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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Aug 21. 2017

지노 배낭여행기 - 남태평양편 14

누메아(Noumea) 둘러보기

2017년 5월30일 (화) 맑음


   수도  Noumea 둘러보기


호주-뉴칼레도니아-피지 지도

보통 여행객들의 루트가 피지에서 뉴칼레도니아로 가는 것보다도 호주의 시드니나 브리즈번, 또는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뉴메아로 날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2014년 호주 뉴질랜드 여행시에도 옆의 뉴칼레도니아를 생각해 보았는데 호주 뉴질랜드 여행하기에도 짧은 일정에서 뉴칼레도니아로 가는 것이 어려워서 그 때는  패스하였다. 그랬던 뉴칼레도니아를 이번 남태평양 여정에서는 놓칠 수가 없어 4박5일 일정으로 어제 저녁에 뉴메아로 날아 들어왔다.




   멜라네시아에 속하는 뉴칼레도니아

태평양 섬나라를 인종별로 구분한 지도

하와이부터 사모아를 거쳐 통가, 쿡아일랜드, 타히티섬이 포함되는 프렌치 폴리네시아와 이스트섬을 포함하여 이를 폴리네시아(Polynesia)로 부르는 것처럼 뉴기니아, 솔로몬제도, 바누아투, 피지, 뉴칼레도니아 지역을 멜라네시아로 부른다. Melanesia의 의미는 검은 섬이란 뜻이다. 검다는 의미가 멜라네시아 인종의 피부색이 그렇다는 의미인 것 같다. 확실히 폴리네시안의 피부색보다 훨씬 검다.





   뉴칼레도니아의 유래


수도 Noumea가 있는 본토섬과 4개의 부속섬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섬이 오른쪽 아래에 있는 일데뺑(Isle of Pines)이다.

지금의 영국은  로마제국의 전성시대에 카이사르의 영국 침공으로  400년간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영국본토를 브리타니아(Britania)라고 불렀고 스코틀랜드를 칼레도니아(Caledonia)라고 명명하였다. 대영제국의 위대한 탐험가이자 항해가였던 James Cook 1774  섬을 발견하기  까지는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원주민들이 평화스럽게 살아  그들의 섬나라였으나 유럽인들의 침입으로 모든 것들이 변하게 되었다. 스코틀랜드가 고향인 제임스 쿡선장이 그가 발견한  섬을 그의 고향 지명을 갖다 붙여서 New Caledonia 부르게 되었다. 그후 1778 프랑스 탐험대가 상륙하였고 19세기 , 영국이 호주와 뉴질랜드를 식민지로 편입하자 이에 자극을 받게된 프랑스는 1853년에 서둘러 뉴칼레도니아를 식민지로 편입하였고 1864년부터 1897 사이 영국이 범죄자들을 보내 시드니를 건설했듯이 정치범을 포함하여 일반 잡범  22천명을 뉴칼레도니아로 유배시켜 식민지 건설에 이용하였다. 그러나, 종국에는 이런 범죄자들에 의한 식민지 건설에 한계를 느껴 이를 페지하고 1895년에서 1900 사이에는 프랑스 본국에서 커피 농장 이민자로서  300 가정을 받아들였으나 농장 경영에 성공한 가정은 별로 없었다.


뉴칼레도니아에 도착한 초기 범죄자들로 1864년부터 1897년 사이 약 22천명의 범죄자들을 뉴칼레도니아로 강제로 유배시켜 초기 식민지 건설에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하였다.


22천명 범죄자중 약 4천명은 경범죄자로 재범인 경우 섬으로 유배보냈다. 해양박물관에서 찍은 사진으로 여성 재범자들


1897년에야 범죄자를 유배보내는 대신 본국에서 이주 희망자를 모집하여 1895년에서 1900년 사이 약 300 가정을 이주시켰다. 사진은 뉴칼레도니아에 범선으로 도착한 이주 가정




   니켈광산에 계약 노동자를 받아 들이고


1892년 뉴칼레도니아에 도착한 1차 일본인 계약 노동자 599명

뉴칼레도니아 섬에 귀중한 금속 니켈광이 발견되자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하여 1892년부터 1919년 사이 일본으로부터 약 6천명의 계약 노동자를 받아 들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추방되었다. 니켈광업은 지금도 뉴칼레도니아의 주요한 산업중의 하나이다.



