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데뺑(Ile des Pins)에서(1)
2017년 5월31일 (수) 흐리다가 오후에 맑음
일데뺑은 Noumea에서 동남쪽으로 110km 떨어져 있다. 우리가 타고 갈 선박으로 달려가면 약 2시간15분 걸린다. 섬크기를 보면 아래위 길이는 14km, 좌우 폭은 18km로 제주도의 1/10 정도의 조그마한 섬이다. 보통 섬에 대해 찬사로 늘어 놓는 것이 백사장, 코발트색 바다, 파라다이스, 청정 소나무숲이다. 섬이름에서도 물씬 묻어 나오는 것이 키가 고르게 자란 소나무숲이 하얀 모래사장이 덮인 섬을 돌아가며 방풍림같이 둘러 싸고 있고, 그 속으로 채도를 단계적으로 달리하는 코발트 바다물색이 눈을 사로 잡는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말해 주어야 하겠다. 바람이 불면 가는 허리를 요리 저리 흔들어대는 야자수도 일데뺑의 일부분이다.
아침 7시가 막 지날 무렵 해가 동쪽 하늘에서 구름 속에 묻혀 있을 때 배가 천천히 모젤만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어제 혼자서 걸었던 모젤 항구의 모습을 오늘은 배 위에서 바라보고 있다. 좁은 항구 방파제를 빠져 나가자 배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엔진 소리가 우렁차게 전해져 온다. 왼편 창가쪽으로 자리를 하고 있다. VIP석이라고 창가에 넓은 좌석을 두개씩 배치하였다. 한번도 VIP가 되어 보지도 못한 찌질한 남자가 고작 4만원 더 내고 오늘 하루 VIP가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진정한 VIP가 되도록 노력해야지 그깟 몇푼의 금전으로 그렇게 되어서야 되겠는가? 그런 당연한 진리를 다른 사람들은 잘 알아서일까 배 상층에 전면이 잘 보이도록 좌우에 배치된 VIP석은 텅텅 비워서 간다.
배가 진행하는 방향에서 보면 왼쪽은 뉴칼레도니아의 동부해안에 해당하는 곳으로 산과 산으로 이어진 해안선을 보여준다. 먼 산의 희미한 윤곽선이 차곡 차곡 채워져 마치 붓으로 그린 농담이 뚜렷한 한 폭의 산수화같아 보였다.
해가 구름속에서 나와 정면으로 내리 비추기 시작하자 열기가 조금씩 올라가는 것 같다. 선글라스를 껴도 해를 바로 마주하고 있으면 그 태양의 강렬한 빛이 바다의 수면을 가로질러 일직선으로 머리를 뚫고 지나간다. 남태평양에서 태양을 감히 마주하고 바라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한 그 강렬한 에너지때문에 누구라도 금방 손을 들고 만다. 선글라스는 태양의 직각 사격포를 피하는 최소한의 대비책일 뿐이지 영원한 도피책은 아니다. 그러니 감히 그와 눈을 마추치려는 그런 위험천만한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잠시 잠시 구름 속으로 몸을 감추는 그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 뿐이다.
바다 표면이 뱅기 위에서 내려다 보면 은빛의 생선 비늘처럼 반짝인다. 오늘 배를 타고 찬찬히 관찰을 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바다 표면이 평면처럼 판판한게 아니고 물결 그 자체가 쉴새없이 움직이고, 때론 한번 쓰담아주고 지나가는 바람에도 흔들려 물결의 흐트러진 각도 면에 난반사된 햇살이 여러 각도로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하늘을 덮고 있는 짙은 구름땜에 몇 년전 뉴질랜드의 남부 국립공원에서 크루즈 할때 그 구름땜에 사진이 거의 흑백으로 나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사진은 빛으로 축복받아 탄생되는 작품이다. 그런 빛의 은총이 없으면 더 이상 사진의 생명력은 상실되어 버리고 병원 검사실의 X 레이 흑백판으로 바뀌어 버린다. 하필 오늘도 머피의 저주를 받아 그런 사진을 가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오늘같은 날은 경비행기를 타고 가도 구름밖에 보일게 없을 것 같다. 오늘 내 살이 다 타도 좋으니까 해가 종일토록 비쳐 주었으면 좋겠다. 더더구나 하루밖에 시간이 없어 내일 다시 와볼 수 없는 여행길에서는 날씨땜에 완전한 여행이 될 수 없다면 그 누구에게 원망을 해야 할까?
