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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Aug 14. 2017

지노 배낭여행기 - 남태평양편 13

보물섬을 찾아서

2017년 5월 29일 (월) 맑고 쾌청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 - 1894)


스티븐슨 초상화(박물관에서 촬영)

해도 저물어가는 1889년 12월 어느 날 스코틀랜드 출신 소설가이자 시인인 Robert L. Stevenson은 그의 아내

Fanny와 함께 범선 Equator를 타고 Samoa Apia에 도착하였다. 지병인 결핵을 않던 스티븐슨은 오래 전에 유럽을 떠나 기후가 좋은 남태평양으로 향하다가 하와이에서 잠시 체류하다 Samoa로 내려온 것이었다. 사모아 아피아의 기후와 경치에 혹한 스티븐슨는 다음해인 1890년에 아피아 바다가 훤하게 내려다 보이는 뒷산에 200파운드를 주고 126헥타르(약 38만평) 땅을 사서 정착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건강이 좀 나아져 호주 시드니로 여행갔던 그가 시드니에서 다시 병이 악화되자 바로 아피아로 돌아와서 현재 박물관 자리에 대저택을 지어 안착하였다. 당시 섬에서 가장 큰 저택을 짓고 그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에서 가구를 수입하여 집을 장식하고 심지어 일하는 사모아 원주민 하인과 하녀들에게도 스코틀랜드풍 전통의상을 입게 하는등 고향을 떠나 이국만리에서 마지막 생애의 봄날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Apia 뒷산 Vailima에 있는 박물관으로 그가 살았던 저택을 개조하여             1994년부터 현재까지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다


어제 저녁시간 늦게 도착한 박물관 운영 시간 안내판


박물관 입구의 gate


박물관 입구에서 한참 들어가는 진입로로 스티븐슨대로(ave)라고                명명되었다


박물관 경계선인 철제 울타리


현재의 박물관 전경(팜플렛 사진).

현재는 중앙의 박물관 좌우로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아래 1909년에 촬영한 저택 사진을 보면 2채로 그 후 오른쪽에 별채를 증축한 걸로 보인다. 현재 중앙 본채를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1909년경 찍은 저택 사진(박물관에서 촬영)



잘 관리된 잔디로 뒤덮인 박물관 앞뜰


스티븐슨의 인터넷 사진 - 영화배우같이 잘 생겼다

스티븐슨은 1850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출생하여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변호사가 되었으나 변호 업무보다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더 좋아하여 대학시절부터 단편소설과 수필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어릴 때부터 결핵을 않았던 스티븐슨이었지만 야외 생활, 바다와 모험을 좋아하여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카누를 타고 여행한 경험을

1878년에 <내륙항해>란 기행문을, 다음해에는 프랑스 도보여행기인 <세벤느에서 당나귀와 함께 한 여행>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부인 Fanny Osbourne은 미국인이었다(박물관에서 촬영)

1876년 프랑스 남부에서 연상의 여인 Fanny Osbourne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당시 Fanny는 미국인으로 남편과 별거하고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던 중 스티븐슨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샌프란시코 태생으로 스티븐슨보다 열살이나 연상이었고 애를 셋이나 가진 유부녀였다. 2년 뒤 미국으로 다시 건너간 Fanny는 이혼하고 다음해인 1879년 미국으로 건너 온 스티븐슨과 결혼하였다. Fanny는 병약한 스티븐슨이지만 그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차리고 그녀의 남편이 전념하여 글을 쓸 수 있도록 모든 정성을 다하여 뒷바라지를 하였다고 한다.


이층에 있는 서재


스티븐슨이 애독하였던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1880년 Fanny와 함께 스코틀랜드로 돌아 온 부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7년동안 유럽 여러 곳을 전전하며 여러 작품을 발표하였다. 주요 작품을 보면 다음과 같다.


