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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Oct 09. 2021

지노 배낭여행기 - 지중해를 찾아서 32

나폴리와 폼빼이 유적

2009년 11월 14일(토) 맑음


나폴리 - 폼빼이 - 쏘렌토 -카프리 - 포지타노 - 아말피 지도

여행 날자에 별로 제한이 없는 경우에는 Rome까지 내려왔으면 위 지도에 표시된 길처럼 나폴리까지 내달아서 유적지 폼빼이를 보고 <돌아오라 쏘렌토로>로 가서 멋진 풍광을 구경하고 더 시간이 있으면 쏘렌토에서 배를 타고 세계의 휴양지 카프리섬까지 갔다 오는 것이 두고두고 후회를 하지 않을 이쪽 여행길이다. 나도 지금 후회하는 것은 카프리섬을 가보지 못한 것이다. 귀에 들은 아말피 해안을 보려고 쏘렌토에서 아말피로 차를 돌린 것이다.



나폴리 해변에서 바라본 베수비우스 산

해변의 건물 뒤 구름으로 가리어진 산이 옛날에 폭발한 베수비우스산(1277 M) 이다.


나폴리를 직접 가서 보면 실망한다고 로마에서 가이드가 한마디 했다. 그 이유도 설명해 주던데 와서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것은 육지 사람이 평가한 게 아니고 뱃사람이 배를 타고 항구에 들어오면서 보며 느끼면서 평가한 것이다. 그러니 육지에서 나폴리 바다만 바라보면 이게 왜 세계 3대 미항이 되었는지 잘 알 수가 없다. 나폴리는  다른 항보다 해안 굴곡이 반원에 가까워 배에서 보면 입체적으로 파로나믹 하게 보일 것 같아 그걸 밤에 불이 환하게 커지면 장관일 것 같다. 그러니 육지에서 바라보면 별 볼일 없을 것 같다.


#세계 3대 미항: 나폴리와 함께 호주의 시드니 항, 그리고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 항을 말한다.

 


나폴리 항구의 황구

오면서 나폴리 서민들이 사는 집을 몇 장 찍었는데 찾을 수 없다. 가난한 동네는 졸라 어렵게 보였다. 빨래해서 아파트 베란다에 말리는 모습은 여기에도 마찬가지다. 위 사진은 동네 아파트로 들어가는 문인데 보니까 저 끝이 바닷가 같아 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길에서 찍었는데 황구는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호기심 있게 보고 있었다.

 

 




    시칠리아 왕국의 수도로서


나폴리 바닷가

로마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나폴리는 이태리에서 로마 - 밀라노에 이은 세 번째로 큰 대도시에 들어간다. 나도 여기 와서 알았는데 지금은 지명이 NAPOLI가 아니고 NAPLES이다. 나폴리는 이태리인이 정착한 도시가 아니고 예전에 그리스가 시실리를 포함해서  여기까지 식민지로 거느려 그리스가 만든 식민 도시였다. 그 뒤 나폴리 공화국으로 있다가 이태리 통일시 가리발디 장군에 의해 편입되었다.

 



  Museo Archeolgico Nazaionale(국립 고고학 박물관)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그래서 잘 찾아보면 여기에서 고대 그리스 유적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가봐야 할 곳은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이다. 이곳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 박물관으로 손꼽힌다.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시기의 유물들과 화산 폭발로 도시가 살아진 폼페이, 스타비아에, 헤르쿨라네움의 고대 로마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옛날에는 부르봉 왕실 박물관으로 불렀고, 1585년에 기병대의 숙소로  지어졌다. 1616년에서 1777년에는 나폴리 대학교로 사용되다가 그 후 박물관이 되었다.

 


헤라클레스 조각상

괴력의 사나이 헤라클레스 조각상으로 엄청 유명한 조각상이라 유럽 어느 나라에 가도 사진 혹은 짝퉁을 만날 수 있다. 여기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것도 그리스 아테네에서 만든 진품을 약간 확대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일화로 17세기 말 이태리를 정복한 나폴레옹이 이걸 못 가지고 가서 뒤에 가슴 치고 후회했다 하더라.  나 황제는 지꺼도 아니면서 남의 소유물에 탐만 내고.

 


이수스전투의 다리우스 3세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있는 유명한 작품으로 알렉산드로 대왕의 이수스(Issus) 전투라는 모자이크 벽화이다. 소아시아 반도에 있는 이수스에서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를 맞아 전투하는 알렉산더 대왕을 묘사한 모자이크 벽화로

베스비우스 화산 폭발로 땅속에 묻혔다가 나중에 발굴된

벽화이다. 위 사진은 박물관에서 산 책에서 발췌한 사진으로 선명하지만 왼쪽의 알랙산드 대왕이 빠져 있고 곤경에 처한 다리우스 3세만 전투를 지휘하고 있다.


