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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Nov 14. 2021

단팥죽에 속아 넘어가는 척.

족두리봉에서 은평 한옥마을까지

가을이 깊어갈수록 미세먼지가 점점 많아진다.

옆 나라의 난방연료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다시 미세먼지가 시야를 흐릿하게 한다.


오늘은 늘 가던 길의 반대쪽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독바위역-족두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응봉능선-진관사-은평한옥마을-북한산둘레길-독바위역으로 돌아 나오는 길이 오늘의 코스이다.


아내의 컨디션이 오늘은 괜찮아 보인다.

쉬지도 않고 스윽 족두리봉을 오르더니 이내 향로봉으로 길을 잡는다.


족두리봉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


지난주에 있던 도르래 같은 기자재들이 말끔히 치워졌다. 지난주에 이어 요번 주도 힘든 일을 하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이다.


오르고 또 내려가고.

내려갈 걸 왜 오르냐고 묻던 사람이 있었다.

원래 인생은 삽질의 연속이라고 답해 주었다.


확실히 컨디션이 좋은 날이다.

평소에는 비봉을 지나쳐 갔지만 오늘은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 보았다.(물론 모조품일 테지)

코뿔소 바위는 오늘도 인기가 많다.

스페인 젊은이들까지 코에 걸터앉아 인생 샷을 담고 있다.


비봉을 지나 사모바위로.

이제 하산을 해야 할 시간이다.


오늘은 응봉능선을 따라가다가 진관사로 내려가서 은평 한옥마을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팥죽 타령을 하는 아내에게 요번 주는 한옥마을에서 팥죽을  그릇 먹고 오겠냐고 미끼를 던졌다. 예상대로 덥석 물고 따라나섰으니 오늘은 팥죽을 먹어야 한다.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아내는 속아 넘어 가는 척’하고 있다.


응봉능선은 탐방객이 별로 없어 한적하긴 한데 내려오는 길이 쉽지 않다. 등산용 장갑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손바닥이 고생할 뻔했다.


내려오는 길에 야생오리(?)를 만났다.

아마도 이동 중에 낙오되어 산속으로 떨어진 건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빵과 물은 주고 가긴 했지만 이 작은 생명은 이제 조만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냉정함.

오리를 뒤에 두고 오니 하산길에 무거워진 발걸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오늘 밤 들짐승의 날카로운 발톱을 피할 수 있을까.


터벅터벅 팍팍해진 다리를 두드리며 내려오다 보니 어느덧 진관사 일주문이다.


진관사도 식후경.

한걸음에 단팥죽집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따뜻하고 달콤한 팥죽.

아삭아삭 생야채의 식감이 좋았던 비빔밥.

이제 다시 힘이 난다.

팥죽집 옆에는 주말 특선으로 보쌈 정식을 내고 있다.

보쌈 정식으로 메뉴를 바꿀까 살짝 고민을 했지만 오늘은 팥죽이 좀 더 매력적이다.

다음에 다시 이곳에 올 핑계가 생겼다.


식후이니 이제 진관사 구경을 하러 간다.

절로 가는 길에 한옥마을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가고 있다.

멋진 한옥에 근사한 이름까지 붙여 놓고 심지어 곶감까지 말리고 있지만 어쩐지 영화 세트장처럼 보인다.


진관사.

서울 근교의 4대 사찰 중 하나라고 한다.

두부를 만들어 임금께 바치던 일도 했단다.

지금의 주지스님도 이런 영향인지 사찰음식의 명인이라고 들었다. 엄청난 수의 항아리 단지들이 이 절의 보물이라 들었는데 찾지 못했다.

돌벽으로 둘러 싸인 해우소가 인상적이다.

해우소라는 표식을 보지 않았다면 누가 이곳을 화장실이라 생각할까.

‘해우소, 근심을 해결하는 곳’이라니,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멋진 이름이다.



전봇대에 다닥다닥 붙은 통신장비들이 뭔가 현실감이 없다. 설치예술이라 해도 속을법하다.


빵집이 보인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들어갔다가 스윽 둘러보고 그냥 나왔다. 주말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자그마한 동네에 외지인들까지 차를 끌고 와서 거리는 온통 주차장 같다.

이럴 땐 우리 같은 뚜벅이가 최고다.

우리는 가고 싶은 곳을 걸어서 간다.

걷다가 보면 이런 하늘을 만날 수 있다.


한옥마을과 진관사 구경을 끝내고 다시 둘레길로 들어선다.

8구간 구름정원길이다.

이 길을 거쳐 다시 독바위역으로...

2021-11-14일

가을이 더욱 깊어진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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