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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Jan 11. 2020

지노 배낭여행기 - 지중해를 찾아서 6

스페인 마드리드

2009년 10월 29-30일 (수, 목) 맑음

 

마드리드 민박집에서 지내는 것이 엄청 편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아침과 저녁을 한식으로 주니까 일단 빵을 안 먹어도 되니 신진대사가 엄치 잘 되는 것 같았다.


여기 마드리가가 유럽에서도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도시라 좀도둑과 강도가 많다고 민박집주인이 알려준다. 그러면서, 내가 타고 온 벤즈 차를 보더니 아주 측은한 표정을 짓는데 그 양반의 의표가 무언지 알 수 없어 좀 헷갈렸다.




     마드리드 도시의 역사


왕궁에서 내려다 본 마드리드 시가지


서로마제국 말기부터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어 서고트족들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이베리아 반도를 대부분 차지하여 서기 500년경 톨레도를 수도를 삼고 서고트 왕국이 번성하였다. 그러다가,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이슬람 세력(사라센)이 지불알타를 건너 이베리아 반도로 침입하여 서고트 왕국을 무너뜨리고 10세기경 코르도바 공국을 세워 이베리아 반도를 통치하였다. 1085년에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스 6세가 톨레도를 정복하여 기독교 왕국의 수도로 삼고 성장하였으나, 1561년 펠리페 2세가 수도를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천도하는 바람에 톨레도가 현재처럼 고도로 남게 되었다. 그러니까 마드리드는 카스티야 왕국의 새로운 수도로 16세기경부터 성장한 도시로 그렇게 오래된 도시는 아니다.



약 1400년경 이베리아반도의 왕국들

갖고 있는 세계사 책에서 발췌한 지도로, Ad 1400년경 이베리아 반도를 분할 통치하고 있던 왕국들의 영토를 표시하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스페인이란 국호는 찾아볼 수도 없었고 카스티야(Castile) 왕국이 톨레도를 중심으로 번성하여 가장 넓은 영토를 개척하였고, 그 오른편으로 바르셀로나를 거점으로 한 아라곤(Aragon) 왕국이 강성하였고, 그 아래로 그라나다를 중심으로 이슬람 세력의 그라나다 왕국이 아름다운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간직하며 삼파전으로 통치되어오다, 1469년 아라곤 왕 페르난도와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과의 결혼으로 연합왕국이 탄생되었고, 1492년 카스티야 연합왕국이 그라나다 왕국을 정복함으로써 이베리아 반도에 에스파뇰이란 통일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그 당시에는 마드리드란 도시는 없었다.




   마드리드 관광 요점 정리

(1) 마드리드 왕궁
(2) 3개의 미술관
(3) 3개의 광장

민박집 주인장이 짚어준 마드리드 관광의 포인트로

마드리드 왕궁과 Prodo, Tyssen, Sopia 미술관 3군데와 인파가 제일 붐비는 태양의 문, 에스파냐 광장과 Plaza Mayor이다.




    마드리드 왕궁


마드리드 왕궁 전경

1682년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짓고 루브루에서 베르사유로 궁궐을 옮기고 나서부터 베르사유가 유럽 궁궐의 표준이 되어, 각국의 왕실들이 베르사유 궁궐을 카피하기에 바빴다. 스페인 마드리드 왕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734년 화재로 궁궐이 일부 소실되자, Felipe 5세가 약 26년간을 걸쳐 마드리드 왕궁을 재건하였다. 그렇게 재건한 궁전의 규모와 사치스러움이 극에 달해 입이 딱 벌어진다. 서유럽에서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한다는데 방 2800여 개에 135,000 평방미터라 한다. 관광객들에게 12유로 받아먹고 극히 일부만 공개한다. 거실, 침실, 식당 등 모든 방들 천정에는 조각내지 그림들로 치장하고 심지어 초 6개 꼽는 촛대에도 조각상을 입히고 주위에는 여러 가지 치장들로 장식해서 눈을 어지럽게 한다.


도로쪽에서 본 왕궁 측면


왕궁 가로등 장식

한마디로 모든 것들이 현란하다. 이렇게 호화롭게 살다 간 저 왕후, 왕들은 사후에도 이렇게 살 수 있었을까? 그러면 세상은 너무 공평하지 않으니까 쪼끔 고생들 하고 있을 것 같아. 왜냐하면 내가 믿고 있는 유일한 진리는 <이 세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것으로 조물주의 섭리가 100% 반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여간 구경은 잘했는데 우찌 뒷맛이 씁쓸하네요.