이수스 전투 벽화 전체


열전하는 알랙산드 대왕

왼쪽의 알랙산드 대왕의 모습을 크게 확대해보면 이런 모습이다. 여기서 승리한 알랙산드 대왕은 소아시아 지역을 평정하며 페르시아 대제국을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서게 한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여신상

다산의 여신으로 젖통 수가 엄청나다. 여신 젖가슴 밑으로는 사자, 황소, 독수리 머리와 날개를 가진 그리핀(Griffin), 표범, 그리고 염소 조각상이 달려있다. 옛날에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공물을 올릴 때 24마리 황소의 고환을 끈에 꿰어서 여신의 목에 걸어주었다 한다.



자구를 지고있는 아틀라스 신

신들의 전쟁인 제우스와 티탄의 싸움에 딸부자인 아틀라스가 티탄 편에 섰다가 제우스에게 싸움이 지자 그 벌로 무거운 지구를 평생 짊어져야 할 벌을 받았다. 역시 인생살이는 줄을 잘 서야 편한 모양이디. 앞의 헤라클레스 상처럼 진품은 아니고 짝퉁으로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폼빼이 유물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화산 폭발로 파묻힌 폼빼이시를 발굴한 주요한 유물을 전부 여기로 옮겨와 전시하고 있는데 한 번쯤 들리만한 박물관인데 가보니 차 파킹 할 자리가 없어 그냥 바닷가로 와버렸다.

 


바닷가 끝에 위치한 성채

복원한 흔적이 군데군데 보이지만 전체 형태는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 같다.

 

 

나폴리 바닷가에 있는 조각상

이런 작품을 만나게 되면 이게 그리스풍인지 로마풍인지 한눈에 척 알아보아야 하는데  그런 눈도 없고 옆에 영어로 뭐라고 적어 두어야  알아먹는다. 관광가이드  책을 디져도 안 나온다.

 


구름에 묻힌 베수비우스산

바닷가에 서니 베수비우스산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AD

79년의 화산 폭발한 근처 마을인 폼빼이, 헤르쿨라네움 그리고 스타비아를 묻어 버렸다가 근 이천년만에 복원된 그들의 유적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준다.

 


나폴리에서 바라본 카프리 섬

저 멀리 보이는 섬이 카프리 섬이다. 이 왼쪽 해안으로 쭉 내려가면 폼빼이가 나오고 조금 더 내려가면 쏘렌토를 만난다. 그 앞에 있는 섬이 카프리섬인데 제정 로마 1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이은 2대 황제 티베리우스가 은둔했던 곳으로도 유명하고 유럽에서는 신혼 여행지로 각광받는 모양이다.

 

 

해안 곳곳에는 강태공들이 시간을 죽이고 있다.

 


열낙하는 이태공.(이태리 태공이라는 말이다)

 


해변에서 바라본 나폴리

나폴리는 인구가 근 백오십만 명이 넘어 이 근방에서는 매우 큰 도시다. 여기서 보기는 깨끗하게 보이는데 내가 본 이태리 큰 도시 중에서 제일 청소가 안되어 있는 곳이 나폴리 같았다. 뉴스에 따르면 쓰레기수거 업체의 단체 행동으로 수거가 원활치 않아 이곳저곳에 생활 쓰레기가 널려 있다고 한다.

  


나폴리 해변가

  

기마상

누구 기마상인지 몰라도 풍상에 세월의 때가 바래 질대로 바랬다.

 


해변가 식당 간판

해변가 식당 간판인데 타일로 멋지게 만들어 놓았는데

무려 120년이나 오래된 식당이라고 자랑하네.

 


나폴리 Graffiti(벽낙서)

벽에 황칠하는 것은 뉴욕 맨해튼 애들 못지않다. 그래도 뉴욕애들 황칠은 ART 수준인데 여기는 아닌 것 같다.

 




      폼빼이 유적지를 찾아서


폼빼이 유적지

나포리에서 폼빼이까지 하이웨이로 안 가고 로칼로 갔더니 구경은 잘했는데 시간이 엄청 걸려 폼빼이(폼페이가 아니고 호텔 주인 아이씨 발음으로 그리고 악센트도 빼에 있다)에 가니 오후 4시인데도 표를 안판다. 관람은 5시까지 인데 관람시간 감안해서 1시간 전에 매표소는 문 닫는다. 내보고 구경하려면 낼 다시 오라는데 참 난감하더라. 그냥 오늘 보고 계속 남쪽으로 내려갈 참인데. 할 수 없이 밖에서 몇 장 사진만 찍고 나오다가



유적지 입구 게이트

돈 내고 들어가서 유적지로 올라가는 문. 저 언덕 너머에   유적지가 있다.

 

들어 가는 걸 포기하고 밖에서 유적지로 보이는 것들을 long shot으로 몇 장 찍다가 나오면서 뒤로 돌아 가보니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 좀 더 가까이 가서 몇 장 찍으려고 계단을 올라 가보니 구경을 끝내고 퇴장하는 뒷문이었다. 할배 한 분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사진기를 보여주며 사진 찍는 몸동작을 보여 주니 고개를 끄떡 끄떡하시더라고.  아마도 커다란 내 카메라에 반하신 모양이다.