1시간쯤 항해를 하니 배가 왼편 해안선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지고 좌우로 육지가 보이지 않은 망망대해로 나아가고 있었다. 멀리서 작은 섬 두 개가 보일 뿐이다. 하늘은 여전히 짙은 구름으로 덮여 중간 중간에 헤어진 헝겊처럼 구멍뚤린 것 같은 곳으로 푸른 하늘이 간간이 보일 뿐이다
배가 숨가쁘게 헐떡이며 1시간 반쯤 더 달려온 모양이다. 배 좌현으로 저멀리서 엎드려 누운 것 같은 회색 모양체가 눈에 들어왔다. 좌우로 길게 뻗어 있는 것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바로 그 송도(일데뺑)일 것 같다.
근처 해안의 수심이 얕아 배를 가까이 대는 것이 어려워 길게 물가쪽으로 다리를 놓아 선착장을 만들었다. 배가 도착하는 이 곳의 마을이름이 Kuto 이다. 관광객들은 저마다의 짐을 챙겨 하나 둘씩 마을 속으로 사라졌다.
배가 도착한 Kuko에 무엇인가 관광객에게 호객하는 것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모두들 제각기 각자의 길로 가고 있었다. 어제 info center에서 물어보니 아마 섬을 일주하는 관광버스가 있을 것이라는 희미한 정보를 받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은 불길한 기운이 일어났다.
어제 누메아 관광 Info 센터에서 들은거 하고 좀 틀린다. 공공버스는 아예 없고 사전에 관광회사나 가이드를 콘택하여 픽업하거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지나가는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배 선착장에서 한 10분만 걸어가면 호텔 쿠부니가 있는데 차를 렌탈할 수 있다고 한다. 혼자서 털레털레 길을 돌아 나가니 TV에서 보았던 활대처럼 오목하게 휘어진 환상의 비치가 투명한 남색물을 소복하게 안고 조용하게 앉아 있었다. 하늘은 두꺼운 회색 구름으로 덮여 남태평양의 지글거리는 태양이 어디쯤 숨어 있는지 알 수도 없다.
잠깐사이 마법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배에서 내린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 나혼자 일데뺑 선착장에 버려진 것이다. 물론 근처 사진을 촬영한다고 혼자 뒤떨어져 있었지만. 선착장 부근에 사는지 현지인과 아이들 몇 명이 다리 위에서 장난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현지인이 가르켜 준대로 호텔 쿠부니(Kou-Bugny) - 위 지도에 D로 표시 - 를 찾아 신작로를 따라 걸어 나갔다. 간만에 시골길을 혼자 걸어 보았다.
길을 가다 멈춰 섰다. 사람 하나 차 하나 다니지 않는 시골길이 아주 조용했다. 사진을 찍은 저 지점에서 그런 생각이 금방 들었다. 이 한적한 시골길의 분위기와 풍경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지금 내가 느끼는 그 평화스럽고 포근한 감정이 전달될 수 있을까?
호텔로 가는 길은 선착장 다리를 건너와서 계속 직진하다가 왼쪽으로 크게 돌아 나가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따라 나가면 쭉 올라 갔다가 다시 좌회전하게되어 멀리 도는 것 같아 왼쪽 백사장을 가로 지르면 바로 호텔안으로 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아 신작로를 버리고 Kuto 백사장으로 내려 섰다.
해변으로 내려 섰다. 하얀 모래사장이 둥글게 돌아돌아 건너편 소나무숲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쓰리빠 위로 모래가 넘쳐 들어와 발등을 간질었다. 신발을 벗어 들고 천천히 해변을 걸었다.
잔뜻 찌푸린 하늘땜에 코발트색 바다가 인상을 쓰고 있는 듯 하였다. 그런 하늘아래의 바다물색도 칙칙하였다. 왜 그럴까 하고 한참을 생각했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것 자체가 이쁘고 화려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이 뛰어나게 보이도록 도와주는 다른 어떤 것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나 손길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일데뺑에서 섬 사진을 찍다가 정리한 산뜻하고 분명한 명제이다.