1896년에 도착한 인도네시아 계약 노동자

광산에 투입된 계약 노동자로서 일본인외에 인도네시아 자바로부터 약 170명의 노동자들이 입국하였다. 사진은 1896년 자바로 부터 계약 노동자를 싣고 뉴칼레도니아에 도착 증기선 Saint-Lois 호.(위 사진들은 누메아에 있는 해양 박물관에서 촬영)





     노예무역으로 원주민을 혹사


뉴칼레도니아의 원주민들(해양박물관에서 촬영)

18세기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열을 올린 무역(돈벌이)이 노예무역, 상아무역, 곡물무역이었다. 그 중에서도 노예무역은 뉴칼레도니아에서도 자행되었다. 뉴칼레도니아 본섬과 부속섬, 바누아투, 파푸아뉴기니, 솔로몬제도의 원주민을 노예로 삼아 피지와 호주의 동부 해안지방인 퀸즈랜드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도록 하였다. 이런 착취는 20세기 초반에 가서야 중지되었는데, 이렇게 노예로 혹사당한 원주민을 <Kanakas>라고 불렀는데 1853년 프랑스에 합병된 후에는 원주민을 카낙<Kanak>이라고 줄여서 불렀다.

인구 구성을 살펴보면 총인구 27만명중 42%가 멜라네시아 원주민이고 37% 정도가 유럽인이고 나머지가 폴리네시안을 포함한 소수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1956년부터 프랑스의 해외 영토로 통합되면서 프랑스 시민권을 얻게 되었지만 원주민을 주축으로한 독립 투쟁이 시작되었는데 1985년부터 카나키 민족해방전선이 결성되어 독립을 요구하고 있어 유혈 인질극도 발생하였다. 이러한 원주민(Kanak)들의 독립 요구에 프랑스 정부는 원주민에게 자치권을 보장하는 합의를 1998년 하게되어 뉴칼레도니아의 독립을 약속하였고 내년인 2018년에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가 예정되어 있다.




    Noumea 시내로


누메아 시내 지도

영어의 downtown을 불어로 Centre Ville로 표현하니 우리말로 중앙통(대구의 중앙통이 떠올라)이란 말과 같다. 지도에서 보이는 대로 계획도시같이 길이 반뜻하게 나있어 걸어서 길찾기는 쉬웠다.


원래 계획대로 하자면 아침에 호텔을 첵아웃하고 렌트카를 타고 뉴칼레도니아 본섬을 일주하려고 했는데 뱅기 안에서 만난 현지인들이 본섬보다도 부속섬이 더 볼만하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내 귀는 그렇게 얇은 편은 아닌데도 원래 계획대로 하지않고 여정을 변경한 것이 잘한건지 못한거지는 알 수 없겠지만 여기서 거주하는 현지인의 진심어린 여행팁이니 그것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Noumea 시내 구경이나 하고 오후에는 내일 가 볼 일데뺑(Ile des Pins)의 배표를 구매하고 또 다른 섬은 어디로 가 볼지는 모르겠지만 공항에 가서 알아보고 뱅기표를 예매하려고 한다.


누메아 시내 풍경


누메아 시내 거리풍경

호텔이 중앙통에 있어 그냥 걸어서 갈 만한 거리다. 카메라만 들고 메고 일단 중앙통 거리로 나가 보았다. 별로 다르게 보이는 도시는 아니었다. 단지 상점들의 간판이나 창문에 부착된 언어들이 전부 불어로 되어있어 유심히 바라보고 지나갈 뿐이다. 발길은 자연이 부두쪽으로 향하였다.


시내 중앙통에 위치한 시민공원인 코코넛 광장

지도를 보니 누메아 시내 중앙에 그린색으로 직사각형이 표시되어 있어 보니(위 지도 참조) Place de Cocotiers라고 표시되어 있어 뜻을 몰랐는데 영어번역을 보니 Cocotiers가 Coconuts이라고 한다. 코코넛 나무인지 이름도 모르는 나무들이 제공하는 그늘아래 놓인 공원 벤치에는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무료한 시간을 죽이기에는 적당한 장소인 것 같았다.



부둣가에 설치된 야외 휴게소. 팽팽하게 처진 차양막이 시원한                     그늘막을 만들어 준다.