보물섬 - 1883년

The Black Arrow - 1884년

Prince Otto - 1885년

Kidnapped - 1886년

지킬박사와 하이드 - 1866년


이런 작품발표로 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문명을 얻어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성공적인 작가로 1887년 미국으로 이주하였으나 병세가 악하되어 요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담당한 의사는 기후가 병회복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 진단하여 부부는 1888년 6월 식솔을 이끌고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남태평양으로 여행차 길을 떠났다. 중간 경유지로 하와이에 들러 당시 하와이 왕국의 환대를 받기도 하였다. 하와이에서 몇 개월 체류하다 남태평양으로 내려와서 1889년 연말에 Samoa Apia에 기항하여 결국 여기에 정착하게 되었다.



1884년 발표작 <The Black Arrow>


유고작으로 Sophia Scarlet과 태평양 관련글로 1894년 사망한 뒤 미발표된  여러 이야기를 묶어서 2008년 Robert Hoskins가 편집하여 발간


한글로 번역된 보물섬과 지킬박사와 하이드도 이층 서재에 자리잡고 있었다

보물섬과 지킬박사와 하이드란 소설은 잘 알아도 저자가 누구인지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소하였는데 바로 이 결핵을 지병으로 평생 골골했던 잘 생긴 스티븐슨이 쓴 소설이었다.


보물섬은 그의 첫 소설작품으로 1883년에 유럽 여행중에 발표한 것이다. 우리들이 초딩이었을 때 소설보다는 만화로 먼저 접한 것이 보물섬이다. 애꾸눈 선장, 외다리 해적과 그의 어깨에 앉아 있는 앵무새, 검은 해적모자인 삼각모, 머스킷 총, 해골 바가지에 뼈다귀로 X자를 그린 해적기, 이런 것들이 해적의 stereo type(원형)들로 굳어져 나중에 만들어진 캐리비언의 해적같은 영화에도 등장하는 것이다. 보물섬은 물론 굉장한 상상력과 유려한 필체로 쓴

픽션이었지만 실제로는 영국의 항해 역사에서 사실적인 역사 이야기를 차용한 것도 많았다. 첫째, 시대의 배경은 소설을 쓴 1883년보다 약 100년 전으로 대항해시대에 영국 해군력의 전성기시대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이어 영국의 대항해 전성시대를 구가했던 시기였다. 보물이 묻혀있는 섬의 무대는 캐리비안의 히스파니올라(Hispaniola)로 지도상에서 찾아보니 현재 Haiti와 도미니크 공화국이 있는 섬이다. 그러니까 영국의 남부 항구인  Bristol에서 범선을 타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카리브해까지 항해한다는 이바구다. 둘째, 쥔공인 Jim Hawkins의 부친이 Bristol에서 운영하던 여관의 상호가 <Admiral Benbow> 벤보우제독 여관으로 사실 인물인지 뒤져 보았더니 역사적인 인물이었다. 벤보우 제독은 영국 해군장교로 1600년대 후반에 활동했던 인물이었다. 세째, 보물섬 스토리 전개중 가장 약방 감초같은 인물이 외다리 선장 John Silver이다. 키가 크서 그런지 보통 Long John Silver라고 부른다.


미국 seafood 체인점 Long John Silver

이 가게의 이름도 바로 보물섬에 나오는 외다리 선장이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나도 가끔씩 팔아 주는 씨푸드 튀김가게인데 오랜 프랜차이즈 역사에 비해서 체인점 확산이 매우 더디다. 현재 미국서 영업은 하고 있지만 그다지 성공적인 프랜차이즈 영업은 아닌 것 같다. 소설 속에서 Long John Silver가 다리 하나를 잃게된 사유를 영웅적으로 고백하는데 <호크제독>밑에서 조국을 위해 프랑스군대와 싸우다가 다리를 잃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호크제독이 실존 인물인지 찾아보니 역시 역사적인 인물이었다.



박물관에서 촬영한 에드워드 호크 제독 초상화

박물관 벽에 걸려있던 초상화였는데 밑에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그래서 첨에는 스티븐슨의 잘 나갔던 선조쯤 되겠거니 하고 지레 짐작하였는데 보물섬을 다시 훑어보니 바로 외다리선장이 다리를 잃게 되었다는 대목에 등장하는 바로 그 제독이었다.