일데뺑의 명성이 사진으로 보면 파란 하늘과 코발트색 청정한 바닷물이 하얀 모래사장과 어우러진 것들이다. 내가 오늘 오전에 사진을 찍어보니 일데뺑의 그런 모습들을 담을 수 없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른 것의 도움이 없어서 일데뺑의 아름다움을 만끽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낮고 짙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고, 태양이 구름 뒷편에 숨어있어 그 강렬한 빛을 바닷물속으로 관통시키지 못하고 하얀 모래사장을 따끈하게 달군 햇살이 반사되어 눈을 부시도록 해야만 하는데도 구름에 가려 그 역활을 다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데뺑의 바다, 비치 그리고 자연 환경 그 자체만을 보더라도 멋진 풍광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강렬한 태양빛이 없다면 일데뺑의 아름다움은 그 빛을 잃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찍은 오후의 윗 사진은 말간 하늘과 함께 활짝 웃고 있었다.
해변 백사장을 가로 질러 호텔 쿠부니로 들어 섰다. Kuto해변이 바라보이는 멋진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렌트해 줄 차가 없단다. 보아하니 호텔에 투숙하는 고객을 위한 차량서비스는 있어도 외부 고객에게는 그렇게 해줄 수 없는 모양이다. 스쿠나나 자전거를 렌트할 수 있나 다시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천상 택시를 불러야 할 판인데 택시도 옆 마을인 Vao에 가야 가능하다고 한다. 지도를 보니 옆마을 Vao까지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다.
다른 방법이 없어 호텔을 나와 Vao 마을까지 걸어 가려고길은 나섰다. 호텔을 나와 길을 건너는데 길 옆에 봉고차가 정차되어 있었고 중년(할매같기도 하고)의 여자분이 운전석에 앉아서 무슨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지도를 들이대며 Vao까지 태워 달라고 말을 걸어 보았다. 내가 말한 영어중에 Vao만 알아 들은 모양으로 계속 Vao하면서 본토말(불어)로 나에게 던지는데 우리는 그 중요한 소통이 안되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들>이었다.
인생을 살아 오면서 하나 배운 폼나는 단어는 <궁즉통(窮則通)>이다. 글대로 궁하면 통(해결)할 수 있다는 소리인데 조건이 있다. 원전에는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으로 되어있다. 전제 조건이 궁즉변(窮則變)으로 궁하면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려면 변즉통(變則通)으로 변하면 통(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줄여서 궁즉통(窮則通)이라 한다. 배낭 여행자들은 꼭 명심해야 할 폼나는 명언이다.
나도 즉시 변했다. 쪽팔림을 내던지고(그런 것에 무지하게 수줍어 하는 편이다) 히치하이킹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봉고차를 타고 Vao까지 갔다. 그것까지는 참 좋았는데 일데뺑 사마리안 여자분이 내 커다란 카메라를 보고 사진작가로 오인했는지 Vao 마을에 내려주지 않고 Vao 마을을 지나 해변가에 내려 주었다. 물어보니 그 여자분 집이 바로 그 해변가에 있어 아마도 그래서 그랬던 모양이었다.
나중에 관광가이드를 찾아 읽어 보았더니 여기가 하나의 관광지로 St. Maurice Statue로 부르는 곳이었다. 할매는 내가 Vao까지 태워 달라고 했더니 여기로 가는 줄 알고 지례짐작으로 여기까지 바래다 준 것 같았다. 꿩먹고 알도 먹은 셈으로 Vao 마을까지 공짜로 오면서 볼거리까지 힘하나 안들이고 찾을 수 있어서 바람불어 좋은 날이었다.
처음에 멀리서 볼 때는 성모 마리아상인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1848년 8월에 이 곳에 처음 들어온 선교사 Coujon Jean Chatelut 신부를 기념하는 동상이었다. 그 동상 주위를 나무에 조각한 다양한 꼬마 장승백이로 장식해 놓아 신부 동상이 일데뺑의 토착 수호신들에게 둘러 싸여 보호를 받고 있는 듯 하였다. 지배자의 신과 피지배자의 신들이 적당하게 어울려 노는 것 같았다. 1987년에 이곳 마을의 한 kanak(원주민)이 신부 서품을 받게되자 일데뺑 8개 부족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각 부족을 상징하는 나무조각 토템을 만들어 전시한 것이라고 한다.