수도 누메아 중앙통에 인접한 모젤 항구

드디어 물가로 나왔다. 누메아 중앙통 왼편으로 물길이 깊숙하게 들어와 있고 바다로 나가는 입구는 좁게 되어있어 천연적인 항구가 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곳을 모젤(Moselle) 만(bay) 이라고 한다. 왼쪽으로 배를 정박할 수 있는 선착장(marina)이 길게 나와있고 기역자로 꺽인 한 쪽으로 여러 관광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박회사들이 줄지어 있었다. 오전 시간대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는 조용한 부둣가였다.



누메아 어시장

선착장 뒤쪽으로 가보니 간판이 보여 들어가 보았다. 불어 Marche는 영어의 market이다. 무슨 시장인가하고 들어가 보았더니 fish market이었다. 아침 장사가 벌써 끝났는지 각 매점마다 물로 진열대를 씻고 마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다에서 잡아 온 싱싱한 상품을 여기서는 도매로 팔아 치우는지 벌써 파장이었다.


배에서 금방 올린 싱싱한 고기


물가에 정박된 세일보트들


모젤항에 정박된 요트들


선착장으로 들어가서 좌우로 정박된 세일보트를 구경했다

선착장 앞에는 관광회사 사무실이 줄지어 있었다. 각 사무실마다 멋진 resort 사진을 크게 확대하여 입간판을 세워 선전하고 있었다. 입간판중 하나는 어딘지 눈에 익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더니 세계 테마기행중 뉴칼레도니아편에서 보았던 바로 그 등대섬이었다. 다른 유명한 resort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나왔다고 하는데 드라마를 보지 못한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나왔다고 하는 Escapade Resort 광고판


세계테마기행에서 보았던 Amede Island 광고판




    누메아 근처의 이름난 Resorts


L'Escapade Island

한국서 방영되었던 <꽃보다 남자>에 나왔던 그 resort라고 한다. 누메아 모젤항에서 보트로 약 20여분 걸리는 거리에 있다고 한다. 수상 방갈로가 멋지게 열을 지어 물위로 솟아있다. 성수기에 수상 방갈로 하루 방값이 200-400불이다. 신혼 여행지로도 알려져 있다고 한다.



배 시간표

배 시간표를 보니 하루에 6편이나 있다. 아마 편도에 배로 걸리는 시간이 20여분밖에 걸리지 않아 그런 모양이다. 요금은 어른 3500프랑(미화 35불) 소아 2500프랑. 소아 기준은 10세 까지란다.



Amede Island

세계 테마기행에서 보았던  섬이다. Amede 섬인데 일명 등대섬이라고도 한다. 누메아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져 있어 배로  40여분 걸린다고 한다. 테마기행에서는 섬에는 등대뿐이라고 했는데 사진을 보니 여러 건물이들어서 있는 걸로 보아 resort 조성된  같았다. 등대가 세워진 이유가 근처의 얕은 산호초때문에 많은 배들이 좌초되어 지나가는 선박에게 불을 밝혀 좌초 사고를 막기 위하여 1862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등대 높이가  53미터로 247 계단을 한발 한발 걸어서 올라 가야한다. 등대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360 파노라마 풍광은 힘들게 계단을 딛고 올라가야 하는 발품의 고통을 충분히 보상해 준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건저 올린 Amede Island. 섬 바깥쪽으로 둥근 산호초가             형성되어 있다. 둥글게 형성된 산호초를 환초(atoll)라고 한다.


또 다른 광고판

TAKA 크루즈 회사의 광고판으로 크루즈, 특별행사, 선상 Dinner party같은 야간 선상 행사 그리고 근처 섬탐험등 요트를 대절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양이다.


해변가에 위치한 요가 강습소인 것 같다



누메아 관광 info 센터

물가에서 구경하다 관광 Info 센터를 물어 찾아갔다. 역시 모젤항구 물가를 따라 올라가는 길에 있었는데 들어가 보니 관광대국답게 프린트된 홍보물도 넘쳐났고, 센터에서 일하는 홍보원들도 능숙한 영어로 친절하게 일대일 상담으로 관광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필요한 관광팁을 듬뿍 받을 수 있었다. 친절한 그들의 설명만으로도 뉴칼레도니아 관광을 마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이 섬나라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충분하게 얻어 들을 수 있었고 관련

홍보물도 받아 볼 수 있었다.


