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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Nov 21. 2019

지노 배낭여행기-Atlantic Canada편 13

North West River 향토 박물관

2011년 6월 8일(화) 흐림


N.W.R에 위치한 향토박물관 안내판

다음날 아침, 다시 North West River 마을에 가서 반나절을 전시장에서 Laborador 전체 역사를 꼼꼼히 훑어 보고, 보트 투어 주인장 George 말한 Museum으로 갔다. 이 박물관은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N.W.R 마을의 향토 역사박물관으로 이 마을 운영 위원들이 비영리단체로 운영하고 있다.


이 마을이 언제, 어떻게 성립되었고, 여기에 와서 진료한 최초의 의사 이야기, 탐험가 이야기 등 N.W.R의 역사박물관이다.




       N.W.R 향토 박물관에서


박물관 외부 전경

박물관의 내외부를 HUDSON’S BAY COMPANY와 매우 비슷하게 꾸며 놓았다. 영국의 동인도 회사처럼, 북미에서 모피 교역을 위해 17세기에 영국 정부가 설립한 교역 회사로 일찍이 북미대륙에도 진출하였다.



내부 상점 모습

당시 상점 내부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17-8세기 사용하던 일상 물건들을 잘 모아 전시해 놓았다. 선반에는 당시에도 고가의 전자 제품일듯한 라디오도 전시해 놓았다.




전시된 축음기

당시에 사용하던 축음기 등을 보니까 ANTIQUE 로서도 값어치가 꽤 나갈 것 같다.





BALD EAGLE(미국의 국조) 박제. 이외에도 곰, 여우, 담비 등 여러 동물들의 박제가 가득하다.



1900년대 초기의 보트 모터들. 바다와 강과 호수가 많다 보니 배에 사용된 여러 종류의 보트 모델들도 수집해서 전시해 놓았다.



Grenfell 의사의 선교와 의료 사업을 보여준다


둘러보니 N.W.R 향토 박물관답게 이 마을과 관련된 세세한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 마을에 처음으로 선생님이 와서 애들에게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를 가르쳐 준 것이 1889년경으로 장로교회의 알선으로 이루어졌고, 정식으로 선생님이 온 것이 1925년이었다. 그리하여 1928년에는 Yale School이 설립되었는데 말 그대로 미국 Yale 대학생들이 기금을 모아 여기에 설립해서 그런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이런 교육사업이 시작한 출발점이 1916년 영국인 Wilfred Grenfell이 병원을 개설한 것이었는데, 그 후 Dr.Harry Paddon이 와서 교육사업과 환자 진료사업을 병행한 모양이다. 박물관 다른 방 한쪽에는 당시 패든의사가 사용하던 각종 병원 시술 장비를 캐비닛에 가득 채워 보관하고 있다. 내가 생각해 봐도 그 당시 열악한 상황에서 이런 곳에 봉사한 사람들은 대개가 선교사업차 이런 오지에 오게 된 것 같은데(지금도 세계 오지에서 빈곤에 처한 제3세계에 대한 지원도 선교와 의료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래도 의사 같은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편안한 본국 생활을 버리고 오지에서 봉사활동했던 것 보면 고개가 숙여진다. 아프리카의 슈바이처처럼  Laborador에서 봉사한 Grenfell과 Paddon도 그런 부류의 인물인 것 같다.


각종 의료 기기를 전시


요 근래  “울지 마 톤즈”라는 다큐영화로 소개된 고 이태석 신부가 아프리카 수단 남부에서 의료와 교육사업에 헌신하다 대장암에 걸려 2010년 1월에 선종하였는데 그의 일대기도 이와 비슷한 삶이었다.

1962년 부산 출생인 신부님은 1987년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광주 가톨릭대를 거쳐 살레시오회에 입회한 의사 신부였다. 2001년 사제품을 받고 아프리카 수단으로 가서 선교, 의료, 교육사업을 하다 불의의 대장암으로 항암 치료하다가 작년 초에 선종하였다. 참으로 보통 사람들이 할 수도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한 인물이다. 오지에서 묵묵히 소명을 수행한 수바이쩌, 그린펠, 패든, 이태석 신부들이 그런 선구자들이다.





        운명적인 만남이었을까?


