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스펙트럼
도서관 신착도서란을 얼쩡거리다가 아주 얇은 책을 만났다.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 죽다. 고전을 읽는 것이 힘들어서 좋아하지 않지만, 왠지 이 책은 두께를 보니 좀 만만해 보였다. 겉모습만으로 뭔가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경솔한 일인지 다시 일깨워주었다.
내용을 요약하라고 한다면, 대 여섯 줄을 가진 한 단락으로 만들 수 있는 짧은 이야기이지만, 고전이 그렇게 쉽게 읽힐 리 없지. 글을 쓰는 사람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평소에도 사물을 꼼꼼하게 바라보는 훈련을 하는가 보다. 얇은 펜으로 세밀화를 그리듯이, 토마스 만은 대상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것은 흉내 낼 수 없는 타고 난 재능이다. 얇은 책이지만 대상을 묘사할 때는 지면을 아끼지 않고 차근차근 외모부터 시작해서 그것으로부터 풍겨오는 내면의 상태까지 섬세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토마스 만이 만들어 낸 구스타프라는 인물이 젊은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동년배의 늙은이를 비하하는 대목에서는 '이 할배, 질투를 하는 건가'하는 의심이 든다. 고고한 척 하지만 속물스러운 구스타프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글의 플롯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주 단순한 구성이라서 구스타브 아셴바흐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1장과 2장을 지나가면, 이외로 재미가 있다. 사랑에 스펙트럼이 있다면, 구스타프의 타치오에 대한 사랑은 어느 지점의 어느 색깔로 구분되려나.
문학이란 장르를 중고등학교 때 시험으로만 공부한 사람이다. 예전에는 이야기 속에 혹시 내가 알아채야 하는 숨겨진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다.(그때는 숨겨진 의미조차도 정답이 있어서 암기를 해야 했다. 지금도 그려러나) 특히 시나 고전을 읽을 때, 그런 걸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을 했었는데 그만두었다. 그런 걸 찾아서 뭐 하려고. 어차피 이제는 정답을 알려 줄 사람도 없는데. 그냥 보이는 대로만 읽기로 했다.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번역자인 박동자 님과 이야기의 끝에 해설을 쓰신 안삼환 님의 후기가 흥미롭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후배 박동자 님의 번역본을 조금 손봐서 이번에 책을 내면서 그대로 박동자 님을 번역자로 내세운 것에 대한 뒷 이야기이다. 후배 또는 제자의 성과를 훔쳐 자기 것으로 만드는 후안무치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가끔 들었던지라 이 대목에서 마음이 좋아졌다.
멋진 문구가 많은 책이었다. 그중 한 대목을 옮겨온다면.
< 노련한 구애자는 아주 미묘한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보다 더 ‘신 God’적이라는 것이다….중략.
지금까지 인간이 머리에 떠올린 발상 중에서 가장 섬세하고도 신랄한 생각이리라. 동경이 지니는 온갖 교활함과 지극히 은밀한 쾌락은 바로 이 발상에서 유래한다. >
내가 그동안 행해왔던 ‘은밀한 짝사랑’이 갑자기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