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고롱고로 분화구 속으로
드디어 오늘이 사파리 투어의 마지막 날이다. 오후에 Arusa로 돌아가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오늘도 새벽 6시에 투어 출발해야 한다고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혼자라면 연삼일을 그렇게 새벽에 일찍 눈을 뜰 수 없겠지만 단체로 하다보니 모두들 잘 따라한다. 어제 우리가 캠핑한 장소가 Simba 캠핑장으로 응고롱고로 분화구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 중의 하나에 위치하고 있는데 해발 2200m나 되어 밤에는 진짜로 춥다. 대개 지금처럼 아프리카 여름에 사파리투어 온 사람들이 겨울옷 없이 얇은 옷으로 오는데 바로 여기에서 겨울같은 추운 밤을 맞이하여 평생 추억에 남을 사파리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된다. 난 사전에 정보를 입수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와서 따뜻하게 마지막 밤을 보내고 왔다.
새벽 6시가 조금 넘어 투어를 출발했다. 우리가 오전에 투어하는 동안에 요리사인 라마는 남아서 텐트를 걷고 오후에 돌아 갈 준비를 하기 때문에 운전수 옆 좌석이 비워 내가 앉아갔다. 그 자리가 명당이다. 일단 전방 시야는 물론이고 좌우 시야 확보에도 용이해서 사진 셔터 찬스를 놓지지 않고 잘 잡을 수 있다. 새벽의 맑은 공기를 가르고 사파리차가 분화구 능선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가이드 겸 운전수인 주마는 약간 들떠있는 것 같았다. 슬며시 넘겨 짚어 보았다.
"어이 주마, 오늘 집에 가니까 기분이 좋지?" 내가 먼저 말을 걸어 보았다. 삼십대 초반으로 아들딸 각각 1명씩 두고 집은 우리가 출발한 Arusa에 있다. 이제 결혼 및 가이드 경력이 각각 10년차로 이전에는 지금의 라마처럼 요리사로 출발하여 몇단계 진급을 하여 가이드가 된 것이다.
"그럼 좋고 말고." 핸들을 잡고 싱글벙글거리며 주저없이 대답하였다.
"그래, 그러면 마누라가 보고싶나 아님 애들이 보고싶나. 누가 더 보고싶어?" 약간 짓궂은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기듯 하더니 금방 정답을 찾은듯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야 애들이 더 보고싶지." 그러면서 호탕하게 껄껄거리며 웃으면서 손을 들어 올려 나에게 하이파이브를 쳤다. 무언의 손바닥 위로 마주치기(하이파이브)가 남자로서 서로 공통된 결론에 도달했다는 암시일 수도 있었다. 결혼 생활에 세월이 그저 흘러가는 강물처럼 무심하게 지나 간 탓일까? 결혼 초기에는 하루라도 안 보면 마치 잠시라도 스마트폰이 손에서 떨어지면 불안해지듯 그렇게 애지중지해 하더니, 몇 년이 흘러 애들을 키우고 커가는 애들의 변신에 마음을 빼앗기다보면 배우자는 그냥 배우자로 남게되고 더 이상 신형 스마트폰이 아니다. 못난 나를 탓해야하나 아니면 그런 무심한 세월의 강물을 탓해야 하나.
한참을 유난히 붉은 모래색이 나는 산길을 따라 분화구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다렀다. 주마가 출입 서류 절차를 밟는 동안 차에서 내려 분화구 일부를 카메라에 담았다. 600미터나 아래로 내려 앉은 분화구는 이른 아침의 화사한 햇볕으로 초원은 약간 황금빛으로 빛나고 구름의 그림자로 덮힌 저 끝 쪽에는 짙은 남색으로 좀 더 어두운 물감을 칠한 듯 하다. 수직 높이가 600미터나 되는 분화구로 내려가는 길은 나사 홈처럼 이리 저리 완급을 조절하며 길이 나 있어 속력을 낼 수 없다. 찻길 왼쪽 아래로 내려다보니 그냥 절벽 낭떠러지이다. 난 처음에 여기가 사파리 투어에 포함되어 있길래 그냥 분화구 경치 구경하러 가는줄 알았는데 가보니까 여기에도 동물들이 세렝게티처럼 노닐고 있어 Game Drive의 한 장소임을 알게 되었다.
