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 유산지 - 트리니다드(Trinidad)
2011년 8월 8일(월) 쾌청
트리니다드를 가 보고자 하는 이유는 일단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지정지이고 마지막 목적지인 산티아고더쿠바(SANTIAGO DE CUBA)로 가는 길이니까 한번 둘러보고 가려고 했다. 내가 쿠바 오기 전에 선정해 놓은 리스트에도 있고 해서 더더욱 가보고 싶었다. 산은 넘었지만 물은 건너지 않아 해가 떨어지고 땅거미가 훨씬 지나간 후에야 호텔에 도착했다.
밤늦게 트리니다드에 도착
이 도시도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 형성된 도시로 당시 카리브해에서 설탕과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트리니다드에서 북동쪽으로 10마일 정도 올라 가면 산자락 밑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저 있는데 그곳에서 사탕수수 농장이 집중적으로 모여있어 아프리카에서 데려다 온 노예를 부려 그 넓은 농장을 경영했다고 한다. 농장의 총면적이 104 평방마일이라고 하니 차로 달려도 1시간 이상씩 각각 동서 남북으로 달려야 하니 매우 광대한 사탕수수 재배지다. 그래서 여기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지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시간 관계상 우리는 남쪽으로 길을 잡아야 하는 이유로 농장 유적지는 못 가고 트리니다드 시내만 보기로 하였다.
트리니다드 도시가 문화 유산지로 지정된 것은 식민지 시절에 형성된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가옥들이 잘 보전되어 있고 COBBLESTONE 거리라 해서 작은 조약돌을 촘촘히 박아 길을 만들고 여러 가지 다양한 색상의 가옥들이 옛날 전통을 이어내려오고 있다 해서 1988년 문화 유산지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이런 조약돌 거리가 있는 곳이 브뤼셀 브루지인데 차를 타고 가면 투둘투둘 엉덩이를 때려서 농담으로 한 말이 생각난다. 혹시 엉덩이에 종기가 났거나 치질 있는 사람은 브루지에 가지마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그런 사람은 트리니다드에 가면 차를 타지 말고 걸어서 다녀야 한다.
일단 지붕 구조가 특이한데 우리나라 한옥처럼 서까래( WOODEN BEAM)를사용해서 간격을 두어 더운 열기를 직접 천정에 닿지 않게 하고 붉은 TILE(우리로 치면 기와)을 덮는 것이다. 사진에 창문이 작아 잘 안 보이는데 그들 양식이라고 창문을 나무로 짜는데 가로 세로 모양으로 길게 직사각형 모양이다. 어쩌면 여기에 창호지만 바르면 한국의 전통 창문 하고 비슷해질 수도 있겠다. 이것을 보고 한국 문화재 관리청이 지붕 양식과 나무 창문 모양이 한국 양식을 본받아 쿠바 식민지 시절에 사용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충분히 그런 가능성이 있는 소리다. 그 근거를 대면 이렇다.
멕시코 애니깽이 쿠바로 건너가
미주 한인 이민의 역사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시작된 것이다. 찾아보니 1903년 1월에 약 100명의 이민 1세가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입항했다고 한다. 출발은 조선의 제물포항으로 2년 뒤 약 1000명의 조선 노동자가 멕시코로 이민을 갔는데 이 이민역사를 다룬 영화가 "애니깽"이다. 애니깽은 HENEQUEN의 멕시코식 발음인데 멕시코가 원산지인 식물로 잎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열대 식물이다. 잎모양이 용의 혀 모양같다해서 우리는 용설란으로 부르고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이 애니깽에서 추출되는 섬유는 굵고 질겨서 선박용 밧줄의 재료가 된다고 한다. 처음으로 이민 간 우리 조선 노동자들은 무더운 날씨와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무척 힘들게 일을 했지만 현지 노동자보다도 밑동까지 잎을 잘라 내어 생산성을 향상해 농장주들이 기뻐했다고 한다.
1997년 발표된 영화 애니깽은 바로 이 이민자들의 애환을 담은 것으로 장미희와 임성민이 주연으로 열연했다. (의욕이 너무 큰 영화라 현지 촬영까지 했는데 돈만 깨진 영화로 기록된다)
그런데 이 초기 천명 이민자 중 일부가 쿠바 혁명 주역들 피델, 라울, 체 게바라, 카밀로 시엔푸에고스들이 배 타고 혁명하러 쿠바로 건너갔듯이 우리 조선 노동자들도 배 타고 쿠바로 재이민 갔다. 그때가 1927년이었다. 피델 갸들보다 29년 먼저 건너간 셈이다. 쿠바로 이주한 그들이 쿠바 각지로 흩어지면서 제각기 생활의 기반을 잡고자 노력했겠지. 그중 일부는 사탕수수 농장으로 흘러 들어가 이 트리니다드까지 정착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중에서 조선에서 집을 지어 본 사람이나 기와 이어 본 사람들이 쿠바인들에게 한 수 배워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에서 제작된 특집 다큐멘터리 "쿠바의 한국인"이라는 방송을 봤는데 현재 쿠바에 꼬레아 5세까지 약 700명 정도의 재쿠 동포가 있단다. 물론 전부 쿠바인과 동화되어 모습에서는 한국인을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몸에 조선인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중 나이 많은 할무이는 김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여행 기간만 좀 길었어도 재쿠 동포를 한번 만나볼 수 있었을 텐데. 이 과제도 다음으로 미룬다. 자, 삼천포에서 빠져나와 다시 진주로 가자.
