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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Sep 14. 2023

안면인식장애

그냥 일기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을 할까. 전시장 견학을 하러 바로 갈까. 를 고민하다가 내가 출근하는 것을 싫어하는 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려 바로 전시장으로 가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보스가 없는 회사. 이것이야말로 직원들이 꿈꾸는 진정한 ‘복지‘가 아니겠는가.


남는 시간에 ‘김여사의 일생’ 한 꼭지를 쓰다 보니 어느새 전시장으로 가야 할 시간. 김여사의 일생은 나만 보려고 쓰는 글이다. 나중에 마음이 가벼워지면, 무겁고 어두운 글을 가볍고 환하게 고쳐서 올려볼까나.


전시장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있다. 출산을 이유로 휴직을 했다가 이번에 복직을 하게 되었는데 언제 만나서 점심 한번 같이 하자고 했었다. 이번에 그녀의 동료와 전시회에 온다고 하길래, 아주 잘 되었다며 약속을 했었다.


전시회장을 같이 다니는 것은 불편한 일이라서(관심분야가 다르기 때문이지 내가 인간성이 바닥이라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나대로 돌아다니고 그네들은 그네들끼리 돌아다니다가 점심때쯤 만났다. 전시장 주변에는 꽤 많은 밥집이 모여 있는 동네가 있는데, 전시회에 온 사람들로 어느 곳이나 만원이다. 대기가 없는 식당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겨우 닭곰탕집을 찾았다.


그녀와 함께 온 동료는 나를 보고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나도 예의 바르게 인사를 받아주었더니, ’나 누군지 몰라?‘하는 눈치이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맨날 전화통화를 하던 사이였다. “아, 누구시군요. 허허허. 지난번 만났을 때 제가 살짝 안면인식장애가 있어서 못 알아볼지도 모른다고 했었나요?”


기억하고 있단다. 그때는 그게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군요 하며 깔깔 웃는다. 세 번은 봐야 기억을 한다. 사실 오늘 만나기로 한 그녀도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긴가민가 했었다. 출산 전에 봤을 때는 후덕한 몸매였는데 오늘 보니 다시 완전 날씬장이로 바뀌어있었다. 나를 보고 먼저 아는 척하지 않았으면, 아마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녀를 보는 게 오늘 세 번째였다. 아마도 다음번엔 기억을 할 것이다.


식사 후 차를 마시면서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 이야기를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일 이야기를 하기엔 날씨가 너무 선선하니 좋았고, 회의실이 아니라 밖에서 만나니 소풍을 온 기분이 들었다. 이 좋은 기분을 왜 일 이야기를 해서 망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출산 후 복직한 이야기, 아이 키우는 이야기, 전에 다니던 회사 이야기, 여자친구 이야기, 여행이야기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내 책 이야기. 출간을 자랑하고 약속대로 저자사인본을 선물해 주었다. (내 책을 내 돈 주고 계속 사고 있다니, 그냥 자비출판을 할 걸 그랬나.) 역시 일 이야기 빼면 뭐든지 다 재미있다.


셋이서 계속 수다나 떨면서 놀면 나는 좋겠지만, 그녀는 아이를 보러 가야 하고, 그는 연애를 하러 가야 한다. 가까운 지하철역에 데려다주러 가는 길에 그들이 묻는다. “프로젝트 이야기를 물어보실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으시네요.”


진정한 세일즈맨은 먼저 일 이야기를 절대 꺼내지 않습니다. 는 개뿔. 그냥 일하기 싫어서라며 웃어 주었다. 아, 정말로 요사이 왜 이렇게 일하기가 싫은거냐.

너무나 멀리 계신 사장님. 죄송합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열씨미 일 할게요.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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