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그림 Jul 26. 2022

드럼 스캔 전문가를 만났다

두근두근... 출간으로 가는 길(6)

글 자체에 자신이 없는지라 그림으로 부족함을 메워보려 글과 그림 모두를 넣는 여행 에세이를 기획했었다. 사진을 찍은 것으로도 책을 만들 수는 있지만 드럼 스캔한 것에 비하여 품질이 조금 떨어진다는 편집자님의 의견에 따라 샘플로 몇 장을 드럼 스캔해봤다. 나는 전문가의 의견에는 좀처럼 반박을 하지 못한다. 나의 주변 사람들도 전문가(?)인 나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따라 주면 좋겠는데, 나의 주변엔 어찌 된 일인지 초식성의 상냥하고 온순한 분보다는 약간 육식성 성향의 분들이 많다. 초식성이라도 하마나 코끼리류의 사람들이라서 항상 밟힐까 노심초사하는 편이다. 그러니 앞에서 대놓고 으르렁거리기보다는 이렇게 뒤에서 구시렁거린다.  


오늘도 역시 전문가를 만났다. 바로 드럼 스캔 전문가이시다.

드럼 스캔과 평판 스캔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시는 것을 시작으로 갑자기 봇물이 터지신 것처럼 수다스러운 사장님이시다. 요 며칠 손님이 없어서 심심하셨나 살짝 의심을 해본다. 예전에는 드럼 스캔이 첨단기술이었는데 이제는 사양산업이 되었다면서 추억에 살짝 젖으시는 표정이시다. 젊을 때 이 일을 시작하셨다면 족히 30년을 해오신 일이니 그럴 만도 하다.


드럼 스캔의 양대 제조사는 독일과 영국에 있었다고 하신다. 지금 사용하고 계신 스캐너는 독일산이라며 자랑스러운 듯 기계를 툭툭 두드리신다. 문제는 두 회사 모두 이제 더 이상 드럼 스캐너를 생산하고 있지 않는다면서 부품이라도 구할라치면 너무 힘들고 어렵단다. 스캐너를 구동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쩐지 좀 구리다고 생각했었다. 그래픽도 그렇고 글자체도 그렇고.

아마 이게 무엇인지 눈치채신 분들은 나처럼 '올드'한 세대이다. 무려 '윈도 98'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 기억하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윈도 98은 굉장히 훌륭했던 윈도 버전이다. 너무 훌륭하고 사용자 편의성이 좋아서 다음 버전인 윈도 2000(?)인가 뭔가가 나왔어도 윈도 98을 설치해달라고 하는 고객이 많아서 영업사원들이 난감해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이렇게 오래된 운영 프로그램이 아직도 제 몫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이 녀석과 같이 온갖 시간을 함께 보낸 사장님이 기계를 툭툭 두드리시는 기분을 이해할 것 같다.


이름대로 드럼처럼 생긴 틀에 그림을 걸어두고 빙글빙글 돌리면서 스캔을 하는 것이라서 드럼 스캔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그림의 크기에 따라 드럼 안에 두장 또는 네 장 정도 한꺼번에 넣고 스캔을 한다.



드럼 스캐너로 그림파일을 만드는 일은 점점 수요가 줄어들고 있어서 언제 그만두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하신다. 카메라 촬영과 디지털 드로잉이 일상적이 일이 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은퇴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미소를 지으신다.

혹시 누가 알아요. 버티고 계시다 보면 LP판처럼 희귀성으로 다시 찾은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 않냐면서 말도 안 되는 위로를 하고 있지만, 허허 웃고 마신다.


스캔이 끝나자 파일 하나하나를 열어보면서 꼼꼼하게 잡티를 제거하고 계신다. 그림으로  때는 몰랐는데 구도를 잡으려고 그어 두었던 희미한 연필선이 보인다. 이것조차도 모두 지우려고 하시기에 그냥 놔두라고 해두었다. 잘못 그어버린 선도, 잘못 입힌 색깔도, 색을 입히다가 손에 물감이 묻어있는지 모르고 만져서 망쳐버린 자국도 괜찮다고. 아날로그 그림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것들이라고.  


작업실 한 구석에 취향을 알 수 없는 책들이 한 무더기 있다. 아이들이 볼 만한 동화책부터 식물 이야기까지 아주 다양한 책들이어서 이게 다 뭐냐고 여쭤보니, 여기서 스캔해서 만든 책이 나오면 작가님들이 한 권씩 보내준다고 하신다. 책장을 만들어 잘 보관을 해야 하는데 자꾸 구석에 쌓인다면서 민망해하신다.


옛날 DVD 표지도 자료로 보관하려고 스캔을 의뢰하기도 한다면서 DVD  표지를 보여주신다. 영화 자체도 오래되었지만 이제 더 이상 DVD로 영화를 보지 않으니 이 또한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엔 온통 사라져 가고 있는 것 투성이가 아닌가. 드럼 스캐너, DVD, 나이 먹어 은퇴를 앞둔 중년의 사내 둘 그리고 책들. 헛헛헛.


책 무더기 속에서 멋진 책을 찾았다. 세밀화도 아름답지만 글도 아주 재미있다.(비록 조금 훑어보았지만)

아마도 조만간 책을 사서 읽어보고 독후감을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다른 것들은 몰라도 '책'마저 사라지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다.   



2022-07-25

매거진의 이전글 편집자에게서 온 세 번째 미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