해변 건너 소나무로 울창한 조그마한 섬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내가 있는 섬이 일데뺑이고 바로 앞에 꼬마 일데뺑이 있는 셈이다. 하얀 모래사장이 일자로 아래 위로 쭉 뻗어 있어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일데뺑의 사마리안 여인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처럼 나를 해변가에 내려주고 인증샷 한 장을 남기고 돌아갔다. 해변에 서 있는 신부 동상과 주변 해변 경치를 몇 장 훔치고 마을로 올라가는 길로 걸음을 옮겼다. 별로 먼 거리는 아니니까 천천히 걸어갈 만한 거리였다. 길을 올라 가니 좌우로 현지인들의 집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하였다. 집 양식은 사모아섬 주민들의 그것과 별반 차이는 없었다. 모두 단층집으로 슬레트 지붕과 흙벽으로 지은 아담한 시골집이었다. 하나 특이하게 보이는 풍경은 집집마다 마당에 있는 나무에 조업에 사용하는 여러가지 어구들을 장식 소도구로 이리 저리 걸어 놓았다.
Vao 마을로 성큼 들어섰다. 마을이라 해도 무슨 상점이나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있는 것도 아니고 길만 마을로 통과하고 조그마한 점빵(가게)이 하나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전형적인 시골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내가 필요한 것은 가게가 아니고 택시였다. 간혹 아래 위로 지나가는 차들이 있었지만 택시가 있다고 하는데 더 이상 히치 하이킹을 할 이유는 없었다.
마을을 지나는데 하얀 기념탑과 아까 Vao마을 해변에서 보았던 신부 동상을 둘러싼 나무 토템들을 다시 마주쳤다. 무슨 기념탑인지 궁금하여 가까이 가 보았다.
가 보았더니 세계 1, 2차 대전에서 조국 프랑스를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용사들을 기념하는 탑이었다. 아마도 이 마을 출신중 세계 전쟁에 참가했다가 조국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바친 사람을 기념하는 것 같았다.
조금 더 걸어서 올라가니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그 앞에 버스가 한 대 서있길래 물어보니 학생을 기다리는 스쿨버스라고 하였다. 전화가 불통이니 택시를 어떻게 부를 수도 없었다. 여기서는 길이 아래나 위쪽 외길이라 어차피 위쪽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걸어서 위쪽으로 올라가니 상점 앞에 택시가 한 대 정차하고 있었다. 운전석에 운전기사가 있어 영업하냐고 물었더니 지금 손님이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있다고 했다. 합승이 괜찮으면 이 손님을 바래다 주고 내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 줄 수 있다고 하길래 서울이나 미국에서도 안하는 택시 합승을 이역만리 뉴칼레도니아 일데뺭에서 하게 되었다.
10분을 기다려도 손님은 가게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이야(다이아몬드)같이 귀중한 내 시간이 물처럼 흘러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채근할 권리도 없는 것 같아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몸집이 퉁퉁한 kanak(원주민) 아지매가 물건을 잔뜩 사서 양손에 들고 차로 돌아왔다. 곧 차가 출발하여 산길을 이리 저리 달리다가 어느 집 앞에 서더니 뭐시기라고 이름을 부르니까 또 다른 원주민 아낙네가 나와 택시를 타고 다시 산길을 달렸다. 한참을 달려 어느 오솔길로 들어 가더니 맨 끝에 있는 집 앞에 두 손님을 내려주고 나서야 내가 가려고 했던 Natural Pool장으로 향하였다. 이 택시는 저렇게 자동차가 없는 일데빵 주민들이 이용하는 그런 콜택시 비슷한 그런 것으로 택시기사는 다른 손님 픽압하러 가야하니 Natural 풀장에는 한 시간 후에야 올 수 있다고 하였다. 풀장을 돌아 보는데도 그 정도 시간은 걸릴 것 같아 그렇게 하자고 하고 택시는 나를 천연 풀장들어가는 입구에 내려주고 먼지를 쌩하고 일으키며 잽싸게 달아났다.
택시 운전수는 나를 천연 풀장 들어가는 입구에 내려주고 한시간 뒤에 Pickup 하기로 하였다. 지도 오른편 위에 Piscine Naturelle가 영어로 Natural Pool 이라는 뜻이다. 신작로는 풀장 입구까지만 나있고 내려서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입구에 현지인 처자 2명이 한가롭게 노닥거리고 있다가 나를 보자 입장료를 내라고 하였다. 200프랑이니 미화 2불 정도이다. 심심하던 차에 돈을 주면서 몇마디 물어 보았다. 입장료를 징수해서 누가 가져 가는지 물어보니 부족장에게 갖다 바친다고 한다.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작은 원두막같은 그림옆에 Tribu de Gadji 같이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부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일데뺑의 부족을 열거해보면 Tribu de Gadji, Wapan, Touete, Ouatchia, Youati, Kere, Comagna, Vao 로 여덟개의 부족이 있어, 부족장이 그 지역의 통치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천연 풀장의 입장료는 아마도 Touete 부족의 수입인 것 같았다.
