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시티 투어(2)
2009년 11월 13일(금) 맑음
가다 보면 별도로 조각상만 모아놓은 방이 있는데 그 밖으로 나가면 이런 정원이 있어 담배 꾸지는 사람은 기회를 이용하고 맑은 공기가 필요한 사람은 기지개 한번 켜면 된다. 조각상도 되지게 많은데 솔직히 말해 하루에 다 볼 박물관이 아니기에 아는 것 몇 점만 찍어오고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메두사(MEDUSA) 목을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 이 한 장의 사진 속에는 슬픈 사연이 들어 있다.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요약해본다.
원래 메두사는 아름다운 여인이고 어떤 샴푸와 린스를 애용했는지 머릿결이 특히 아름다웠다. 이를 본 포세이돈이 반하여 메두사와 데이트를 하는데 포세이돈을 짝사랑하던 아테나가 이를 질투하여 메두사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뱀들로 만들어 버리고 이쁜 메두사 눈을 보기만 하면 돌로 변하게 하였다. 이런 저주마저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아테나는 페르세우스를 사주하여 메두사의 목을 치게 만든다. 바로 여기까지가 바로 위의 장면이다.
그 뒤 이바구. 이를 지켜보던 포세이돈이 메두사의 영혼을 메두사 목에서 나오는 피와 결합하여 말에 날개를 단 페가수스(Pegasus)로 만들어 하늘로 날려 보냈다. 그 뒤 페가수스가 죽자 별자리로 올려보네 더 이상 어떤 신이라도 그녀를 괴롭히지 않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메두사를 괴물로 보아서는 안되고 저주받기 전 아름다운 여자로 보면 참 불쌍한 운명을 타고난 여자다. 신을 사랑한 인간의 비애가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인간 세계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아테나보다 괴물 같은 메두사가 더 사랑스럽다. 페르세우스 이야기는 너무 길어 다음 기회에 하자.
제목은 THE BOXER다. 사이먼 & 가펑클 노래 제목하고 똑같다. 작가 미상. 요새 눈으로 보면 권투선수 폼이 조금 엉성하다.
이건 미술책에 많이 나오는 작품이다. 아폴로 신인데 왼쪽 손목 조금 위에 그리고 오른팔이 어깨 조금 밑에 잘린 자국이 있는데 원본이 그런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 조각상은 그리스 원본을 모방한 짝퉁이다. 원본에 없는 손목과 팔을 만들어 갖다 붙인 것이다.
아폴로 신 이게 진품이다 이것도 유명한 조각상이다.
제목은 라오쿤으로 라오쿤은 트로이의 아폴로 신전 제사관이었다. 트로이 전쟁이 근 10년간 쇼부를 못 보자 그리스의 마지막 계책으로 특공대를 대형 목마 속에 숨겨 놓고 철수하는 척하고 일단 물러났는데, 많은 트로이 사람들이 전리품으로 성안에 들이자고 할 때 이 현명한 라오쿤이 불길한 것이니 목마를 불태우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성안에 들였다가 결국 트로이는 망하게 된다. 근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은근히 그리스를 후원했는데 이 라오쿤이 바른말 하자 부하가 치밀어 두 마리 뱀을 보내 아들과 아비를 죽이게 되는데 그 최후의 안타까운 장면을 조각가들이 표현한 것이다.
원래는 그리스 조각가가 만들었는데 사라졌다가 1500년 초에 로마 네로 황제의 궁궐터 근방에서 포도밭을 갈던 농부가 이 유물을 발견하여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발견 당시 오른쪽 팔이 없어 이를 복원하려고 여러 전문가를 모아 놓고 자문을 구했는데 당시 미켈란젤로가 오른쪽 몸통과 조금 남아 있던 어깨 근육을 보고 오른팔이 뒤로 구부려져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대다수 의견이 팔을 쭉 뻗어 있는 걸로 복원하여 갖다 붙였다. 오른팔을 뻗어서 복원한 라오콘 상 그러다가 400년이란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구경을 했는데 1957년 어느 로마 시내 석재상에서 라오콘의 오른팔이 발견되어 갖다 붙여 보니 미켈란젤로가 말한 대로 뒤로 굽혀져 있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복원한 팔을 떼내고 진짜 팔을 붙이게 되었다. 전문가의 안목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 실례를 보여주는 좋은 케이스다. 미켈란젤로 전기를 읽어보니까 그가 그런 지식을 가질만한 사유가 충분히 있었다.