 


밖에서 본 유적지

이렇게 기쁠 수가 있냐. 여기서 하루 더 자고 내일 와서 구경하고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12유로 입장료도 안 내고 짜배기로 구경할 수 있으니 이런 횡재가 어디 있냐. 피사 탑에서 사기당한 15유로 생각이 나네. 역시 세상은 매우 공평하게 돌아가는 거야. 그러니 손해나 이익은 그 당시의 결과일 뿐이지 결국에는 제로섬 게임이다. 너그들 너무 아등바등하지 말게나. 지금 약 한 시간 정도 관람할 수 있다. 발은 아프지만 열심히 다녀보자. 일단 공짜이니까.

 


유적지의 기둥

뒷문으로 들어가니 한 30명 되는 니혼징 단체가 구경을 마치고 걸어 나왔다. 서로 쳐다보니 생김새가 비스무리한데 잘 모르겠지. 그래 나는 너희를 아는데 너희들은 나를 몰라.

 

앙상한 유적지 기둥들

작은 구릉을 하나 넘어가니 눈앞에 폐허로 바뀐 도시의 기둥들이 앙상한 갈비뼈만 남은 비아프라 난민의 아이들처럼 일렬로 서있다. 매몰된 시가 작은 편이 아니다.

서기 79년에  화산이 폭발해서 용암이 흘러 온 것은 아니고(화산까지는 거리가 꽤 멀다) 날아온 화산재와 낙석에 마을이 파묻힌 모양이다. 약 2000여 명이 죽었다 하니 그

 당시 폼빼이시 인구가 그 정도 된 모양이지.

 


쥬피터 신전

18세기 초기부터 발굴하여 주요 발굴품은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여기는 유적지로 복원해서 공개하고 있는데 아직도 군데군데 보수 작업하는지 공사를 하는 곳도 있더라. 낮에 나포리 시내 구경하면서 박물관에 갔더니 차를 파킹할데가 없어 빙빙 돌다가 나왔다. 못 본 것이 조금 아쉬운데 책을 한 권사서 그걸로 대신했다.

  


기둥만 남은 포럼터

이곳이 FORUM이란다. 지난번에 본 로마의 포럼처럼  여기가 시장이고 경제 활동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남은 기둥 수를 헤아려 보아도 꽤 넓은 건물이다. 여기에 바실리카 즉 예배당도 있었고 다른 행정기관도 같이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폼뺘이 유적지

전형적인 도로로 요즘같이 아스팔트는 아니고 전부 이런 평평한 돌로 길을 깔았다.

 

 

폼뺘이 유적지

건물이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지만  커브길은 전혀 없고 가로 세로 직선 길만 있는 것은 로마 길답게 시원하다.

 


폼빼이 유적지

화려한 조각상을 지닌 기둥 머릿돌만 외로이 앉아있다.  내 비싼 200MM 렌즈가 제 값을 하는 순간이다.

 


폼빼이사 도로

시원하게 뻗은 도로. 그러나 폭으로 봐서는 겨우 마차 한 대 정도 지나갈 수준이다.

 



무슨 신전의 제단같은 형태로 보인다.


폼빼이 유적지

처음 유적지에 들어서니 매캐한 냄새가 예민한 나의 개코를 자극하더니 그런 냄새가 어디를 가도 배어 있었다. 발굴한 지 20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불탄 집에서 나는 그런 탄 냄새가 나는데 화산 폭발 시에는 얼마나 아비규환이었을까. 로마에서도 가이드 관광으로 이틀 동안 발품을 팔다 보니 발바닥이 아파 걸음 걷기가 매우 힘들었다.

 

 

폼빼이 유적

술독인지 장독인지 풍상에 시달리다 이제는 푸른 이끼로 옷까지 얻어 입었다.

 


폼빼이

해가 거의 질 무렵인데도 아직도 관람객들이 여기저기서 돌아다니면서 구경들 하고 있다. 공짜로 들어온 나도 하나라도 더 보려고 이곳저곳으로 돌아보았다.

 

 

유적지 주택가

동일한 구조물이 좌우로 연이어져 있는 걸 보니 당시에는 주택가였던 것 같다. 길도 휑하니 뻗어있다.

 


폼나게 새로운 구도로 한번 잡아 보고.

 


돌방구길


폼빼이 유적지

어둠이 양상군자처럼 소리 없이 내 곁에 다가선다. 나가야 할 시간인 것 같다.

 



폼빼이 낙조

시간은 이제 해가 지면서 "어둠은 그녀의 손수건처럼 소리 없이 내리는데"(이 표현은 내가 지은 게 아니고 어느 유행가 가사에 있는데 잘 음미해 봐라) 근 2000년 전에  죽은 폼빼이 시민들의 유령들이 아직도 이 거리를 생각하며

나와 같이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내 코로 귀로 들어와서 나의 숨소리로 함께 달아나곤 한다.

 

 

폼빼이 낙조

그래도 여기서 바라보는 낙조가 그렇게도 아름다워 그 많은 유령들도 다른 데로 가지도 않고 여기서 그 오랜 시간을 이렇게 방황하고 있으니 우리 인간들의 찰나 같은 짧은 삶이 결국에는 무슨 의미로 남을 수 있을까.-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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