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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Aug 04. 2020

로마의 휴일과 인연의 시작

방구석 드로잉 여행 14

  아마도 로마여행의 시작은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춘기 소년의 눈에 비친 오드리 헵번은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보았던 영화라서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의 그런 아련한 여운이 슬프지만 너무 멋지다고 느꼈다. 영화에 매혹되어 한번이라도 로마를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했지만 1980년대는 지금처럼 여행이 자유로운 시대가 아니었다. 이원복 교수의 만화책으로 세계여행을 하던 그런 때였다. 영화와 만화책을 보면서 시작되었던 상상의 여행이 실제로 일어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한창이던 초여름, 마냥 축구경기를 보고 즐거워만 할 수 없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일중의 하나는 아내를 만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예쁘기도 하지만 마음이 넉넉한 편이다. 내가 뜬금없는 일을 저지를 때에도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조금은 지켜보는 스타일이다. 그렇지만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태리에 본사를 둔 한국지사를 맡아서 일을 해 보겠다고 했을 때에는 조금 걱정이 되었던지 반대를 했었다. 고맙게도 비교적 일이 순조롭게 풀려서 지금까지는 월급을 꼬박꼬박 가져다주고 있다.


  한국지사를 맡아서 해 보겠다고 했던 이유는 그 당시 다니고 있던 회사에 싫증을 느끼고 있을 때여서 뭐라도 해서 탈출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입사 전 이태리에서 온 담당매니저와 총 세 번의 면접을 했는데, 그 중 마지막은 맥주를 마시면서 내가 일하게 될 곳이 어떤 회사인지, 한국사람들은 어떤지, 이태리 사람들은 어떤지, 축구는 좋아하는지(공교롭게도 전날 이태리를 상대로 안정환의 골든골로 승리를 하였다)등 이런 저런 사소한 대화를 하면서 면접을 대신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두 번의 면접으로 결정을 해두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고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시작한 일이 벌써 17년이 되었다.    


  처음 몇 년은 새로 시작한 일이라서 서툴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겪느라 이태리 출장을 가더라도 거의 일만 하고 돌아오곤 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을까? 로마를 처음으로 가게 된 것은 그로부터 거의 10여년이 지난 2012년의 봄날이었다. 아래 글은 그 당시 여행 메모 속에 있던 내용이고 그림은 그 때 찍어 두었던 사진을 보고 나중에 방구석에서 그려 넣은 것이다.      




  이번 여행은 여행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습니다. 볼로냐에 출장을 왔다가 아침 기차로 로마에 입성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저녁 비행기로 출국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8시간 정도 로마에 머물게 됩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좋겠지만 포로로마노 주변과 바티칸을 중심으로 돌아보기로 합니다. 가지고 있는 짐이 무척 거추장스럽습니다. 테르미니역에 짐을 보관하는 곳을 찾아보다가 역 근처에 있다는 한국식당이 생각나서 어차피 점심도 먹어야 하고 또 저녁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사장님께 여행가방을 부탁드립니다. 사장님이 흔쾌히 승낙하십니다. 단 저녁도 먹는 조건입니다.  NO PROBLEM.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포로로마노로 슬슬 걸어가 봅니다. 지하철을 타도되지만 걷기 좋은 날씨입니다. 가는 길에 갈매기를 만났습니다. 항구가 가까워서 중세시대에는 이슬람해적들이 바티칸까지 와서 약탈했던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포로로마노, 콜로세오······. 비록 폐허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옛날의 영화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후 포로로마노와 콜로세오는 중세로마를 건설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석재를 공급하는 채석장 역할을 충분히 했습니다. 너무나 많은 고대 유적이 중세의 건물 신축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당시 교황이었던 베네딕투스가 콜로세오에 십자가를 세우고 ‘여기는 성지이다’라고 선포하면서 훼손이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말로 뭘 좀 아는 교황이었습니다.         



  포로로마노는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므로 거리의 예술가도 많습니다. 까만 색종이를 가지고 실루엣대로 오려주는 아저씨 제법 솜씨가 좋고 인기도 많습니다. 거리의 화가도 있습니다. 그림을 파는 것보다 정말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화가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부럽군요. 저도 언젠가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거리의 악사와 밴드가 빠지면 휴일의 흥겨운 분위기가 나지 않습니다. 로마의 휴일에는 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예술가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다 무너져가는 폐허의 한 구석에 자리 잡은 피자 식당(PIZZERIA)이 재미있습니다. 아마도 건물 외부는 보존의 목적으로 손을 대지 못하고 내부만 식당으로 꾸몄을 겁니다. 이곳은 그렇습니다. 몇 백 년이 넘은 문화재 같은 건물에 외부는 그냥 두고, 내부는 온갖 상점과 기념품가게로 아무렇지도 않게 바꾸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건물은 박제된 전통이 아니라 살아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포로로마노를 지나 캄피돌리오 광장으로 갑니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광장입니다. 캄피돌리오 광장의 중앙에는 명상록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있습니다. 로마시대의 청동제작물들도 포로로마노의 운명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모두 다 녹여져서 재생되었지만 마르쿠스의 청동상은 살아남았습니다. 누군가의 오해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알려졌기 때문이랍니다. 물론 광장에 있는 청동상은 모조품입니다. 진짜는 좀 더 안전한 곳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광장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쌍둥이 대리석상은 앞모습에 비하면 뒷모습은 어이없이 허술합니다. 고대 건물의 벽을 장식하던 것을 떼어다가 여기에 가져다 놓은 듯 합니다. 캄피돌리오 광장을 지나오면 거대한 흰색건축물이 보입니다. 엠마누엘레 기념관입니다. 이태리 어느 도시를 가던지 엠마누엘레와 가리발디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태리를 건국한 사람들입니다. 한 명은 국왕 또 다른 한 명은 장군이었습니다.


  이태리가 건국되기 전 이태리는 나라 이름이 아니라 장화처럼 생긴 이태리반도를 지칭하는 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태리라는 나라가 생긴지 15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아직도 지방색이 엄청나게 강합니다. 지금도 이태리사람들은 이태리사람이란 말 보다는 피렌체 사람, 밀라노 사람, 시칠리아 사람, 베네치아 사람 이렇게 이야기하고 다닙니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베니스에 비하여 이태리 역사는 백오십년. 지방색이 그렇게 진하게 묻어나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무솔리니가 세운 이 건물이 우악스럽게 크다고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여행객에게는 흥미로운 건물입니다. 저녁노을에 물든 실루엣이 멋지군요. 휴일인지라 거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바티칸을 찾아보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습니다. 이제 다시 한국식당으로 가서 가방을 찾고, 약속대로 저녁을 먹고 공항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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