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광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알 수 없는 의무감 같은 것이 생긴다. 그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 시절 광주의 이야기라면 반드시 챙겨봐야 할 것만 같다.
20세기 후반. 대한민국은 격동의 세월을 지나왔다. 광복부터 IMF 사태까지 불과 50년. 우리는 그 50년 동안 서양의 3-400년치의 경험을 압축해서 겪었다.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독재에 맞서 싸우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산업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빠른 속도의 변화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그 대가로 가져갔다. 그리고 여기서 희생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평범한 소시민들이었다. 내가 그들일 수 있었고 나의 가족이 그들일 수 있었던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바로 그런 이들이 지켜온 것이다.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이 나라의 시민들은 부정의에 맞설 줄 알았다. 그들이 살던 시대에 민주주의의 가치가 얼마나 숭고한 것이었을지 나는 짐작할 수 없다. 어쩌면 그들에게 민주주의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의 생명과 재산, 우리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 그들이 추구한 것은 개인적인 차원의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한들 그들의 희생이 과소평가될 수 있을까? "누군가의 희생은 마땅한 가치를 지닌다"는 명제에 우리는 쉽게 동의할 수 있는가? 희생은 결과의 가치로 환원될 수 있는 속성의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죽어간 사람이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죽어간 사람들 모두를 딛고 우리는 이 사회를 살아간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과연 어떤가? 이 영화는 격동의 시기 1980년 5월 광주를 개인의 측면에서 조명한다. 서울의 택시기사가 광주를 관찰하며 제삼자의 입장에서 점점 내부자의 위치로 옮겨진다. 희생자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느낀다. 이 영화를 보는 우리는 주인공의 심정에 동의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이 시절의 광주를 다룬 많은 콘텐츠가 있었고 이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광주 민주화운동의 아픔을 바라봤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볼 때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고 영화관에 찾아갔을까? 영화의 재미? 감동? 나는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 콘텐츠로 소비되지 않았으면 한다. 영화의 기술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 이 영화는 그리 수작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주제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1000만 명의 관객을 불러 모은 것은 영화 자체의 매력보다는 우리 시대가 아직은 광주의 아픔을 더 공감해야만 한다는 의미가 클 것이다.
프랑스, 영국 그리고 미국의 시민들은 자신들이 쟁취한 시민혁명의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그 정신이 담긴 인권선언문이나 권리장전, 미국의 독립선언문과 같은 문서 역시 그들의 자부심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시민혁명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은 광복 후 50여 년간 끊임없이 싸워왔다. 전쟁을 겪었고 군부 독재에 맞서 싸웠으며 경제 발전을 위해 주변의 나라들과 계속해서 경쟁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권리를 지켜왔다. 민주주의를 정식으로 시작한 지 50년만에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기초를 완성했다. 그리고 앞으로 그 완성을 이루는 것은 지금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의 몫이다.
지금 이 시점에 한국 사회가 영화 <택시운전사>에 반응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에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그 시절의 광주 시민들에게 참 많은 빚을 지고 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2017.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