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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Sep 04. 2020

방구석 세계여행-카우치서핑이야기

방구석 드로잉 여행 3

  아이가 어려서 독립된 공간이 필요가 없을 때가 있었다. 지금은 너무 커버려서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꽤 오랫동안 엄마 아빠 사이에 끼어서 지냈었다. 아이가 다 자라기 전에 많은 것을 보여주고 경험시켜주고 싶은 것이 보통의 부모마음이라 생각한다. 데리고 가서 보여주면 제일 좋겠지만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의치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너무 어려서 아직은 뭐가 뭔지 잘 모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에게 세상엔 우리만 살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카우치서핑’을 통해 우리 집에서 외국인을 생활하게 한 적이 있다. ‘에어비앤비’가 유료숙박을 일반 가정에서 제공하는 것이라면 카우치서핑은 무료숙박을 제공하는 자원봉사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카우치서핑의 정신은 여행자에게 환대를 베푸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환대를 받은 여행자는 다른 여행자에게 환대를 베푸는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다. 에어비앤비의 상업성을 생각하면 카우치서핑의 경우에는 현지인과 정말 깊숙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다시 시작된 엉뚱한 일인지라 아내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했다. 생면부지의 외국인이 우리 집에 와서 며칠을 지내게 되는 일인데 어찌 동의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일이었겠는가.


  첫 번째 친구는 미국에서 온 조Joe. 출국하기 전 하루정도 머물다 갔는데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짧아서 잘 모르겠다. 아내가 끓여준 라면을 맵다고 호호 불면서 먹었다고, 엄청 웃겼다는 뒷이야기만 들었다. 첫 번째 게스트를 보내고 나서 아내랑 다투었다. 외국인을 집에 들이는 일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단다. 초대했던 와딤Wadim과 마리올라Mariola부부에게 거절의 메시지를 보냈다. 며칠이 지난 후 아직도 호스트를 찾고 있는 와딤에게 조심스럽게 다시 메세지를 보냈다.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아내에게 이번에는 내가 옆에서 도와줄테니  한번만 다시 더 해보자고 꼬드겼다. 아내의 승인이 떨어지고 폴란드에서 온 와딤부부가 우리의 두번째 게스트가 되었다. 안식년같은 휴가를 받아 3개월 정도 일정으로 아시아를 둘러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마리올라는 한국에 도착했을 때 임신 3개월 정도 된 상태여서 입덧이 시작되었는지 조금 힘들어했다. 마침 주말이기도 해서 이번에는 약속대로 아내에게 맡겨 두질 않고 내가 북촌으로 박물관으로 데리고 다녔다. 힘들어 할 것 같은 마리올라를 위하여 아내는 그만 데리고 돌아다니고 집으로 빨리 돌아오라고 했다. 차도 마시고 국수도 같이 삶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집에서 한가로운 주말을 보냈다. 저녁때는 꼬맹이와 꼬맹이 친구들과 어울려서 보드게임을 하기도 했는데 꼬맹이들을 이겨보겠다고 엄청 고심하면서 게임을 하고 있는 와딤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이들 부부는 무사히 크라코프로 돌아가서 충실한 직장인의 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맥스Max라는 사내아이도 무사히 출산했다. 지금도 가끔씩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고 지난번 폴란드 출장 때 크라코프에 가서 폴란드식 건강요리(?)를 얻어먹기도 했다. 살짝 과체중이 된 와딤의 건강을 위해 야채만으로 만든 건강수프라고 했다.


  두 번째 게스트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한 번 더 게스트를 받기로 하고 이번에는 대만에서 온 비키Vicki를 초대했다. 비키는 한국음식에 매료되어 매일 맛집 탐방을 다니던 아가씨였는데 한국말도 능숙한 편이어서 아내와 함께 꼬맹이를 데리고 떡볶이도 먹으러 가고 시장구경도 같이 가곤 했다. 우리 집이 마음에 들었는지 계획보다 며칠 더 있으며 정말 가족처럼 지냈다. 심지어 네 번째 게스트가 왔을 때는 호스트 노릇을 하기도 했다. 네 번째 게스트는 영국에서 온 케이티Katie였는데 비키가 우리 집 큰 딸 인줄 알았다고 한다. 케이티는 다니던 직장을 6개월 휴직하고 중남미와 아시아를 여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듣기만 해도 무서운 콜롬비아까지 다녀왔다고 하니 이 친구 좀 겁이 없다.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없었다고, 시골풍경이 너무 좋고 사람들이 너무 좋았다고 한 번 꼭 가보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콜롬비아는 가지 않을 거다. 케이티도 다시 요크로 돌아가서 결혼을 하고 지금은 남편과 함께 농장을 운영하면서 고기파이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게스트는 비슷한 시점에 초대되어 같이 있게 되었다. 2015년 가을은 이 두 친구 덕분에 우리 가족이 즐거운 한때를 보낸 것 같다. 이번 게스트는 아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한동안 이사문제, 귀차니즘의 발동 등으로 하지 않다가 한번 또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카우치서핑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호스트를 구하는 게스트 목록을 살펴보다가 일산에서 열리는 무용제에 참가하는 폴란드친구가 무용제 끝나고 한국여행을 며칠 더 하려고 한다고 해서 냉큼 초대를 했다. 그러고 얼마 지난 뒤에 한국어 학당에 다니고 있는 러시아 친구가 기숙사에서 나오게 되어 며칠 함께 지낼 한국가정을 찾는다고 하길래 이것도 냉큼 수락해 버렸다. 이제 우리 집은 동물의 왕국이 될 판이다. 숫 사자 한 마리와 암 사자 네 마리.