미켈 조부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은행업을 하였는데 아부지가 다 말아먹고 아부지는 지질하게 법원에 서기로 일하는데(일명 찌질남) 아들 출세 한번 시켜보려고 9살 때 GRAMMAR SCHOOL에 보냈더니 미켈은 하라는 공부에 관심 없고 교회에서 성화나 습작하고 그림쟁이들 하고 어울리니 저그 아부지도 공부 포기하고 13살 때 피렌체의 재력가 매디치 가문이 후원하는 화가 그룹에 들어 가게 해서 조각과 인체 해부에 관하여 많은 지식을 쌓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미켈은 인체의 골격과 근육 등에 관해서는 상당한 지식이 있었기에 라오콘의 근육 움직임으로 팔이 굽어 있는지 펴 있는지를 알 수 있었던 전문가라는 이야기다.
조각상 다시 보자. 작은 아들(왼쪽)은 뱀에 물려 이미 독이 몸에 퍼져 죽어 가고 있고, 뱀 대가리가 라오쿤 허리를 막 물려고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있다. 큰 아들이 아부지한테 살려달라고 절망과 애원의 눈빛을 보내는데 아부지는 자기 고통도 못 이겨 울부짖고 있다. 리얼티가 확 풍기는 작품이다. 근데 나는 이 작품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오른쪽 큰 아들의 눈빛이 이렇게 이바구하는 것 같다. "아부지, IPON 신형 나왔는데 사줘, 안 사줘" " 아부지, 친구들이 무주로 스키 타러 가는데 보내줘, 안 보내줘" "아부지, 나 오토바이 한 대 사줘 안사줘" 이때 나는 라오쿤과 같이 똑같은 고통을 느낀다. 들어주자니 공부하고는 멀어질 것 같고, 안 들어주자니 아들의 그 애원하는 눈빛이 뱀에 칭칭 감겨 절규하는 그 형상이니 라오쿤의 절규는 소리쳐 보아도 다시 돌아오는 메아리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들은 현대판 라오쿤 같은 아부지다. 내 말에 공감하시나?
조각상은 이것으로 종 친다. 더 아는 것도 없고 해서 미켈란젤로의 삐에타(PIETA)로 끝내자. 이 조각상은 박물관에 있는 게 아니고 베드로 성당 안에 있다.
약관 24살 때 만든 작품이다. 우리 나이로는 군대 가서 한참 뺑뺑이 도는 나이다. 여기서는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보다도 그냥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깊은 슬픔만 느껴도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전달된다. 대리석인데 조각가들이 대리석으로 작품 만들 때 제일 힘든 것이 천의 질감을 표현하는 것이란다. 우리는 이런 거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작가들은 힘이 든단다. 이런 천재는 그런 것이 별로 어렵지 않은가 봐. 예수님 시신 밑에 깔린 얇은 천이 이리저리 말리고 구겨져 있는 것이 실물 같지 않은가.
1972년 어느 날 정신 세포에 맛이 좀 간 조각가 한 명이 품속에 대리석 조각할 때 사용하는 망치를 품에 품고 입장료 내고 박물관을 거쳐 성당 안에 있는 이 삐에타상 앞에서 고뇌하기 시작하였다. 미켈은 도대체 어디서 이런 재능을 받았을까, 나는 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저런 작품을 만들지 못할까. 존경스러워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증기기관차 굴뚝처럼 폭발하기도 해서 자기의 미천한 재능을 탓하다가 다시 질투가 가슴에서 올라가 머리 뚜껑이 열릴 때 그는 망치를 꺼내 들고 삐에타 조각상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같이 구경하고 있어서 이 미치광이의 행동을 즉각 중지시켰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는 앞의 라오콘 조각상처럼 이음새가 확연히 보이는 삐에타상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사건이 또 재발할까 봐 지금은 방탄유리로 이 걸작품을 막아 놓아 더 이상 가까이 가서 관람할 수가 없다.
박물관 나가기 전에 그림 한 점만 더 보고 가면 된다. 또 다른 천재(이 사람은 다재다능하여 앞에 붙는 수식어도 무지하게 길다)로 화가, 조각가, 철학자, 과학자, 해부학자, 수학자, 기계공학자, 생리학자, 역학자, 공학자. 또 찾으면 더 있겠지. 레오나드 다빈치가 완성시키지 못한 작품인데 잃어버렸다가 19세기 초에 발견되어 이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제목은 제롬 성자. 바싹 말라붙은 영감님이 제롬이고 앞에 사자가 있는데 사자 발에 박힌 가시를 빼주자 그때부터 제롬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것 때문에 제롬을 묘사한 성화에는 항상 사자 한 마리가 등장한다. 소박한 생활 실천자의 대명사로 피접 상골 한 묘사가 압권이다.