   7년 전쟁과 키브롱만 해전(Battle of Quiberon Bay)


7년 전쟁(1756-1763)은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에서 프로이센에게 패배한 오스트리아가 빼앗긴 영토를 재탈환하기 위하여 프로이센과 벌인 전쟁이다. 오스트리아-프랑스-작센-스웨덴-러시아가 동맹을 맺고 이에 대항하여 프로이센-영국-하노버공국이 연합하여 세계적으로 벌어진 전쟁이었다. 결과는 영국의 지원을 받은 프로이센이 전쟁을 승리하여 현 독일 동부의 비옥한 영토의 영유권을 확보하였고 영국은 프랑스를 격파하여 식민지 쟁탈전쟁에서 북미에서는 퀘백주와 온타리오주를 차지하였고 인도에서도 프랑스군을 몰아내어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계기가 되었다. 이 와중에 벌어진 영국과 프랑스 해군의 한 판 승부가 키브롱만 해전이었다.

키브롱만 해전은 1759년 11월20일 프랑스 서부해안 생나제르(St. Nazaire) 근처의 키브롱만(낭트칙령으로 유명한 도시 낭트 바로 옆에 있다)에서 에드워드 호크제독이 지휘하는 영국 황실 해군(Royal Navy) 함대가 프랑스 함대를 전멸시킨 해전으로 1805년 나폴레옹 전쟁중 스페인-프랑스 연합함대를 영국의 이순신인 넬슨제독이 지휘하여 대승한 트라팔가르 해전(Trafalgar)에 비견되는 대승리로 영국 해군전사에 기록된다.


외다리선장이 그 해전에서 다리를 잃었다는 이야기 전개를 역사적인 사실성과 작가의 상상력을 결합하여 흥미진진하게 이어가는 수법이 요 근래 한국의 퓨전 사극 영화와 많은 닮음꼴을 볼 수 있는데 스티븐슨 작가가 근 200여년 앞서서 시도했다는 것이 경이스럽다.


마지막으로 역사적인 facts를 찾아보면 앵무새 이름부터 시작되는 여러 해적 선장들의 이름들이다. 롱다리선장의 어깨에 앉아있는 앵무새 이름이 플린트 선장(Captain Flint)이다. 찾아보니 실제 인물의 이름은 아니었다. 그러나, 앵무새의 별명인 플린트 선장의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새로운 해적 선장의 이름이 나오는데 검은수염(Blackbeard)으로 불리우는 에드워드 티치(Edward Teach)와 에드워드 잉글랜드(Edward England)가 그들이다. 둘 다 실존 해적왕이었다. 카리브해와 미국 동남부 해안을 주무대로 활약한 검은 수염은 공포스러운 외모와 악행으로 이름을 떨친 해적으로 1680년 영국 Bristol에서 출생하여 해적질하다가 1718년 영국 해군에게 사살되었다고 한다. 에드워드 잉글랜드 선장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선원생활을 하다가 해적이 된 실제 인물로 아프리카와 인도양 일대에서 활약한 해적왕으로 자비심있게 포로를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을 비롯하여 다른 해적 이야기에도 그의 일화가 에피소드로 소개되고 있다. 현재도 사용되는 해적기- 해골바가지에 X자 빼따구-를 처음으로 고안해서 먹이감을 발견하면 이 깃발을 올려 해적임을 알렸다고 한다. 이 해적깃발을 영어로 Jolly Roger라고 부른다.


해적기 Jolly Roger

Long John Silver 선장이 본인의 경력을 말하는 대목에서 자기가 처음에는 해적왕 검은 수염 밑에서, 다음에는 플린트 선장 휘하에서, 다음에는 잉글랜드 선장 밑에서 해적 경력을 쌓았다고 뽐내는데 두번째 선장 플린트만 작가가 창조한 인물이고 검은 수염과 잉글랜드 선장은 실존 인물이었다.



