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렌토와 아말피 해안
2009년 11월 15일(일) 맑음
나폴리에서 폼빼이 유적지로 늦게 내려가는 바람에 불행히도 돈 내고 입장 못하고, 나중에는 운 좋게 돈도 안 내고(물경 15유로) 뒷문으로 들어가서 그 유적지를 관람할 수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그런 바람 불어 좋은 날도 있는 법이다. 오늘은 귀가(歸家) 애원송으로 유명한 쏘렌토에서 여정을 시작한다.
나포리 해안을 따라 계속 내려오면 폼빼이도 지나고 그곳에서 활처럼 휜 해안도로로 가면 쏘렌토(SORRENTO)를 만난다. 돌아오라 소렌토로-뚱보 파바로치가 부르는 단골 메뉴, "나에게 준 그 언약은 우찌 하고 그대 홀로 떠나갔냐. 아름다운 이곳에서 나는 홀로 그대를 기다리니 잊지 말고 쏘렌토로 돌아오세요." 이런 가사인데 이를 추정해보면 같은 마실에 사는 애인이 서울(로마)로 갔겠지. 별로 멀지도 않으니까. 그 마실은 하여간 시골이니까 시골 생활에 따분한 처녀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가정살림이 어려워 부모님 봉양하려 서울로 돈 벌러 떠났을 수도 있겠다. 우리 가요 오동동 타령에도 이런 가사가 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라 내던지고. 말만 듣던 서울(로마)로 갑순이도 금순이도 담봇짐을 쌌다네.” 그래 그 시골 처자도 로마 어느 삭월세 방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겠제. 아름다운 고향이나 동무 생각나면 담배 한 대 찐하게 땡기고.(진짜 로마 여자들 담배 많이 피우데.)
쏘렌토도 역시 해안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로 이태리 여행객들이 가 보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거리가 로마에서 좀 떨어져 있어 찾기가 싶지 않다.
나폴리 이남으로 해서 반도 끝 시칠리아까지는 예전에도 별로 공업지대는 없었고 지금도 대부분은 농업지역으로 북부에 비하여 국민 소득이 낮은 편이다. 13세기까지만 해도 강력한 아말피 해군력을 바탕으로 비잔티움, 이집트, 시리아 등과 지중해를 통한 무역으로 부를 쌓아 베네치아, 피사, 제노아와 더불어 강력한 4대 해상 공국의 하나로 세력을 키웠지만 그 후, 피사 공국과의 해상 세력 다툼에서 철저하게 패배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게 된다.
큰 항은 아니고 거의 포구 수준이다. 언덕길에서 차를 대놓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구를 가득 실은 작은 고깃배들이 포구에 한 줄로 서있는 게 한가로워 보였다.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 경치가 참 아름다울 것 같다.
절벽 위에서부터 그 뒤로 촘촘하게 형성된 마을이 완만한 등선을 이루면서 남색의 지중해 바다를 향해 옹기종기 사이좋게 앉아있다. 그러나, <돌아오라 쏘렌토로>란 노래를 통하여 왜 그런 절절한 사연이 있는지 추측해보면 이런 것 같다. 로마로 올라간 쏘렌토의 갑순이와 금순이가 이런 시골 구석에서 할 일이라곤 아침에 일어나 양이나 소 같은 가축들에게 줄 여물 죽을 끊이지 않으면, 마을 근처의 올리브, 레몬(이 지역이 레몬 생산지로 유명하다) , 포도밭에 나가 밭일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 아니면, 가축을 몰고 나가 하루 종일 산야에서 가축을 돌보며 시간을 죽이며 일상을 보냈을 것이다. 혹, 그럴만한 형편도 안 되는 빈농의 자녀들은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돕고 싶어, 행여나 옆 마을에서 로마 올라가서 방직공장에 취업한 친구의 성공 스토리를 듣게되면 당장 담봇짐을 싸서 야반도주라도 하고플 것이다. 그런 여친을 가진 시골 농부가 부를 수 있는 절절한 바람이 바로 <돌아오라 쏘렌토로> 에 들어 있다. 그러나, 이곳의 경치는 노래 가사보다 몇 십배 더 아름다운 곳이다.
어디서 오는 크루저 선박인지는 몰라도 쏘렌토로 해서 카프리섬까지 가는 모양이다. 이 카프리 섬도 세계적인 관광지인데 특히 유럽에서 신혼 여행지로 각광을 받는다고 한다. 이 카프리섬은 고대 로마 공화정 시대에 황제가 은둔한
장소로 유명해서 볼만한 고대 유적지도 제법 있다고 한다.
