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브런치 서랍을 열어보면 올리지 않고 그냥 넣어둔 글이 여러 편 있다. 아무 의미 없는 일기 같은 글을 올리면서도, 서랍 속에 있는 글을 올리기 꺼리는 이유는 너무나도 사적인 가정사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글에 나만 드러내는 것은 뭐가 되었더라도 상관이 없는데, 다른 가족은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지난주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어서 보통은 오래 있지를 못한다. 불편함을 느껴질
때까지 30분 정도 걸리고, 2시간 정도 지나면 인내심이 바닥이 난다. 그 이상이 지나면 ‘화’가 나고 결국엔 말다툼으로 끝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이번에 그 기록을 뛰어넘어 무려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을 같이 있었다. 물론 중간에서 텐션이 너무 올라가지 않도록 적절하게 대화의 수위를 조정해 주신 큰 누님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새로운 사실에 직면해 상황파악을 하느라 그랬기도 하다.
얼마 전부터 큰 누님이 왼쪽 마비가 심해진 어머니를 돌봐드리고 있다. 마비에 더해 ’고약한 치매‘가 온 것 같다면서, 너무 늦기 전에 자주 찾아뵙는 것이 좋겠다고 연락을 하신 큰누님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부모님과의 소원한 사이와는 별개로 큰 누나와의 사이는 좋은 편이다. 나와 부모님이 어떤 관계인지를 잘 알고 나를 이해하고 있기에 누나가 이렇게 이야기할 때는 웬만하면 시키는 대로 하는 편이다.
자식들 중 맏이로 태어난 것이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괴로운 위치였다. 부모님과의 전투의 최전선에서 총알(이라 쓰고 욕이라 읽음) 받이 역할을 해야 했다. 이제 기력이 빠져 도움이 필요해진 부모님을 돌봐 드리고 계시니 이 또한 맏이라서 인 것 같아 죄송하고 미안하다.
치매가 오신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감정이 묘하게 겹쳐졌다. 그냥 기억을 잃어버리는 치매라면 안타까운 마음만 들었을 텐데, 망상을 하게 되는 치매가 같이 와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모르는 풍경이 펼쳐졌다. 치매환자의 망상을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환자일 뿐인데, 내가 화를 내면 어쩌나 싶어 어머니의 일생을 되짚어 보는 글을 썼다. 누구에게라도 말을 하고 싶었는데,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부모님 모두 해방 전에 태어난 세대이시다. 지난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억척스럽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고, 우리와 사고방식이 완전히 다른 분들이다.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을 강요하시는 완고한 부모님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 나중에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였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았으니 사이가 좋았을 리가 없다.
죽기 전에 ‘내가 누구였는지’ 완전히 잃어버리는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할 텐데.
어머니와 관련된 기억이 나는 대로 ‘김여사의 일생’을 정리해서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그냥 쓰는 것만으로도 그동안의 ‘화’가 조금은 줄어드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