왕궁 내의 광장

 

왕궁의 복도


왕궁 정면


펠리페 4세의 기마 동상

 





   MUSEO DEL PRADO (프라도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 전경

주로 19세기 스페인 화가들 작품으로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미술사에 미천한 내가 아는 화가가 있으니 GOYA였다. 초등학교 미술 시험칠 때 달달 외웠던 마야 고야.  가서 두 눈으로 보니 고야 동상 밑에 마야부인이 벌거벗고 팔베개하고 누워 있었다. 미술관 안에 들어가면 그 명화가 나란히 걸려있다.


미술관 입구에 서있는 고야 동상

그래 마야부인이 거기에 누워 있었다. 하나는 빨개 벗고, 다른 하나는 잠옷 걸치고. 그런데 궁금한 건

화가들이 누드 작품을 전부 다 풍만하게 표현하는데 왜 음모는 자세하게 표현하지 않는지 그게 몹시 궁금하였다. 그 외 내가 아는 화가는 GRECO, VELAZQUEZ인데 처음 보는 스페인 화가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여기서 누드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하고 나니까 그동안 잊었던 우윳빛 포동포동한 여인네 살내음이 담배연기처럼 떠올랐다. 이런 명화들을 보고 그런 원초적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원래는 윌리암 테레시의 연극 작품이었는데 1951년 영화로 비비안 리와 마론 블란도 주연으로 아카데미 상을 수상하게 되어 일반에게 크게 알려진 작품)가 머릿속에서 막 달리는 것을 보니 역시 나는 속물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3개 미술관중에서 규모나 관람객 수가 제일 많다고 해서 *미알못 하는 나도 8유로 내고 관람했다. 제대로 미술 전공한 사람은 오면 본전 충분히 뽑는다.

*미알못: 미술을 알지도 못하는


고야의 대표작 <마야부인>



    TYSSEN 미술관: 

티센 미술관 전경

정식 이름은 티센 보르네미사(Thyssen Bornemisza) 미술관. 1988년 설립된 미술관으로 다른 두 미술관에 비해 스페인 작품 외 1920년대 이후 유럽 작품을 전시한 곳으로 주로 근대 및 현대 작품이 전시되는데 고야 외에 틸리앙, 고흐 작품도 있단다. 티센(Thyssen) 패밀리는 독일 가문의 재벌이었는데 철강사업에도 손을 대면서 일찍부터 예술 투자에 눈을 돌린 가문이었는데 티센 보르네미사 남작이 부친으로부터 조선과 석유 사업, 아트 컬렉션을 물려받아 Tyssen 미술관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피아 미술관:

소피아 미술관 전경


프라도 미술관이 더 이상 전시 공간이 부족하자  이의 해결책으로 18세기 종합병원을 개조하여 현대 미술관으로 사용하는데 정식 명칭은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 박물관(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으로 명명되었다. 피까소, 달리,  미로, 칠리다의 현대작품이 전시되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것은 스페인 내전 때 나치가 폭격한 게르니카의 참상을 그린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뉴욕에 전시되다 1981년 영구히 스페인으로 돌아와 여기에 전시되어 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태양의 (PUERTA DEL SOL):

솔광장 전경

번역하면 태양의 문으로 원래는 성의 중심지로, 마드리드시가 생기기 전부터 시민들 집합지로 재판에 의한 처벌(사형), 공공집회, 물물교환 시장 등 복합적인 기능을 가지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스페인의 모든 길은 여기로부터 출발한다고 한다. 지금은 관광객들 상대로 여러 기념품 판매 상점들만 들어 차 있다. 통상 솔(Sol) 광장으로도 부른다. 옛날에는 지명 <태양의 문>대로 태양을 조각한 성문이 있어 그렇게 불렀는데, 그 문은 오래전에 없어지고 여전히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길의 중심이라는 의미로 마드리드가 출발점이란 소리다



      에스파냐 광장:(Plaza de Espana)

번화가 그란비아(Gran Via) 도로 표지판

마드리드의 명동 그란비아(Gran Via)에 있는 광장으로 스페인의 근대문학을 연 세르반테스(1547-1616) 사후 300주년을 기념하여 1916년 기념비와 동상을 세워 놓았다. 기념비 맨 위에는 세르반테스가 앉아있는 조각상이 있고 그 밑에는 돈키호테가 말 타고 몸종 판초는 당나귀 타고 가는 조각상이 코믹하게 조각되어 있다.