1886년에 발표한 <지킬박사와 하이드>

보물섬에 이어 세계적으로 히트친 작품이 바로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소설로 알려진 이 후에는 연극과 뮤지컬로도 공연되었는데 뮤지컬은 1997년 4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첫 무대에 올려졌다. 2001년 1월 대단원의 막이 내린 후 일본과 독일등으로 순회공연을 하였다. 한국에는 2004년 초연되었는데 당시 24세였던 조승우가 지킬박사역을 류정한이 하이드, 최정원과 소냐가 루시역, 현재 손준호의 반쪽인 김소현이 약혼녀 엠마역을 맡은 것으로 기억된다.


스토리를 간략하면 정신분열증을 않고 있는 부친의 효자 아들 지킬박사가 아버지 병을 고칠 치료 신약을 개발하였으나(요새말로 하면 biotech 신약 개발) 이사회에서 인체 실험을 거부당하자 테스트할 피시험자가 없어 본인이 복용했다가 악의 화신 Edward Hyde라는 새로운 인격체를 만들어 낸다(제조 불량내지 개발 실패). 하이드는 종교적인 이유로 신약 테스트를 거부한 주교와 관련된 이사회 인물들 - 장군과 귀족들을 차례로 살해하고, 술집에서 만난 댄서 루시마저 살해하려는 하이드를 억지로 억제시키고 루시를 도망치게 한다. 하이드를 물리치고 약혼녀 엠마와 결혼식을 올리는 도중에 다시 살아난 하이드는 결혼식을 방해하고 엠마를 인질로 잡아 목숨을 위협한다. 더 이상 해결책이 없음을 인지한 지킬박사는 절친이 뽑아 든 칼에 뛰어들어 엠마의 품에 안겨 죽어간다.



  최초로 정신분열증을 다룬 소설?


내 기억으로는 1886년 이전에 발표된 소설이나 영화(당근 없겠지)에서 정신분열증을 다룬 작품이 없는 것 같아 아마 이 소설이 최초로 정신병 또는 정신분열증을 취급한 소설일 것이라고 단정한다. 예전에는 그냥 정신병 또는 정신분열증으로 통칭했지만 요새의 잣대로 들이대면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한 사람이 두 명이상의 성격을 가지는 다중 인격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또는 Multiple Personality Disorder)라 해야 적합한 것 같다. 정신병 또는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은 사고 체계와 감정 반응에 전반적인 장애로 종합적으로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정신 질환이다. 무논리증, 무욕증, 분열 초기증상과 같은 음성증상부터 환청, 환시, 환후와 같은 환각, 망상, 환영, 격앙, 긴장, 비정상 행동같은 양성증상이 있다고 한다.


다중 인격 장애를 요즈음에는 해리성(解離性) 인격 장애또는 해리성 정체 장애로 부르고 있다. 같은 말인데 1994년부터 해리성 인격 장애로 고쳐 부르고 있다. 그런데 증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정신분열증이나 해리성 인격 장애의 증상에는 둘의 경계가 모호한 부분도 있어 명확하게 이것이다 저것이라고 판정하기에도 어려운 점이 있다.


영화 <Psycho> 영화 포스트

영화에서 보면 다중 인격 장애를 처음으로 다룬 영화가 알프레드 히치콕의 1960 흑백영화 <Psycho>였다.  생긴 미국배우 안소니 퍼킨스가 당시 28 젊은 나이로 쥔공 노먼 베이츠역을 열연하였다. Mother complex 가진 노먼이 모텔을 경영하면서 숙박인들을 하나  살해해서 뒷뜰에 있는 늪에다 증거를 인멸한다. 의자에 앉아 있는 어머니와 대화를 주고 받는데 알고 보니 죽어 백골이  시체로 죽은 어머니의 인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Split> 포스트

