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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Nov 07. 2021

가을 북한산

오늘의 백미는 우아하게 날아오르던 백로.

독바위역에서 북한산 둘레길로 들어서면서 오늘도 갈등을 한다.

둘레길을 걸을 것인가.

족두리봉을 오를 것인가.

족두리봉을 오르게 되면 기왕 올랐으니 능선을 따라  향로봉과 비봉 정도까지는 가주어야 한다.

아내와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갈까 상의를 하다가 족두리봉으로 길을 잡는다.


족두리봉은 북한산 서쪽의 끝자락에 있는 야트막한 봉우리이다. 그래도 북한산이 암이 많은 산인지라 이 낮은 봉우리라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등산화 발끝에 힘을 주고 낙엽을 피해 조심해서 오른다.

가을산의 낙엽은 겨울산의 얼음처럼 미끄럽다.

산에서 바라보는 산이 제일 멋지다


우와. 이걸 어찌 운반했을까.

이런 노동의 대가는 얼마나 정직한가.

이런 노동의 결과로 우리는 얼마나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돼먹지 못한 정치인보다 훨씬 더 고귀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다.

복수를 위해 정치를 한다고 하니...기가 찰 노릇이다.


앞에 보이는 바위 덩어리가 향로봉이었던가?

아내는 그 바위나 이 바위나 아무 의미 없다신다.

가쁜 숨을 몰아 쉬느라 풍경이 눈에 안 들어온단다.


이렇게 보니 그게 그거 같긴 하다.

향로봉과 비봉을 지나 사모바위로 가는 길목에서 아내가 조용히 말한다.


“이제 그만 내려가자. 배고프다”


아무래도 오늘 아내의 컨디션이 최상의 상태는 아닌 듯하다.

내려오는 길에 승가사에 잠깐 들렸다.

산 위에서 몇 번을 스쳤던 젊은이들을 이곳에서 또 만났다. 그들은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그들을 기억한다.


아름다운 젊은이들이었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다. 힘들지 않냐고 서로 격려하고 오르는 모습이 아름다웠고 그녀들의 레깅스가 아름다웠다.

게다가 꽤 미끄러운 바윗길이 많았는데 운동화를 신고 오다니. 아마도 산행길이 두 배는 힘들었으리라.

아내는 그 모습을 보며 매우 감탄하면서 또한 걱정을 한다.

나는 대놓고 감탄을 할 정도로 간이 크지 않다.


단풍이 없어서 섭섭했는데 구기분소 쪽으로 내려오다 반가운 단풍을 만났다.


늦은 점심을 먹고 세검정으로 내려오다 보니 총융청터가 있다. 이제 이곳엔 세검정초등학교가 자리를 잡고 있다.

초등학교 이름치곤 조금 무섭다.

‘칼을 씻던 곳’이라니...

지명을 따라 학교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왠지 밀린 숙제를 대충 해버린 것처럼 보인다.

K-문화가 어쩌고 떠들어봐야 공무원의 상상력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나 보다.

‘(공무원)님아! 그 선을 넘지 마오’


홍지문이 대로변에 조그마하게 붙어(?)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러다가 이나마도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로구엔 숲이 많고 물이 많아서 그런가.

백로가 지나가던 사람의 눈길을 끈다.

언제 날아갈까 한참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커다란 날개를 휘익 펼치더니 4초 만에 사라져 버렸다.

멋지다.


오늘 도보 끝.

2021-11-06 가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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