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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Oct 15. 2022

아이의 폭탄선언

알바를 하겠다고 한다

  홍여사는 오늘도 마음이 저리다.

  아이가 중간고사 공부를 한다면서 집에 붙어 있지를 않는다. 꼭 독서실에 가야만 공부가 되는 거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독서실에 가는 것까지는 좋은데 도통 무얼 먹으면서 지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침도 안 먹은 채 뽀로록 나가서는 11시가 다 되어야 들어온다. 학원 자습실에 있다 오기도 하고 스터디 카페에 있다 오기도 한다는데 홍여사와 나는 걱정이 많아진다.      


  며칠 전에는 이제 영어학원은 그만 다니고 싶다고 한다. 아무리 해봐도 공부가 적성은 아닌 것 같다면서 슬그머니 아내의 눈치를 살핀다. 나는 원래 아이를 방목하고 있던 터라 내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간고사는 보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자’며 아내는 더 이상 대화를 진전시키지 않는다. 아이는 묵묵부답으로 밥을 꾸역꾸역 꾸겨넣는다. 아이도 알고 있고 부모도 알고 있는데 ‘혹시나’하는 기대 때문에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아이가 우리에게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어제는 중간고사가 끝나면 알바를 하고 싶다고 한다. 학생이라서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건 몰랐네) 매일 하는 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세 번 정도 12시간 정도면 어떠냐고 묻는다. ‘그렇게 해주는 데도 있냐’고 묻자 맥도널드 같은 곳은 가능할지 모른다고 한다. 아이 엄마는 반응이 없다. 집안 공기가 무거워진다.


  산책길에 홍여사를 달래 본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에게 계속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서로에게 고통이다. 아이가 하고 싶지 않다고 의견을 밝힌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제대로 키우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것저것 경험을 쌓아보는 일이 결코 공부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고 했다. 근데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 것을 어쩌냐며 되묻는다.


  며칠 전 읽었던 <설이>라는 소설이 생각나서 아내에게 일독을 권했다. 남의 자식에게는 ‘아이는 행복해야 하고, 많이 놀아야 한다’고 설파하면서 정작 자기 자식에게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곽원장이 생각나서였다. 소설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다. <소년의 레시피>도 사서 거실에 두고 굴러다니게(?) 두었다.(배지영 작가님께는 죄송) 공부에 흥미를 읽고 엄마와 동생에게 밥해주는 것에 재미를 붙인 소년의 이야기이다. 소설이 아니고 실화다!


  아이에게는 일단 시작하면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고 다짐해두었다. 아주 오래전 작은 아빠가 6학년일 때 새벽 신문배달을 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잠이 많던 얘가 어떻게 새벽에 일어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부모님이 허락해주셨다. 일주일 만에 그만두겠다고 해서 보급소장이 무척 화를 내고 집에까지 찾아와서 소리를 질렀다. 결국 다음 후임자를 구할 동안 책임지겠다는 조건으로 나와 동생이 구역을 나누어서 신문배달을 했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쩡아. 살면서 우리가 너를 너무 자유로운 영혼으로 키운 것 같어. 어릴 때부터 너를 좀 다그쳐 키웠으면 지금보다 공부를 좀 더 잘하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너도 다른 고민 안 하고 공부에 좀 더 몰입했을 텐데”


아닐 거란다. 만약 그랬으면 자기 너무 힘들어서 뛰쳐나갔을지 모른단다. 지금도 무척 힘들게 학교 다니고 있는 중이란다. ‘아니, 주말엔 12시간씩 자고, 찬구 만나서 놀고, 남는 시간엔 스마트폰만 보면서 뭐가 힘들어라는 마음의 소리가 목까지 올라온다.  참는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니 지금처럼 적당히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한다. (여기서 적당히란 먼저 궁금해하지 말고, 자기가 궁금하거나 필요한  있으면 도와달라는 말이다)


“엄마, 맨날 화초 들여다보면서 투덜거리잖아. 왜 이렇게 잘 안크냐구. 그게 다 너무 관심을 가져서 그래.”


나도 그건 쩡이 말이 맞는 것 같다며 맞장구를 쳐준다. 맨날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하고 흙은 왜 그렇게 자주 바꾸어주는 건지. 가만히 보면 ‘못살게 굴고 있다’고 아이의 말에 응원 사격을 해준다. 홍여사도 ‘아이구. 둘이 똑같다’면서 웃고 만다.


“내가 화초를 못살게 구는 건, 연습하는 거야. 어떻게 하면 잘 키워볼 구 있을까. 내가 너한테 그랬으면 좋았겠니?”


‘으으으’ 아이는 너무 싫을 것 같다며 목을 집어넣는다. 엄마 아빠가 대충(?) 키워서 자기가 그래도 이만큼 잘(?) 큰 거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나저나 알바 동의서는 언제 가져오려나? 마음을 바꾸고 나니 갑자기 다음일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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