에스파냐 광장에 서있는 돈키호테와 판쵸 기마상



   레판토 해전에서 상이용사로 전역

 

앞편에서 1683년 오스만 제국이 15만 군대로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인 빈을 근 2개월간 포위하다

기독교 연합군의 원군으로 오스만 제국의 유럽 침입을 저지한 전쟁사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레판토 해전은 그보다 훨씬 앞서서 , 1571년 그리스 앞바다 레판토에서 오스만 제국의 강력한 해군과 베네치아 공국, 교황청 원군, 스페인 함대의 연합함대가 싸워 연합함대가 승리한 해전으로 세계 해전사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당시 동지중해를 장악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의 해군이 베네치아 공국이 식민지로 거느린 키프로스 섬을 공격하여 베네치아 공국까지 넘보며 베네치아 공국의 아드리아해 패권마저 장악하려고 흑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기념탑 위에 앉아있는 세르반테스

1547년 마드리드 교외에서 가난한 이발사 겸 외과의사(중세에는 이발사가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의사를 겸하며, 요새도 남아있는 이발소의 표시인 파랑, 빨강, 하양 표시가 정맥, 동맥, 붕대의 상징이었다)의 아들로 태어나 파산한 부모를 따라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다가, 22살 때 세르반테스가 이태리 로마에 특사로 파견되는 추기경의 종자(돈키호테에 나오는 바로 몸종 판초의 그 직책)로 형과 함께 선발되어 로마로 가게 되었다. 로마 체류가 좋았던지 아님 형이 꼬셨는지 나폴리로 내려가서 당시 정박하고 있던 스페인 함대에 수병으로 각각 입대하였다.


입대 후 레판토 해전이 터져 스페인 해군이 연합군으로 전투에 참가하였는데 이때 세르반테스가 가슴과 왼팔에 총탄을 맞아 왼손이 불구가 되어 불명예제대하고 형과 함께 배로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재수 없게 지중해에서 알제리 해적에게 나포되어 알제리에서 형과 함께 노예생활을 5년 동안 하였다. 당시 수녀원이나 수도원에서 기금을 모금하여 해적들에게 잡혀간 인질을 몸값을 지불하고 데려오는 제도가 있어 이들의 도움으로 세르반테스 형제도 알제리 해적으로부터 구출되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스페인으로 돌아와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군대에 식량을 조달하는 식량 조달원으로, 그라나다에서는 조세 징수원으로도 일을 하였는데 책임자의 조세 횡령으로 세비아 감옥에서 7개월 감옥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감옥에서 돈키호테 작품 구상을 하여 출옥 후 돈키호테 1권을 발표하고, 마드리드로 자리를 옮겨 죽을 때까지 소설가로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번화가 그란비아에 있는 극장가


소설 돈키호테에 관한 대중음악은 없을까 하고 찾아보았다. 예상대로 인기 있는 가수들이 제각각의 방식대로 돈키호테를 노래 부르고 있었다. 소설 줄거리를 떠올리며 한 곡조 꽝.



이청의 돈키호테(1979)

 https://www.youtube.com/watch?v=VCvlXsOALkc

말을 타고 광야를 달리는
우리의 돈키호테
그 모습이 거칠어도
돈키호테는 멋쟁이
사람들아 나를 보고
비웃지를 말아라
인생이란 풍차처럼
빙글빙글 도는걸
이랴 이랴
달려가자 백마야
아름다운 공주님에게로
돈키호테는 멋쟁이
돈키호테는 멋쟁이
돈키호테는 멋쟁이(1979)



