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일 년 전쯤 안과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백내장, 녹내장 검사 등 간호사선생님의 적극적인 영업에 부응하여 각종 검사를 했었다. 나이가 들었으니 당연히 눈도 침침해지고 노안도 생기고 뭐 그랬겠지.
그런데 녹내장의 전조증세인지 뭐 그런 게 살짝 의심되는데, 녹내장으로 진단을 내리기엔 아직은 뭔가 좀 부족했나 보다.
6개월 뒤에 다시 오라 했지만, 귀찮기도 하고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병원이라 가지 않았다.
지난 1년간 눈은 여전히 바빴다. 쓰던 책도 마무리해야 했고, 책에 넣어야 할 그림도 그려야 했고, 중간에 드라마도 봐야 했고, 영화도 봐야 했고, 쬐끄마한 글씨로 가득 찬 서류도 읽어야 했고, 브런치에 글도 올려야 했고, 아마 이런 일들을 하느라 진단을 내리기 뭔가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미심쩍었던 안과 대신 용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X안과로 예약을 했다. 백내장이야 간단한 수술로 고칠 수 있다 했지만 녹내장은 치료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걱정이 되었다. 가뜩이나 나이가 들면서 고집만 늘고 시야(은유적인 의미)가 좁아지더니, 이에 발맞추어 (문자 그대로) 시야가 좁아지는 병이라니, 딱 맞아떨어지는 이 찜찜한 기분 으읔.
미심쩍은 구석이 있던 병원에서 하던 검사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비슷한 검사 같기도 하고 새로운 검사 같기도 하고. 아무튼 반짝거리는 흰 점을 찾고, 눈을 깜박이라는 검사원의 구령에 맞추어 눈을 깜박거리다 보니 어느새 검사는 종료되었다. 깜짝 놀랄 만큼 비싼 검사비용이다. 게다가 검사 하나는 비급여이기까지 하다. 미심쩍은 구석이 있던 병원은 검사 당일 바로 의사면담을 통해 결과를 알려주던데, X안과는 일주일 뒤에 다시 오란다. 아이 귀찮아.
하나는 미심쩍고 또 다른 하나는 귀찮고... 입에 딱 맞는 떡이 없다.
돌아오는 길. 마침 비가 온 뒤라 선선하기도 하고, 각막두께를 측정하느라 눈에 넣은 마취약 때문에 눈꺼풀의 느낌도 이상하기도 해서, 바로 회사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조금 걷다가 천천히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로 돌아가서 가방을 꾸리고 조용히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홍여사가 결과를 물어본다. 나도 몰라요. 다음 주에 알려준대요.
마침 사다 놓은 고급막걸리가 있어서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를 한잔 했다. 10도나 되는 막걸리라서 한 번에 다 마시면 은근히 취한다. 이제 눈도 침침하고 막걸리 한 병도 한자리에서 다 못 마실 정도가 되었나 싶다. 갑자기 서글퍼지는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