들어가는 입구에 두 명의 처자들이 그늘 밑에 작은 돗자리를 펴놓고 앉아 있었다. 사진의 왼쪽 처자는 27살로 옹차게 먹은 Lily라고 하였는데 피부로 보아하니 순수 혈통은 아닌 것 같았고 영어를 구사할 수 없었고, 오른쪽은 낭랑 18세 Dada로 영어를 조금 할 수 있었다. 둘 다 파라다이스라고 불리우는 일데뺑에서 태어나 천국 밖으로 나가 본 적도 없고 학교에 다닌 적도 없었다고 하였다. 그래도 Dada는 영어를 알아 듣고 말할 수 있어 천연 풀장 관리 사무소장겸 cashier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천연 풀장 입구에 세워 놓은 허름한 관리 사무소로 사진에 보이는 중간 기둥에 뭐라고 적어 달아 놓았다. 확대해서 읽어 보니 CAISSE/CASHIER 라고 적혀 있었다.
장부를 보니까 성수기인 6-7월에는 입장객이 꽤 많았다. 천연 풀장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이지 나도 여기와서 알게된 관광지로 일데뺑에서는 NO. 1 가볼 곳이라해서 택시합승까지 하면서 찾아 왔다.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도 어디가 풀장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감으로 물가를 찾으려고 물냄새를 맡으며 야자수숲으로 들어섰다. 지금이 관광철이 아닌 비수기여서 그런지 풀장으로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가서야 허접한 이정표를 볼 수 있었는데 정확한 방향표시가 없어 또 길을 잃었다. 더더구나 썰물때라 강을 이루었던 물길이 바싹 말라 이게 길인지 길이 아닌지 더욱 더 분간하기 힘들어 나같이 길 잘찾는 길빠꾸미도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일데뺑의 관광 인프라는 빵(zero)이다.
물이 빠진 강바닥 모래밭에는 고동속에 몸을 반쯤 넣고 기어다니는 조그마한 고동크랩들이 여기 저기서 뽈뽈 기어 다니고 있었다. 집게 손이 빨간색으로 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길을 잃어 죽은 야자수의 시체와 열매를 밟고 넘어서 길을 찾는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전진한다는 군가처럼 야자수의 시체를 넘고 넘어 천연 풀장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이리 저리 헤매다가 겨우 두번째 이정표를 발견했다. 세계적인 관광지로 이름이 난 일데뺑의 이정표가 저런 수준밖에 안되는 걸 보고 여기가 그런 세계적인 관광지가 맞나 하고 의심하였다. Pool이라고 쓰여진 방향과 크로스되게 바로 위에 ORO-UPI란 표말을 볼 수 있다. 천연 풀장과 더불어 일데뺑에서 제일 유명한 트레일 코스가 바로 ORO-UPI 트레일이다.
우피해변에서 숲속으로 난 트레일을 걸어서 천연 풀장을 지나 Oro 해변까지 약 1시간45분짜리 트레일로 일데뺑에서는 잘 정비된 트래킹코스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우피해변이 있는 우피만(bay)에 떠 있는 섬들이 경치로 유명하여 배로 투어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다.
야자수 이파리 시체를 넘고 넘어 강가로 나왔다. 생각보다 훨씬 멀었다. 천연 풀장은 이 강을 따라 바다로 빠져 나가는 입구까지 가야 한다. 오솔길에서는 아무도 보이지 않더니 강가로 나오니 사람구경을 할 수 있었다. 얕은 강어귀해서 풀장으로 향하는 관광객 4명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썰물때라 강어귀가 얕아서 저렇게 걸어 갈 수 있지만 정상적으로 강물이 차게 되면 물길이 깊어 길을 따라 가야 한다. 강물이 찰 때는 강을 건너가는 다리가 사진 왼편 저 위쪽에 있어 강을 쉽게 건널 수 있다.
보이는 저 커브를 돌아야 천연 풀장으로 들어 갈 수 있다. 산에서 흘러 내린 강물(Sable river)이 바다로 만나는 직전에 옴팡한 물구덩이가 생긴게 천연 풀장이라는 소리다.
결국 천연 풀장에는 발도 담가 보지도 못하고 200프랑만 적선하고 돌아 선 셈이 되었다. 그냥 일데뺑의 천연 풀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만 가는 정도로 만족했어야 했던 오전 나들이였다.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