돈키호테와 판쵸의 뒷태



FT 아일랜드: 돈키호테의 노래(2010)

https://m.youtube.com/watch?v=BhhfYhp_iCM

돈키호테의 노래

태양처럼 세상은 눈부시길
사랑처럼 자유는 아름답길
찬란히 부서진 나의 꿈들에
파도를 타고 올라 세상이란 바다를 걸어갈 테야

불러봐 소리쳐 돈키호테
오늘보다 내일 더 살만한 세상이길 노래할 거야
사막 같은 이 도시에 모래바람 휘날리며
나의 길을 찾아서 떠나갈 거야

나로부터 희망이 시작되길
나로부터 행복이 이뤄지길
수많은 기대는 물거품 되고
메마른 황야처럼 날카로운

현실이 가로막지만

불러봐 소리쳐 돈키호테
별이 뜨는 밤이면 하늘을 지붕 삼아 잠이 들 거야
낡은 갑옷 한벌도 집시 같은 방랑에도
나의 삶은 충분히 멋질 테니까

다른 길을 간다 해도
나의 삶은 더 뜨겁게
자유로운 나로 살아가는 돈키호테도 괜찮은걸
YES 지금 내 손을 잡고
나를 믿고 따라와 봐 봐봐봐 봐
우리만의 세상 Make it now(2010)




버즈(Buzz) 돈키호테(2018)

https://m.youtube.com/watch?v=almhbktDCTM

버즈의 돈키호테

모두 다 날 미쳤다 해도
가던 그대로 걸어갈 거야
모험은 지나야 알게 되는 법
아직은 누구도 나를 몰라
시간을 따르다간 지나가
언젠가 그때
날 뛰게 했던 환상
손안에 넣을 수 없다 해도
한 번쯤 쫓아가
돌아보며 후회하긴 싫어
앞으로 가 멈추는 건 없어
잊지 못한 떨림을
찾고 싶은 내 꿈을
가슴에 품고 달린다
어떤 길을 간다 해도
난 괜찮다 난 괜찮다
결국에 다다르는
그곳은 나만의 꿈
닿을 수 있는 La Mancha
마지막 그날의 날 위해
오늘도 나는 간다
모두 다 날 말린다 해도
그건 그대로 재밌을 거야
내 발은 고장이 난 로시난테
Oh 뭘 더 바라겠어 난 좋아
절대로 잡을 수 없다 해도
한 번 더 쫓아가
지나가고 후회하기는 싫어
잊지 못한 떨림을
찾고 싶은 내 꿈을
가슴에 품고 달린다
어떤 길을 간다 해도
난 괜찮다 난 괜찮다
길이 아닌 길을 걸어가
혹 바보 같아도 이대로 달려가
난 괜찮다 난 괜찮다
난 Don Quixote(2018)


나의 취향은 <겁쟁이>를 부른 버즈의 곡이 제일 마음에 든다. 음악은 결국 듣는이의 취향에 달려있다.





      PLAZA MAYOR(플라자 메이요): 

플라자 메이요 파노라마 사진

17세기 형성된 광장인데 여기서 스페인 특산물인 투우, 미인대회 행사 등이 개최되었다고 한다. 3개 광장 중에 건축물이 제일 아름답다. 관광 책 보면 마드리드에 볼거리가 엄청 많은데 그거 다 보려면 민박집주인 말로는 2주 있어도 부족하단다. 위에 정리한 것이 3일 코스 농축 진액이다.




 

5  프라다 미술관 에피소드

 

프라다 미술관이 워낙 크서 표 사는 곳과 입장하는 데가 많이 달랐다. 맨 처음 가니까 본토 유치원생 아이들이 선생님 인솔 하에 줄을 서 있었었다. 나도 그 뒤에 혼자 줄 서서 따라 들어가는데 검표원이 나만 잡고 하는 말인즉, 여기는 단체 입장이니 개인은 저 뒤로 돌아가서 표를 사서 입장하래요.


장난기가 졸졸 흐르는 마드리드 도시남(까도남).까도남: 까부는 도시의 남자

그 와중에 본토 유치원생 한 명이 나를 보고 하는 말이, 헤이 채키첸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성룡 영화팬인 모양인데 당시 RUSH HOUR 등 성룡 액션 영화 좀 본 모양이었다. 난 그저 씩 웃어주었다. (자식아, 이래 봬도 성룡보다는 훨씬 젊어)  


검표원이 가르쳐준 대로 옆으로 돌아가서(졸나게 멀어) 표를 사고 입장하려는데 보니까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보니까 본토 몇몇 사람들이 2층으로 올라가길래 그냥 따라 젊잖게(난 여행 복장으로 구질구질하게 보이기 싫어 와이셔츠에 양복 입고 다녔다) 같이 따라 올라갔다. 그런데 입구에서 제각각 운전면허증 같은 ID를 준비해서 손에 들고 있길래, 속으로 여기는 유명해서 개인별 ID까지 체크해서 입장시키는 모양이 구 나하고 생각했다.

