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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Aug 24. 2021

지노 배낭여행기 - 바하마 그리고 쿠바 16

쿠바 애국가 - La Bayamesa

2011년 8월 8일(월). 맑음 그리고 소나기


쿠바 동부 지도

진작부터 이런 지도를 멋지게 보여줘야 했는데. 까마구웨이에서  LAS TUNAS를 지나 일사천리로 BAYAMO로 내려왔다. 보통 배낭 여행객들은 여기서 바로 SANTIAGO DE CUBA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 그 유명한 미 해군기지인 GUANTANAMO가 있다. 원래는 시간이 조그만 남으면 가서 사진이라도 박아 오려고 했는데 갈 틈이 전혀 없었다.





        관타나모 미 해군 기지


여기에 왜 이런 미제국주의자들의 해군기지가 있냐 하면 앞에서 잠깐 이야기한 대로  쿠바가 스페인의 식민지하에 있을 때 미국이 호시탐탐 쿠바를 한번 품에 안아 보려고 갖은 방법을 구상하던 중 1898년 1월 25일  미 전투함 MAINE호가 아바나항에  입항하였다. 이유는 당시 쿠바에 거주했던 약 8천 명의 미국 시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이었다. 그해 2월 15일 정박 중인 메인호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폭발하여 약 280여 명의 승무원이 폭사했다. 이를 기화로 미국 내에서는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어 가던 중 미국이 스페인에게 쿠바를 3억 불에 사겠다는 제의를 했는데도 스페인이 이를 거절하자 미국은 의회 결의를 걸쳐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미서전쟁으로 전쟁 4개월 만에 스페인이 두 손을 들었고 그 해 파리조약에 의해 쿠바를 비롯하여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에 양도하였다. 쪼다 무대(수호지의 쥔공 무송의 친형)같은 스페인은 그냥 반금련 같은 쿠바를 3억 불 받고 팔았으면 돈 챙기고 필리핀, 괌 그리고 푸에르토리코는 지금도 가지고 있으면 관광 수입도 만만치 않을 텐데 말이야.


미서전쟁이 끝나고 3 년동안 미군정이 실시되었는데(처음 계획은 20년 예정) 그 후 세계적으로 일어난 민족 자결주의 등에 힘입어 1902년 5월 20일 형식상으로 쿠바공화국으로 독립하여 대통령제가 실시되었다. 독립 후에도 여전히 미국의 내정간섭을 받아 온 쿠바는 미국으로부터 쿠바 내정을 간섭할 권리를 인정하던지 아님 영원히 미군정 통치하에  있던지 양자택일을 강요받게 되자 전자를 택하자 이 협상에 따라 1903년 관타나모 해군기지 설립을 용인하였다. 그런데 여기는 홍콩처럼 조차 기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영구조차라는 것인데 당시 협약에 따르면 조차료 연 2천 불(당시 1903년 기준)을 지불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미국은 이를 지금도 지불하려고 하는데 카스트로는 수납을 거절하고 있어 국제법상에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국제 계약법상의 문제 같은데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면 이런 거다. 땅주인한테 임대료 이천 불을 내고 땅 사용권을 행사하도록 계약을 했는데  그 후 땅주인이 맴이 변해 계약을 파기하자고 하자 임차인이 하는 소리는 처음에는 꼬박꼬박 임대료를 받아 챙기다가 지금 와서 계약 파기하자는 것이 말이 되냐고  하면서 자기는 계약대로 임대료를 지불할 테니 받아 가시라 하니까 땅주인이 안 받아도 되니까 그냥 비워 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간 심 없는 놈은 어디 가도 당한다. 심을 길러라.  