박물관에서 무료봉사하는 영감님

여기서 박물관 관리인으로 무료 봉사하는 이 영감님을 만났는데 그 후로 절친들과 연락이 불통되었다. 그 자세한 사연이 다음과 같다.


박물관을 다 둘러보고 나오면서 조용하게 입구에 앉아있는 영감님에게 지나가는 말로 질문을 던졌다.

“영감님은 이 마을에 사세요?”  

난 이 마을의 전체 인구나 특징 등을 몇 마디 물어보려고 말을 붙여 보았다.

“이 마을이 아니고 여기서 한 20분 떨어진 곳에서 살아요.”  

내 질문에 그냥 조용하게 답하신다. 오후 4시경으로 거의 문 닫을 시간인데 오늘 방문객은 나 혼자 뿐인 것 같다. 방문록에 기재하라고 해서 이름과 주소를 버어지니아 비치라고 써 놓았다. 계속해서 물었다.

“아, 그러세요. 근데 그 마을 전체 주민이 몇 명이나 됩니까?”  

이 질문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영감님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시는데,

“나 한 집만 삽니다.”  

이 무슨 해괴한 대답일까. 마을에 사는 전체 주민이 한 집이라니. 구미가 바짝 당겨 다시 물어봤다.

“영감님 가족은 전부 몇 분이세요?”  

집은 한 집이라도 가족 전체가 같이 살면 그것도 살아 가는데 좋을 것 같았다.

“저 혼자 삽니다.”

갑자기 망치로 머리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해진다. 총 맞은 것처럼. 혼자 사신다고. 영감님 한 분이라니.  

아니, 그런데가 여기 있습니까?  떻게 갑니까?”  난 하도 궁금해서 그런 마을을 한번 보고 싶어 차로 찾아가서 보려고 그렇게 물었다. 영감님이 내 말을 받아 상세하게 알려 주었다.

“도로는 없고 보트로 한 20분 가야 합니다.”

길이 없고 보트로 20분 간다니…… 구미가 더욱더 바싹 당기길래 재차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이 또한 기가 막힌다. 혼자서 이웃도 없이 근 15년을 살아오고 있단다.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곳을 꼭 한번 가 봐야겠다는 호기심이 불기둥처럼 일어났다.

“영감님이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번 사시는 곳을 가 보고 싶은데요?”

이 말은 단검을 들고 바로 찔러 들어가듯이,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면 <영감님, 오늘 저녁에 저를 보트에 태워서 영감님 댁으로 데려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인데 차마 그렇게는 말 못 하고 조금 둘러서 요청했다. 영감님은 된다 안된다 말도 없이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바라보는 영감님의 눈매를 보니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만큼 선한 양의 그것이었다. 그런 억지 부탁을 하는 나의 눈매도 이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아주 착한 것이다.(왜냐하면 내가 양의 눈을 가진 양띠이기 때문이다)

“따라가고 싶으면 지금은 안되고, 내가 오늘 박물관 근무마치고 다른 일 도와줄 것이 있으니 나중 8시경에 박물관으로 다시 오시오.”

이 말 듣고 진부한 표현으로 말하면, 그냥 하늘을 날아갈 듯이 기뻤다. 이 세상에서 혼자만 사는 마을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런 마을에 구경할 수 있다는 것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니까. 뒷 이야기를 들어보니 영감님은 보수 없이 지원 봉사자로 박물관 관리를 맡고 있고, 오늘은 뒷동산 언덕에 있는 Sunday Hill Park에서 전망대 수리 작업이 있는데 도와주어야 된다고 한다. 하여간 8시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아직도 시간이 좀 남아 있으니 전망대 교체 작업하는데 지금 같이 한번 둘러보겠냐고 묻길래 그러자고 했다.


집에 따라가려면 말 잘 들어야지. 영감님을 내 차에 태우고 언덕 위로 올라가 보니, 호수 저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무로 지어진 전망대가 오래되어 새 나무로 교체하는 작업인데, 영감님 혼자 하는 게 아니고 대학생 지원 봉사자들이 하는데 자기는 옆에서 도와주면 된다고 한다. 전망대 바닥을 보니까 오래된 썩은 나무를 거둬내고 새 나무로 교체하는 작업이다.