검은 선으로 표시한 것이 응고롱고로 자연보호지 구간이며 왼쪽 지역이 우리가 3일 동안 사파리하였던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연결된다. 응고롱고롱가 마사이족 언어로 "큰구멍"을 뜻하는데 예전에 화산이 폭발해서 생긴 분화구를 지칭한다. 위 지도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큰 구멍(분화구)이 3개나 있는데 그 중에서 오늘 우리가 가는 응고롱고로 분화구가 제일 크다. 타원형인데 긴쪽 지름이 약 19km이고 짧은쪽이 약 17km이다. 1979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이 지역 안에 있는 울두바이(Olduvai)계곡에서 약 300 -360만년전에 초기 인류가 거주했던 흔적이 발견되어 2010년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유네스코 복합 문화유산으로 등록 된 곳이다.
세렝게티 사파리에서 빅파이브중 한 종류만 제외하고 다 포획했다. 사자, 표범, 코끼리, 물소 그리고 코뿔소중 마지막 코뿔소만 제외하고는 다 만나 본 셈이다. 그런데 유독 코뿔소를 세렝게티에서 볼 수 없었던 이유가 세렝게티에는 코뿔소가 없고 여기 응고롱고로 분화구에만 사는데 총 27마리 뿐이란다. 그래서 오늘 오전 사파리 과제는 코뿔소를 잡는 것이란다. 코뿔소를 영어로 Rhinoceros라고 하는데 줄여서 Rhino라고 한다. 종류는 Black과 White Rhino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한 시간을 이리 저리로 돌아 다니다가 저 멀리서 어정어정 걷고 있는 코뿔소를 먼 발치에서 겨우 잡았다.
https://youtu.be/IWkxgOetOn4 (여기를 콕)
예전에 '해바라기' 와 '신촌부루스' 객원 멤버로 가요계에 발을 디딘 한영애가 1988년에 발표한 노래 '코뿔소'로 좌절하지말고 코뿔소처럼 험한 세상을 힘차게 헤쳐나갈 것을 희망차게 노래하였다.
1.
코힘을 힝힝 뒷발을 힘차게 차고
달린다. 코뿔소 응 -
뒤돌아 볼것없어 지나간 일들은
이미 지난일 응 -
저멀리봐 저멀리 앞을 봐 - 응 - 코뿔소
코뿔손 넘어지지않아 남들은 다리가 둘이어도
코뿔소 다리가 넷넷! 코뿔소 응 - 코뿔소
2.
이 험한 세상 오늘도 달려야해
우리는 코뿔소 응 -
자신의 모든문제 스스로 헤쳐서
밀고 가야해 응 -
저멀리봐 저멀리 앞을 봐 - 응 - 코뿔소
코뿔손 누울수가 없어 한번 누워버리며는
다시 일어설수가 없어! 코뿔소 - 응 - 코뿔소
3.
코뿔손 넘어지면 안돼 아무도 일으켜주질 않아
이세상 모두가 남남남! 코뿔소 - 응 - 코뿔소
언제인가 코뿔소가 그 누운 날
사람들은 '코뿔소가 누웠구나' 그냥 그러겠지
일어나 코뿔소 일어나!
모두가 남은 아니야 내가 있잖아
눈을 떠라! 코뿔소
다시 해봐! 코뿔소
응고롱고로 분화구가 세렝게티 초원과 연결되어 여기에도 각종 동물들이 서식하나 개체 수가 세렝게티만 하지는 못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얼룩말이나 흰수염누를 보면서 너희들은 그래도 세렝게티처럼 사자나 표범들의 먹잇감에서는 자유롭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웬걸 가이드말로 여기에도 사자와 표범등 세렝게티와 마찬가지로 약육강식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하였다. 분화구 안에서 돌아 다니는 동물들이 세렝게티의 그것들보다 어쩐지 몸집이 왜소하고 생기가 별로 없어 보여 마치 지친 삶에 의욕을 상실한 동물들처럼 내 눈에 비쳤다. 이제 사파리 투어에 신물이 나는지 전부들 동물들이 지나가도 거뜰어보지도 않고 사진도 찍지 않는다. 모두들 빨리 Arusa로 돌아 가고픈 마음인 것 같다.
