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로 가는 길
2011년 8월 8일(월) 쾌청
간 밤에 우리가 넘어 온 산들은 그리 험하지는 않았지만 산티아고쪽으로는 꽤 높은 산들이 겹겹이 둘러 싸여 있다. 그 산자락이 끝나면 바닷가 쪽으로 길게 해변이 놓여 있다. 우리가 묵은 호텔도 그 활처럼 굽어진 해변 중간 쯤인 바닷가 옆에 있는데 침대에 누워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자장가삼아 잠을 청해야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호텔 밖으로 나가 보니 벌써 햇살이 따끈따끈하다. 방가로 사이로 서있는 키 큰 야자수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거린다. 야자수 나무를 지나니 탁 트인 바닷가가 나왔다. 그렇게 가까워서 밤새도록 파도소리가 들렸나보다. 백사장이 아니고 흑사장이다. 그렇게 검은색은 아니지만 거무틱틱한 모래사장이 길게 펼쳐저 있다.
밤새도록 자장가를 불려 주었던 그녀다. 바로 호텔 뒷마당인 셈이다. 여기 저기 긴의자가 놓여 있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다. 검은 모래가 특이하다. 여기도 카리브해의 한 부분이다. 이 바다 남쪽으로 쭉 달려가면 자메이카 섬나라다.
햇살이 야자수 잎을 통과하여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서 굴절되는 것이 꼭 프리즘 속을 들어다 보는것 같다. 호텔은 방가로식으로 한 동에 방 4개를 아래 윗층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니 호텔 로비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 방까지는 꽤 걸어 가야한다. 손님이 얼마나 오는지 알아 보려고 저녁에 체크익하면서 카운터 아가씨에게 물어 보니 한 30여명 되는 모양이다. 그 중에 미국인이 몇 명있는지 물어보니 오늘 저녁엔 나빼고 2명이라고 한다. 하여간 아직은 유럽과 남미쪽에서 오는 손님이 대부분인 모양이다
호텔 옆에 설치한 태양열 집전판이다. 여기는 일조량이 다른데보다 훨씬 풍부하니 태양열을 많이 이용하는 모양이다. 그렇게해도 전기 공급이 충분하지는 않아 전기 제품을
넉넉하게 사용할 수 없는 걸보니 관광 호텔같은 곳은 저렇게라도 해야만 시설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비슷한 백사장에서 우리도 옛날에는 여기에다 텐트치고 모닥불지펴 놓고 통키타 때리면서 밤을 하얗게 새워 버리고, 이런 아침이 찾아오면 그 때서야 한 벌 벗은 누에고치처럼 허물허물해져서 텐트 속으로 슬며시 기어 들어가 잠에 떨어지곤 했는데. 우리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기념으로 카리브해에 발 한번 담가 보았다. 미국서 산 8불짜리 슬리퍼가 쿠바 산하를 내내 누볐다. 쿠바에서 박은 유일한 인증샷이다.
수영장옆에 간이 공연장이 보인다. 야자수 그늘 아래가 시원한지 그 밑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어제 밤에도 판에 박힌듯한 공연을 저기서 한바탕 춤판을 벌였다.
호텔에 투숙한 단체관광객들이 아침에 어디로 구경하러가는 모양이다. 이런 신식 관광버스는 전부 중국제다.
호텔 정문앞에 있는 화단에서 찍었는데 이파리에 뭐만한 메뚜기가 붙어 있다.
가야 하나? 접어야 하나?
아침을 대강 챙기고 국립 공원으로 가는 길을 물어 보니 어제 밤에 넘어 온 산길을 다시 올라 가야 한단다. 지형이 그리 만만한 공원이 아니다. 국립공원 정상까지 가려면 다른 가이드를 고용해야 된단다. 난 지금도 가이드있는데 또 가이드를 사라고. 완전 가이드 풍년이군만. 그리고 등산허가도 받아야 한단다. 그 허가야 돈만 내면 되거니까 별 문제는 없는 것이다. 가이드와 상의해 보니 다시 산으로 올라 가서 공원으로 들어 가는 것은 시간상으로 무리란다. 지금 여기에서 산티아고까지도 반나절이 족히 되는 거리인데 어떻게 반나절을 다시 돌아 가서 국립공원으로 갈 수있을까. 여행 책자보니까 공원안에는 게릴라 본부로 사용된 막사가 아직도 보전되어 있고 박물관, 그리고 당시 야전 병원으로 지으진 캠프도 있고, 체게바라가 당시 정훈장교로도 활약했는데 게릴라들에게 정신교육을 시킬 목적으로 단파 라디오 방송을 시도한 모양인데 그 터도 잘 보존되어 있다고 나를 꼬드긴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신차리고 내일 아바나로 돌아 가야하니 우리는 공원 남쪽 해안도로를 따라서 산티아고까지 가기로 하였다. 가이드 이녀석도 이제 지쳤는지 빨리 아바나로 돌아 가고 싶은 눈치가 역역하다. 아님 하루에도 서너번씩 여자 친구에게서 전화오는데 개가 빨리 오라고 했는지도 모르지. 하여간 이런 경우를 봐도 여행은 혼자서 자유롭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지멋대로 돌아 다녀야 그 맛이 충분히 우러 나오는 법이다. .
어제 지도를 한번 우려 먹자. 지도에 난 노란 선이 주(州) 경계선이다. 호텔이 있는 우리 출발점이 MAREA DEL
PORTILLO가 맨 아래 해안도로에서노란선 조금 왼쪽에 희미하게 보인다. 지금부터 이 해안도로를 따라 산티아고까지 갈 예정이다. 진짜 절경은 반대편 해안 도로가로
GRANMA DECEMBARCO 국립 공원가는 길로 유네스코 자연 유산지로 지정된 곳이다.
