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뭘 돌려주어야 좋은 글이 되려나.(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어제 읽은 글쓰기에 관한 책 때문이려나. 무얼 쓰려고 해도 자꾸 은유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니에요. 그런 글은 안돼요.”
하아. 뭘 쓸 수가 없네.
이렇게 자기 검열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될 텐데. 삶에서 얻은 것 중 가장 귀한 것을 세상에 돌려주라니. 이렇게 어려운 주문이 들어 있는 책인 줄 알았더라면 읽지 말 것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살아온 삶이 너무 이기적이어서 감히 세상에 내놓을 것이 없는 까닭이다. 다른 사람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사회문제에도 남들에게 욕을 먹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관심을 가졌다. 내 위로 두 분의 누님이 계셨는데, 어머니랑 하루가 멀다 하고 소소한 전투를 벌였다. 어떤 날은 큰 누나가 다른 날은 작은 누나가. 무슨 일로 매일 그렇게 티격태격했을까. 그런 날도 나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처럼 소설이나 보면서 그 상황을 모른 척했었다. 이런 무심한 성격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무슨 깊은 의미가 있는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그냥 통속소설이나 장르소설을 보면서 모녀들의 언쟁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그래도 책을 읽는 것은 좋았다. 마리오 푸조의 소설에 빠져 보기도 하고 인문학자가 쓴 ‘신’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한 여자를 찾아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낭만주의자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여자를 만나 하룻밤 사이에 섹스를 세 번이나 하고 나서야, 그 여자가 아니라 다른 여자였음을 알게 되는 허망한 이야기였나. 아닌가. 아무튼 뭐 그런 이야기였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은 작가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가지고 있던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돌려주었으니, 은유 작가의 말대로라면 가장 좋은 것을 세상에 돌려준 것이려나.
그래도 소설은 재미라도 세상에 돌려주었는데 나는 무엇을 돌려주어야 하려나. 내가 출간한 책에 달린 서평 중에 이런 말을 해주신 분이 계신다. 한번 읽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다시 볼 면목이 없는 글이어서 정확한 워딩을 옮기지 못하겠다.
‘어마어마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이탈리아의 도시를 그렇게 가볍게 소도시로 취급하다니, 너무 가벼운 글에 실망을 했고, 중간중간 나오는 상상은 너무 오글거렸으며, 나이 든 사람의 현명한 지혜가 전혀 보이지 않는 글이었다’ 뭐 대충 이런 서평이었다.
이런 서평을 받고 나니 책을 세상에 내어 놓는 것을 너무 쉽게 여겼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변명을 하자면 이탈리아 도시들을 가볍게 취급한 적은 없다. 다만 접근하기 너무 어렵지 않도록 되도록 가벼운 필체로 쓰려고 했다. 깃털처럼 가볍게 쓴다고 썼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친구는 읽기에 아주 어려웠다고 했다. 이탈리아의 지명과 사람이름, 음식이름이 생소해서 그럴 거라고 해주었다.
사실 수천 년의 역사 중 파편에 가까운 사건들이 앞 뒤 설명 없이 나오곤 했으니 배경지식이 없으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같은 책을 두고 이탈리아에 정통하신 분들에게는 너무 가볍고, 또 다른 분께는 어렵게 느껴진다고 하니,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글을 쓸지는 오롯이 쓰는 자의 권리이다. 이에 대하여 쓴소리를 하신다면 기꺼이 들어야 하는 책임 또한 쓰는 자에게 있다. 오글거리는 글도 내 취향이니 뭐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나이 든 사람의 현명한 지혜에 대해서만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주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다. 불혹과 지천명의 나이를 거의 낙제에 가까운 점수로 통과 사람이라서 나에게서 그런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주변에 없다. 정말 미안한데, 현명함이란 게 노력한다고 억지로 생기는 게 아니지 않은가.
앞으로 어떤 글을 어떤 마음으로 써야 할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쓰지 못할 것 같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