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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Apr 29. 2023

북토크에 다녀왔습니다

편집자의 사생활 - 고우리 작가

미디어샘은 나에게 있어 잊지 못할 출판사이다. 빗대어 말하자면 이럴 것이다. 우리 아이가 태어난 병원은 대방동에 있는 작은 개인병원이다. 아내가 노산이라고 걱정하던 지인들이 나중에 동네병원에서 자연분만으로 출산했다고 하니 “용감한 거니? 무식한 거니?” 하면서 농을 쳤다. 하나도 걱정이 되지 않았던 건 오랜 기간 산부인과를 전문으로 해 온 분으로서 내리는 판단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고 나서 어려울 것 같으면 다른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을 텐데, 산신령 같은 모습으로 모든 징후가 다 좋다고 했다.     


미디어샘을 대표님을 만났을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첫 만남 때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더 채워야 할 것과 비워야 할 것을 알려주고 나서는 바로 계약을 했다. 왠지 믿음직했다. 때를 기다리자는 판단도 믿었고, 우수출판콘텐츠 사업에 공모해 보자는 말에 “아니, 뭘 믿고 내 글을?”하고 의심을 했지만 결국 대표님의 판단이 옳았다. 이렇게 나의 ‘아이’처럼 나의 ‘책’이 세상에 나왔으니, 그 둘이 비슷하다고 우기고 싶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책을 파는 일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기계류를 세일즈 하는 것이 직업인지라, 책이 나오기 전에는 책도 팔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었다. 오만이었다. 세상에 가장 팔기 어려운 물건이 있다면 ‘책’이라고 하고 싶다. 아는 사람들에게 강매라도 해볼까 생각했는데, 어쩐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책을 읽는 사람조차도 취향이란 게 있어서 어떤 류의 책을 거들떠보지 않는데,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책’은 그야말로 처리하기 어려운 ‘문화쓰레기’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기대어 볼 곳은 브런치와 인스타였다. 물론 이것도 쪼렙이라서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온갖 주접을 떨면서 책소개를 하고 책을 팔아주십사 하고 눈웃음도 치고 했다. 초판이라도 다 팔렸으면 미디어샘 대표님과 멋진 곳에서 축하만찬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그럴 일은 요원해 보인다.      


이런 미디어샘에서 새 책을 만들었고 더불어 북토크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대표님을 만날 수 있는 좋은 핑계가 생겨서, 냉큼 참가신청을 해 두었다. 어제가 북토크 날이었다. 마침 사는 곳 근처이기도 해서 좋았다. 늦을까 봐 회사에서 조금 일찍 퇴근해서 서점에도 가보고 근처에서 차도 한 잔 하다가 북토크 장소로 갔다. 서교동 골목길 가정집 차고(?)를 개조해서 자그마한 공간으로 만든 곳이었다. 나중에 대표님께 바로 이곳이 내 책을 디자인해 준 북디자이너의 작업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엔 작업실로 쓰고, 이렇게 대관도 해주고 소소한 모임도 하는 공간이라고 했다.


이름만으로 알고 있던 출판평론가 김성신 선생님과 그의 제자분들도 만나서 너무 좋았다. 김성신 선생님은 내 책의 서평을 써주신 분이다. 천진스러운  눈매와 부담감 없는 몸매(?)를 가진 분이라서 금방 친해진 느낌이었다. 출판계의 뒷이야기도 아주 재미있게 들려주셨다. 뭐 엄청난 이야기는 아니고 ‘소위 잘 나가는 작가’들 중 재능을 모두 소진한 분들이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찾지 않는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또 그 반대의 이야기. 누군지 실명을 밝혀주시지 않는 신중함을 보여주셔서 좋았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고우리 작가님과 진행을 맡으신 정아은 작가님 등장.


두 분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그윽해서 좋았다. 일로 만난 사이였지만, 이제는 ‘지음’의 단계에 들어선 것 같은 두 분의 분위기와 조근조근 묻고 대답하고 중간중간 끼어들어 추임새를 넣어주는 관객(?)분들까지 너무 좋았다.     


<편집자의 사생활>이라는 책의 성격 때문인지 출판계에 직간접으로 계신 분들이 많이 참석한 듯했다. 책이라는 매우 ‘마이너’스러운 문화상품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서였을까. 어떤 책이 좋은 책이 될 수 있을지? 어떤 작가와 일하는 게 좋은지? 작은 출판사와 대형출판사 중 어디와 일 하는 게 좋은지? 작가라면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많은 이야기들이 웃음소리와 함께 가볍게 날아다니는 것 같아서 보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고우리 작가님이 ‘글맛’이란 표현을 써주셨다. 같은 내용의 글이라도 읽는 맛이 있게 써야 한다는 말 같기도 하고, 스토리가 살아있어야 한다는 말 같기도 하고... 아무튼 딱 꼬집어 ‘어떻게’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오랜 편집자의 경험으로 딱 오분만 보면 안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고우리 작가님의 편집한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 이란 책을 보면 첫 꼭지에서 어떤 책일 것이다 하는 느낌이 ‘빡’ 오는 것 같았다. 고우리 작가님이 책 속에서 제법 여러 군데에서 이 책을 소개하는 걸 보고, 궁금해져서 일단 사보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봐주었으면 하는 좋은 책이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계속 자신의 책에서 PPL로 계속 등장시켰을 것이다.      


북토크가 끝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모두 모여서 사진도 찍고 하하 호호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어제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경만 해도 좋았다.(그래도 사인은 받아두었다. 작가님 속표지에 제 책 광고가 실려있다고 귀띔도 해드리고 ㅎㅎㅎ)



잠깐 미디어샘 대표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조심스레 얼마나 책을 팔렸냐고 물어보니 ‘반정도’라고 하신다. 그래도 공모사업에 선정이 되어서 재정적으로 부담은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보내주셔서 고마웠다. 빈말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다른 글과 그림이 있으면 정리해서 한 번 보내달라고도 하셨다. 있어도 그냥 보낼 수는 없고 퇴고에 퇴고를 한 후에 보내드리겠다고 했다. 고우리 작가님의 언급하신 ‘글맛’을 날 때까지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언젠가는 다른 작가의 북토크 말고, 내 책으로 북토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가 갑자기 창피한 생각이 들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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