다시 지도 보면 꽌따나모 오른쪽으로 동쪽 끝에 BARACOA가 있는데 1492년 콜럼버스가 첨으로 쿠바에서 상륙한 곳으로  제일 오래된 도시로 유명하다. 뜻은 "바다가 있는 곳"이라 하는데 1511년  스페니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사회적 경제적인 도시로 번성하였는데  4년 뒤 행정도시를 SANTIAGO로 이전하자 그때부터 쇠망의 길을 걸었다 한다. 그래도 여기에 무엇이 있는지 아바나에서 버스 타고 산티아고에 놀러 온 중국 유학생이 바라코아 갔다 왔다고 내게 자랑하던 바로 그곳이다. 찾아보니 바닷가이니까 해변 백사장이 아름답고 오래된 건축물이 몇 점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바로 바라코아에서 북쪽으로 20킬로 떨어진 곳에 쿠바 자연 유산지 2개 중(7개는 문화 유산지)의 하나인 훔볼트 국립공원이 있단다. 시간 나면 난 바라코아가 아니고 국립공원으로 갔어야 했는데. 다음번 방문 때는 바라코아를 거쳐 훔볼트 국립공원까지 가볼 것이다.


장황하게 바라코아를 설명한 이유가 지금 우리가 도착한 도시 BAYAMO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바야모는 바라코아 다음으로 오래된 도시이다.  바라코아보다 2년 늦게 형성된 도시로 넓은 목초지가 많아 축산업이 발달해 있다.  


혁명투사 동상

바야모 시내 혁명광장에 서있는 혁명투사 CARLOS MANUEL 동상. 그는 최초의 독립 운동가로 기록되는데 1868년 시작된 십 년 전쟁의 주역이었다.

   





      불굴의 정신으로 투쟁한 바야모


바야모는 오랫동안 혁명과 관련된 도시이다. 스페인 점령전에 터를 이루었던 여기 토착 인디언들이 스페인 군대에

대항하여 왔고, 그 뒤에는 노예로 팔려온 아프리칸이 반란을 일으켜 식민군 수장을 살해하여 그의 목을 중앙 광장에 효수하였다 하는데 이런 에피소드가 전해 내려와 처음으로 쿠바 시와 문학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야모 역사상 가장 유명한 투쟁 에피소드는 1868년 10월부터 시작된 10년 전쟁으로 위 동상의 주인공인 칼로스 마뉴엘가 독립군 대장이다. 칼로스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변호사이면서도 당시 바야모 지역에 광대한 토지에 많은 흑인 노예를 거느린 농장주였는데 자기의 노예를 해방시켜 주면서 스페인에 대항하여 노예제도 폐지, 농민 혹사 금지와 자주독립을 요구하였다.  처음에는 혁명군(독립군)이 유리했지만 곧 식민지 군대에 바야모가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독립군은 시를 전부 불태워 버리고 퇴각하였다.


 바로 이때의 투쟁 내용을 토대로 하여 만든 노래가 LA

BAYAMESA로 쿠바 애국가가 되었다.  뜻은 말 그대로 "바야모의 노래."라는 뜻이다. 가이드에게 국가 한번 불러 보라고 시키고 영어로 번역해보라고 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바야모의 전사들이여 전투에 나가자.

   조국이 그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대 희생이 조국을 구하니

   쇠사슬에 묶여 사는 것은

  치욕과 굴욕에 사는 것이니

  용기 있는 전사들아, 전투에 나가자."


우리가 야구나 배구 세계선수권 중계 보면 한 번씩 쿠바 국가를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이 국가가 쿠바의 동부에 있는 바야모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내용은 위에 정리된 것을 떠올리면 된다.



   

바야모 시내

 바야모 시내 거리도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이 부족한지 주로 자전거를 타는 인민들이 대부분이고 말이 끄는 달구지 같은 교통수단이 흔하게 보였다.