베드로 성당 들어가기 전에 두 라이벌인 미켈과 라파엘에 대해서 내가 느낀 것을 정리해 본다. 요새 게임용어로 <자만심이 강한 두 천재>를 줄여서 <자강두천>이라고 하는데, 바디칸에 와서 보니 미켈과 라파엘이 진정한 자강두천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8살 연장자인 미켈이 라파엘보다 먼저 로마에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되어 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지만 라파엘이 늦게 로마에 입성했지만 그때부터 상황이 바꿔 가고 있었다. 1503년 교황 알랙산드 6세가 영멸 하고 새 교황 율리우스 2세가 통치하게 되자 전임 교황과 앙숙이었던 율리우스 2세가 라파엘이라는 젊은 천재 화가를 통하여 자기 색깔을 내게 되고, 이미 씨스틴 성당 천정 벽화 작업은 계획대로 미켈이 진행하기로 했으니 율리우스 2세는 두 천재 화가를 같은 시기에 다른 project으로 테스트한 셈이다.
작품의 평을 보아도 라파엘이 처음으로 끝낸 ROOM OF THE SEGNATURA 벽화 4점이 미켈의 성당 천정벽화보다 낫다는 것이다. 작업의 방법에 있어서는 서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라파엘은 혼자 작업하는 법은 없고 주요 디자인이나 스케치는 자기가 하고 나머지는 WORKSHOP에 맡기는 스타일인데, 미켈은 거의 모든 작업을 혼자 도맡아 하는 편이었다. 이런 것들이 두 라이벌의 성격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라파엘은 매우 사교적이고 예의 바르고 협동적이고 부드러운 반면 미켈은 독선적이고 폐쇄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성향인 것 같았다. 그래서 미켈은 평생 일을 하면서도 요샛말로 스트레스를 열라 받은 편이고 라파엘은 그 자유롭고 활달한 성격으로 일은 프로같이 하면서도 스트레스 없이 인생을 재미있게 살면서 숱한 로맨스를 뿌리고 다녔다. 그래서 이를 빗대어 후세 사람들은 베네치아에는 카사노바, 로마에는 라파엘이라는 수식어까지 달아 준다. 카사노바는 18세기 인물로 라파엘보다 약 250년 뒤의 인물이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라파엘은 스케치할 때 역할에 따라 남자 여자 모델을 골라서 써는데 유독 미켈은 항상 남자 모델만 보고 여자 몸매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혹 어느 전기 작가는 미켈이 동성애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면서 동성 2-3명한테 보낸 편지 내용을 공개하기도 한다. 미켈이 로마에 입성한 해가 1496년으로 라파엘보다 12년 먼저 왔고, 그때 미켈 나이는 21세로 둘 다 20대 초반에 바디칸에 이름을 내밀어 탄탄한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라파엘에 비해 미켈의 첫발은 순탄하지는 않았다. 미켈이 처음으로 맡은 작업이 바티칸 추기경이 의뢰한 로마 포도주 신(神) BACCHUS인데 완성되어 인도했더니 마음에 들지 않다고 거절당했다. 라파엘의 첫 작품"DISPUTE"은 교황님을 기쁘게 했는데. 두 번째 작품 의뢰가 미켈의 명성을 알리게 되는데 바로"삐에타(PIETA)". 물먹은 다음 해 1497년에 의뢰받은 이 조각상을 보고서야 많은 사람들이 미켈의 재능을 인정해 주었다고 한다. 미켈은 씨스틴 성당 천정 벽화를 1512년에 끝내고 로마를 떠났기 때문에 로마에서 라파엘과 더 이상 라이벌 관계도 아니었다. 미켈이 다시 로마로 돌아와서 천정화 천지창조를 작업할 때는 라파엘은 이미 저 세상으로 갔고 미켈도 그때 나이는 환갑에 가까운 나이로 사람들이 라파엘 이야기할 때 내가 앞에서 말한 대로"글마 내한테 마이 배웠대이" 이렇게 한 번씩 떠벌리고 다녔다 하더라. 그러나, 시기상으로 볼 때 라파엘이 미켈에게서 배울 수 있었던 시기도 없었고 잠깐 4년 정도 로마에서 같이 지냈기에 둘은 상반된 성격으로 교우관계도 없었고 해서 미켈이 한 말은 그냥 뻥티기 소리임에 틀림이 없다.