최근 영화로는 작년에 개봉한 <Split-23 Identity>란 싸이코 영화가 있다. 빌리 밀리건이란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해서 제작한 영화인데 미국 오하이오 대학가에서 연쇄 성폭행자로 체포되어 심리 관찰해 본 결과 무려 24개의 각기 다른 인격이 존재하여 다중 인격 장애자로 판정되어 무죄를 선고 받았다고 한다. 원인은 어렸을 때  계부한테 당한 아동학대, 특히 성폭행이었다고 한다. 요즈음 세간을 들썩이는 사건이 <인천 초등생 살해사건>으로 주범인 여고 중퇴생 K양이 바로 이런 다중 인격 장애를 흉내내어 마치 자기 몸속에 또 다른 자아가 있어 그 인격이 살인을 지시한 것처럼 증언하여 해리성 정체 장애자를 흉내내는 것인지 아님 실제로 그런 증세가 있는 것인지 왈가왈부하고 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정체성이 결국은 선과 악의 그것으로 상징되니 백과 흑의 이분법은 이 복잡한 세상이 끝날 때 까지 영원하지 않을까 싶다.


성산 Mt. Vaea에 묻힌 스티븐슨의 무덤(인터넷 발췌)

1894년 12월3일  Apia 자택에서 갑작스런 발작 증세로 세상을 떠난 스티븐슨은 평소에 입버릇처럼 소원한 옆산인 Mt. Vaea에 묻혔다. Mt.Vaea는 사모아 추장들의 성지로 섬에서 존경받는 위인들만 묻히는 장소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스티븐슨을 좋아 하였던 사모아인과 추장들은 흔쾌히 허락하여 그가 소원한대로 Mt. Vaea에 묻히게 되었다.


스티븐슨은 성격이 온화하고 포용력이 있어 사모아 원주민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였다. 그리고 소설가와 시인으로서 풍부한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많은 글을 발표하여 사모아 현지인으로부터 별칭으로 Tusitala라고 불리웠다. 현지어로 "책을 쓰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는 마치 미국의 작가 훼밍웨이가 쿠바로 이주하여 수도 Havana 근처의 해안 마을인 꼬히마르(Cojimar)에 정착하여 그의 굉장한 상상력과 입담으로 마을 주민인 가난한 어부들과 끈적한 인간관계를 맺은 덕분에 그들의 사랑을 받은 것과 유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이 죽은 뒤, 미망인이 된 Fanny는 몇 년동안 Apia 자택에서 홀로 지내다가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혼자 생활하다 1914년 사망하였다.


스티븐슨의 진혼곡(번역 지노킴)

이 광활하고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아래

나의 안식처에 나의 육신을 누이소서

즐겁게 살다가 미련없이 떠나 가노라

한가지 소망을 가지고 나의 육신을 누이노라

나의 안식처 위로

바람들이 불어 오고

구름들이 오고 가면

나 영원한 안식을 구하며

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도 영원하리라


나의 묘비명에 이렇게 적어다오

<여기 그렇게도 간절히 바랬던 곳에 잠드노라.

 바다를 떠도는 항해가에게 바다가 고향이요

 사냥꾼에게는 언덕이 고향이라네>



생전의 스티븐슨이 지은 시 레퀴엠이다. 레퀴엠은 기독교에서 죽은 자의 위령미사에 사용되는 장송곡으로 하느님께 죽은 자의 영혼을 거두어들여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는내용을 담고 있다. 불교에서 보면 염불하고 비슷한 것으로 다른 말로 진혼곡 또는 장엄 미사곡이라고도 부른다. 음악의 대가들이 레퀴엠을 작곡하였는데 모짜르트, 베를리오즈, 드볼작, 브루크너, 베르디, 생상스, 포레의 작품이 남아 있는데 나는 그 중에서 베르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왜냐하면 죽어서 평안하게 누워있을 것을 상상하며 웅장한 이 곡을 감상하고 나면 되려 펄펄 살아나 쪼매 더 살고 싶다는 감정이 삶에 활기를 불어 넣기 때문이다.





    오늘 FIJI로 가서 다시 뉴칼레도니아로 이동


사실 오늘이 Samoa에서 다시 피지로 건너 가서 오후 늦은 뱅기로 피지에서 뉴칼레도니아로 이동하여야 한다. 그래서 어제 오후 늦게 가서 구경못한 스티븐슨 박물관을 보고 가려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호텔 첵아웃을 하고 박물관 앞에는 9시 전에 도착하였다. 어제 대절한 택시를 오늘 또 불러 박물관 갔다가 공항까지 타고 갈 참이었다.


