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로 가는 길
2011년 8월 9일(화)
호텔에서 산티아고까지 거리는 200킬로 안팎인데 길 상태도 좋지 않고 중간 중간 쉬어 가다 보니 말그대로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이다. 마치 우리 인생살이같이 살아도 살아도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이런 외진 산길에도 간간이 사람들이 사는지 길을 건너는 염소무리들이 자주 보인다. 어미를 따라 나선 새끼 꼬락서니가 잘 못얻어 먹어서 그런지 웬만한 강아지 새끼보다 몸집이 작다. 하여간 여기 쿠바에서는 모든 것들이 SKINNY하다. 사람부터 말, 돼지, 염소, 개, 소까지 전부 다 날씬하다. 보기에는 참 좋다. 날씬한 것이 똥배보다 좋고 삼겹살보다 좋다. 풍족에서 얻어지는 것들이 여기 와서 보니까 미덕이 아니고 그렇다고 죄도 아니고 단지 보기 흉함이다. 풍족한 삶( 영양상태나 먹거리면에서)이 가져다 주는 것은 비만말고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 허리춤에서 한 주먹 잡히는 비게덩어리도 풍족에서 오는 부산물이 아니고 무엇이냐. 돌아가면 일단 적게 묵어 보자. 그래서 날씬한 것이 미덕이고 자랑이고 나의 새로운 혁명이 되도록 노력해보자.
이런 해안 바위산을 누가 칼로 싹둑 오려갔는지 한 쪽은 휑하니 속살이 드러난 채로 남아있다. 그래도 잘려 나간 상처만 부여잡고 묵묵히 앉아있다.
산 뒤에 산, 그 산 뒤에 또 다른산, 그 다른 산 뒤에 또 다른산들이 겹겹이 앉아 있다. 활대처럼 굽어진 해변에서 그냥 철석대는 파도만 바라봐도 내 몸은 이미 물 속에 잠긴다.
차를 세우고 해변가로 내려 갔다. 파도에 시달려온 조약돌이 너무 탐나 딱 세 알만 골라 가지고 왔다. 이번 여행의 유일한 쿠바나 수비니어가 되었다.
조금 가다보니 이름없는 카리브해 해수욕장을 만났다. 여기에는 땅콩 소주파는 아지매도 없고 바가지로 덤탱이 쒸우는 악덕 아이씨도 없지만 쿠바 인민들은 즐거운 물놀이에 마냥 행복하다. 모두들 점심은 제대로 묵고 노는지.
소풍 나온 염소 가족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다닌다. 그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새끼 염소로 몸매는 강아지만 하다. 인민도 충분히 먹지 못하는데 가축들이야 오죽 할까봐
시인의 마음이 되어
산티아고가 가까워 오는지 저 멀리 빨간지붕이 보이는데 가서 보니까 호텔이다. 산티아고에서 여기까지 관광버스가 다니는지 중국제 삐가뻔적한 관광 버스가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마른 나무 가지에서 떠러어지는 자그언 잎새에 하나
그어 대에가 나무라 해도 내가 내가 잎새라 해도.
우리들의 사이엔 아무것도 나믄게 업서어요................
한경애의 옛시인의노래. 그 노랜데 이 나무를 보니까 그 노래가 그냥 입에서 흥얼거리더라. 나도 옛시인이 된 모양으로 머리에서 이 유행가가 그냥 그려졌다.
섬도 아닌 섬인다. 물깊이가 정강이 정도에 오는 수준이다. 배도 없이 걍 걸어서 왔다 갔다하는 모양이다.
또 다른 관광호텔의 빨간 기와지붕이 저 멀리 보인다. 우리의 목적지 산티아고가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보니 한시라도 빨리 산티아고에 가서 몇 군데 구경하고. 밤을 새워 아바나로 올라 가야하니 시간을 재촉하여 길을 서두러야 했었다.
가다가 야자수 아래서 풀을 뜯는 말을 보았다. 이 정도 풍경에서 노는 말은 복받은 말이다. 근데 말 전신에 문신을 박았다. S자를 많이 박았는데 주인 이니셜 표시모양이다.