위에 보이는 길들이 오리지널 조약돌길이다. 차를 타고 한번 가 본 사람은 알 거다. 궁디(엉덩이)가 얼마나 아픈지. 쿠바의 여러 사진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영어 한마디로 표현하면 SLIM이다. 지나가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몸통도 빼빼 말라있고, 풀어놓고 키우는 가축들도 전부 영양실조처럼 말라 있고, 심지어 전깃줄이 지나가는 전봇대도 가늘다. 오직 하나 예외는 내 가이드 자밀만 통통한 것 같았다.
이런 집들의 색채가 파스텔톤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는데 원래 식민지 시절에도 이런 모습이었다고 한다.
트리니다드에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볼거리가 있었지만은 시간이 없어 우리는 앙꼬만 보고 다음 길로 가야 했다.
쿠바 살사춤 공연을 보고
여기서 쿠바의 멋진 춤사위 몇 장을 감상하고자 하니 특히 남정네들은 옷맵시 단정히 하고 앉아서 봐야 한다. 춤을 좀 아는 사람들은 쿠바의 춤 살사를 알고 있다. 나도 미국에서 돈 주고 살사춤 4시간을 배웠다. 그런데 쿠바 살사춤은 다른 어느 지역의 살사 춤하고 틀리다고 한다. 특징은 무지 빠른 템포에 있다. 살사 외에 쿠바에도 그들의 전통 춤이 있다. 쿠바 전통 춤은 스페니쉬 춤에 아프리카에서 수입된 흑인 노예들이 가지고 온 아프리카 전통 춤사위가 만나 잉태된 새로운 춤이다. 보니까 아프리카 토착인들이 허리를 굽히고 다리를 양쪽으로 들었다 놓았다 하는 춤사위가 나온다. 이런 전통 춤을 운 좋게 짜배기로 관람했으니 트리니다드에서는 수지가 맞았다고 할 수 있겠다.
어제 저녁 호텔에 들어가니 벌써 9시가 넘었다. 첵인하는데 호텔의 야외 수영장 근처에서 풍악소리가 요란했었다.
가이드왈 식사와 음료수(맥주, 칵테일, 양주, 럼 전부) 100% 공짜고 24시간 서브한단다. 해변 근처에 있는 별 3개짜리 호텔인데 2 명에 74 CUC( 1명은 55 CUC) 받는다. 밤에는 몰랐는데 아침에 나가보니 카리브해 바닷물이 넘실넘실 흑사장에 넘친다. 일단 짐을 방에다 밀어다 놓고 풍악소리 나는 데로 가 보니 손님 한 30여 명이 앉아 있고 앞에는 공연 무대가 장치되어 있는데 1부 가수의 가라오케 공연이다. 밴드는 없고 가수가 가라오케에 맞춰 노래를 선사하고 있다. 다음으로 남녀 무희 2명이 나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데 내가 아는 곡으로 무지하게 반가웠다.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다. 너 이 곡 제목이 뭔지 알아? THE PHANTOM OF THE OPERA. 1995년 뉴저지 S그룹에 근무할 때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원판으로 관람한 사람이라고 잘 난 체 했다.(실제로는 회사에서 간부들 보라고 표 끊어 주기에 마지못해 보러 갔는데 일단 재밌게 봤다.) 다음 공연이 쿠바 살사춤인데 이건 내가 메모리 하고 있는 스텝 하고는 180도 틀린다. 아니 일단 너무 빨라 스텝을 하나하나 체크할 겨를이 없다. 조그마한 키에 군살 하나 없는 무희가 빠른 비트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데 상체를 좌우로 꼬울 때는 갈비뼈가 왔다 갔다 한다. 맨 앞 좌석에 앉아 똑딱이로 몇 장 찍었는데 시원치 않다. 그래도 즐감하고 흥감해라. 흥감은 흥분해서 감상하라는 소리가 아니고 분에 넘치게 감상하라는 소리니 오해하지 마라.