관광안내센터에서 받은 관광 홍보물

나의 제일 궁금한 질문은 일데뺑을 제외한 나머지 3개 부속섬중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이었다. 홍보원은 주저없이 리푸(Lifou)섬을 추천하였다. 뱅기 안에서 만난 젊은 현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베아(Ouvea)섬을 외쳤다. 마레(Mare)섬은 별로 나오지 않았다. 마레섬에 대한 기사는 라로통가에서 타히티로 가는 뱅기안에서 본  Aircalin 잡지(뉴칼레도니아 항공사가 격월로 발행하는 잡지)에 게재되어 있어 나중에 보게 되었다.



뉴칼레도니아 본토와 부속섬 지도

지도에서처럼 내일 갈 일데뺑(송도)은 누메아에서 가까이 있어 배로 가도 하루 일정으로 섬을 돌아볼 수 있지만 본토섬 오른쪽 위에 위치한 섬 Ouvea, Lifou 그리고 Mare는 일단 거리가 멀어 배편은 있지만 당일치기로 구경할 경우는 항공편을 이용해야 섬을 돌아 볼 수 있다. 위의 세 개의 부속섬을 통틀어 Royalty Islands로 부르는데 이 이름 역시 남태평양의 대항해자 James Cook 선장이 붙여준 이름이라고 한다. Info 센터에서 얻은 홍보물로 로얄티섬들을 대략적으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뉴칼레도니아의 Royalty Islands 요약


우베아섬으로 Iaai라고도 한다


우베아섬 전도

맨 위 쪽에 있는 섬이다. 크지는 않지만 남북으로 일자로 길게 뻗은 25km 백사장을 자랑한다. 섬의 남북 길이가 30km이고 폭은 넓은 곳은 5km 좁은 곳은 40m에 불과하다. 도로는 남북으로 일자로 뻗어있고 하나 뿐이다. 누메아에서 275 km , 옆의 섬 리푸에서 88 km 떨어져 있다.



리푸섬으로 Drehu라고도 부른다


리푸섬 전도

3개 부속섬 중에서 제일 크다. 섬면적은 약 1150 평방 km로 제주도의 2/3정도로 부속섬 중에서 면적은 으뜸이다. 팜플랫을 보니 역시 긴 백사장과 청정 바다를 내세우고 있다. 동쪽 파도가 세게 밀려오는 해안에는 수직 절벽이 형성되어 비경을 보여준다고 한다. 누메아에서 240 km , 옆왼편섬 우베아에서는 95 km, 오른쪽 마레에서는 63 km 떨어져 있다.


마레섬으로  Nengone으로도 부른다


마레섬 전도

세 개의 섬중 제일 오른편으로 치우쳐 누메아까지는 175km 떨어져 있어 제일 가까운 편이다. 옆의 섬 Lifou까지 85km 떨어져 있다. 크기는 Lifou섬의 절반 정도로 세 개의 섬중 관광지 개발이 제일 늦게 이루어져 최근에 새로운 관광지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파도침식으로 형성되는 해안동굴(grotto)이 발달되어 있어 Samoa섬의 Te-Sua ocean trench처럼 천연 바닷물 풀장이 있다고 한다. 마레섬에서 다른 볼거리가 "natural acquarium"으로 천연 짠물 풀장(grotto)에서 뛰노는 칼라풀한 물고기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섬의 백사장과 산호초들도 물론 있지만 그들 섬에는 없는 독특한 풍광이 있어 앞으로 관광지로 주목을 받을 것 같다.


Samoa 남부해안의 Te-Sua ocean trench




   리푸(Lifou)섬 비데오를 사진으로


센터안에 있는 티비에서 마침 리푸섬 홍보 비데오를 볼 수 있어서 보다가 간간이 카메라로 촬영하였다. 비데오 색상이 약간 알록달록하고 짙은 채도가 묻어 나오는 것은 내가 사진 촬영후 포토샵을 한 것이 아니고 비데오 그 자체를 색상보정을 하였기 때문이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눈으로 보고 지나가는 수 밖에 별도리가 없다.



