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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재 Jun 06. 2023

[편론] 영화 <핵소고지>를 보고서

우리 사회에서 종교는 언제나 가장 큰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대표적으로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 아래 무신론자들은 종교의 절대성을 부인하기 위해, 유신론자들은 스스로의 종교적 가치를 변호하기 위해 각각의 주장을 펼친다. 비단 무신론과 유신론의 대립이 아니어도 종교적 가치관을 둘러싼 갈등은 사회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영화 <핵소 고지>에서 보여주는 사건 역시 개인의 종교적 신념과 사회의 규범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개입 사이의 갈등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자신의 저서 <자유론>에서 개인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에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다. 그러나 이해관계라는 것이 명확한 기준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 역시 많은 고민의 여지를 남긴다.

  내가 본 영화 <핵소 고지>는 단순히 전쟁의 감동 실화를 넘어 인류의 풀리지 않는 난제를 주제로 담고 있다. 그 어느 곳보다 공동체의 규율이 중시되는 군대에서 그것도 전시 상황에 집총 훈련을 거부하는 주인공. 감정이입을 하기에 따라서 주인공이 하는 행동은 보는 이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나 역시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영화에서 보이는 주인공의 극단적인 고집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총을 들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전장에서 열심히 뛰어다녔고 의무병으로서 자신의 맡은 임무를 기대 이상으로 수행해 냈다. 그리고 주인공의 바람처럼 많은 생명을 살려내는 결과를 가져왔고 전투에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주인공의 고집스러운 결정이 이렇게 좋은 결과를 남겼으니 과연 그것으로 충분한가?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비교적 명확했다. 공동체가 개인의 신념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고 위험한 짓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영화의 배경은 우리가 이 명제를 쉽게 납득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 주인공은 종교적 신념을 고집하며 전쟁에 나갔다.

* 주인공의 활약 덕분에 전투를 승리했다.

* 좋은 결과를 낳았으므로 주인공이 신념을 지킨 것은 잘한 일이다.   


  영화의 논리구조가 위와 같다면 이는 너무 결과론적인 주장이지 않을까. 그들이 전쟁에서 낸 성과는 결국 상대방의 생명을 희생한 결과다. 실제로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전쟁을 하며 다른 민족을 학살한 사건이 수차례 나온다. 그리고 이는 여전히 기독교를 믿는 자들에게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내용이다. 아가페(Agape)를 주장하는 종교에서 전쟁의 승리가 선한(good)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해석이 아닐까?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대사를 통해 종교적 신념에 의해 살인을 하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조국과 헌법 그리고 여자와 어린아이 같은 약한 자들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돕고 싶다고 말한다. 신이 존재하는지도 많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과연 신이 있다고 한들 신을 믿는 자들의 목숨은 그렇지 않은 자들의 목숨보다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대로 주인공과 그의 나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과연 그들의 종교적 신념대로 전쟁을 걸어오는 자들에게 폭력적으로 저항하는 것을 멈추는 것이 옳은 결정인가? 이 역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전쟁을 일으켜오는 자들을 제재하지 않는다면 분명 더 큰 생명을 잃고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전쟁에 반대하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전쟁이 일어난 상황에선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이런 상황에선 종교뿐만 아니라 그 어떤 철학이나 윤리도 올바른 대답을 해줄 수 없다. 이미 전쟁이라는 상황 자체가 규범도 없고 윤리도 없는 생존과 경쟁 차원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전쟁이 일어난 상황에서 우리는 어느 것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종교 안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를 멀리해야 한다. 그리고 종교를 전쟁의 정당화에 사용하려는 시도 역시 멀리해야 한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볼 때 그 어떤 종교적 명분의 전쟁도 세상에 선을 가져오지 못했다. 전쟁이라는 수단 자체가 종교적 가치와는 너무나 반대되는 성격의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과 가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가치는 상황에서 개인의 태도를 결정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그 상황 자체에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내가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주인공의 동료가 전장의 참호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주인공에게 고백하는 장면이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고아원에서 자란 자신은 증오를 일찍 배웠다고. 그래서 주인공의 종교적 신념을 좋지 않게 바라봤다고.

  선과 악의 대립, 즉 가치의 대립은 전쟁과 같은 거창한 사건에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삶의 순간마다 그 사소한 곳에서 우리는 선을 붙잡고 악과 씨름해야 한다. 우리가 여기서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가에 따라 세상에서 선의 지분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할 테니 말이다. 선과 악의 대립에서 선은 언제나 불리하다. 악은 훨씬 쉽고 빠르며 전염성이 강하지만 선은 더디고 약해 보인다. 선에 대립하는 악은 다양하게 그리고 전방위적으로 공격할 수 있지만 선이 악에 대응하는 방법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이렇게 보면 역사를 지나오면서 어떻게 선이 악에 대항해 살아남았는지가 더 궁금해진다. 선이 가진 힘은 무엇일까? 아직까지 명확한 정답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군가는 선을 끈질기게 붙잡아 두었기에 우리에게 아직 선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내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매 순간 미련하고 우둔하지만 꾸준하게 선의 길을 걷고자 노력해야 할 뿐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 7:11-12)



2017. 1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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