Sunday Hill Park에서 바라보는 호수의 전망은 너무나 시원하다. 호수 이름이 Lake Melville인데 크기가 길이는 80마일(128킬로)이고, 폭이 좁은 데는 15마일(24킬로) 넓은 데는 20마일(32킬로)이란다. 호수가 크서 바다와 같이 탁 트이고 저 멀리 산맥에는 잔설이 꽤 많이 남아 있어 한 폭의 산수화를 보여준다. 게다가 영감님 댁이 이 멋진 호수 어느 한 모퉁이에  있다고 하니 나는 무척 흥분되고 오늘 영감님 만난 것이 무슨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마냥 즐겁기만 하다. 사진만 몇 장 찍고 다시 박물관으로 내려가서 영감님을 내려 드리고, 나는 재차 삼차 영감님에게 8시 약속을 상기시켜 주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 변해 돌아 설까 봐 미덥지 못해 두 번 세 번 약조를 받아 내듯이 그렇게 묻고 또 물었다.  


SUNNY HILL PARK에서 바라다 본 호수 전경. 먼산의 잔설이 지렁이처럼 꿈틀꿈틀하다. 저 산맥에 곧 새로운  국립공원이 들어선다고 한다


그때서야 갑자기 배가 고파왔다. 호텔에서 아침으로 먹은 것이 계란 프라이 2개에 토스트 두 조각인데 그것으로 지금까지 버텨 온 것이었다. 전시관에 가서 구경한다고 점심 먹을 시간도 없었지만 여기에는 식당도 없다. 겨우 조그마한 그로서리 가게가 하나 있을 뿐이다.


다시 차로 33km 떨어진 Goose Bay로 나가서 식당을 찾아보니 Hongkong이란 중국집이 있어 주린 배를 움켜잡고 들어 가 보니 저녁 시간이 되어 현지인 손님들 몇 명이 앉아 있다. 배 고픈 김에 메뉴를 보고 바로 주문을 했는데 정확하게 음식이 나오는데 50분 걸렸다. 하도 음식이 안 나와(배는 뒤비지게 꿀꿀거리는데) 웨이트리스에게 불평하였더니 주방장 요리사가 지금 하고 있다나.


Platter 한 접시에 Back Rib 두 대와 야채볶음, 볶음밥, Egg Roll 하나 만들어 나오는데 50분이라니. 이 식당 모토가 배고파 밥 먹으러 온 손님들을 더 기다리게 해서 음식의 한계효용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데 있는 것 같았다. 늦게 나온 음식을 신나게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훑고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 가는데, 시간이 엄청 흘러서 약속한 8시를 맞추기가 힘들 것 같았다. 혹시 늦게 가게 되면 영감님이 기다리다가 그냥 배 타고 혼자 갈 것 같아서 속도를 내어 박물관에 가니 8분 정도 늦어 버렸다.


가 보니 다행히도 영감님이 전망대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아 오면서 쫄렸던 가슴을 길게 한번 쓸어내리고, 오늘 저녁에 영감님 댁으로 들고 갈 물건(침낭, 먹거리 등)들을 챙기고 나니, 작업복 차림의 영감님이 ATV(All Terrain Vehicle)를 타고 돌아왔다.

ATV탄 영감님이 폼이 나길래 나도 한번 타 보자고 졸라서 한번 타 보았다. 이것도 아래 위로 털나고 처음 타보는 것이다.



ATV 전천후 오토바이다.  아무리 험한 Offroad도 달릴 수 있다. 곰 사냥할 때는 뒤에다 트레일러 달고 가서 포획한 곰을 싣고 온다고 한다.





      배를 타고 호숫가 집으로


호수를 달려 영감님 집으로 가는 저녁

영감님 보트를 타고 신나게 달려 호수가 안 쪽에 있는 영감님 집으로 간다. 나무보트이지만 별로 크지는 않아 야마하 40HP로 달리니 꽤 빠르다. 사진 오른쪽 위 하얀 작은 건물이 향토 박물관이다. 한참을 달려가는데 속으로 내가 매우 흥분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오늘 들어가면 내일 아침에 나와야 되는데, 문제는 오늘 거의 다 구경했으니 바로 뉴펀들랜드로 나가야 하는데  못 나가고 하루를 여기서 죽치니 그게 좀 마음에 걸린다. 까짓것 밤새워 운전하면 되겠지 하고 영감님 댁이나 구경하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자고 마음먹고 보트 뒤쪽에 앉아 내 얼굴에서 깨어지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니 산타루치아 노래가 절로 나온다. 저녁 8시 30분경이었다.



