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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재 Jun 06. 2023

교육기본법 개정 논란 속 교육 이념으로서의 홍익인간

지난 2021년 3월 24일, 국회의원 민형배 등 12명이 "교육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교육기본법이란 현행법 제1조에 명시되어있듯 "교육에 관한 국민의 권리·의무 및 국가·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정하고 교육제도와 그 운영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요약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시행되는 모든 공식적인 교육의 규범을 정하는 법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 교육기본법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조항은 아마 '제2조(교육의 이념)'일텐데, 이번 법률개정안은 특히 여기에 대한 수정안이 포함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행법[교육기본법] 제2조에서는 교육이념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교육으로 육성해야 할 자질로는 인격도야, 자주적 생활능력, 민주시민의 자질 등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궁극적 목적은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 실현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표현들이 지나치게 추상적입니다. 교육지표로 작용하기 어렵습니다. 1949년 제정된 교육법의 교육이념이 1998년의 현행 교육기본법에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지난 70년간 변화된 사회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교육이념과 목적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해야 합니다. 학교 존재의 목적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학생들의 행복한 삶과 더 나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울러 현행법의 권위주의적 용어 등도 함께 바꾸고자 합니다.
     - 교육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민형배의원 대표발의) 원안문에서 인용


  교육기본법 개정안의 타당성을 검토해보기 위해 국회의원들의 발의안을 재구성한다면, 현행법에는 크게 네 가지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제2조 교육이념에 사용된 표현들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2) 제2조에 명시된 교육이념이 1949년에 제정된 교육법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시대가 흐르면서 변화한 사회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3) 학교라는 교육기관의 존재 목적이 불명확하다.

(4) 권위주의적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다.   


이중에서도 (1), (2)는 '제2조(교육의 이념)'을, (3)은 '제9조(학교교육)'의 ②, ③항을, (4)는 '제12조(학습자)'의 ③항을 각각 염두에 둔 지적인 것처럼 보인다. 특히 제2조(교육의 이념)에 명시되어 있던 홍익인간 개념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데, 이 문제를 중심으로 현재 법률개정안 논란에 대해 여론은 (법률개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을 포함한) 법률개정안에 찬성하는 측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로 대표되는) 법률개정안에 반대하는 측으로 나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법률개정안에 담긴 국회의원들의 지적과 근거는 타당한 것일까? 이번 글에서는 논란이 되는 법률개정안 중에서도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교육 이념으로서의 "홍익인간"(弘益人間) 개념에 대한 교육기본법 개정안의 근거를 검토해보려 한다. 다만 내가 보기에 법률개정안에 담긴 그들의 주장이 전적으로 타당해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반대측 의견을 대조하며 글을 이어갈 것이다.


[현행법] 제2조(교육이념)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개정안] 제2조(교육이념)
교육은 모든 시민으로 하여금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시민으로서 사회통합 및 민주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


  현행법에 담긴 표현들 중 추상적이라고 볼 수 있는 개념어들은 "홍익인간", "인격 도야", "자주적 생활능력",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 등이 있는데, 과연 이런 개념들은 그것이 추상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받아야 하는 것일까? 법률개정안의 문제제기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교육의 이념이 얼마나 구체적이어야 하는가(바꿔 말하면 얼마나 추상적이지 않아야 하는가)?" 이런 종류의 질문은 언제나 답하기 어려운데, 왜냐하면 교육의 이념이라는 것이 교육의 제도, 정책, 규칙 등과는 구분되는 것이자 오히려 그런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는 교육 일반에 대한 공통적이고 근원적인 지향을 담아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법률개정안에서 교육 이념의 추상성을 비판하고 있는 근거가 표현의 추상성으로 인해 그것이 "교육의 지표"로서 작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개 '지표'라는 표현은 우리가 어떤 결과를 비교∙분석∙판단하기 위해 측정가능한 형태로 변환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런 이유로 교육 이념의 추상성을 비판하는 국회의원들의 주장은 교육의 이념이 우리가 판단할 수 있을만한 형식으로 결과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주장처럼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그들의 법률개정안에 똑같은 물음을 반문해볼 수 있다. "자유"와 "평등", "사회통합"은 과연 구체적인 용어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쉽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교육의 이념을 결정할 때 그 용어의 추상성은 피할 수 없는 조건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 이유는 앞서 밝힌 것처럼 이념이란 본래 그런 포괄적인 성격에 관련된 규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의 이념을 나타내는 데 쓰이는 표현은 그 추상성의 정도에 따라 판단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며, 그렇기에 이번 법률개정안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개정 방향의 근거는 그리 설득력을 갖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런 한계와는 별개로 현재의 논쟁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표현은 바로 "홍익인간"일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홍익인간은 고조선의 건국이념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를 우리나라 교육의 정신으로 삼고 있는 현행법은 (그것이 교육적 이유에서든, 정치적 이유에서든 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홍익인간을 교육 이념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법률개정안과 그것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은 마치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부정하는 악(惡) 혹은 적(敵)인 것처럼 비판받고 있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것은 홍익인간이란 개념 자체가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과 같은 홍익익간의 의미, 즉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정신이 과연 교육적으로 바람직한가라는 의문이 교육학계에서는 꽤나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는 사실이다(신창호, 2003 참고). (따라서 내가 보기에 법률개정안은 홍익인간의 추상성이 아니라 모호성에 대해 지적했어야 적절했을 것이다.) 비록 이번 글에서 홍익인간 개념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모두 소개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와 같은 학계의 비판은 꽤나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따라서 홍익인간이란 이념을 우리가 교육의 기본 정신으로 유지해야 하는가는 역사적 전통이나 정치적 입장과는 별개로 교육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만일 홍익인간이 우리나라의 전통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개념이라면, 어느 역사 강사의 주장처럼 그것은 교육에 관한 법이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을 담는 헌법에 명시되어야 할 것이다.)


2021.




** 이 글을 쓰면서 아래 글을 참고하였습니다.

신창호(2003). 교육이념으로서 홍익인간에 대한 비판적 검토. ⟪한국교육학연구⟫, 9(1), 51-69.

[2109092] 교육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민영배의원 등 12인)

https://likms.assembly.go.kr/bill/billDetail.do?billId=PRC_U2X1D0N3D2Z4T1K3N3K7B3N7L9D2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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