다양한 얼굴을 가진 리푸섬으로


풍부하고 신비스러운 자연의 품으로


길게 뻗은 백사장이 일품이다


활대처럼 휘어진 백사장


아름다운 섬의 풍경


관광객과 현지 가이드


마을의 일요일 교회 나들이


현지인을 모델로 해서


현지인을 모델로 해서


끝없이 이어지는 백사장과 청정 바다


호텔 수영장


섬 중간 중간에 위치한 마을


원주민 전통가옥을 case(까스)라고 하는데 오두막 호텔인 셈이다


섬주위를 둘러싼 산호초


끝없이 이어지는 백사장


해변가에 위한 기암


나뭇가지를 근경으로 해변을 원경으로 잡았다. 사진가들이 흔히 쓰는 기법


금방 잡아올린 물고기로

비록 비데오로 리푸섬의 아름다움을 보았지만 짧은 비데오에 섬의 비경을 함축하여 담았으니 이를 본 시청자로 하여금 낚시바늘에 한방으로 훅하고 걸리게 되어 있는 법이다. 나도 비데오를 보고 낚시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리푸섬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가게 되면 비데오로 본 저 풍경들을 모두 카메라 메모리 카드에 담아 올 것이라고......그런 야무진 꿈을 가졌다.


세계 테마기행같은 여행 프로그램을 보고 그곳에 반하여 같은 장소를 여행가 본 사람들은 개인의 능력으로는 테마기행에서 본 그런 멋진 풍광이나 인터뷰하는 현지인들을 코뱃기도 볼 수 없음을 절감할 것이다. 그런 프로그램을 찍을 경우에는 현지 코디네이터의 사전 준비와 도움으로 가능한 것이지 개인 여행자의 능력을 벗어 나는 것이다. 그래서 테마기행같은 여행 프로그램을 보고 똑같이 여행 경험을 해보려고 하는 것은 그렇게 되지도 않고 바보같은 짓이다. 여행의 묘미는 같은 곳을 다니더라도 여행가 모두가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기 때문에 순전한 나만의 세계 테마기행을 만들면 그것으로 여행의 기술은 완성되는 것이다.





   현지 젊은이들과 인증샷을 찍고


Kanak이라고 부르는 현지인 커플

Info 센터에서 유용한 몇 가지 여행정보를 알아보고 내일 갈 일데뺑(Ile des Pins) 배표를 사려고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 가고 있었다. 두 블락정도 올라 가니 넓은 공원같은 지역이 있었다. 공원이라 하기에는 좀 그렇고 뒤쪽에는 많은 차들이 파킹되어 있었다. 넓은 공터에는 화단같은 것들이 군데 군데 조성되어 있었는데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보아하니 전부 Kanak이라고 부르는 검은 현지인인 멜라네시안들로 할 일없이 죄없는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말만 통하면 왜 애궂은 시간을 죽이고 있는지 가서 물어보고도 싶었지만 그것도 안되니 측은한 생각만 머리 속에 가득했다. 마침 젊은이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정답게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이로 끼어들어 맨날 하는 방식대로  <사진 한 판 찍을래> 였다. 처음에는 둘 다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싫다고 했다. 내가 얼마나 사진을 정성스럽게 찍어 주는지 몰라서 그러는걸까? 물론 그대들은 잘 알 수가 없겠지.


현지인 Kanak 커플인 멜리네시안

손에 삼성 스마트폰을 들고 있길래 사용하는 SNS 계정있냐고 물어 보았더니 facebook 있다고 한다. , 그거  됬구나, 나도 있으니 사진 파일을 facebook 올려 주겠다고 약속하고 사진을   촬영하였다. 문제는 영어가 능숙하지않아 심도있는 취재를  수가 없었다. 여러가지 궁금한 것들이 많았는데........ 하여간 약속한 사진은   저녁에 facebook 올려 주었다.



현지인이 찍어준 남태평양 제1호 인증샷

나는 어디 여행가서도 거의 인증샷을 찍지 않는다. 대신 다른 쓸데없는 사진을 많이 찍어오기 때문에 그런 사진들이  여행의 나만의 인증샷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요새는 포토샵이 성행하여 인증샷을 짝퉁으로 만드는 것이 식은 죽먹기이기 때문에 별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라고 본인 얼굴이 들어간 인증샷을 찍어대는 여행기를 보면  이유를   수가 없다. 물론, 여행의 마지막 추억으로 남는 것이 사진밖에 없다고 하지만  사진이 본인의 커다란 얼굴이 멋진 뒷배경을 갉아 먹은 인증샷인지 아니면 온전한 멋진 여행지의 풍광만 가득한 사진인지 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해양 박물관을 둘러보고


해양 박물관 전경

누메아 시내에 박물관(Musee)이 4 군데 있다. 뉴칼레도니아 역사를 보여주는 뉴칼레도니아 박물관, 섬에 관련한 모든 해양 역사를 귀중한 사진과 함께 보여주는 해양 박물관, 누메아역사를 보여주는 시박물관, 그리고 뉴칼레도니아와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역사를 보여주는 2차 세계대전 박물관이 있다. 2차 세계대전이 태평양 전선이 형성되자 여기 뉴칼레도니아에 남태평양 미군 사령부가 설치되어 전쟁을 지휘하였다고 한다.



