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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Jan 29. 2023

오월엔 토스카나

당뇨와 혈압 사이

  삼 년간 가지 못했던 이탈리아를 다시 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2023년 5월에는 코로나 이후 다시 GM 미팅을 한다고 본사 출장을 오라는군요. 오월이라니 그냥 출장만 다녀오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예전부터 하고 싶던 일이 있었습니다. 미루어 두었다가 막 하려던 바로 그 해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이제 또 미루어두면 언제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게다가 해가 갈수록 제 다리도 시원찮아지고 있거든요. 토스카나 일부를 뚜벅뚜벅 걸어가 보려 합니다. 사실 두 다리만 그런 건 아니에요. 작년 건강검진에서는 당뇨와 혈압이 경계치에 걸려 있는 걸로 나왔습니다. 게다가 우리 집 홍여사는 섹스를 포기한 저를 곯립니다. “앞뒤가 똑같은 우리지노~”라며 노래를 부르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쳇, 앞뒤가 똑같은 건 자기이면서 별소리를 다한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립니다.(이건, 마음의 소리입니다) 홍여사가 싫어진 건 아닌데 어쩐지 이제 섹스는 번거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손만 잡거나 꼭 안아주면서 잠이 듭니다. 근데 이것도 불편한 자세라서 잠이 들고 나면 어느새 서로 등을 대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지경이니 홍여사는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대놓고 드러냅니다. 해발고도 200~500미터 사이의 완만한 지형이라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큰소리를 쳐두었습니다. 북한산을 괜히 다닌 것이 아니라며 허세도 떨어봅니다.


  확정된 일정입니다.

목요일 밤 비행기로 출발, 금요일 오전 피렌체 도착, 피렌체에서 부온콘벤토까지 이동 후 그곳에서 1박.

토요일 아침부터 도보 시작. 부온콘벤토-몬탈치노를 거쳐 산퀴리코도르차에서 1박. 25km

몬탈치노 가는 길이 포장도로라서 좋지 않다고 판단되면 생략하고 프란치제나길을 따라서 산퀴리코도르차로 갈 수도 있슴.(날이 갈수록 프란치제나길로 마음이 기울고 있슴)

일요일 아침 산퀴리코도르차-발도르차-피엔차-몬테풀차노 1박. 25km

월요일 아침. 버스와 기차로 라미니까지 이동.

화요일부터 미팅 참석.


  이렇게 계획을 짜두고 숙소예약도 끝냈습니다. 어떤 여행이 될는지 알 수 없습니다. 길에서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누구를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이틀 동안 50km 정도 걷는 것이 큰 일은 아니겠지만 5kg 정도의 배낭을 메고 걷는 것은 아주 오래간만의 일이라서 걱정도 됩니다.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어느 정도 구간은 버스로 점프할 생각도 있습니다.


  본사의 이탈리아 친구 두 명에게 일정을 보내두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수습하러 오라구요. 뒷수습은 걱정 말라더군요. 다만 같이 걷자는 말만 하지 말라더군요. 부온콘벤토, 산퀴리코도르차, 피엔차, 몬테풀차노는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그래도 중심부에는 오래된 성당과 광장이 있는 아주 예쁜 동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유네스코문화유산을 찾는 것은 너무 쉬운 일입니다. 아마 이 마을들 중에도 있을지 모릅니다. 너무 자세히 찾아보는 것보다 현지에서 ’ 놀라움‘을 느껴보려 합니다.


  그래도 몬테풀차노에 대해서는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마을이름이기도 하고 포도품종이기도 하고 와인이름이기도 한 곳입니다. 많은 이탈리아의 마을들이 그렇듯이 몬테풀차노도 주변보다 높은 언덕 위에 만들어진 마을입니다. 마을에서 주변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기대가 됩니다. 수직으로 파내려 가 만들어 놓은 지하 와인저장고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몬테풀차노 와인의 가격을 생각해 보면 조금 비싼 경험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번 찾아가 보려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와인애호가라서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비싼 와인을 사 먹을 경제적 여유는 없어서 늘 마트에서 할인하는 와인만 마셨는데 그렇게 될 리가 있겠습니까. 그냥 이런 거 경험해 두면 어디 가서 ‘잘난 척’할 때 써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는 아주 속물적인 이유입니다.


  그나저나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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