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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Feb 16. 2023

쓰고 싶은 글

여행에세이 한편(이라고 하기엔 너무 적은 분량의)을 쓰다가 말았다. 중간 정도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나도 읽기 싫을 정도로 재미가 없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 매우 주접스러운 문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여러 누님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이경 작가의 신간에 추천사를 써 주었다는 최민석 작가가 생각난 것이다. 이경 작가의 추천사에다가 '훔쳐오고 싶은 감성’이라고 극찬을 하였다고 하길래, 아하 대충 어떤 글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출근을 하자마자 후다닥 해야 할 일을 끝내고 회사옆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왔다.


그래도 나도 양심은 있는지라 근무시간에 책을 보면서 주변 팀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다. 책이 정말로 궁금하면 화장실에 가는척하거나, 머리가 몹시 아프다면서 산책을 하고 오겠다는 핑계를 대서 근처 공원에 가서 읽어보기도 한다. 가장 훌륭한 방법은 외근을 나가서 후다닥 일을 끝내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날에는 갑자기 전화량이 는다는 것이다. 한 달 내내 전화 한번 없던 고객 또는 친구들이 내가 분위기 잡고 책 좀 보려고 하면 어떻게 알고 전화질이다. 짜증이 나지만 나에게 고귀한 양식을 주시는 분들이라서 최대한 친절하고 사려 깊게 전화를 받는다. 물론 친구들은 예외다. 아무튼 모든 회사원은 직급이 높거나 낮거나에 상관없이 딴전을 피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 같다.


최민석 작가의 책은 예상했던 대로 재기 발랄하다. 요즘에 작가로 먹고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지만 그의 글에서는 페이소스가 듬뿍 묻어난다. 페이소스가 소스의 한 종류도 아니면서 이렇게 글마다 듬뿍 들어있다니 과연 밥벌이로 글쓰기를 하는 작가답다. 페이소스만 있으면 재미있는 글이 되지 않는데, 이때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유머이다. 유머 중에서 가장 고수들이 사용하는 유머는 '자기 디스'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할 수 있다. 이런 유머의 고수들은 생명력이 길다. 싫어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유재석을 봐라. 누구 흉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가 구사했던 유머의 한 장면. 앞뒤가 없는 '짤'이라서 더 웃겼는데, 내용은 대충 이렇다.

상대 쪽 변호사 "유재석 씨는 오줌싸개라고 놀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며 날카롭게 묻는다.

유재석 "글쎄요. 예전에 반에 한 두 명은 그런 별명을 가진 친구들이 있지 않았나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변호사 "아니 그렇다면, 그런 말을 듣는 친구들의 심정을 어땠을지 헤아려 보셨나요?"라며 재차 묻는다.

유재석 "아, 제가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변호사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최민석 작가의 유머는 빵 터뜨리는 것보다는 피식 웃게 만드는…뭐랄까. ‘오호 이거 근사한 걸’ 하면서 읽다가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 당하는 기분같을랑가.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결혼은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우주가 만나서, 대충 20평대의 아파트에 몸과 영혼과 라이프스타일을 구겨 넣는 것이다’ 이런 통찰력 넘치는 글 뒤에 오는 내용이란게…마눌님에게 굴복당하여 결국엔 아내의 우주로 통합된다는…(그래도 그 과정이 자발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아내에게 진짜 재미있다며 살짝 읽어보라 했더니, 한참을 들여다보고 나서 한마디 한다. “어느 부분이 재밌다는 거야?” 헛 참. 나와 코드가 달라도 너무 달라.


왜 이런 책을 읽느냐 하면, 내 글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한동안 일을 너무 열심히 한 탓인가. 글 속에 재미는 사라지고 고리타분한 선생님 같은 글이 되어 버렸다. 다른 사람의 글이라도 훔쳐서 쓰고 싶은 심정이다.라곤 하지만 훔칠 수는 없고 가벼운 스텝을 밟는 느낌의 글이 쓰고 싶어 열심히 읽고 있는 중이다.


왜 추잡하게 남의 글을 흉내 내려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라고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요? 내가 쓴 글이 재미없어서 나두 안 읽는데, 누가 읽어주겠냐고요. 사실 다른 사람의 글을 많이 읽는다고 그렇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뭐 모차르트의 음악을 주야장천 듣는다고 해서 작곡을 할 수 있는 건 아닐 테니.


그래도 혹시나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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