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데뺑(Ile des Pins)에서(2)
2017년 5월31일 (수) 흐리다가 오후에 맑음
Natural Pool을 부랴부랴 둘러보고 픽압하러 온 택시를 타고(이번에는 합승이 아니고 대절) 일데뺑 맨위쪽에 있는 Crabs Bay로 올라갔다. 일데뺑에 나있는 도로중 해변을 끼고 있는 도로는 거의 없고 내륙으로 뚤린 길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Kuto 해변말고는 도로에서 해변을 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고 도로를 따라 끝까지 달려가야 물가를 만날 수 있다.
대륙이든 섬이든 보통 사람들이 상징적으로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동서남북 앞에 최(most)라는 접미사를 붙여 최동단(Eastenmost), 최서단(Westernmost), 최남단(Southernmost) 그리고 최북단(Northernmost) 지점이다. 그냥 들어도 폼나는 말이라서 그런지 배낭 여행자들이 그렇게도 가고 싶어하는 곳이 세상의 끝(Fin del Mundo)이라고 불리는 남미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Ushuaia)로 남극을 제외한 지구의 최남단 마을이다. 그리고 유럽 대륙의 땅끝 마을이라고 불리우는 곳은 포르투칼 수도 리스보아 근처에 있는 Cabo da Roca라는 곳으로 유럽 대륙의 최서단 지점으로 거센 대서양 바람을 맞이하는 곳이다.
대한민국의 최남단이 마라도인 것처럼 미국대륙의 최남단이 플로리다주에 있는 Key West라는 곳이다. 미드 Miami Vice의 멋진 무대였던 마이애미에서 154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 키웨스트에서 쿠바까지는 직선거리 90마일로 탈출하는 쿠바의 보트피플들이 애용하는 항구가 바로 Key West이다. 이처럼 지리상으로 최동서남북으로 치우친 곳이 사람들의 주의를 많이 끄는 장소가 되고 또한 사람들이 무척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되기도 한다.
일데뺑은 어디를 가보아도 청정한 수질을 자랑하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지역으로 뉴칼레도니아 전체가 해양 생태계(marine eco-system) 보존에 힘을 쏟고 있다. 그래서 일데빵도 최소한의 관광 인프라외에는 개발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졸라 고생하며 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잔뜩 찌푸린 검은 구름이 바다물색을 완전히 망쳐 버렸다.하늘이 살아야 바다 땟깔이 같이 살고, 그래야만 일데뺑이 환하게 웃을 수 있는게 아닐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뺑(Pins=Pines)때문에 소나무섬으로 불리워지는 이 섬 전체가 키 큰 소나무로 덮여 있다. 꼭 인공적으로 조림한 것처럼 보이는 이 소나무는 사실 약 2억년 전부터 존재해 온 수목이라고 한다. 억겁의 시간을 초월하여 목숨을 이어 온 모진 식물이 지금은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섬 주위를 빽빽하게 들어 차있다.
나도 상징적인 의미로 일데뺑 최북단 해안을 구경하고 풍경사진이나 몇 장 훔치고 바로 돌아섰다. 참고로, 일데뺑 최남단 마을은 오늘 오전에 내가 히치하이킹으로 들렸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이 거주하는 Vao 마을이다. 아마도 내가 본 Vao 마을은 중앙통이 아니고 근처의 해안으로 사마리안 여인의 집근처였기 때문에 변두리같이 보였지 싶다. 하여간 일데뺑 총인구가 약 이천명 정도인데 Vao 마을이 여기에서 행정상으로도 중심지가 되는 마을이라고 한다.