  일산무용제를 성황리(?)에 끝내고 주쟌나Zusanna가 우리집으로 왔다. 주쟌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무용을 하면서 이곳저곳을 여행하기도 하고, 현지에서 무용을 가르치는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으로 오기 전에 싱가포르에 있었고 베트남을 거쳐 폴란드로 돌아 갈 예정이란다. 러시아에서 온 아나스타샤Anastasha는 한국 이름도 가지고 있다. 이.수.미. 뺴어날 수, 아름다울 미, 좋은 건 다 가져다 붙여 놓았다. 한국이 좋아서 한국말도 배우고 K-POP, 그 중 슈퍼주니어 동해에게 완전히 빠져 있다고 했다. 밥 먹다가도 슈퍼주니어가 김포공항에 떴다고 숟가락 집어 던지고 쏜 화살처럼 사라진 적도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졸업 후 직업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했다. 본인말로는 공부를 완전 잘한다고 하는데…···. 본 적이 없으므로 그냥 믿기로 했다.


  갑자기 엄청 큰 딸 둘이 생겨버린 것 같다. 수미는 한국말을 곧잘 하기 때문에 꼬맹이랑 잘 놀았다. 머리도 따주고 진짜 언니처럼 잔소리도 하면서 살갑게 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방송국 다니는 친구 녀석과 가족을 동반한 저녁식사 약속이 있어서 수미도 데리고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방송국에서 준비 중인 K-POP 콘서트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 완전 좋아한다고 티켓을 꼭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수미, 술 한 잔 걸친 친구 녀석이 냉큼 약속을 해버렸다. 그 땐 몰랐는데 친구 녀석이 다음날 티켓을 구하려고 하니 모두 발송되고 없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K-POP 보러 일부러 왔다고 ‘구라’를 쳤더니 그럼 인터뷰를 할 수 있겠냐고 하더란다. 뭐 그게 어려운 일일까 싶어 OK를 하고 티켓을 구해 주었다.


  그런데 그 날 인터뷰를 누가 했을까? 소녀시대의 티파니가 생방송 중에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아닌가. Oh my god! 수미 완전히 흥분하고 덩달아 쥬잔나와 우리 식구들도 흥분하고.


  K-POP의 흥분이 지나가고 난 후 경복궁에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쥬잔나는 수미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뭔가 진지한 구석이 많다. 이 친구를 보면 정말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여행지에서 좋은 친구를 사귀고 소셜미디어로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젊은이가 부러운 적 별로 없었는데, 자유롭게 여행하는 친구들을 보면 언제 봐도 부럽다. 정말로 여행지에 깊숙하게 몸을 묻고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러시아로 돌아갔던 수미는 지금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전공인 국제정치학을 잘 살려서 러시아와 한국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했으면 하지만 요사이 하고 있는 활동을 보면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친구이다. 얼마 전에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좀 어설퍼서 1회전에서 그만 노래 못 부르는 유학생으로 들통이 나서 탈락. 아는 사람이 텔레비전에 나오니 신기하다.


  이러는 사이에 아이는 커가고 아내와 나는 늙어가면서 카우치서핑도 시들해져서 이제는 더 이상 호스트 노릇은 하지 않는다. 하고 싶어도 아이에게 독립된 생활공간을 내어주고 나니 여유가 있는 방이 없기도 하다. 아이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려 한 것이 성공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이 부모 욕심에서 시작된 일이니 아이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 상책이리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점점 평범한 아이로 변해간다. 좀 아쉽기는 하지만 아이의 선택이고 부모가 할 일은 선택을 지지하는 일임을 잘 알고 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면접을 볼 때 본사 매니저가 한 말이 생각난다. “진호, 내가 너에게 제안하고 있는 일은 단순히 기계를 파는 일이 아니다. 어쩌면 너의 인생의 줄기를 바꿀지도 모를 일을 제안하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자발적 복역생활이었다고 자조적인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감시자가 없는 생활이었기에 많은 것을 혼자 생각하고 결정해야 했다. 아마도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서 처음 시작하는 일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어지게 된 듯하다. 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손가락을 튕기는 것처럼 이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를 돌아보고 찬찬히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고 자신을 칭찬하다 보면 나도 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될 것이고 이것으로 조금씩 단조로운 생활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아내와 함께 처음 유럽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도, 카우치서핑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혼자서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 것도, 까닭모를 목마름에 그림을 시작하게 된 것도 우연히 찾아온 또는 찾은 자그마한 기회를 버리지 않고 시도해 보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어느 날 행운이 찾아오길 또는 찾게 되길 바란다.


  지금은 더 이상 카우치서핑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가고 싶은 도시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언젠가는 요크에 가서 그 동네에서 제일 맛있다는 고기파이도 먹어보고 목장에서 새끼 양들도 안아주고 싶은 소소하지만 어쩌면 실제 일어날 수도 있는 꿈을 꾸어본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그렇더라도 목장에서 안아 준 귀여운 아기 양들이 저녁때 식탁으로 올라오는 무서운 꿈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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