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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Feb 19. 2023

말다툼 그리고…

화가 나서 셋이서 말다툼을 했다. 너무나 사적인 가정사라서 또는 홍여사와 꼬맹이와 말다툼을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는 밝힐 수 없다. 다만 각자의 입장이 너무 달라서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고 해두자. 그동안 잘 제어되고 있던 ‘분노조절장애’가 불쑥 나와서 소리를 버럭 지르고, 속에 담아 두었던 ‘말’들을 와락 내뱉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이번엔 꼬맹이와 홍여사도 가만있지 않겠다는 듯이 쏘아붙인다. 우리 집 여자들을 말로 이길 수 없음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바, 후련하게 질러 버린 걸로 만족하고 슬쩍 방으로 후퇴했다. 에잇. 글이고 그림이고 다 때려치우고 나를 확 망가뜨리겠다는 소아기적 반항을 하려다가 이렇게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참 어지간하다.


여행이야기.

3월에 출장과 휴가를 겸한 이탈리아 여행이 생겼다. 어찌어찌 짜다 보니 매일밤 호텔을 옮겨야 하는 일정이 되어버렸다. 혼자서 여행할 때는 이것도 괜찮다. 짐이 단출해서 풀고 싸고 할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여행일 땐 내가 주로 다른 사람에게 맞추는 편인데, 이것도 괜찮은 것이 내가 원래 취향이 없다.


공식적인 출장이 끝난 후 며칠 생겨 버릴 것 같은 일정에 어디를 가볼까 구글맵도 쳐다보고, 저가항공 사이트도 들락거리다가 ‘풀리아’에 꽂혔다. 왕복 20유로에 풀리아의 주도인 ‘바리’를 다녀올 수 있는 항공권이 보인다. 물론 세금과 몇 개 옵션을 추가하면 비용이 몇 배로 뛰겠지만 그래도 저렴한 건 맞다. 냉큼 예약을 하려다가 출도착 시간을 확인해 보니, 너무 이른 아침과 너무 늦은 밤이다. 이러면 택시비로만 100유로 이상이 소요될 것 같아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다.


기차로 가면 어찌 될까. 트렌이탈리아 사이트에 가서 일정을 넣어보니 말도 안 되는 ‘스페셜 프라이스’ 좌석이 보인다. ‘바리’행 기차와 비행기가 ‘누가 진정한 승자인가’를 두고 ‘건곤일척’의 승부라도 벌이는 것일까. KTX와는 달리 트랜이탈리아의 가격 정책은 같은 일정이라도, 예를 들면 19유로부터 59유로까지 다양하다. 물론 이런 좌석은 환불불가이다. 풀리아까지 3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공항까지 가고, 기다리고, 답답한 수속을 밟는 것을 감안하면 괜찮은 대안이다. 게다가 추가비용이 없으니 훨씬 경제적이다.


이탈리아 남부 쪽으로는 한 번도 기차를 타본 적이 없어서 기대가 된다. 이런 여행에 기꺼이 동참하고픈 사람이 있다. 은퇴를 코앞에 둔 준백수상태라서 언제라도 따라나설 준비가 되어 분이다.

혼자 하는 여행, 둘이 하는 여행, 어떤 것이 좋을까. 오월 출장은 이미 혼자 토스카나 도보여행을 세워 놓은 상태이니 이번엔 둘이 가는 게 좋겠다. 게다가 이 냥반 하고는 지난 몇 번 함께 했던 여행에 대한 기억이 나쁘지 않았다. 슬쩍 이야기했더니 10분만 생각하고 결정하겠단다.


이탈리아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항상 일부만 보고 쓰는 거라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으면 안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었고, 이게 순간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거라 결코 일반적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외국어에  대해 지나치게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는 편이다. 이탈리아 친구들은 아주 조금만 알아도, 할 줄 안다고 한다. 거짓말은 아니니깐. 나도 가끔은 이 친구들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산지미냐노의 공방 골목을 기웃거리다가 이곳의 역사를 열심히 설명해 주는 걸 듣고 있는 일군의 관광객을 만난 적이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로 이루어진 관광객이라서 그냥 무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더니, 대장같이 보이는 여성이 이외로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 이탈리아 말할 줄 아냐고. 정말 조금이라고 ‘운뽀’라고 했더니(지금 생각해 보니 이건 스페인말 같다. 그냥  ‘뽀’라고 했어야 했는데.) 조금 놀랍다는 눈초리에(진짜?) 미소까지 장착하며 계속 들어보라고 한다. 혼자 여행 중에 미모의 중년 여성이 친절을 보이는데 무시하고 자리를 뜨는 것은 ’ 동방예의지국‘의 후손이 할 일은 아니라는 듯한 미소로 답을 해주고 조금은 알아듣는 척하고 있었다.


‘운뽀’ 또는 ‘뽀’의 실력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어느 나라 말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말이라고 하면 이탈리아 말이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서울말(충청도 서산 아니고)이 시속 100이라면 이탈리아말은 시속 200이다. 말을 빨리 하려고 ‘주어’를 없앤 말이다. 그럼 주어가 ‘나‘인지 ’ 너‘인지 ’ 그녀’인지 어떻게 알아? 동사의 형태를 바꿔서 구분한다. 말인즉슨 주어에 따라 동사의 끝부분이 달라진다. 언어를 배우는 초보의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아무튼 듣는 척하고 있으니, 옆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속삭이듯이 귀에 대고 이야기해 주신다. 그러면 안 되는데 짜릿한 느낌이 들어서 도저히 그만 나갈 수가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하품을 하기 시작하는 관광객들이 보이자 속사포 같은 말의 템포가 더욱 빨라지는 느낌이더니 설명이 끝났다. 후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고맙다고 하면서 이탈리아식 볼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고민하는 사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여행 잘하라는 말과 함께.

내가 이래서 소도시 골목길 여행을 좋아한다.


이번에 가려고 하는 곳은 ‘마테라’의 골목길이다. 글로 독자를 유입시킬 자신이 없으므로 그림도 한 장 그렸다. 엄청 공을 들였다. 게다가 ‘분노조절장애’에 이만한 ‘약’이 없다.

아. 십 분이 지나기도 전에 ‘콜’이라고 카톡을 보내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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