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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가는 브라티슬라바

동유럽 일기 - 1

by 지노그림

인천공항 국제선 2 터미널. 출국심사를 신속하게 마치고, 바로 라운지바로 가서 휴식모드에 들어간다. 지마음, 지금사진 둘 다 밤을 새우고 공항으로 바로 온 것치곤 비교적 생생하다. 거의 만석이다. 지금사진과 나는 졸다 깨다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지마음은 애벌레처럼 담요를 돌돌 말고 죽은 듯이 자고 있다.


비엔나 공항 도착. 5:30분 정시도착이다. 공항규모가 크지 않아서 비교적 입국심사가 빨리 끝났다. 렌터카를 찾으러 가야 하는데, 보통 렌터카 사무실이 공항 내에 있지 않나? 몇 개의 렌터카 창구는 모두 문이 닫혀있고, 우리가 예약한 곳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인포메이션 센터도 벌써 퇴근하고 셔터가 내려져 있다.


다시 사인보드를 꼼꼼하게 살펴보니 P4주차장 쪽으로 가라고 하는 듯하다. 경사로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서 긴 복도를 지나 다시 좌측으로 문을 몇 개 지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0층으로 올라가서 또다시 나오는 렌터카 사인보드를 따라가니 드디어 사무실이 보인다. 렌터카를 찾으러 가는 길이 이렇게 멀다니... 벌써 오늘 도보량을 모두 채운 것 같다.


예약해 두었던 차량 대신 다른 차량으로 업그레이드해 주었다고 말은 하는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방들을 간신히 차 안으로 욱여넣고, 어찌 되었든 브라티슬라바로 출발. 풍력발전기가 거인처럼 늘어서 있는 평원을 지나고 있자니, 어쩐지 제주가 떠오른다. 국경에서 비넷(E-비넷. 12유로/10일)을 구매해서 차량번호를 등록하려고 잠깐 주차해서 주변을 둘러보지만 매우 심심한 풍경이다. 40여분 남짓 달려오니 시내가 보인다.


차량도 많지 않고 사람도 차도 트램도 신호가 없어도 요령껏 잘 지나다닌다. 예약해 둔 아파트 주차장 입구 도착. 도착하면 어떻게 열쇠를 찾는지 알려주는 인스트럭션 메시지를 받긴 했는데, 읽을 때는 뭔가 ‘암호’ 같아서 ‘에이, 가보면 어찌 되겠지’하고 왔는데, 지금사진 쓱 메시지를 보더니 차고 앞의 키박스 뭉치에서 용케 주차장 패스토큰과 열쇠를 찾아온다.


똘똘하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엘리베이터가 좀 웃기면서 무섭긴 한데,(지마음 작가는 무서워서 안 탄단다) ‘우와, 집 좋다’는 소리가 동시에 튀어나온다. 알뜰한 지금사진은 이 동네 물가 싸다고 장부터 보자고 한다. 오는 길에 봐 둔 마트가 있다고. ‘허 참, 그건 또 어느새 봐두었대’ 똘똘하다고 칭찬을 한번 더 해주었다.


물, 맥주, 과일, 스낵, 내일 아침 먹을 빵까지 야무지게 장을 보고 나오는 길에 주차장 차단기 사이에 갇혔다. ‘아이씨, 사정정산을 하고 왔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을 못했다. 첫날부터 우왕좌왕, 지금사진 주차권을 들고 사전정산기 앞으로 뛰어가고, 뒷차들은 줄을 지어 기다리고. 정산하고 오는 동안 아무도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이런 일이 흔한 풍경이라서일까 아니면 이곳 사람들이 느긋해서 그런 것일까. 장까지 보고 났더니 벌써 9시. 더 늦기 전에 이제 여행 시작하고 첫 번째 식사를 해야 한다.


이런 일은 지마음이 잘한다. 제일 젊기도 하거니와 뭘 찾는 것에 제대로 특화되어 있다. 잠깐 살펴보더니 자기만 믿고 따라오란다. 우와, 아마 이곳이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핫한 곳이 아닐까 싶다. 음악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금요일 밤을 제대로 즐겨보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껏 차려입은 젊은이들부터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한 덩치 하는 형님(?)들까지 다양한 연령과 군상들이 모여 떠들고 있으니 정신이 없다.


핏자와 섹시샐러드. 이름만 보고 호기심에 주문했다가 제대로 낚였다. 마르게리따 핏자야 뭐 특별할 게 없는 맛이니 어디 가서 먹어도 크게 낭패는 없다. 문제는 섹시샐러드. 맛을 보고 나니 “왜지?”하는 의문점이 사그라들지 않는 맛이다. 매운맛의 파프리카로 만들어서 글자 그대로 ‘HOT’해지긴 했는데(깜짝 놀라게 맵다. 샐러드가 그렇게 매울 일인가), 그 HOT이 어떻게 섹시로 퀀텀점프를 한 것일까. ‘그냥 HOT하니깐 SEXY한 걸로 하기로 했나 보다’라고 우리끼리 결론지었다. 아무튼 이곳에 가면 섹시를 조심하여야 한다.


이틀 경험한 바로는 브라티슬라바는 ‘섹시’와 ‘18금’을 아무데나 붙인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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