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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Dec 14. 2020

코로나 검사

어제 그러니까 13일 일요일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선별 진료소를 찾았다.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려면 최소 3일 전에 받은 코로나 검사 결과지가 있어야 해서 찾은 것이다. 일요일에도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하여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런데 보건소 외부에 마련되어 있는 검체 채취소에 불은 들어와 있었으나 아무도 없었다. 내부에 들어서니 입구에서 방명 명부를 작성하는 테이블도 텅 비어있고 불도 거의 꺼져있었다. 접수 데스크에 있는 직원에게 입원 제출용으로 검사를 받기 원한다고 말하니 오늘은 의사 선생님이 없어서 못 받는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먼저 건넸다. 분명 일요일에도 선별 진료소를 운영한다고 시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고 왔건만, 선생님이 안계서 못 받는다는 건 무슨 소리인가. 일요일에 하는 것을 확인하고 왔다고 하니 접촉자로 분류된 사람만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보건소에서는 무료 검사만 가능하기 때문에 자비 부담하는 검사는 해줄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다른 병원에 전화 걸어보라는 자세하지 않고 우왕좌왕하는 답변을 듣고 문을 나섰다. 정말 내가 양성 환자면 어쩌려고 이렇게 부정확한 정보를 주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답답했다.

오늘 눈을 뜨자마자 제주의 큰 종합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입원 제출용으로 검사를 받고 싶다니 똑 부러지는 대답이 들려왔다. 확진자의 접촉자가 아닌 경우는 자비로 검사를 진행해야 하고 검사비용은 11만 원이 조금 넘으며, 지금 제주에 확진자가 많이 나와서 접촉자 수가 늘어 대기가 많은 편이라고 했다. 꽤 오래 기다려야 하니 준비를 해서 방문을 하라며 검사 결과 시간은 대략 오후 6시쯤 되고 결과지는 다음날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여줬다. 어제와는 다르게 뭔가 체계가 잘 잡혀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다. 체계적이고 빠른 검사가 전국에서 잘 시행되면 코로나 확산을 막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대기 인원이 많다는 이야기에 서둘러 집을 나섰지만 때마침 제주에 첫눈이 내렸다. 많이 쌓일 정도는 아니지만 도로가 제법 하얗게 덮여 길이 미끄러워 속도내기가 어려웠다. 거의 한 시간이 다 되어서 병원에 도착하여 선별 진료소로 향했다. 50대 남성 두 분이 손에 파일을 들고 서있었는데 직원인지, 검사받으러 오신 분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뒤에 줄을 서면 되는 건지 몰라 접수라고 쓰인 컨테이너 사무실 앞에서 검사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대답은 “줄을 서시오”였다. 아까 보았던 남성분들은 그 사이 일행이 추가되어 세 분으로 늘어나 있었고 나는 그 뒤에 줄을 섰다. 앞에 세 분은 인적사항과 증상 등을 적는 문서를 받아 제출하였는데 나는 아직 받지 못하였다. 앞의 일행분들은 천막 안에 마련된 대기 공간에서 열을 재고 설명을 듣는 동안 나는 계속 줄을 서 있었다. 눈발이 점점 거세지고 몸에 한기가 서리는 게 느껴졌다. 의료진은 3명 정도 되어 보였다. 왔다 갔다 몹시 분주해 보였고 몹시 추워 보였다.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사무실은 문이 활짝 열려있고 조그만 열선 난로가 하나 있었다. 종종 시린 발을 난로 가까이 가져가 보았지만 온기가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눈발이 거세지자 나도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지나자 내게도 인적사항을 적는 문서를 주었고 검사 목적을 확인하여 체크하였다. 그리고 오전 시간의 마지막 검사자로 당첨되었다.

기다림이 가장 힘들었다. 날이 추워서 아마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손이 시려 핸드폰을 꺼내 보기도 쉽지 않자 앞에 아저씨들의 대화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확진자가 다녀간 공간을 이용했던 분들인 것 같았다. 직접 접촉한 것은 아니지만 불안한 마음에 검사를 받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같은 시간대도 아니니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말자.”라고 다독이는 말에서 불안감과 서로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한참 후, 영상으로 교수님과 간단한 진료를 보고 안내를 받은 후 검체 채취하는 곳으로 갔다. 팔만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부스이고 긴 일회용 비닐장갑이 달려 있었다. 목에서 한 번, 코 속 깊은 곳에서 한 번, 이렇게 두 곳에서 검체를 채취하며 코로나 검사는 쉽게 끝났다.

한 시간 넘는 시간 동안 정신없이 일하는 의료진의 모습을 목격하고 나니, 어제의 불편함도, 오늘의 긴 기다림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 들었다. 이 일을 날마다 하고 있을 거란 생각에 미안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애쓰는 분들이 없으면 어떻게 이 불안한 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오후 6시가 되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음성이라 걱정 안 해도 되지만 방역을 위해 늘 마스크를 써 줄 것을 당부하였다. 집에 돌아와 6시가 되기까지 5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사실 내내 불안했다. ‘혹시라도 양성이면 어쩌지, 그럼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가 생길까’ 이런 생각이 계속 괴롭혔다. 아닐 것이라 믿었지만 나는 확실하다는 자만도 금물이기 때문이다. 5시간이 더디게 지나는 것 같았다. 마음을 돌리려 다른 재미난 것들에 시선을 돌렸지만 쉽게 집중이 되지 않았다. 확진자와 접촉한 분들은 얼마나 더 불안했을까. 병원에서의 전화가 이렇게 긴장되면서 반가울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곧이어 제주에서 새로 확진된 사람들의 번호가 줄줄이 메시지로 전달되었다. 나처럼 오늘 오전에 줄을 서서 검사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불안함을 내내 숨기다 결국 무거운 마음이 남았을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시골에 살면서 일까지 쉬고 있으니 멀게 느껴지던 요즘의 상황들이 바로 코 앞의 상황이라 생각하니 더욱 긴장이 된다. 잠 못 드는 사람들,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하루 종일 분주하게 일하는 사람들,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모두 다 힘든 시기를 건너가고 있다.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온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게 조금씩 거리를 더 두고 마음은 서로 배려하며 지내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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