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킴 Jan 07. 2020

지노 배낭여행기 - 지중해를 찾아서 5

피레네 산맥을 넘어

2009년 10월 28일(화) 맑음


      묵언수행을 하는 구도자인가?


프랑스쪽 바닷가의 교회당

종교인들의 영성 훈련 중의 한 가지 방법으로 묵언수행(默言修行)이 있다. 가톨릭의 베네딕트파 수도원같이 특별한 수도원은 금욕생활, 기도와 묵상, 성경공부와 육체노동까지 포함한 묵언수행이 일상생활규칙으로 정해져 있다. 불가(佛家)에서도 독특한 묵언수행 중에 무문관(無門關) 정진이라는 게 있다. 글자 그대로 <나갈 문이 없는 문의 빗장>이란 뜻으로 영어로 옮기면 <The Gateless Gate> 일 것이다.


중국 송나라 선문(禪門)에서 시작된 선불교의 독특한 수행법으로 겨우 몸하나 뉘일 수 있는 두 평 남짓한 독방 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채우고, 일종식 (一種食)으로 하루 한 끼의 공양만으로 장단기간으로 정진하는 수행법이다. 문이 있어도 문이 없는 것처럼 자신을 가두어 놓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수련하는 방법인 것 같다. 그러나, 때때로 불가에서는 계명을 어긴 불승을 징계하는 한 가지 수단으로써 무문관 수행을 강요했다고 하니 징벌으로도 좋은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25일 미국을 떠나 오늘까지 삼일이 흘렀는데 내가 마치 묵언수행을 정진하는 구도자처럼 말을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삼일 동안 말을 제일 많이 한 것이 히드로 공항에서 입국심사받을 때였다. 그러고 나서, 예약한 렌터카를 픽업하러 갔을 때

몇 마디 기본적인 렌트 조항을 확인하고는 그 후론 말을 한 기억이 없다. 전화는 불통이니 오고 갈 말도 없고, 주행하는데 필요한 가스 채울 때는 말 대신 크레딧 카드만 넣으면 되고, 허기질 때 빵이나 주전 버리 살 때도 진열대에서 집어서 계산대에 올려놓으면 되니까 말은 필요치 않았다. 그래서 때론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인가? 그게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나의 삶에 대한 벌을 무문관(無門關) 수행으로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두 가지 조건이 거의 들어맞았다. 한 평도 안 되는 차 뒷좌석에서 구부려 새우잠을 잤고, 일종식 (一種食)으로 싫어하는 빵에 배가 디지게 고플 때에만 손이 갔고, 운전하는 시간 내내

패배한 바둑 복기하듯 지나온 잘못된 나의 삶을 마치 소가 여물을 반추하듯 곰곰 되돌려 씹어 보았다. 이런 벌을 앞으로 40일 이상 더 받아야 하는데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



구원의 십자가


프랑스 시골의 교회당


교회당 창문의 허접한 빛바랜 스탠드글라스




   국경 근처의 바닷가


대서양 바다가 보이는 링크 골프장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국립공원

거의 국경 근처에서 프랑스 쪽으로 있는 국립공원인 걸로 기억되는데 지명을 모르겠다. 공원 안의 캠핑장이 높은 언덕 위에 있는데 그 아래로 대서양이 시원하게 확 퍼져있고, 눈부신 백사장이 활대처럼 굽어 반월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옆으로 푸른 골프장이 링크 스타일로 오목조목하게 잡혀있어 절경이었다. 여기 캠핑장에서 차로 야영을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는데, 아직 해 뿌리가 많이 남아 있어 근처 마을 구경이나 하고 피레네 산맥을 넘어 마드리드로 가려고 마음을 바꿨다.



국경 근처의 바닷가 프랑스 마을

보르도에서 내려오면서 지도를 보니까 스페인하고 맛 붙은 국경지대에 바닷가 마을이 여러 개 있었다. 차도로도 바닷가를 쭉 따라 내려가면서 이어져있어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시간이 있어 내려오면서 쭉 다 둘러봤는데 어떤 마을은 들어가는데 입장료로 1- 2유로 징수하는 곳도 있었다. 오밀조밀한 유럽풍의 붉은 기와의 지붕들이 푸른 잔디와 파란 하늘과 어울려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피레네 산맥을 달빛을 벗 삼아 넘어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로 내려가려면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산길은 미국 록키산맥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완만했었다. 국경 근처의 바닷가 마을을 구경한다고 돌아다녔더니 피레네 산맥으로 들어갈 무렵은 해가 늬웃늬웃 서산으로 넘어갈 시간이었다.

길은 록키산맥처럼 그런 꼬부랑 할매같은 구곡 양장은 아니고 완만한 고갯길로 산맥을 넘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레네 산맥에 오밀조밀하게 들어앉은 집들이 저녁식사 준비를 나무로 하는지 집집마다 굴뚝으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이 참 평화스러워 보였다


여기서도 국경을 통과하는데 여권 보자는 사람도 없고 해서 편하였다. 피레네 산맥 안으로 들어서니 앞뒤로 다 산이다. 원래 산속에서는 산을 볼 수 없는 법인데 작은 산줄기가 연이어지다 보니 산이 보이는데 돌산이 대부분이었다.


밤중에 호텔에 들어가서 자기도 어중간해서 밝은 달빛을 벗 삼아 야반도주하는 빚쟁이처럼 피레네 산맥을 훌쩍 넘어 큰 도시 마드리드로 들어와서 인터넷 카페에서 처음으로 몇 자 소식을 절친들에게 전하고, 인터넷에서 마드리드에 있는 민박집을 찾아 들어갔다. 이로써 만 3일의 묵언수행을 마무리한 셈이었다. -j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