호숫가의 영감님 거주지

한 20분을 달리니 영감님 집이 보인다. 그 자체는 잘 지어진 집도 아니고, 내부 시설도 별로이지만 문명 세계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흥분되고 있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Solar System으로 겨우 전깃불로 실내를 밝힐 수 있다. 집 거실에는 나무 난로가 있어 겨울에는 추위는 별 문제없지만 여름 더울 때는 에어컨 없이 그냥 자연바람으로 여름을 지내야 하고, 냉장고가 없으니 시원한 냉음료는 기대할 수 없다.


집 뒤로는 빽빽한 소나무 숲이니 겨울 장작은 무진장이다. 단지 식수가 없어 영감님이 출퇴근할 때 5 갤론 물통을 싣고 다니면서 박물관에서 물을 길어 나르는 것이 불편하지 그 외에는 다른 불편함은 없다고 한다. 나에게는 하나 더 필요한 게 있는데

Internet이겠지만 영감님은 그런 것 없어도 이곳에서 혼자서 15년을 살아왔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보면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대하는 문명의 발명품은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전기는 있으니 좋은데 전기가 없다면 호롱불로 책을 읽을 수 있어 그다지 문제가 될 것도 없다. 단, 대형 냉장고 문만 열면 각종 청량음료나 맥주, 기름끼 있는 맛난 음식물이 가득 찬 광경은 기대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우리가 세끼를 먹으면 그 칼로리를 충분히 태울만한 일을 하지 않으니까, 그 여분이 차곡차곡 쌓여 배가 나오고, 혈압이 높아지고, 각종 성인병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의사들은 하루 세 끼를 잘 먹어라고 권고하는데 바른말인가?  




        멜빌 호수의 엄청난 풍광


집 뒤에서 본  낙조

첫날에 들어와서 잡은 저녁노을. 집 뒤쪽은 숲이고 좌우 앞이 호수다. 혼자 사진 찍으러 밖으로 나오니 고요함으로 주변의 풍광은 바로 순수 그 결정체다. 울어대는 새도 없고, 심술궂은 바람 소리도 없어 귀를 자극하는 소리란 없는데, 간혹 호수 물이 자갈밭에 자박 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여기는 북반구에 가까워 해는 8시 넘어서 지지만 하늘은 밤 10시까지 환하다. 영감님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대개 저녁

10-11시경에 잠자리에 들면 새벽 4-5시경에 일어나서 활동을 시작하는데 그 이유가 Trapper는 무조건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밤에 일찍 짐 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감님도 과거 40년간은 Trapper로 살아왔다 하니 Trapper 생활에 있어서는 PRO라  할 수 있겠다. 덕분에 나도 다음날 아침 5시에 눈을 떠서 간밤에 처 놓은 그물에 고기를 건지러 영감님과 같이 배를 타고 나가 보았다.



집 뒤 호수밑으로 떨어지는 낙조


LAKE MELVILLE 의 또 다른 하루의 낙조



첫날 저녁에 영감님이 구워준  민물 TROUT


생선 건조대

냉장고가 없다 보니 아침에 잡은 고기를 내장을 제거하고 이런 상자에 넣어 고기를 말리는데 앞뒤로 공기가 통할 수 있도록 망으로 문을 만들고 중간 그물에 고기를 얹어 물기를 빼면서 옆 뚜껑을 닫아 파리 같은 벌레들이 달려들지 못하게 한다.


이런 것들이 문명의 이기가 없을 때 이를 대체하는 지혜의 발견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고기를 구워주는데 (중국집에서 한 접시해서 난 배는 고프지 않지만) 먹어보니 그것 또한 별미다. 아침에 잡은 고기니 얼마나 싱싱한까. 나에게 두 토막 주고 영감님은 한 토막만 먹었다. 영감님은 고기 한 토막, 식빵 두 조각에 커피 한잔을 저녁으로 때우고 만다.