등대섬에서 휴가를 즐기는 미육군 간호사 병사들

이 오래된 사진은 해양 박물관에서 찍은 것으로 2차 세계대전중 뉴칼레도니아에 야전병원이 있어 연합군 부상자들이 이곳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사진은 등대섬(Amede Island)에서 휴식을 즐기는 여군 간호원들이다. 저 여군들의 나이를 추측해보면 전쟁시기를 1942-1945년으로 보고 1910-1920년생으로 보면 현재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었을 것같다. 비키니 수영복이 아니고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여군들의 여유가 물씬 묻어나는 사진이다.


일데뺑(송도) 배표를 구매하고 택시로 뉴칼레도니아 박물관으로 달려 갔더니 가는 날이 장날로 휴관이었다. 그래서 해양(maritime) 박물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1875년 누메아의 항구 전경(해양 박물관에서)

1854년에 시작된 항구 조성 작업이 근 20년이 걸려서 완성되었다고 한다. 물론 프랑스 본토에서 끌려온 죄수들의 피와 땀의 결실이라고 보면 된다.


위 사진의 범선들이 교역을 하기 위해 본토 프랑스에서 출발하여 뉴칼레도니아까지 항해하는 루트를 표시한 지도가 있어 그 여정을 추적해 보았다.


프랑스 Brest항에서 출발하여 대서양을 세로 질러 브라질을 거쳐 남미 Cape Horn을 돌아서 칠레와 페루 리마를 경유하고


페루 리마에서 일직선으로 항해하여 FP 말퀴세스제도에 속하는 섬에서 한숨을 돌리고 타히티를 거쳐 뉴질랜드를 경유하여 통아(Tonga)와 Wallis를 거쳐 뉴칼레도니아에 도착한다

그 세부 여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Brest (9/3/1845): 프랑스 출발

 2. Arrecife (9/14 - 9/15/1845): 스페인 +12

 3. Rio de Janeiro (10/21 - 10/28/1845): 브라질 +37

 4. Valparaiso (11/21/1845 - 1/3/1846): 칠레 +25

 5. Le Callao (1/12 - 1/14/1846): 페루 +10

 6. Noukahiva (2/14 - 2/17/1846): 말퀴세스(FP) +32

 7. 타히티(2/23-3/17/1846): 프렌치폴리네이션(FP)+35

 8. Akaroa (4/9 - 5/5/1846): 뉴질랜드 +24

 9. Tonga (6/9 - 6/15/1846): 통아 +36

10. Wallis(6/19-6/24/1846): 월리스&푸투나(불령)+5

11. Pouebo (7/3/1846): 뉴칼레도니아 도착 +10


1845 93 프랑스 Brest 출발한 범선은  종착지인 뉴칼레도니아에 이듬해인 1846 73일에 닻을 내려  10개월의 sailing 끝냈다. 경유지에서 재보급하거나 범선을 수리하는 시간을 빼고 sailing  날수를 계산해보니  236일이 걸렸다. 이를 요새 뱅기로 날아 가면 파리-뉴욕 8시간, 뉴욕-LA 5시간, LA-피지 12시간, 피지-누메아 2시간해서  27시간이면 프랑스에서 뉴칼레도니아로   있다. 비교할  없는 시간의 개념이지만 Sailing 낭만적인 감상에 흠뻑 빠질 수만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위의 뱃길에서 쉬어가는 항구가 현재에도 있는지 세계지도를 펴놓고 한번 따라 가 보았다. 잘하면 나도 저런 뱃길을 따라 다시 남태평양으로 갈 수 있을련지도 모른다는 가느다란 실가닥같은 희망을 품고서 말이야.