미켈도 결혼한 기록은 없고 독신으로 살았는데 미켈이 시를 짓는데 소질이 있었다. 단 한번 여성과 로맨스가 있었는데 로마에서 씨스틴 성당 천지창조 작업할 때 시를 쓰는 고상한 40대 중반의 미망인과 시를 주고받았는데 그 후 몇 년 뒤 미망인이 죽을 때까지 서신을 교류했다고 한다. 책에 있는 그대로 번역하면"그러나 미켈이 (그녀와) 육체적인 접촉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되어있다.
라파엘은 25세에 로마에 올라와서 12년간 줄창 일만 하다가 37살 되는 해 1520년 부활절에 죽었는데 사인이 로맨스 보이답다. 섹스 과도 증. 죽기 전날 모델이면서 여친인 루티와 밤새 즐기다가 다음날 고열로 죽었다는데 일설에서는 문란한 성생활로 얻은 성병이 악화되어 죽은 것으로 본다. 죽어서도 교황님의 튼튼한 백으로 지가 소원 하는 PANTHEON에 묻혔다. 미켈은 1564년 역시 로마에서 88세로 영멸 했는데 유언에 따라 그의 고향 TUSCANY에 묻혔다. 이태리 미술계 르네상스의 삼두마차 다빈치, 라파엘, 미켈란젤로 때문에 우리가 바티칸 박물관에 가서 다리 아프고 허리 아파도 구경하러 가는 것이 즐거운 이유다.
라파엘의 모델이자 여친 루디 LA FORNARINA( 이 그림은 한국 미술 교과서에도 소개되어 진짜 유명하다.)
성 베드로 성당 박물관을 나와 이 길로 따라가면 베드로 성당 정문으로 들어간다.
베드로 성당 원경. 보이는 오벨리스크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세우는데 4년 걸렸다 하는데. 원래는 이집트에서 조성된 오벨리스크로 원래는 경기장 장식을 위해 로마로 옮겨 왔는데 베드로 성당을 다시 설계할 적에 지금의 자리에 세워 젔다고 한다.
이 엄청난 성당은 크기로는 세계 2 위라 하는데 1등이 누군지 이야기 안 해 주더라. 길이가 187미터에 측면이 80미터, 예배실이 11개, 제단이 45개 있다. 2세기경 배드로 성자의 무덤이 있는 이곳에 처음에는 사당이 세워졌는데 그 뒤 349년 콘스탄틴 황제의 명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그러나 공사가 부실하여 붕괴 위험이 있다 하여 15세기 허물었다가 1506년 율리우스 2세가 지금 성당의 초석을 박았다. 그 뒤 약 100년간의 지속적인 공사와 치장으로 지금의 웅장한 성당이 되어 전 세계로부터 순례자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본당 및 측면 건물 위에 세워 놓은 성인의 동상이 약 100개가량 된다고 한다.
떨어져 낙상하시지는 않으실련지.
내부 중앙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빛을 뿜어내는 모습으로 부조되어 있고, 위쪽으로 네 명의 천사가 화관을 하늘로 떠받치고 있다. 또 다른 작은 천사들은 삼중관과 열쇠, 칼과 복음서를 들고 있다. 삼중관과 열쇠는 성 베드로를, 칼과 복음서는 성 바오로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발코니 원형 창문가로 돌아가면서 장식한 천사의 상이 순금 자체인지 아니면 금박을 입힌 것이지 몰라도 가이드는 순금 300톤이 들어갔다고 하는데 조금 계산이 안 되는 부분이다. 3톤 정도면 수긍이 갈 만도 한대. 바로크 양식으로 베르니니 작품이다(1656-65년) 중앙에는 평화의 상징으로 비둘기상이 있고 유리창으로 빛이 들어오면 구름 속에 있는 비둘기 형상이 성령(Holy Spirit)의 이미지를 보여 준단다.
그러면 크게 한번 보자. 빛이 어두워 좀 침침하게 보이지만 성령을 상징하는 빛이 환하게 밝아오는 듯하다.
45개 제단 중의 하나
지존과 그의 제자들
성당 돔 천정의 기하학적인 아름다움. (내가 사진 찍어 가지고 자화자찬이다. 요새 말로 자뻑)
다른 각도로 한번 더 잡아보니 성당의 원형 창으로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 암울한 어둠에서 진리를 밝혀주는 하나의 구원의 빛으로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다.
나는 기록한다고 욕봤고 여러분들은 읽는다고 욕보고 해서 오늘 저녁은 둘 다 욕보고 끝내는 시간이다. 내일부터는 나폴리로 내려가면서 산타루치아나 같이 불러보자.-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