우리의 목적지 SANTIAGO DE CUBA가 지도에 보인다.
해안도로로 난 길은 그리 좋은 상태는아니다. 군데 군데 종기난 머리에 멀칼빠져 있듯이 구멍이 숭숭 나 있어 빨리 달릴 수는 없다. 점점 길이 바닷가쪽으로 이어져간다. 바다가 훤히 보였다가 다시 길이 산속으로 들어 가면 바다는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려면 바다가 잠시 헤어진 님처럼 서운하고 보고 싶다가 길이 산등성이를 돌아 바닷가로 향하면 돌아온 님처럼 바다가 그냥 내 품속으로 달려든다. 이런 장면이 계속된다. 갔다가 다시 돌아 왔다가 하면서, 때로는 길이 해안쪽으로 난 높은 절벽으로 나 있어 잠시 차를 세우고 절벽 위에서 옆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가 지나온 길들과 해안 백사장이 하얀 파도에 등뒤에서 계속 깨지고 있었다.
산구비를 돌면 이런 비슷한 풍광이 눈을 잡는다. 이태리 아말피 해안과는 비교할 수 없지마는 그래도 여기의 산과 바다는 거의 원시 수준 그대로다. 인공물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순수함이랄까. 찍어서 맛보면 아말피해안하고는 틀린 맛이다.
가다 보면 마을 꼬마들이 해안가에 삼삼오오 모여 멱을 감고 있다. 이런 산골짜기에도 사람들은 둥지를 트고 살아 가고 있다. 그들에게 의식주만 잘 해결되면 자연 풍광이 뛰어난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그런 기본이 해결되지 않으니 이방인이 와서 보기에도 딱하게 여기는 것이다.
해안쪽에서 바라본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 줄기. 저너머 어디에선가 바부도스(Babudos) - 수염을 기른 그들이 혁명 완수라는 과업을 위하여 와신상담 하였다는 말인가?
멕시코에서 배로 상륙한 82명의 혁명군이 주민 신고로 출동한 정부군의 총격에 죽거나 생포되고 겨우 22명의 혁명 게릴라가 산 속으로 숨어 들어가서 혁명 과업 완수를 위하여 절친부심하여 마침내 뜻을 이룬 곳이다.
세계적인 모델 후보감들
해안도로에서 무임승차한 모녀. 아무 것도 없는 해안길을 달리고 있는데 짐을 머리에 이고 걸어가는 모녀를 보고 차를 세우고 태워 주었다. 차를 공짜로 태워주는 대신에 나중에 기념 사진을 한 장 부탁해 볼 계산된 속셈으로 접근한 것이었는데 지나고보니 훌륭한 기념 사진이 되었다. 아지매 몸매도 섹시한데 사진 찍는데 잡아주는 포즈가 프로 모델같다. 지금까지 내가 찍어본 모델중에서 가장 완벽한 포즈를 잡은 아지매다. 이름도 성도 물어보지도 않았다. 쿠바 고향이 남쪽인 어느 해안 마을에서 살고 있다.
아지매가 사는 마을인것 같다. 바로 도로변에 있는데 지붕도 그냥 볏짚으로 이어져 있고 외벽도 엉성하다. 그래도 전깃불은 들어오는지 전봇대가 서 있는데 이노무 쿠바 전봇대마저도 섹시하게 가늘다. 늘상 보던 세계테마기행였으면 사전 양해가 되어 아지매 집에도 초대받아 가서 집도 구경하고 사진 촬영도 가능했겠지만 이런 형편에서는 그런 처지가 되지 못하였다. 거절 당하더라도 그렇게 부탁이라도 한번 해 볼걸하고 모녀와 헤어지고 나서는 후회를 하였다.
산길에서 마주친 말탄 쿠바 왕자. 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잘 빠진 말에 머리는 약간 뽀글머리에 슬림한 몸매로 말을 타고 길을 가는 것을 보고, 훌륭한 피사체임을 단박에 알아보고 차를 세우고 기념 촬영을 부탁하였다. 시골로 내려 가니까 말이나 달구지로 짐을 옮기는 농민들이 상당히 많았다. 보니까 너무나 부러워 나도 미국 집으로 돌아가서 승마나 해 볼까 하는 그런 부르조아적인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해안도로의 경치는 수려하고
제주도처럼 화산암같은 바위섬도 간간이 보이고
해안도로가 산기슭을 따라 아래로 내려 가기도하고 때로는 산등성이를 치고 올라가 멀리서 보아도 길이 산자락을 한바퀴 휘돌아 구비친다. 저렇게 산기슭을 따라 해안쪽으로 뚤린 도로는 산티아고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물색이 남색이냐 남색이 물색이냐. 물이 맑아 물색이 코발트색이다. 여기는 커리비안 바다라서 그렇다치더라도내가 다녀본 바다 중에 이와 비스무리한 색감을 지닌 바다는 지중해의 그것과 남태평양에서 보았던 바다이다. 남태평양의 바다는 여기에다 한 술 더뜨서 섬주위에 자생하는 산호초 덕분에 밀려오는 큰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활까지 해 주니 다른 어느 곳보다 조용하다.
이런 시골길에도 지도자에게 따리까는(비위맞추는) 문구를 새겨놓았다. VIVA FIDEL y RAUL(피델과 라울 영감 만수무강하세요.) 저 글자가 순진무구한 이 산수를 확 망쳐 놓았다. F.M.C는 무슨 단체 약자라 한다.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