그래 ID라면 나도 미국 운전면허증에 독수리표 여권도 가지고 있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 차례가 되어 입장권과    ID를 보여 주니까 갑자기 본토 말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주위가 시끌벅적 해졌다. 뭐라고 본토 말하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아 멍청하게 비시시 쪼개면서 서 있는데 젊은 총각이 불려 와서 영어로 알려주는데 나 보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오른쪽으로 돌아가서 입장하라고 하였다. 뒤에 서 있는 본토인들의 이해할 수 없다는 그 표정들을 뒤로하고 쪽팔림을 스스로 위로하며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물어보지는 않았는데 이 미술관이 요금을 3가지로 표시하고 있다. 기본은 8유로인데 거기다가 추가 관람료 해서 27유로가 있고 연 PASS 45유로가 있었다. 내가 간 이층은 내 짐작으로 두 번째 내지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미술관 입장해서 관람하고 있는데 나폴레옹 비슷한 초상화가 전시되어있어 막 보려고 하는데 본토 늙은 부부가 지나가면서 영감이 할매한테 한마디 했다. 행색을 보니까 도시인은 아니고 시골 농부 타입 같았다. 영감님이 마누라한테 그림을 가리키면서 “나폴레옹” 하니까 마나님이 “씨씨(그래)” 맞장구치며 흘낏 보면서 지나갔다. 나도 보고 싶어 그 초상화 옆에 번역된 해설을 보니 스페인 무슨 장군이었다. 하기야 스페인하고 불란서도 서로 앙숙인데 나폴레옹 초상화를 걸어 놓을 리 만무하지. 그렇지만 나폴레옹은 유명한 인물이야. 스페인 촌부까지도 알아봐 주니까.


미술관을 보고 나와 길을 건너고 있는데 어느 본토 여자애가 노트를 들고 나타나서 나한테 영어로 말을 걸었다. 어려 보이는데 금발을 한 피부가 하얀 백인이었다. 나보고 영어 할 줄 아느냐고 묻길래, 그래 조금 한다, 와 그러는데?  하고 물었다. 영어클래스 수업인데 인터뷰 질문이 있다나. 난 야 이거 내가 양복 입고 큼직한 캐논 카메라 들고 있으니까 본토 꽃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조심해야지 하고 마음을 크게 다잡아 먹는데, 그 순간에 여자 선생님이 등장해서 하는 말이, 내 학생인데 영어 인터뷰를 좀 부탁해요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면서 학생하고 내 사진을 찍어도 되냐 하기에 내 그 겁집어 먹은 생각이 절로 미안해졌다. 인터뷰 질문은 어디서 왔냐, 본토 여행은 처음이냐, 스페인 본 느낌이 어때요, 다시 올 생각이냐 등등. 그 여자 선생님이 사진 몇 장 찍어 갔는데 혹시 그 학교 교내 신문에는 안 나왔는지 매우 궁금하였다.

 



 

     스페인의 지방 자치제도


스페인은 총 50개 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50개 주를 지방색이 강한 17개 지방 자치제로 구분하여 지방색이 강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그중에서도 뉴스나 이슈에 곧잘 등장하는 몇 개의 지방 자치제를 알아본다.



안달루시아

안달루시아 지방 자치

인구수에서는 첫째를, 가장 남쪽 지역에 치우쳐 서쪽으로는 포르투갈과 대서양, 동쪽으로는 지중해를, 남쪽으로 지불알타 해협을 끼고 있어 면적으로는 둘째를 달리고 있다. 주도는 세비야(세빌)이다. 고대에는 페니키아 식민지가 몰락하고 카르타고(현재의 북아프리카 튀지니 지역)의 출현으로 안달루시아가 로마와의 주요 전쟁터가 되었다. 그 후 로마시대를 거쳐 서고트 왕국의 통치를 받다가 711년 북아프리카를 거쳐 지불알타를 건너 이베리아 반도로 침공한 이슬람 세력(북아프리카  무어인이 세운 사라센 제국)이 그라나다 왕국을 세워 1492년 카스티야 연합 왕국에게 축출될 때까지 근 700년 이상을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은 곳이다.


