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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Feb 26. 2022

서울이 조금 궁금해졌다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한동안 한옥 그리기에 열심이었다. 그동안 틈틈이 그리면서 있었던 소소한 일상으로 글도 써서 브런치 북을 만들기도 했다. 아내가 슬쩍 지나가며 묻는다.

"오늘도 한옥만 그리고 있네. 이제 다른 주제로 좀 그려봐"

"그럴까. 뭐가 좋을까?"

"건물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서울시내에 그럴듯한 건물 한 번 그려보는 게 어때? 지난번 중명전인가 하는 건물 보기 좋던데."


 좋은 생각이라며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 '중명전'류의 건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지나오면서 이국적인 근대건축물들이 서울의 풍경을 다채롭게 하였다. 그중 일부는 이미 사라지고 살아남은 건물들도 그 용도를 잃어버린 채 박제되었으리라 짐작이 되었다. 문득 내가 그리게 될 건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몇 가지 키워드로 출간 도서를 검색해 보았지만 내가 원하는 책이 맞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아이를 꼬드겨서 도서관에 가자고 했다. 마포중앙도서관은 아이가 가끔 책을 빌리거나 공부를 핑계로 가는 곳이다. 그냥 가자고 하면 안 간다고 할게 뻔하기 때문에 운동삼아 걸어가자고 했다. 공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건강한 몸을 가지는 거라면서 회유와 협박으로 길을 나서게 만들었다. 마지못해 따라나서기는 하지만 집에서부터 도서관까지의 거리는 만만하지 않다. 투덜거리면서 간신히 도착한 도서관 1층의 카페에는 조그마한 카페가 있다. 이곳에서 간식을 먹고 수다를 좀 떨고 책을 찾으러 올라갔다.


일단 두 권의 책을 골랐다. 한 권은 무난하다. 또 다른 한 권은 자료조사에 공을 들인 흔적이 느껴진다. 무난한 책은 조금 읽다가 나중으로 미루어두었다. 무난하긴 하지만 어쩐지 술술 읽히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권은 전직 오마이뉴스 기자답게 몹시도 정치적이다. 정치적인 것이 어떻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역사와 서울의 이야기를 적당히 버무려서 아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장치로 정치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잘못된 정치로 힘들었던 시대의 이야기는 언제나 흡입력이 강하다. 세상에 정치적이 아닌 것이 있던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이라고   있는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한심한  후보중에서 하나를 억지로 선택해야 하는 괴로움이 있다. 아마도 나만 그럴것이 아니라고 본다.

해야하니 그래도 몇가지 지표를 정해놓고   차악을 선택해본다.

- 미래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 민주주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복수의 정치는 이제 그만

- 주변 사람의 부정부패를 막을  있는가


다시 책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소제목을 보더라도 매우 ‘불경’스럽다. 감히 ‘국부’이신 이승만과 ‘근대화의 아버지’인 박정희 시대의 그늘을 보여준다. 전태일 열사가 노동착취 현장을 고발하기 위한 분신을 했던 청계천 평화시장, 친일 미술가들이 빚어낸 독립운동가들의 동상, 김구 선생의 경교장이 어느 병원의 출입문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 국립현충원의 불편한 진실, 와우아파트 붕괴, 이승만에 의해 해체된 반민특위의 현장, 어느 꼭지를 읽더라도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대목이 없다. 하긴 우리의 근대역사 중에 시원하고 통쾌했던 장면이 없으니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라고 이런 책을 만날 수 있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가 밥벌이의 고단함에 치여 허우적대는 사이 축적된 삶의 편린들이 소리 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 이것이 안타까왔던 저자는 이미 사라져 버린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기록사진들을 많이 실어 놓았다.

오래된 자료를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사료를 뒤져보다가 벽에 막히면 현장을 찾아 당시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인터뷰를 해서 단초를 찾아낸다. 이런 노력이 읽다 보면 보인다. 아마도 기자 노릇을 하며 훈련된 것이리라.


당초에 그림 소재를 찾으려던 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늘 그렇듯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또 샛길로 빠져버렸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을 전부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언제고 서울의 길을 걷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을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본다.

어느 병원의 출입문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교장’은 찾아가서 한번 그려보아야겠다.


2022-02-25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 가는 역사를 만나다

권기봉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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