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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Jul 19. 2022

내비게이션이 수상하다

뤼데스하임 가는 길

“아무리 봐도 희한하네.”


철자를 잘 못 입력했나 싶어 한 글자 한 글자를 꼼꼼하게 다시 입력해봐도 결과는 같다.


어제 스트라스부르에서 동문 선배를 만나 수다와 와인 그리고 맛있는 프랑스 요리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가는 길이다. 늦은 저녁 비행기라서 시간이 넉넉하다. K형에게 가고 싶은 곳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벌써 생각해 둔 곳이 있으시단다.


“부지런하시네. 그게 어디유?”


뤼데스하임을 가자고 하신다. 거긴 또 어디?

라인강변에 걸쳐있는 아름다운 작은 마을들 중 하나라며 능숙하게 내비게이션에 입력하신다. 톰톰 내비게이션이 뭐라고 떠들더니 희한한 짓을 한다. 우리를 라인강변으로 데려가는 것은 좋은데, 다리도 없는 곳으로 안내하고 있다.


“어, 이상하다. 아무리 지도를 봐도 ‘다리’가 없어. 이 놈 우리 차가 수륙양용인 줄 알고 있나 봐”


에이 그럴리가요? 하면서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목적지로 가는 길을 보니 정말 다리가 없는 ‘길’로 우리를 데리고 가고 있다. 그래도 자세히 확대해서 보니 길은 없지만 점선이 보인다.


점선이라니...이건 무슨 뜻일까.

뭐 어찌 되겠지. 그래도 길은 없어지지 않으니 그냥 가본다.

그리하여 마침내 도착한 곳은 선착장이다. 바지선같이 생긴 배가 강의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면서 차와 사람을 실어 나르고 있다. 둘이 얼굴을 쳐다보면서 웃음을 터뜨린다.


아침부터 꾸물거리던 날씨. 드디어 비를 조금씩 흩뿌리고 있다. 마을의 주차장은 다행히 한산하다. 아마도 관광시즌이 지난 탓이리라. 에이, 사람들이 좀 복작거려야 여행의 맛이 나는 건데...


마을에 뭐가 있는가 관광지도를 들여다보니 곤돌라를 타고 산 위로 올라가서 트레킹을 하는 것이 유명한 일인가 보다. 점심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산에 가려면 밥을 먼저 먹어야 한다’는 선현의 가르침에 따르기로 한다.


독일에 왔으면 당연히 학센이지. 뭐 다른 거 먹을 거 있나. 예쁜 골목길에 있는 곳에서 먹기로 했다. 뭐 특별하게 멋진 곳을 좋아해서는 아니고 비수기에 갈만한 식당은 모두 그 골목에 있는 듯했다. 문이나 열었을까 싶었는데 이외로 우리보다 먼저 오신 분들도 있다. 현지인들도 찾는 이곳. 맛집인가?

Drossel hof.



학센과 맥주. 치킨과 맥주보다 훌륭한 조합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족발의 속살은 지금도 입에 군침이 돌 정도로 담백하고 맛있었다.(어르신 입맛) 독일맥주는 어느 곳에서 무엇을 마시던지 실패가 없어서 좋다.


속을 든든하게 채웠으니 이제 관광을 해보기로 한다. 케이블카와 곤돌라의 차이를 혹시 아시는가?

곤돌라는 외팔로 줄을 잡고 올라가는 약간 위태로운 형태이다. 케이블카는 훨씬 안정적으로 양쪽 줄에 고정되며 크고 탑승인원도 많다.


곤돌라는 아니지만 과천대공원에 가면 호수를 가로질러 사람을 나르는 리프트가 있다. 우리집 꼬맹이가 정말 꼬맹이였을때, 타보자고 졸라서 태워줬더니  무섭다고 위에서 울고 불고, 흐유 십년감수했다. 그러던 꼬맹이가 이제 바이킹은 맨 끝줄에 앉아서 두 손 번쩍 올리며 타고 논다. 언제 이렇게 커버렸는지 아깝다. 아까워요.


뤼데스하임에 있는 탑승 기구는 곤돌라. 심지어 창문은 없지만 천장이 있는 오픈카(?) 형태이다. 날씨가 좋으면 멋지겠지만 비가 부슬부슬 오다가 심지어 바람이 살짝 불어오니 비가 안으로 들이닥친다. 우산을 펴서 막아보려 했지만 오히려 ‘모양만 빠진다’.

언덕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을 지나 곤돌라는 정상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나중에 알았다. 이곳이 유명한 독일 와인 산지라고 했다. 맥주보다 와인을 택했어야 했을까?


산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비 때문인지 산뜻하지는 않다. 예쁜 동네라고 소문이 나 있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화장발이 먹히지 않는다. 안경에 자꾸 묻는 이슬 같은 비 때문에 몹시 불편하다. 그래도 산 위에 있는 게르만엄마 동상은 봐야 한다길래 작은 우산에 남자 둘이 몸을 붙이고 사이좋게(?) 걷고 있다. 게다가 우산 색깔은 이게 뭐람. 보라색이라니.

지나가는 게르만 여자들이 웃음을 날리며 가고 있다. 휘파람이 아닌 게 다행이다.


거대한 게르마니아 여신 동상에는 그다지 감흥이 없다. 받침석이 너무 커서 맡에서 보면 잘 보이지도 않아서 그럴까. Size does not matter. 산책길을 따라 좀 더 걸어보려 했지만 역시나 날씨가 문제이다. 으슬으슬 춥기까지 하다


산책을 중지하고 내려가서 골목길을 조금 더 돌아다녀본다. 뭐 그다지 큰 마을도 아닌 데다 비수기에 비까지 와서 그런가 사람들의 발길도 뜸하다.

학센을 맛있게 먹은 식당이 있던 골목이 이 마을에서 가장 붐비는 곳인가 보다.

Drosselgasse


사실 이쯤에서 뤼데스하임 그림을 한 장 그려 넣어야 하는데, 어쩐지 찍어둔 사진들이 전부 마음에 안 든다. 아니면 그리는 게 귀찮아서 핑계를 대고 있나.


2017년 늦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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