9시경 박물관 본채까지 택시를 타고 들어갔다. 다행히 본체 뒤쪽에 파킹장이 있어 배낭과 카메라는 기사양반과 함께 파킹장에 두고 실내 촬영용 똑딱이 하나만 달랑 들고 들어갔다. 관리인이 그룹투어를 해야 하니 박물관 옆에 붙어있는 기념품점에서 잠깐 구경이나 하고 있으라고 한다. 상점 안에는 주로 스티븐슨의 판매용 서적으로 꽉 차 있었고 그림엽서와 몇 가지 사진첩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무게가 별로 나가지 않는 것으로 골라 박물관 본채를 소개하는 얇은 사진 팜플렛을 하나 구매하였다.


일층의 the Great Hall

이른 시간이라 방문객이 없어 관리인이 들어가서 구경하라고 하면서 마루를 비로 훔치면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박물관은 일층과 이층으로 되어 있었다. 일층에 들어서면 the Great Hall이라고 부르는 공간을 만나는데 우리식으로 보면 응접실이다. 벽에 걸린 대형 초상화가 눈길을 끌었다. 조각으로 앞면을 장식한 가구들은 한 눈에 보아도 고향 스코틀랜드에서 가지고 온 것 같았다. 요새는 돈이 많아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 눈에 띄였다. 바닥에 깔린 사자 껍데기로 머리부터 네발과 꼬리까지 완전한 형체로 엎드려 있었다. 올라서지 마라고 주의사항을 적어 놓았다.


일층에 있는 dining room

다른 한 쪽에는 대형 식탁이 놓여있어 열명이 넉넉하게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다. 큰 유리창문을 통하여 앞 뜰을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옆 한구석에 작은 의자와 소파가 놓여 있었는데 옛날 가구의 운치가 살아 있었다.



정교한 조각으로 앞면을 장식한 가구



한쪽에는 악기들을 전시해 놓았다


피아노

일층 한쪽 코너에 피아노를 비롯하여 여러 악기들을 전시해 놓았다. 아래 사진과 같은 악기를 첨보는데 이름을 알 도리가 없다. 기타 코드와 비슷한 면도 있고 합시코드처럼 철현이 여러 가닥이다.


악기 이름이 뭔지?


만돌린?


Master bedroom

이층에는 방들이 모두 침실로 이루고 있었다. 사진은 주인장 부부의 방으로 모두 나무로 제작된 가구들이었고 창가에 놓인 재봉틀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그 시대에는 의복도 대량생산이 안되어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 입어야 했었기에 재봉틀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을 거라고 생각된다.


재봉틀


가정용 재봉틀과 함께 전시된 틀실들


Medical Room

놓여있는 침대가 작아 아이들 방인줄 알았는데 양호실이다. 스티븐슨이 자주 병치례를 하다보니 Fanny가 가정 상비약과 구급약을 준비하여 위 사진 왼편에 있는 나무 캐비넷에 비치하고 있었다.


박물관 이층에 있는 서재


이층의 서재겸 도서실


the Tapa Room

위 사진처럼 Samoa 전통적인 벽의 장식을 Tapa라고 한다. 나무에 여러가지 무늬를 새겨넣은 방식으로 팜플렛에 의하면 사모아 최고의 장인들이 스티븐슨을 위해 작업을 했다고 한다. 마치 우리식으로 보면 일련의 무늬가 이어지는 최고급 벽지 비슷한 것이다.



벽에 전시된 총포류

스티븐슨의 레퀴엠에도 나와 있듯이 사냥꾼에게는 언덕이 고향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 사냥 취미가 있은듯 하다. 그러나, 그게 남태평양으로 이주하기 전 스코틀랜드 고향에서의 이야기일 터이고 Samoa 섬에서는 무슨 사냥감이 있어야 사냥을 할 터인데 사냥총에 녹이 쓸었을 듯 하다.