1. 프랑스 Brest: 프랑스 북서쪽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과거 항해시대때 중요한 해양거점으로 중세기에는 Brest 성으로 전략적 요지였다고 한다. 현재 국립해군박물관이 있고 해군기지가 있다고 한다.

2. 스페인 Arrecife: 생소한 지명으로 찾아보니 지금의 모로코 왼편에 있는 세계적인 휴양지 Canaria 제도에 속하는 섬에 있는 조그마한 항구였다. 15세기경 형성된 어촌으로 그 후 유럽에서 오가는 뱃길의 경유지가 되었다. 1852년부터 Lanzarote섬의 수도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3.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 일찍이 해양강국이었던 포르투칼이 1565년에 건설한 식민지 도시였다. 포르투칼 왕국시에는 1808 - 1821년까지 왕국의 수도였고 1822년 독립하여 1960년 브라질리아로 옮겨갈 때 까지는 브라질의 수도였다. 리스본에서 대서양을 황단하는 뱃길이 지금도 여전히 이용되고 있다.

4. 칠레 Valparaiso: 칠레 수도 산티아고와 연결되는 태평양연안 항구도시로 노벨수상자 시인 Pablo Neruda의 고향으로도 유명하여 많은 배낭여행자들이 그의 생가와 박물관을 찾는 유명 관광지이다. 19세기에는 많은 유럽인들이 대거 건너와 특히 건축분야에서 풍성한 문화를 일구웠다. 브라질의 Rio에서 남미 남단을 돌아 여기까지 북상하는데 걸린 항해일자를 보니 약 23일 소요되었는데 쉬지않고 계속 sailing 한 것 같다.

5. 페루 Callao: 찾아보니 Callao라는 항구는 없고 페루 수도 Lima의 Callao District이다. 태평양연안 해안지역으로 현재 칠레 해군기지가 있는 곳이다.

19세기 당시에는 아마도 La Callao라는 항구도시로 존재했다가 그 후 Lima 도시의 한 구역으로 편입된 듯하다.

6. 말퀴세스(FP) Noukuhiva: 현재의 프렌치 폴리네이션(FP)에 속하는 섬이다. FP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 속하는 약 120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로 다섯 그룹의 제도(군도)로 형성되어 있어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1.소사이어티 군도(Society Islands):타히티섬이 있다
2.투아모투 군도(Tuamotus Islands):
3.말퀴세스 군도(Marquesas Islands):
4.오스트럴 군도(Australs Islands):
5.감비어 군도(Gambiers Islands):
수도는 타히티섬에 있는 파페트(Pappete)이다.


이를 지도로 보면 위와 같다. 우리가 잘 아는 Bora Bora섬은 Societe 군도에 속하며 타히티에서 약 250km 떨어져 있다

Noukuhiva섬은 말퀴세스제도중 가장 면적이 큰 섬으로 옛날부터 포경선과 무역선의 경유지로 범선들이 드나들었던 항구였다고 한다. 이 섬과 관련된 유명 인사가 Moby Dick(백경으로 번역출판됨)을 쓴 Herman Melville(1819-1891)이다.


Herman은 뉴욕 태생으로 프랑스계 이민자의 아들로 13세때 부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가족생계가 막막하였다. 20세에 학교 보조선생으로 잠시 있다가 수입이 그래도 좋은 편인 원양 무역선의 선원으로 바닷길로 나섰다가 다음해 1839년에 좀 더 수입이 나은 포경선타고 원양어업에 나서 고래잡이 경험을 쌓았다. 당시 고래고기보다 고래기름 수요가 많아 고래를 잡아 고래기름을 만들어 가져오면 큰 돈벌이가 되었다. 1942년 6월 배가 Noukuhiva섬에 닻을 내리자 무단으로 배에서 내려 Noukuhiva 섬의 산속으로 도망쳐서 정착하였다. 2년 뒤 1844년에 섬생활을 청산하고 배를 얻어타고 Boston으로 돌아왔다. 2년뒤 섬생활 경험을 토대로 낭만적인 필체로 Noukuhiva섬생활을 소설로 쓴 <Typee>가 주목을 받아 소설가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그 후 여러 단편과 장편 소설을 발표하였으나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850년 보스톤에서 Arrowhead에 있는 시골 농장으로 이주하여 작품 활동하면서 <주홍글씨: The Scarlet Letter>의 저자 Nathaniel Hawthone와 서로 알고 지냈다. 1950년 Moby Dick을 발표하였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1891년 심장질환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대부분 작품들은 사후에 인정받아 미국 낭만주의 소설 계보를 이어가게 되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Noukuhiva섬과 관련된  한명의 유명인사가 전편 여행기에서 소개하였던 <보물섬> 저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다. 1888 6 주치의 권유대로 병세 회복에 적합한 따뜻한 기후를 찾아 식솔을 이끌고 전세낸 범선 Casco 호를 타고 남태평양으로 향하였다. 하와이에 닻을 내려 하와이왕국의 환대를 받고 잠시 머무르다 다시 항해를 하여 말퀴세스의 Noukuhiva Tuamotu 군도를 경유해서 1889 12월에 정착지인 Samoa Apia 도착하였다.