주요 도시는 주도 세비야를 중심으로 그라나다, 론다, 말라가로 스페인에서 주민 소득이 낮은 지역으로 예로부터 대지주 제도가 이어져 소작농이 대부분으로 가난을 못 벗어나고 있다. 주요 관광지는 세비야의 대성당과 알카사르 궁전, 론다의 누에보 다리, 말라가의 태양의 해변(Costa del Sol)과 피카소 마술관, 그라나다에 있는 무어 리쉬(Moorish) 건축의 결정체인 알람브라 궁전 정도이다.

   

 


바스크(Basque) 지방 자치

바스크 지방 자치

예로부터 서쪽 끝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남북으로 스페인계 바스크와 프랑스계 바스크가 둥지를 텄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바스크 종족이 제일 오래되었다고 한다. 원래 피레네 산맥에 살았던 원시인들이 그 후에 이주한 백인(스페인과 프랑스)과 혼혈되어 내려온 것으로 추정한다. 이 종족의 특징은 전투 종족으로 싸움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특수부대 그린베레의 전투모가 원래 바스크족의 전통모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원래부터 호전적이었는지 1930년대에 과격한 분리운동이 일어난 곳으로 그 후 수그러들었지만 독재자 프랑코 장군의 무지막지한 탄압 정책으로 이에 대항하는 망명정부(ETA)를 만들어 분리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카탈루냐 지방 자치와  함께 분리 독립을 위하여 현재 진행형이다.


일찍이 북유럽의 바이킹족들과 교류하여 그들로부터 조선술과 항해술을 전수받아 해안지방의 바스크인들은 17-8세기에 대서양을 건너 캐나다 근해 뉴펀들랜드까지 가서 당시 금값이었던 고래기름을 얻기 위하여 포경선을 보내기도 하였다.


주요 도시로는 스페인 제 1의 금융 중심지인 빌바오(Bilbao)와 국제 영화제로 유명한 산세바스티안, 스페인 내전 때 나치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게르니카가 있다. 주요 관광지로는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산 페르민 축제로 소를 풀어놓고 걸음아 날 살려줘 소리치며 도망가는 소몰이 축제와 9월에 세계적인 영화제가 개최되는 산세바스티안 영화제가 볼만하다. 그중에서 거의 죽어가는 공업도시 빌바오를 살린 것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으로 거금 1억 달러를 들여 완공한 구겐하임 빌바오 분관이 해마다 세계로부터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카탈루냐 지방 자치

카탈루냐 지방 자치

구석기시대의 인간이 거주한 유적이 있다. 다른 지역처럼 로마 - 서고트 - 프랑크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앞에서 약간 읊은 아라곤 왕국이 이 지역에서 크게 성장하여 나중에는 카스티야 왕국과 어깨를 겨룰 정도로 왕국의 힘을 키워 1469년 아라곤 왕과 카스티야 여왕의 결혼으로 두왕 국이 연합하여 스페인 통일 왕국의 기틀을 놓게 되었다.


주도는 영광스러운 바르셀로나로 주민 소득이 제일 높아, 바스크 지방 자치와 더불어 스페인 경제를 이끌고 있는 쌍두마차인 동시에 바스크와 마찬가지로

카탈루냐 독립운동을 꾸준하게 해왔다. 2014년 주민 투표에서는 81% 이상 독립 찬성하였으나 중앙정부에서는 불법선거로 불인정하였다. 2017년 독립 국민 투표에서는 92% 찬성을 받아, 2017년 10월 27일 카탈루냐 공화국을 선포하였으나 중앙정부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카탈루냐 지방 자치 깃발

스페인어로 세녜라(Senyera)라고 하는 지방 자치 깃발이다. 원래는 이 지역의 정통성을 잇는 아라곤 왕국의 깃발을 계속 사용하는 셈이다. 깃발의 탄생에는 다음과 같은 비화가 있다. 전투 중 용감하게 싸운 어느 가문의 백작이 죽어가면서 노란 황금 방패에 피 묻은 네 손가락을 찍은 것이 바로 새녜라의 효시라고 한다.


중요 관광지는 스페인 최고의 명소 바르셀로나이며

교외에 있는 몽세라트(Montserrat) 수도원도 빠질 수 없는 관광지다. 그 외 카탈루냐 지역의 큰 도시로는 Lleida, Andorra, 그리고 옛 로마 유적지가 있는 해안마을 Tarragona가 있다.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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