스티븐슨의 청동상



당시의 유물을 보는듯한 다리미

일이층을 관람하는 동안 관리인의 감시 눈초리를 뒷통수로 느껴왔는데 박물관을 다 보고 내려오니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여기는 요새의 현대식으로 유물을 밀봉된 강화 유리상자 속에 넣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예전에 살았던 그대로 보여 주기에 스티븐슨이 애독했던 진짜 옛날 책이나 자지구레한 비품들을 마음만 동하면 얼마든지 주머니나 가방 속에 넣고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개인 관람을 시키지 않고 가이드가 그룹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감시도 하면서 투어를 진행하는 모양이다.



박물관 이층에서 내려다 본 뒷뜰


박물관 이층에서 내려다 본 뒷뜰



방명록 한 페이지에서 국적별로 통계를 내어보니 1위가 뉴질랜드에서           온 여행객이었다


방명록에 남긴 나의 좀스러운 멘트

방명록의 담 페이지 첫머리에 한국서 신혼 여행 온 커플이 허니문 기념이라고 적혀있어 순간적으로 적어 놓은 한마디가 <혼자서 기념>이었다. 얼마나 무미건조한 멘트였는지 다시 보니 민망스러워 가서 지우고 다시 쓰고 싶었다.





  한국 학생들을 만나다

 

아침에 서둘러 첵아웃 준비를 하고 로비로 갔더니 고등학교 학생들이 인솔 교사와 함께 있었다. 어디서 왔냐고 인솔 교사한테 물었더니 옆 섬인 American Samoa에서 졸업여행을 왔다고 하며 나보고 어디서 왔는지 묻길래 미국서 왔는데 한국사람이라고 하니 이번 졸업 여행에 합류한 한국학생이 4명이나 있다면서 불러다 주었다. 총 19명이 졸업 여행왔는데 그 중 4명이 한국 학생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한국말로 물어보니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데 전부 한국서 태어 났는데 부모님따라 미국령 사모아로 이민간 케이스였다. 아저씨가 그저께 혼자서 American Samoa에 갔다 왔다고 하니 모두들 놀라워 하였다. 남학생 둘, 여학생 둘이었는데 그 중 여학생 한 명은 3년전 최근에 이민간 케이스로 부친의 친구분이 미국령 사모아 팡팡고에 살고 있어 그 연고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영어 문화권에 익숙해졌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하였다. 내 혼자 생각으로 중학교 고등학교까지는 영어권으로 무상교육으로 별 문제없이 학교를 마칠 수 있는데 대학교 진학부터는 잘 선택해야 한다. 남태평양 섬나라에서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을 하기가 힘들어 돈이 들어도 호주나 뉴질랜드로 유학을 보내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경제적으로 힘이 든다고 한다. 그럴바에야 이민을 처음부터 호주나 뉴질랜드로 방향을 잡는 것이 애들의 향후 진로 선택에 수월하지 않을까 하고 혼자서 생각해 보았다. 박물관을 보러 가야 하기에 학생들과 기념 사진 한 장도 못 남긴 채 작별인사를 서로 남겼다.





   다시 FIJI로 날아서


Samoa  Faleolo 국제공항

택시 기사를 박물관에 대기시켜 놓고 보는둥 마는둥 사진만 찍어 놓고 달려온 덕분에 뱅기 시간에 맞게 공항에 도착하였다.


오늘 출발 뱅기 시간표

내가 타고 갈 피지항공 FJ252가 피지 낭디로 가고 뉴질랜드 항공 NZ997이 저녁 늦게 오클랜드로 떠날 예정이다. 뱅기편이 오늘 이것 두 편밖에 없는 모양이다. 위에서 본 방명록에도 거의 90%이 뉴질랜드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피지로 타고 갈 피지항공기



Samoa 국제공항에 있는 면세점로고


기념품이 거의 남자나 여류 의류들 이었다


Samoa 전통 색상의 스카프





    항공사진을 다시 찍고


Samoa Apia 앞바다

줄기차게 창가 자리만 고집했었다. 매번 찍어도 같은 이미지는 없고 새로운 풍광을 얻게 되니 그 재미로 창가에 앉아 마음껏 셔터를 눌러댔다.