호사다마는 여기서도 찾아오고
산티아고 가는 길이 진짜로 길다. 그래서 내가 독자들한테 사진 한장이라도 더 뵈어 줄라꼬 하다보니 여행기가 죽죽 늘어저, 작년에 본 엠비시드라마 <에덴의 동쪽>처럼 엿가락 늘어지듯이 길어진다. 해서하소서. 해서는 바다같이 넓은 용서란 폼나는문자다. 각설하고 중간에 사고가 생겼다. 해안길이 때로는 완전히 바닷가로 내려가 돌맹이 틈새로 난 길을 달리다가 빵꾸났다. 다행히 스페어 타이어가 있어 잽싸게 갈아 끼우고 어느 밧데리 광고마냥 계속 갔다.
가다가 목이 마른지 가이드 녀석이 차를 세우드니 허름한 가게로 들어 가서 쥬스 두잔을 주문하는데 보니까 사탕수수즙이다. 조그마한 기계에 사탕수수를 집어 넣고 손잡이를 수동으로 돌리니 사탕수수물이 찔끔찔끔 나온다. 그걸 큰 양동이에 고이게 해 놓고 그 안에 얼음덩이를 집어 넣어 시원하게 만든다. 위생점수는 CERO(ZERO)인데 달콤하고 시원한 꿀차로는 110점이다. 연거푸 2잔 때렸다. 가이드 녀석이 지가 스스름없이 돈을 내길레 내심 기특하고 고맙게 생각하면서 물어 봤다. 얼마고. 그냥 싸다하길레 또 물었다. 얼만데. 5 센트라고 했다. 그러니까 미화 1불로 20잔을 살 수 있다는 거다. 원화로 환산하면 50원이다. 졸라 싸다. 순신간에 그 녀석의 고마움도 없어지고 그냥 가서 1불 내고 20잔 퍼 마시고 싶었다.
여기 아들은 물통들고 사러 온다. GUARAPERA가 사탕수수즙이란다. 맛은 20대 초반에 해본 첫사랑과의 첫키스같이 달콤하다. 그런 입맞춤같이 자꾸 자꾸 하고(묵고)싶었다. 많이해도 된다. 미화 1불에 내고 20번 입맞출수 있다. 그런데 만해 한용운샘은 첫키스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읍니다."
여러분들도 이 시를 찾아보고 날카로운 첫 키스가 무얼 내포하는지 연구들 해보자.
드뎌 산티아고 듸 쿠바로
드디어 사티아고듸쿠바 시내로 들어섰다. 쿠바 제2의 도시라 하지만 변두리는 전부 이런 수준이다. 산티아고에 들어 서자 마자 우선 차 발통부터 땜질해야 다음 빵꾸시에 대비할 수 있기에 가이드에게 어디서 땜빵하는지 물어 보고 가자 했다. 물어 보는데 귀신같이 물어 보고 또 귀신같이 찾아가더라. 쿠바는 재생 재활이 자동차 유지하는데에는 생명이다. 새 바퀴는 미화 50불하는데 땜빵하는데는 미화 50 센트로 떡친다. 다시 스페아 타이어를 원 상태로 복구시키고 일단 시내부터 찾아 나섰다.
허름한 동네. 타이어 땜빵 가게가 요 앞이다.
그로서리가게란다. 우리식으로 하면 동네 수퍼마켓이다.
시내로 들어 가는 길인데 갈가에 무슨 기마동상이 서 있고
무슨 조형물같은게 옆에 있었다.
조형물 그 자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가만있게 하지 않고 내몰아 치게 하는 그런 이미지를 느끼게 하는 기마동상이 서있는 혁명광장으로 초기 혁명주의자 GENERAL MACEO 기마상이란다. 저 광장 뒤가 쿠바 혁명의 시작을 알린
MONCADA BARRACKS(몽까다 병영)의 역사 현장이 있다는데 시간상 가 보지 못했다. 바로 쿠바 혁명일로 지정된 1953년 7월 26일, 피델 카스트로의 지휘하에 여기 정부군을 공격하였는데 거사는 실패하였지만 그 혁명 정신을 높게 기려 그 날 7월 26일을 쿠바 혁명일로 지정하여 매 년 경축하고 있다.
이렇게 물어물어 무려 오백리를 달려 왔건만 반겨 주는 사람도 없고 배고픔만 고통을 주네. 그래 이제 다 왔다. 여기서는 딱 한군데만 보면 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지로 지정된 산티아고 로카성이다.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