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전문 피디의 여행법
이런 우연이 있을까요.
이탈리아 출장을 간 김에 주말에 짬을 내어 토스카나를 걷기로 한 계획실현 일주일 전에 서평단 모집 광고를 봤습니다. <걸어갑니다, 세계 속으로> 걷는다는 말 한마디에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신청했습니다. 서평단에 떨어질 것 같은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습니다. 마치 ‘토스카나 잘 걷고 와서 재미있는 서평하나 남겨줘’라고 하는 듯했거든요.
작가의 어떤 이야기가 제 마음에 들었을까요. 브라질 따봉을 읽으면서 ‘그렇지, 이게 여행하는 맛이지’하면서 한껏 기분이 고조되었다가, 코발트 광산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숙연해지기까지 합니다.
아마도 아이들 이야기는 여행프로그램에서 자세하게 다룰 수는 없었겠지요. 르포가 아니었으니까요. 편집과정에서 여행프로그램의 본래 취지(?)에 맞도록 재단되고 정말 알아야 할 이야기가 손가락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이 사라져 버렸겠지요. 그래도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이렇게 책으로 남겼으니,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서평단 모집하면서 자신의 여행이야기도 자랑해 달라는 문구를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랑합니다. 이번 토스카나를 여행하면서 ‘이거, 걸어서 세계 속으로’인걸 하면서 신기해했던 경험을 했거든요.
산퀴리코도르차에서 출발해서 피엔차로 걸어가던 길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통에 길은 온통 진흙 투성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신발에 달라붙은 진흙은 마치 본드처럼 땅에서 떨어지려는 발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기분이었습니다. 새벽 6시에 출발해서 두 시간 정도 걸었는데도 아직 피엔차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뭐, 괜찮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요.
걷다 보니 예쁜 농가주택이 눈에 들어옵니다. 길에서 멀었다면 가까이 가지 않았을 텐데, 겨우 길에서 5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보고 지나쳤을 텐데, 그날은 자세하게 보고 싶어 진 겁니다. 혹시 개가 달려들까 싶어 조심조심. 개는 없습니다. 멀리서 봤을 땐 부엌내부가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는데, 다가가니 집주인이 부엌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황했지만 토스카나 도보여행 중인데 집이 너무 예뻐서 구경하고 싶어서 가까이 와봤다고 말씀드리니, 헛헛 웃으시면서 ‘네가 처음이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토스카나 시골에서 영어를 하시는 분을 만날 거라 상상을 못 했다며, 부엌문 앞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너, 근데 아침은 먹었냐?”
“아니요, 일찍 나오느라 못 먹었는데요”
마침 당신도 식사 전이라며 들어와서 아침 먹고 가라하십니다. 아니, 그래도 모르는 사람인데…지금은 은퇴했지만, 자기도 일 때문에 동남아지역으로 여행을 많이 다니셨다고 하십니다. 여행하면서 낯선 이에게 받았던 친절을 되돌려주고 있는 거니깐 부담 갖지 말라십니다. 뒤뜰로 가시더니 향내 나는 페퍼민트도 조금 뜯어오시고, 토마토와 모짜렐라로 카프레제를 뚝딱 만드십니다. 빵과 치즈, 카프레제…게다가 금방 따온 페퍼민트로 만들어 주신 차는 정말 처음 마셔보는 신선한 맛이었습니다.
이거 <걸어서, 세계 속으로> 보다 보면 가끔 나오는 장면 아닙니까. 백 퍼센트 연출이라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여행지가 기억에 남는 것은 기억나는 사람이 있어서였습니다. 토스카나가 기억에 남는 것은 우연히 만나 아침을 먹고 한참 동안 수다(무려 2시간을)를 떨던 자비에르 할아버지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책소개를 해야 하는데… 제 글이 늘 그렇듯 밸런스는 저기 던져버리고 또 산으로 가버렸습니다.
다시 책 이야기. 엄마와 함께한 돌로미티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저도 무척 좋아하는 곳이라서요.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닐 때는 배려가 필요하단 걸 알면서도 쉽지 않습니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지요. 많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 일상의 모든 ‘안 하던 짓’은 그 사람의 삶에 색을 입힌다… 대체로 쓸모없는 짓이 인생을 다채롭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사람을 만나고 친절을 경험하고, 내가 다른 이에게 친절을 베푸는 선순환이 자꾸 여행자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 내는 동력이 되는가 봅니다.
책이 술술 읽혀서 저녁 먹고 시작한 책 읽기가 자정도 되지 않아 그만 끝나버렸습니다. 촬영하면서 뭉클했던 장면, 겁나게 고생했지만 그래도 좋았던 장면, 마음이 아렸던 장면에 대한 뒷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작가의 개인적인 역사를 살짝 들여다보는 것도 좋았습니다. 모든 이야기의 교집합은 여행과 여행에서 만난 사람입니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과 주고받은 이야기들은 다시 여행을 떠나게 해 줄 충전지가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럴까요. 책을 읽다 보니 토스카나, 돌로미티, 풀리아… 다시 가고 싶어 집니다.
<출판사 서평단 활동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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