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내가 코흘리개일 때 설탕을 녹여서 거북선도 만들고, 커다란 칼도 만들어서 상품으로 내걸어 놓고 뽑기가 성행한 적이 있었다. 1부터 100까지 만들어져 있는 칸에 상품이 적혀있는 막대를 이리저리 배치해 놓고 숫자를 뽑는 거였다. 상품이 걸려있는 숫자를 뽑으면 되는 아주 단순한 게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코흘리개들의 10원짜리 동전을 뺏으려고 어른들이 별 짓을 다했네. 그래도 야바위는 아니어서 간간히 커다란 칼을 뽑는 운 좋은 친구도 있었는데, 이때 아저씨가 상품을 다시 되팔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곤 했다.
친구는 커다란 칼을 뽑은 게 자랑스럽긴 하지만 이걸 가지고 집에 가서 자랑을 했다간 엄마한테 혼이 날 것이 뻔했으므로, 아저씨가 제시한 금액에 흥정을 마치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하여 군것질을 하러 갔다. 이렇게 의기양양해진 친구를 나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나하고 뽑기는 안 맞았다. 정봉이가 사 모으던 주택복권도, 나중에 생긴 로또도 늘 꽝이었다.
요즘엔 좀 결이 다른 뽑기를 한다. 어쩌다 매니저노릇을 하고 있다 보니 사람을 뽑아야 할 때도 있다. 여전히 어렵다. 이번만 해도 그렇다. 매니저 자리를 넘겨주려는 의도로 사람을 뽑았었다. 나름 여러 절차를 거치고 신중을 기해서 뽑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막상 그 시점이 되니 꽝이었다. 매니저 자리가 싫다고 한다.
아니 왜 싫어? 일 년에 한두 번씩 이탈리아 출장을 가는 게 싫어? 혼자 가는 출장이면 가족을 데려가도 되는데 그것도 싫어? 대표이사가 있지만 한국에 한 번도 오지 않으니 여기서는 대장노릇하면서 지낼 수 있는데 그것도 싫어?
뭐 정말 싫은 일도 있지. 잘못된 기계 클레임처리해야 하는 것도 싫고, 애프터 세일즈 서비스도 싫고, 하이테크하고 소프트한 근사한 걸 팔고 싶은데, 우리가 취급하는 건 뭐랄까 좀 오래된 산업분야라서 ‘가오’가 서질 않아서 싫고. 가끔은 손에 기름때 정도는 묻혀야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도 싫고.
나에게 주어진 뽑기 운의 총량을 모아서 ‘로또’ 뽑는데 몰빵을 해야 하는데, 자꾸 이런 일에 ‘운’을 쓰고 있다니. 아쉽네. 용한 법사님을 면접관으로 모셔서 ‘이 친구가 매니저가 될 상인가?’를 물어야 하나. 손바닥에 매니저란 글씨를 써가면서 이 회사를 운영하고 싶은 인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