저 멀리 분화구 중앙에 있는 마가디(Magadi) 호수에 빨간 선들이 희미하게 보이길래 홍학무리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우리들은 가고 싶은데 주마는 너무 멀어 갈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레드 플라밍고무리를 분화구 안에서 보지를 못했다. 이른 시간에 피크닉 장소인 Ngoitokitok Spring에 도착해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처음으로 사파리하면서 차에서 내려 Spring으로 내려갔다. 물 속에서 하마들이 가라앉았다 떳다하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전부들 같이 기념촬영을 하였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별로 친해지고 싶지도 않던 전우들과 추억거리로 남겨둘 인증샷을 찍었다. 그냥 스치고 가는 인연인데 가슴에 남겨둘 회한이 무엇이 있겠는가. 웃으며 같이 인증샷을 찍으면서 5일간의 추억을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겼다
네 시간 이상을 차로 분화구 이곳 저곳으로 다녀도 하도 넓어서 전부 다 돌아 볼 수는 없었다. 이 쪽 끝에서 저 쪽 끝으로 눈을 돌려보면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분화구를 둘러 싸고있다. 그 산기슭에는 푸르고 누른 띠를 한 목초들이 넓게 퍼져있고 뜸하게 가축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저런 산기슭에 사자나 표범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배가 출출하면 여기로 내려와서 힘없는 흰수염누나 얼룩말을 잡아 포식하고 다시 산기슭으로 올라가서 비가 오나 해가 지고 달이 뜨나 분화구 안에서 살아가겠지.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은 동물의 세계나 인간의 그것과 다를바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얼마나 지리한 일상들이 우리 인간의 발목을 붙잡고 있나 생각해보면 그래도 동물들의 일상이 조금 나을 듯하다. 적어도 세렝게티나 여기 동물들은 밥 걱정은 않겠지만, 인간의 일상에는 지겨운 시간의 흐름을 막을 다른 방도도 없이 그렇게 흘러가면서도 매일 매일 또 다른 걱정거리로 가슴을 쓸어 내리며 살아간다. 마치 그런 일상의 걱정거리가 없다면 인생의 의미가 크게 반감되는 것처럼 다양한 숙제를 매일매일 우리에게 제시하고, 우리는 그 어려운 숙제를 하나하나 풀어 가면서 인생이란 열차를 타고 종착역을 향하여 설국열차처럼 끝도 시작도 없을 것 같은 기차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일상이라는 기차여행에서 한번쯤은 내리고 싶지만 모두들 그게 그렇게도 힘이 든다고 한다. 모두들 내려서 삶의 무거운 무게를 조금씩 줄여보고, 내가 이제 어디쯤 와있는지도 한번 알아보고, 얼마나 더 기차여행을 해야 할지도 가늠해보면서 내일을 맞이하는 것도 일상을 탈출하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모두들 한번쯤 짬을 내어 내려보자.
애당초 크게 기대를 하고 사파리 투어에 참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물들을 보면서 몇 가지 느껴본 것도 있고 그냥 내 인생에 아프리카 세렝게티에 갔다 왔다는 것만으로도 반전이 되었다. 스웨덴의 수잔 브링크도 직접 만나 본 것도 좋았고, 군대의 집체훈련같은 4박5일의 캠핑 생활도 별 문제없이 잘 소화했고, Arusa에서 헤어질 때 그간 밴드에 올린 사진을 정리하여 USB에 담아 현옥이 손에 쥐여주면서 한번만 부탁하였다. 마리아, 우리 한국 전통에 손아래 사람을 부를 때 이름뒤에 '아'를 붙여서 부르는데 현옥+아 해서 "현옥아"하고 부르면 너는 "예"하고 대답하는거라고 알려주면서 한번 불러 볼테니 대답해보라 해놓고, 내가 "현옥아"하고 불렀더니 마리아가 "예"라고 대답은 해놓고 쑥스러운지 작은 미소를 지었다. 해뿌리가 조금 남아있는 오후 늦게 아루사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모시행 버스에 피곤한 몸을 싣고 킬리만자로로 향하면서도 마리아가 쑥스럽게 한국식으로 대답한 그 목소리가 여전히 귓속에서 산울림처럼 메아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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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편 23 - 킬리만자로여신에게 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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