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그림 Apr 12. 2023

출간 이후 달라진 것

편집자의 사생활을 읽다가 딴 길로 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없다'이다.

생애 첫 출간이라는 기쁨을 만끽한 지 벌써 5개월이 지났다. 3개월 내에 초판이 다 팔지 못하면 2쇄를 찍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는 출판계의 속설(?)이 들려온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오탈자도 한 군데 찾아놓았고, 오류를 수정해야 할 부분도 한 군데 찾아 두었다. 배지영 작가님의 '누구나 뜯어먹기 좋은 풀밭'이라는 말이 다시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첫 번째 책을 쓰면서 가지고 있던 풀을 모조리 한자리에서 게걸스럽게 먹어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거미가 꽁지에서 실을 자아내듯이, 머릿속에서 사유를 통해서 글을 끄집어내야 하는데, 내 경우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서 다음 글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일전에 다시 이탈리아로 출장을 갈 기회가 생겼다. 주말에 며칠 휴가를 더하여 이탈리아 남부의 '풀리아'지역을 다녀왔다. 한가로운 곳이었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볼거리, 그릴 거리도 많아서 좋았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개의 글을 써보았다. 글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림은 마음에 든다. 이것으로라도 위로를 삼아야겠다.


그래도 그냥 버리는 셈 치고 브런치에 올려두긴 했다.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아마도 배지영 작가님이 말한 '뜯어먹기 좋은 풀밭'이라는 말일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오롯이 자기의 경험을 풀밭 삼아 책이 될 만큼의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다음에는 뭘 써야 하지. 하루키의 책을 읽다가 보았던 건지 확실하지는 않은데, 헤밍웨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대문호이지만, 헤밍웨이야 말로 경험을 하지 못하면 책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1차 대전에 종군기자로 참여한 경험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경험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카리브해에서의 낚시를 경험 삼아 '노인과 바다'라는 걸작을 만들어 냈다고 했다.


물론 누구가 경험을 했다고 해서 이런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헤밍웨이에게는 경험을 이렇게 녹여내는 타고난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말년의 헤밍웨이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경험을 해야 글을 쓸 수 있는데, 경험을 하기에는 육체가 너무 망가져 버렸다. 정신과 육체의 괴리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헤밍웨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이런 작가에 비하여, 머릿속 사유를 통하여 글을 쓰는 작가들은 확실히 유리한 점이 있다.


출간 이후 달라진 것이 '없다'라고 했지만 실은 있다. 책을 좀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으로는 내가 쓰고 싶은 장르의 책을 좀 더 읽어야 하는데, 이게 좀 어렵다. 원래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던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다.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고 윽박지른 책, 돈을 벌어야 한다고 솔깃하게 하는 책, 말랑한 글로 힐링효과를 줄 수 있다고 속삭이는 책들은 멀리해 왔다. 조금 딱딱한 역사서적류의 책을 졸음을 이겨가면서 읽었는데 이것도 조금 시들해졌다. 원래는 에세이도 좋아하는 분야는 아니었다. 어쩌다가 여행에세이를 한 권 출간하고 나서는 다른 에세이도 읽기 시작한다. 브런치 작가님들이 쓰는 글도 에세이가 주류이고, 우리끼리 서로 사서 읽어주지 않으면 누가 읽겠는가 하는 동지의식(?)이 생겨서 그런가.


아무튼 요 근래에 사들이는 책들은 에세이가 대세다.(홍여사가 아주 싫어한다) 어제는 '편집자의 사생활'이라는 책을 보다가, 이 책 속에서 PPL로 등장한 '아주 정상적인 아픈사람들'이라는 책도 구매했다. 이렇게 '구매'하는 책의 종류가 에세이로 바뀐 것이 출간 후 달라진 점이려나.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들여다보면서 나만의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보지만 역시 어렵다. 다른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글을 쉽고 맛깔나게 쓰는데, 내 글은 밋밋하고 어색하지. '내글구려병'이라도 생긴 건가. 자꾸 쓰면 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일하기는 싫고 이런저런 생각에 아래 표지의 주인공처럼 주욱 늘어져서 이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쓰기에 대한 잡스런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