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좋은 사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론 거친 태풍처럼 휘몰아치기도 하지만 그것이 지난 후 찬란히 뜨는 무지개처럼, 제주의 삶도 휘몰아치다가 오색찬란하게 빛나기도 한다. 어느 곳에서는 삶은 똑같이 흐른다.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그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제주에서 책방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느 곳이든 단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행복은 완벽한 그림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주머니 속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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