    





        서둘러 산티아고 가는 길을 찾아


바야모 근처 지도

바야모에 죽칠 시간이 없어 바로 시에라 마에스트라 국립공원으로 내려가려는데 스콜이 한바탕 정신없이 쏟아부었다. 한 5분 동안 퍼붓는데 도로 전체가 물바다가 되어 속도를 낼 수도 없다.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가는 사람들 중에는 비를 전혀 개의치 않고 비 맞고 그냥 가는 사람도 많았다. 길을 물어 물어 일단 YARA(지도 참조)로 가야 하는데 비는 억수같이 퍼붓는다. 이때 진풍경이 벌어진다. 빗물에 머리 빠는 사람, 동네 꼬마들은 물속에서 축구하고, 이웃 주민들 한 20여 명이 웃통을 벗고 팬티바람으로 밖에 빙 둘러앉아 비를 맞아 가며 기름 덩어리를 질근질근 씹고 있었다.(CHEWING THE FAT은 미국 슬랭으로 한가하게 농담 따묵기 한다는 뜻이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웃고 떠들고 야단법석이었다. 그래도, 그 앞에 가이드가 길을 묻기 위해 차를 세우면 한 서너 명이 우르러 몰려나와 친절하게 길을 일러준다. 길 물을 때 귀에 들려오는 말은 지명하고 가이드가 연발하는 무초 그라시아와 께디스딴시아(얼마나 멉니까) 그리고 낄로메타 정도이다. 가이드가 있어서 다행이지 시골로 내려가면 길 찾기가 힘들다. 도로 표지판도 많이 없고 만일 내가 혼자 차를 몰고 내려갔으면 어떻게 길을 물어보나. 뭐 안되면 지도를 통째로 주고 짚어주면 손짓 발짓해 줄 테지만 그래도 지금은 가이드가 믿음직스럽다. YARA를 지나면서 길을 잘못 들어서 북쪽

 MANZANILLO로 향했다. BARTOLOME MASO 가서

LAS MERCEDES를 통과해야 하는데. 할 수 없이 조금 둘러서 MAZANILLO를 지나서 LAS MERCEDES로 내려갔다.  


멀리서 높은 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위 지도에서 MAZANILLO를 따라 해안 도로로 쭉 내려가면 MEDIA LUNA를 지나 NIQUERO가 있다. 그곳이 멕시코에서 GRANMA를 타고 쿠바로 잠입한 혁명군의 목표 지점이었는데 그만 항법사 실수로 그 밑 CABO CRUZ와의 중간 지점인 PLAYA LAS COLORADAS(지도에는 표시 없음)에 상륙하여 동쪽으로 진군하여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으로 숨어들었다.

지금은 평지인데 우리도 곧 산으로 들어갈 것 같다. 왼쪽으로 저 멀리서 산들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시간만 충분하면 혁명군이 상륙한 역사적인 장소를 찾아가 볼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것도 또 다음 과제로 미루고 남으로 남으로 말을 몰았다.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이 멀리서 희미하게

저 멀리 구름에 싸여 희미하게 보이는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 지류. 그 옛날 혁명 전사들을 키워 낸 곳이다,



  

야자수와 낙조

 낙조 아래 야자수가 드문드문 큰 키를 자랑한다. 해가 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들이다. 그런 낙조는 어디서 보든 아름답다. 여기 지질히 못 사는 쿠바에서도 낙조는 공평하게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마치 평등이 그들의 지상 최대의 MOTTO 인 것처럼.


       


야자수와 낙조

낙조도 그 빛을 잃어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우리는 저녁 늦게까지 산길을 넘어 LAS MERCEDES를 지나 MAREA DEL PORTILLO(위 지도에 희미하게 보임)라는 바닷가 마을에 있는 호텔에 피곤한 몸을 던졌다. 이제 여행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내일이면 SANTIAGO에 입성할 게고 그곳에서 한 군데만 둘러보고 예전의 혁명군같이 파죽지세로 아바나로 쳐들어 가야 한다.  내일모레 아침 11시까지 호세마티 공황을 접수 못하면 나의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다. 원하지 않은 쿠바 억류라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고 아님 바하마 낫소에서 뱅기편이 끊어질 수도 있고해서 우짜던 내일 저녁은 밤을 두드려 패면서 아바나로 올라 가야 한다.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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