4-5편으로 이어지는 파도의 파편들

산호초로 밀려드는 파도의 깨어짐이 헤아려보니 너댓번이다. 일번으로 밀려든 파도가 산호초에 막혀 깨어진 파도의 파편이 채 없어지기도 전에 두번째 파도가 밀려와 깨어지고....세번째, 네번째 파도가 또 그러하고 .... 그런 파도를 보고 있노라니 이런 시가 머리 속에 퍼뜩 떠오른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야
파도야 어쩌란 말이야
님은 물같이 까닥 없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야
날 어쩌란 말이야 - 청마 유치환-



무인도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늘에서 본 피지의 섬


반지같이 동그란 피지의 환초

새로운 항공 사진을 몇 장 남겼다. 오늘은 Samoa에서 피지로 돌아가는 꼴로 두 번째 피지 입국이다. 그러나, 오늘은 저번처럼 시내로 들어 갈 필요없이 공항에서 잠깐 죽치고 있다가 뉴칼레도니아의 수도 뉴메아로 날아 들어가면 되니까 조금 편한 재입국인 셈이다.





    뉴칼레도니아의 수도 뉴메아 입성


어둠 속의 뉴메아 국제공항

뉴칼레도니아가는 뱅기에서 생긴 어설픈 해프닝만 잠깐 알려주고  길고 긴 오늘의 여행기를 접기로 하자.


줄기차게 항공 사진을 찍으려고 창가 자리를 얻었다.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들고 내 창가 자리를 찾아 갔더니 세상에 맙소사! 일본 씨름 스모의 최상급인 요코즈나(横綱)에출전해도 될만한 거대 체구를 가진 사모아 여자가 중간에 앉아 있고 복도쪽으로 왜소한 체격의 현지인이 앉아 있었다. 중간에 앉은 여자분의 키도 내보다 훨씬 크고 덩치는 나의 2.5배 정도로 앉아있는데 좌우로 경계선을 침범하는 정도가 아니고 점유할 정도였다. 일단 비집고 들어가서 내 창가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바로 앉을 수가 없고 나의 왼쪽 공간이 점유당했기 때문에 나의 왼쪽 어깨를 앞쪽으로 내밀어 몸을 틀어야 겨우 서로 어깨가 닿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몸 전체를 오른쪽으로 30도 틀어서 앉았더니 엄청 불편했다. 일단 뱅기가 이륙해야 하기에 자리를 바꿔 달라하기에 힘들 것 같아 이륙하고 난 뒤 승무원을 바로 불렀다. 다른 말로 이유를 댈 필요도 없이 일단 다른 창가 자리가 있으면 바꿔달라고 했더니 창가 자리는 없다고 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항공 사진이고 나발이고 그것은 뒷전이고 우선 편하게 앉아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앞에 복도쪽 자리가 있어 그 자리로 도망치듯 옮겨가서 앉았다. 내 몸 하나 편하게 앉아서 가는게 이렇게 힘든 날을 맞이할 줄이야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Arc en Ciel 회사의 공항-호텔 교통 서비스

봉고차로 공항에서 시내 호텔로 데려다 주는 차량 서비스로 공항에서 시내까지 멀리 떨어져 있어 혼자 택시타면 요금이 꽤 나온다고 한다. 버스는 있는 것 같은데 늦어서 확실히 알 수는 없어 일단 3000 XPF(또는 CFP로 프랑화)내고 타고 가기로 했다. 약 미화 30불 정도로 손님 하나 하나의 호텔을 물어서 가까운 선착순으로 호텔 정문까지 바래다 준다. 괜찮은 교통 서비스였다. Arc en Siel은 영어로 rainbow. 이쁜 이름만큼 기사분의 서비스도 훌륭했다.-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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