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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Feb 20. 2022

기왕에 노는 거 제대로 놀아보라고 했다.

아이에게 노트북을 사주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제 아이에게 노트북을 사주었다. 미룬 까닭은 가뜩이나 공부를 멀리하고 있는 아이에게 새 컴퓨터가 ‘독’이 될까 봐 그랬다.

특별히 필요한 용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가족이 공용으로 쓰고 있는 것이 한 오 년쯤 지나기도 했고 당시에 저렴한 맛에 구매한 거라서 사양이 좀 ‘구리다’(아이 표현이다)

온라인 수업을 듣는 용도로 주로 사용하는데 수업 도중에 다른 창을 몇 개 띄우려고 하면 버벅거린단다. (근데 수업 도중에 왜 다른 창이 필요한 거지?) 일전에 xx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여 설치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뜩이나 구린 사양의 콤에 이런 묵직한 프로그램을 자꾸 설치하니 버벅거리는 것이 당연하다.(메모리 4) 컴퓨터를 잘 모르는 상태라서 시작프로그램에도 이것저것 많이 깔았을 테고... 마음으로는 도와주고 싶지만 ‘노인성 컴퓨터 피로증후군”이라는 질병이 있어서 그럴 수가 없다.(귀찮다는 소리임)


아이가 공부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지는 꽤 오래되었다. 아직은 착한 아이라서 자기가 포기하면 엄마가 슬퍼할까 봐 억지로 공부를 하고 있다. 고등학교 계열 선택을 할 때 슬쩍 특성화고등학교(우리가 예전에 공고라고 부르던)를 가면 좋겠다고 했다. 컴퓨터를 주로 가르치는 정보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당연히 아이 엄마는 컴퓨터가 공부하고 싶다면 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대안(이라고 쓰고 통보라고 읽는다)을 제시했다.


내가 우리 아이를 객관적으로 보건대 ‘이과생’의 머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어찌 ‘이과’ 공부를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근데 컴퓨터를 응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왜 문, 이과로 나뉘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언어(?)라는 것을 이용해서 이런저런 앱도 만들고 프로그램도 만든다고 하던데 ‘언어’라면 당연히 ‘문과’가 아닌가?

아이가 ‘언어’를 공부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 거 같고 그냥 로딩 속도가 빨라서 시원하게 게임도 즐기고 유튜브도 즐길 수 있는 컴퓨터가 필요한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네박사 대신 유튜브에 물어본다고 한다).


이러고 있던 차에 아내가 근처의 대형마트가 새단장을 끝내고 영업을 다시 시작한다고 했다. 보통 이럴 때는 오픈 빨을 위하여 할인행사를 한다는 고급 정보를 슬쩍 흘린다. 아내도 아이 공부에 어느 정도는 포기한 상태이다. 포기라기보다는 포기를 위해서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상태라는 말이 좀 더 정확할 듯하다. 아이보다 먼저 슬쩍 가보니 과연 ‘할인행사’를 하고 있었다. 최신 사양의 노트북을 보니 좀 탐이 난다. 메모리 16, 하드 256. 이 정도면 꽤 오랫동안 불편 없이 쓰겠다 싶어 덜컥 사서 들고 와버렸다.

아내는 이런 나를 보면서 좀 한심해한다.(아니, 고급 정보를 흘릴 땐 언제고...)


이이는 두 눈이 반짝거리며 이런저런 초기 세팅을 하고 있다. 같이 딸려온 한컴오피스를 설치하면서도 빠르다고 감탄을 한다.


‘호사다마’


드디어 xx프로그램을 깔아야 할 차례이다. 그런데 웬일인가. 계정에 권한이 없다는 메시지가 반복되는 것이 아닌가. 아이디가 틀린 거 아니냐고 이런 거 나중에 기억하기 어려우니 수첩에 잘 적어두라고 하지 않았냐며 하나마나한 잔소리를 옆에서 하고 있는 내가 좀 한심하다.

아이는 곰곰 생각하더니 일전에 메일이 왔었는데 ‘도용’ 어떠구 했었는데 대충 보고 무시하고 지워버렸는데 혹시 해킹이 된 게 아니냐며 울상이다. 아니 이런 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컴퓨터 사이언스를 공부한다고 했냐고 핀잔을 주었다.


아차 싶었다.

그깟 프로그램이 뭐라고...

아이가 용돈을 모아서 3만 원이나 주고 설치한 건데 가장 속이 상할 아이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다. 이게 아닌데.


아침에 잔소리라고 할까 봐서 카톡을 남겨 두었다.

일단 ‘도용’이 의심된다고 온 메일부터 찾아보고 이런 경우 어찌해야 할지 네박사에도 물어보고 유튜브에도 물어보면서 같이 해결을 해보자고 했다.


답이 없으시다. ㅠㅠㅠ

아유. 아이 키우는 거 어렵다. 이게 뭐냐구. 돈은 돈대로 쓰고 욕은 욕대로 들어먹구...


202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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