오전에 묵직하게 깔렸던 구름들이 조금씩 철수했지만 오후에도 완전히 걷힌 것도 아니었다. 오후에 다시 사진을 찍어보니 오전보다는 색상이 조금씩 살아났다. 아직 배로 돌아갈 시간은 많이 남아 있어 Kuto 해변을 끝까지 걸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이건 마라톤 완주가 아니고 백사장완보라고 불러야 하나. 나중에 누가 일데뺑가서 뭘 했냐고 물어신다면 아름다운 Kubo Beach를 완보했다고 말하겠어요. 고것 밖에 못했냐고 나무라시면 당신도 가서 돌아 다녀보라고 말하겠어요. 왜냐하면 백사장 길이가 무려 4 km이니 왕복 8 km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해변을 걷는 도중에도 하늘에는 여전히 두꺼운 먹구름으로 정열의 화신인 남태평양의 태양이 어디로 숨어 버렸다. 뜨겁고 강렬한 햇빛이 바닷물 속을 통과해야 본래의 색조를 볼 수 있을텐데.... 아쉬워하며 해변을 천천히 걸었다.
지금이 관광 비수기라 그런지 해변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젊은이 3명이 백사장에 옷과 배낭을 벗어 놓고 스노클링을 하러 물에 들어갔다. 덩달아 푸른 하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였다. 성수기일때는 바로 여기에 있는 호텔 쿠부니가 제일 붐빌 듯하다. 호텔에서 수영복과 비치 타올 한장만 가지고 걸어 나오면 눈부신 Kuto 해변이 바로 눈앞에 펼처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텔없이 나처럼 당일치기로 일데뺑을 방문하는 사람도 방법은 있다. 배에서 내리기 전에 배안에서 수영복을 안에 입고 스노클링 도구만 챙겨오면 저 젊은이들처럼 겉옷과 배낭은 백사장에 놓아 두고 물속에서 스노클링을 즐기고 돌아 가기전에 잠시 햇볕에 서서 몸을 말리고 배로 돌아가면 된다.
이만큼 걸어와서 뒤를 돌아다 보았다. 꽤 많이 걸었다. 내가 찍어놓은 인생의 발자국만 어지럽게 모래 위에 남아 있었다. 때로는 저렇게 흔적을 남긴 인생의 자취를 돌아보면서 뼈를 깎아내는 반성도 하고 앙가슴 치며 후회도 하면서 보다 나은 내일의 삶을 위하여 돌아 보아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어지럽게 남겨진 모래위의 발자욱처럼 볼품없는 모양새로 살아온 것만 같았다. 나의 삶이 그렇게 어느새 이만치 와 있었다. 세월을 탓할 수도 없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너무 안이하게 살아 온 것일까? 별 목표도 없이 술 한잔에 취해 깨어나 보니 어느듯 해는 서산으로 넘어 가려고 한다.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돌아올 수 없나?
해변에서 늘상 바다만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주객을 전도시켜 바지를 둥둥 걷고 물속으로 들어가서 해변을 바라보았다. 보통 해변에서는 키큰 야자수가 해안선을 지켜가며 해변을 구성하는데 여기서는 뺑(Pins=Pines)에 비하면 야자수는 난쟁이에 불과하다. 큰 소나무의 키가 50m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같은 해변을 사진으로 여러번 찍어도 매번 다른 이미지의 해안이 나에게 다가온다. 하늘이 조금 더 열렸는지, 물때가 조금 이른지, 바람이 조금 더 물살을 가르는지, 등등 여러 변수에 따라 눈에 보이는 해변의 모습이 달리 보인다. 철이른 Kuto 해변의 새로운 모습이다.
끝까지 백사장을 완보했다. 해변의 파도에 침식된 바위가 길을 속절없이 끊었다. 바지를 걷고 바위 해변으로 걸어 보았다. 썰물때라 물길은 별로 깊지 않아 물속을 걷기에는 별 문제는 없었다. 물이 빠진 바위 표면에 조개같은 여러 종류의 따개비들이 더덕 더덕 불어 있는 걸로 보아 물이 하도 맑으니까 조개같은 해조류가 서식하기에도 좋은 환경인 것 같았다. 잘 찾아보면 어디엔가 맛좋은 굴(oyster)도 갯바위에 붙어 잘 자라고 있을 것 같다.