7. FP 타히티: 1846년 당시 타히티는 Pomare 왕국의 통치하에 있었으나 프랑스 영향력을 받고 있었다. 남태평양 중간 경유지에 위치하여 무역선, 탐험선, 포경선들의 중간 기착지로 번성하였다고 한다.

8. 뉴질랜드 Akaroa: Akaroa항은 현재 뉴질랜드 남동쪽에 있는 Christchurch에서 84km 남쪽으로 떨어져 있는항구도시로 예전에는 포경선의 전진기지로 출발한 곳이었다. 1846년 당시에는 포경선과 교역선이 함께 드나들었던 대피항을 겸한 항구였다.

9. Tonga Tongatapu: 통아타푸(발음이 통가가 아니다)는 Tonga 왕국의 여러 섬중에서 제일 큰 섬으로 수도인 Nuku'alofa가 있는 곳으로 항구 도시이다. 1846년 당시 통아는 통일된 왕국으로 왕의 통치하에 있었고 영국과 맺은 우호조약으로 하와이 왕국이나 타히티 왕국과는 달리 통아 왕국의 주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10. Wallis & Futuna Wallis: Fiji와 Samoa섬 사이에 있는 3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된 나라로 프랑스 해외영토이다. 인구는 2만명이 채 안되는 소국으로 옛날에는 통아왕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1767년 영국인 선장 Samuel Wallis가 발견하여 그의 성을 따라 섬이름을 Wallis라 하였고, 6년뒤인 1773년 태평양의 풍운아 James Cook 선장도 이 섬을 탐험하였다.

1837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주민을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시켜 프랑스 지배력이 우세하게 되었다. 1846년 항해시 Wallis섬에 경유한 것이 선교사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보급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 같다.


3개의 작은 섬으로 아루어진 Wallis & Futuna


위치는 피지와 사모아 중간쯤에 있다

11. 뉴칼레도니아 Pouebo:​ 1846년에는 현재의 Noumea항이 없었다. 1875년이 되어서야 누메아항이 모습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1846년 당시의 항구는 현 뉴칼레도니아의 북부에 있는 Pouebo항이 교역의 중심지 역활을 했었다. 현재의 Pouebo항은 인구 이천명에 불과한 매우 작은 항구마을이다.


뉴칼레도니아 북부에 있는 Pouebo




  하루의 마감은 언제나 쓸쓸해


저녁놀에 잠기는 정박된 선박


석양속의 누메아 해변

하루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서산으로 떨어지는 해가 마지막으로 내뿜는 황혼의 황금색이 하얀 건물에 떨어져 온통 누렇게 물들이고, 바람 한 점없는 누메아 해변에 서있는 야자수들도 이파리를 축 늘어뜨리고 있어 하루의 에너지가 사그러 드는 것 같았다. 곧 어둠이 서서히 찾아 올 것이다.


누메아 항구의 이른 석양

먼 타국 땅에서 혼자 맞이하는 저녁은 늘상 쓸쓸하다. 하루종일 돌아 다니면서 구경하고 사진찍고 헐레벌떡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하루 해가 금방 저문다. 해가 지면 지친 몸을 이끌고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저녁시간은 어찌보면 집에 있을 때하고 별 차이가 없는 일상의 연속인 것 같았다. 일상을 이겨 보려고 먼 길을 떠나 왔는데 다시 그 놈의 일상의 쳇바퀴에 걸려 들다니....아니다. 내일 아침에 해는 찬란하게 다시 뜨고 배를 타고 아름다운 일데뺑(Ile des Pins)으로 가야 하지 않은가?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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