사회자는 쇼를 순서대로 영어반 스폐뇰반으로 진행한다.
쿠바 살사춤 시범을 보여 줄 조교 무희
관광객 중에서 차출된 남자가 두 손을 뒤로하고 무희의 가슴 중앙에 꼽힌 수건을 입으로 빼는 게임인데 관람객들을 즐겁게 해 주려고 만든 코너인 것 같다. 그런데 남자가 입으로 수건을 빼려고 하면 무희는 살사 특유의 비틀기 동작으로 아슬아슬하게 넘어간다. 상징적으로 말하면 수건을 뺏으려고, 또 그렇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빠지는 모습이 늑대가 토끼 한 마리 사냥하는 것 같은데, 비틀기 잘하는 토끼가 결국은 목숨을 건지는 게임이었다.
열심히 살사 때리고 있는 무희의 멋진 춤사위
맛배기로 조연급 무희 2명이 경쾌한 살사 음악에 맞추어 한바탕 시범을 보인 후에는 남녀 주연급 무희와 무남이 등장하여 현란한 춤사위를 뽐내고 있다.
무희들의 열정적인 살사댄스 시범 후에는 후끈 달아오른 장내 분위기를 오늘의 가라오케 초청 가수가 차분하게 식혀주고 있다.
가라오케 노래실력은 특급이다.
초청 가수의 가라오케 공연 후 다시 시작되는 살사의 향연
이 계속된다.
주연급 무희가 노련한 살사 춤사위를 보여준다. 특히, 몸통 비틀기로 좌우로 허리를 돌릴 때마다 갈비뼈가 확연하게 보인다. 맨 앞좌석에 앉아서 흥감하며 관람하였다.
남녀 무희가 주고받는 쿠바 살사 춤사위가 현란하다. 남자가 춤 동작을 한번 세게 보여주면 그에 따라 여자 무희가 응답하는 형태로 살사의 특징인 아래위 따로 비틀기로
응답하고 있다.
주연들의 계속되는 무대 공연으로 장내 분위기는 무르익어 가고, 이를 관람하는 관광객들은 모두들 흥감하고 있었다. 무대 뒤쪽 바닷가에서는 카리브해의 파도가 흑사장을 때리는 파도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거의 최고점에 오른듯한 무희의 표정.
쿠바 살사를 배우고 싶은 분은 오른손, 왼손 동작에 유의하시고
쿠바 전통 춤의 한 사위. 허리를 굽히고 저렇게 다리를 벌린 상태에서 다리를 번갈아 앞으로 올렸다가 내리는데 아프리카 토인들 춤하고 유사하다
쿠바 전통춤이 끝나고 나면 마지막으로 관광객들을 위한 보너스 시간이 있다. 살사 기본 동작을 배워 준다고 나오라고 하는데 아무도 안 나간다. 동서양을 돌아다녀 보아도 이런 시범 조교 역을 찾을 때에는 모두들 쭈빗거리며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이노무 사진만 안 찍어도 한 수 배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는데. 다 독자들 때문이다.
계속 보여주는 기본 동작들. 완투뜨리포. 짝짝... 짝짝짝
이무희는 머리 부분이 좀 크게 나온 거 같다. 그래도 쭉빵이다.
관람이 끝나도 사람들은 앉아서 공짜술 마시기에 정신이 없다. 나도 맥주에 모히토를 서너 잔 마셨다. 계산 잘하는 내가 열심히 주판을 굴려봐도 호텔이 별로 남지 않는 장사인 것 같은데 지금은 비수기이니까 그렇고, 아마도 연말 성수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을 것 같다.
미리 얘기해두면 다음 날 다른 도시의 다른 호텔에 갔는데 저녁에 보니 같은 프로그램인데 출연자만 다를 뿐이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호텔이 AMIGO CLUB으로 체인점이란다. 쿠바 51% 스페인 49% 합작회사라는데 그래서 동일한 프로그램을 돌리는 모양이다. 출연진은 총 7명이다. 사회, 디스크자키, 주연급 남녀 무용수와 보조 무희 2명 그리고 가라오케 가수. 어찌 보면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남한에서 방북하면 모란봉 초대소에서 북한 전통 노래 및 춤을 보여주듯이 이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저런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관광객 유치에 열심인 것 보면 외화벌이에 지대한 혁명과업을 완수하고 있는 무용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무대 앞에서 보니까 그 더운 날씨에 그렇게 열정적으로 춤을 추니 온몸에 작은 땀방울들이 송송히 맺혀있다. 쉬운 직업은 아니겠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직업이니 무얼 해도 평등하게 배분받는 체제이니까 이게 나은지 저게 나은지 가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체 게바라 말대로 혁명 과업 달성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 앞으로 행진 행진.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