영감님은 지난 20년간 아침은 담배 한 대와 커피 한잔, 점심은 안 먹고 저녁만 한 끼로 살아오셨다는데, 하루 세 끼 먹는 것하고 하루 한 끼로 견디는 것 하고 무슨 큰 차이가 있는지? 난 두 끼만 먹어도 운동 안 하면 배가 볼록하게 나오려고 하는데 이 참에

영감님처럼 하루 한 끼로 견뎌볼까?



집의 외관은 한마디로 형편없다. 마치 피난민 판자촌처럼 가난함이 물씬 풍겨 나는 그런 나무집이지만 나에게는 인간 세계를 벗어나서 신선들이 사는 무릉도원 한 중앙에 지어진 궁궐과 같다. 난 그 날 저녁 세수도 안 하고 양치질도 안 하고 입은 옷 그대로 침낭 속으로 파고들어 하룻밤을 보냈는데 가슴속은 그 어느 때보다 포근하고 기분 좋게 잘 수 있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


아침의 해돋이. 아침 6시경인데 해가 높다


거실의 창문으로 아침을 맞는다

영감님은 거실에 있는 식탁에 앉아 이 창문을 통해  아침을 맞는다. 아침 해돋이가 아름답다고 내가 한마디 했더니 영감님 말씀은,

“내가 15년 동안 매일 저 창으로 해돋이를 보는데 같은 적이 한 번도 없었소.”

그러니까, 1년 365일의 하루하루가 15년동안 매번 똑같지 않았다는 말이다. 인생의 날들이 그러한가? 우리가 말하는 일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똑같아서 지겹다는 소리 아닌가? 영감님은 일상 같은 생활 속에서도 매일 다르게 살아오는데, 우리는 일상 같지 않은 변화 많은 나날들 속에서도 우리들의 삶을 일상으로 부른다. 일상 같아 보이는 것들이 일상이 아니고, 일상 아닌 것들이 일상으로 되어 버린다는 말이다. 난 영감님의 이 말속에서 순간 머리를 스쳐가는 하나의 진리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 일상이란 없는 거다. 이 하늘 아래 똑같은 것도 없는 것이다.  단지 우리들 마음이 그렇게 느낀 것뿐이다. 하루하루가 일상같이 찌들어 사는 사람들은 지금부터 던져 버려라. 일상이란 없다고.



영감님 출퇴근시키는 모터보트

겨울에 호수가 얼어 버리면 스노우모블로 출퇴근한다는데 때로는 얼음이 깨어져 물속으로 빠지기도 한단다. 보트와 스노우모블로 호수 속에서 살아가는 영감님의 생활이 부러운가?



어제 저녁에 맞이한 낙조

영감님 집 왼편 앞에는 저런 조그마한 섬이 두 개가 있다. 오른쪽 섬은 물이 얕아서 걸어서도 갈 수 있단다. 물론 아무도 사는 이는 없다. 어쩌면 저 두 섬이 이 사진을 보는 당신의 또 다른 한 해의 여름 캠핑사이트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해가 넘어간 서쪽 하늘

해가 물속으로 완전히 잠기어도 하늘은 밝음을 잃지 않는다. 조용히 앉아 그저 바라만 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좋다. 무념무상이란 말이 여기에 적합하다. 이런 곳에 앉아 다른 세상 일로 걱정을 한다는 그 자체가 우습지 않은가? 그런데 우린 그런 소소한 세상일을 염려해야만 한다.


내일은 주식 가격이 좀 올라 가는지? 아들 녀석은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는지?  2주 동안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잔디가 너무 자라나서 옆집 이웃이 싫어할는지? 통장에 발란스는 얼마나 남아 있는지? 돌아가는 길에 차는 잘 굴러갈지? 내일은 무엇으로 배를 채워야 하는지? 언제 목돈을 모아 새 차를 바꿔야 하는지? 진짜로 소소한 이런 일들에 머리를 써야 한다. 그래도 좀 틀릴까? 이런 걱정을 콘크리트로 도배한 매연 시커먼 도시 한복판에서 하는 것 하고, 그런 것 하고는 동떨어진 이런 호숫가 한 귀퉁이에서 하는 것 하고 말이야? 그 답을 알려거든 저런 곳에 가서 그런 걱정을 나처럼 해 보면 안다.-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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