물이 빠져 나간 갯바위 밑부분의 일부가 윗부분과 색상에 차이가 났다. 저 경계선까지 바닷물이 밀려 오면 물이 닿아 빛을 차단하여 바위 밑부분이 흙갈색으로 변하는 모양이다. 더 나아갈 수 없었다. 물길이 점차 깊어졌다. 여기 까지가 Kuto 해변에서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쿠토해변을 이만치 걸어오다 뒤를 돌아보니 해변 양쪽으로 펼쳐진 풍경이 파노라마같은 한 장면이었다. 너무 눈에 오래 두고 싶은 장면이었고 wide한 장면이라 세로찍기로 8번 쪼개어 찍어 합성한 사진이다. 하늘에는 여전히 두꺼운 회색구름이 무겁게 걸려 있고, 키 큰 소나무숲이 방풍림처럼 해변을 삥둘러 싸고 있어 승객을 싣고 돌아갈 선박도 선착장에서 승객들을 한가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하나 아쉬운 것은 뜨거운 태양을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길고 긴 Kuto 해변을 끝까지 다 돌고 돌아와도 아직 배 시간이 남아 있어 선착장으로 가는 신작로를 건너 반대편 해안가로 넘어 갔다. 오전에 지나갈 때에는 숲에 가려 해변의 진면목을 볼 수 없었는데 해안가로 내려가서 바라보니 새로운 파라다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해변의 백사장 폭은 그리 넓은 편은 아니지만 걸어서 건너갈 수 있는 바위섬이 있어서 파도를 막아주어 매우 잔잔한 비치가 되어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일데뺑의 여행팁이 될련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부족한 사람은 다른 해변을 찾을 필요가 없다. 배를 타고 와서 Kuto 비치나 Kanumera 비치에서 놀다가면 된다. 일데뺑이 가진 해변의 즐거움을 이 가까운 두 해변에서 충분히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일데뺑이 1872년부터 일반 잡범과 정치범을 수용한 감옥소로 이용되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나면 이 섬에서 높은 하늘아래 남색 물색의 해변에 키가 큰 소나무숲을 매일 보며 생활하였던 죄수들을 부러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연평균 썹씨 24도이기에 추운 겨울나기는 없는 곳이기에 겨울동토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야만 하는 제정 러시아 시대의 정치범에 비하면 역시 천국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일데빵 감옥소로 유배된 정치범이 크게 2가지 부류가 있었다. 하나는, 파리코뮌에 가담한 정치범으로 Paris Commune은 1871년 3월에서 5월사이에 프랑스 파리에서 왕당파에 대립하여 공산주의를 포함하여 진보 사회주의자들이 무장봉기한 시민혁명으로 파리외 다른 지역에서도 봉기하였으나 단결되지 못하고 70일 버티다가 정부군에 의하여 진압되었다. 이 혁명으로 약 3만여명의 시민군이 학살되었고 10만명 정도가 체포되어 그중 4만명이 정치범으로 유배되어 그 일부가 일데빵으로 오게 되었다. 또 다른 부류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폭동에 가담한 아랍인들이었다. 19세기 유럽 열강들의 아프리카 식민화의 일환으로 프랑스는 1830년 알제리를 식민지화하였다. 1964년 독립할 때까지 알제리 국민들은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프랑스 정부군에 대항하였다. 이즈음 프랑스는 전세계로부터 모집한 외인부대를 결성하여 알제리 독립운동을 진압하게 되었다. 이 독립 투쟁에서 체포된 알제리인들을 일데뺑으로 격리 수용하였다.
1876년 당시 형성된 감옥소를 중심으로 마을의 주요 건물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번호대로 알아보면
1 - 각종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공방
2 - 빵공장
3 - 식료품점
4 - 군인 막사
5 - 감옥소
6 - 급수탑(물탱크)
7 - 엔지니어 사택
일데뺑으로 유배된 정치범들은 일반 잡범과는 달리 강제노역에는 동원되지 않았고, 대신 다른 기술이 있어 - 예를 들어, 도로건설, 물탑건설, 병동건설등에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들 - 공사에 동원되는 경우에는 보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수감된 정치범들은 대부분은 1879-1880년에 사면을 받고 프랑스 본국으로 돌아 갔다고 한다. 일데뺑에 있었던 감옥소시설은 1913년이 되어서야 완전히 폐쇄되고 다른 곳으로 이전되었다.
상품으로 치면 품질 인증 마크와 다름없다. 일데뺑이 유네스코 World Heritage(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는 품질 보증서의 인증 마크인 셈이다.
1960년 이집트의 아스완댐 공사로 수몰 위기에 처한 누비아유적중 특히 아부심벨 유적 이전을 위해 UNESCO가 지원을 요청하여 전세계 60여개국의 지원을 받아 유적을 수몰위기에서 건져 내었다. 이를 계기로 세계의 주요한 문화와 자연 유산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UNESCO(유네스코는 UN Educational, Scientific & Cultural Organizaion의 약자로 UN산하 교육과학문화기구이다.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있다)가 1972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의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조약(세계유산 조약)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세계유산을 지정하게 되었다.
세계유산에는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는 문화유산이 있고, 빼어난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자연유산이 있는데 이 둘을 함께 가지면 복합유산으로 등재된다. 세계적으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은 많으나 복합유산은 몇 군데 없다. 2016년 기준으로 통계를 보면 163나라에 1,031군데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그중 802 곳이 문화유산, 197곳이 자연유산으로 복합유산은 단 32군데 뿐이다. 세계유산을 많이 가진 나라 순서를 보면 이탈리아(51곳), 중국(48곳), 스페인(44곳)으로 대한민국은 12곳과 북한에 2곳이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나 유적지를 가보면 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들이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외에 인류가 기록한 역사물이 보존가치가 있다고 판정되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가치있는 문화예술이 구전으로 내려오거나 무형의 문화유산형태에 대해서는 인류무형문화유산 으로 등재한다.
선착장으로 가는 신작로 위에서 잡은 Kuto 해안 풍경으로 마지막으로 작별할 시간이다. 다시 온다는 보장도 없고 다시 못가볼 이유도 없지만 다시 올 확률로 치면 1/100이다. 1%의 희미한 기대를 붙잡고 파라다이스의 꿈을 꾸며 살아 가야 하는지 인생살이 참 어렵다.
일데뺑이란 파라다이스가 서서히 그러나 빨리 찾아온 낙조에 잠겨 은은한 금빛을 뿜어낸다. 멀리 뻗어있는 모래톱과 세일보트가 실루엣으로 그 윤곽선만 또렷하게 다가온다. 아침부터 히치하이킹으로 길을 시작하여 택시 합승으로 섬 최북단을 돌고, 마지막엔 택시 대절로 막을 내린 일데뺑에서의 추억이 아직은 따뜻한 온기를 지닌 보온통처럼 가슴과 머리에 온전히 남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차 식어 버리고 잊혀질 것이다. 왼종일 숨어버린 햇님땜에 사진속의 바다물색이 조금 덜 화려해도 키큰 솔나무와 야자수에 둘러싸인 해변의 모래사장 땜에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점심을 어디서 무얼 먹었는지 별로 기억도 없다. 단지 내 몸의 오감 - 아름다운 일데뺑 경치를 눈으로 보고, 솔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하얀 모래 사장을 쓰다듬어 주며 찰싹거리는 파도소리를 귀로 듣고, 온통 청정 공기로 가득한 숲 속에서 코로 숨쉬며, 종일 내리 쬐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따끈한 남국의 열기를 피부로 느끼며,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8 km 해변을 걷는 - 이 극대치로 일데뺑의 자연속으로 녹아 들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원했을 뿐이다. 아직 이른 일몰의 시간에 그렇게 일데뺑에게 안녕을 외쳤다.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