다리가 아파 밑으로 내려 가 보지는 못하고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도로변에서 차를 세워놓고 포구의 정취만 훔쳐본다. 포구에 내려가면 싱싱한 해산물도 가득할 것 같다. 잠깐 헛된 식탐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쏘렌토 이 도시의 지형을 살펴보면 입수배산형으로 앞에는 바다가 있고 뒤에는 큰 산이 있어 택리지에서도 말하는 좋은 풍수지리다. 푸른 바다와 구름에 쌓인 산들이 하얀, 붉은색 기와집들과 잘 어울린다. 유럽의 작은 도시들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그런 평화스러움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세계 7 대니 또는 10 대니 떠들썩하게 순위가 매겨지는 아말피 해안이 쏘렌토에서 바로 언덕 넘어 있다는 것이다. 보통 아말피 해안이라고 하면 정확하게 어디라고 규정된 것은 없지만 입소문만큼은 엄청나게 나있는 세계적인 휴양지중의 한 곳이다. 아말피 해안에는 아말피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마을도 있어 좁은 의미로는 그 마을이 지나는 해안을 말하지만, 크게 보면 통상적으로 숨을 탁탁 멎게 하는 멋진 해변이 시작되는 포스타지노(Postasino)부터 구곡양장의 해안길을 돌고 돌아서 만나는 살레르노(Solerno)까지를 말한다. 편도 거리가 약 50km이지만 그리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되는 무시무시한 길이다. 구곡양장같은 길이 몇 미터 간격으로 커브길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차를 운전하는 운전자는 입이 딱딱 벌어지는 좌우의 경치를 바라볼 1초의 시간도 없이 코앞의 도로만 오로지 바라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로 완주하기 힘든 코스다.
쏘렌토를 뒤로하고 산 중턱으로 난 도로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한 바퀴 빙그리 돌아서 내려가면 아말피 해안선이 그림처럼 굽이 구비 돌아서 눈 안으로 들어온다. 여기부터가 그 유명한 아말피 해안이 시작되는 포스타지노(Postasino)이다.
아말피(Amalfi)라는 지명은 신화적으로는 괴력의 사나이 헤라클레스가 사랑한 예쁜 요정이 있었는데 그만 요절하는 바람에 상심한 근육남이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바닷가에 묻어 주려고 찾은 곳이 지금의 아말피로 그 요정의 이름이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아말피 해안의 도로길은 한자말로 표현하면 구곡양장인데 좀 더 뻥쳐서 말하면 구십구곡 양장이다. 좁고 꼬불꼬불한 길을 아슬아슬하게 돌면 다음 커브길이 그냥 기다리고 있다. 운전자는 아름다운 풍광에 눈을 둘 수가 없고 커브 돌 때 앞에서 마주오는 차가 튀어나오지는 않는지 바짝 긴장해야 된다. 길 폭도 좁기 때문에 대형차가 마주 보고 올 때는 손에 땀이 난다.
위 사진처럼 길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1부, 3부, 5부 능선에 걸쳐 만들어져 있기도 하는데 그런 길도 계곡 사이로 이어지기 때문에 길이 창자같이 꼬불꼬불하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절벽과 옹기종기한 벼랑 위 집들과 푸른 바다와 산, 구름들이 모여서 이루는 한 폭의 그림이다. 대부분 길은 4부-6부 능선을 타고 절벽 사이로 길이 있는데 여행 가이드 보니까 Ravello라는 마을로 올라가면 아말피가 발아래 있다는 문구에 혹하여 올라갔더니 이 길은 8부 능선에 있었다. 라발레에 가니까 그 위에 또 다른 마을이 있어 갔더니 이건 9.5부 능선에 있었다. 사진 오른쪽 길이 8부 능선에 난 도로고 그걸 빙돌아 올라가면 사진 왼쪽이 9.5부 능선길이 된다. 사진은 꼭대기에 올라가서 찍었다. 그러나, 내려오는데 십겁 했다. 길폭이 작아 대형버스를 만나면 뒤로 back 해서 조금 넓은 모서리로 비켜줘야 대형버스가 지나간다. 덕분에 도로에서 행진하는 그 마을 장례식도 잠깐 구경했다.
산 맨꼭대기에 있는 집들로 집 아래위로 조그마한 텃밭이 있으면 포도나무를 키우고 있다. 그래도 포도주를 만들 수 있는 포도나무가 제일 나은 황금 작물인 모양이다.
맑은 물들이 바위와 어우러지고 시름없이 파도만 철썩거리는 해안 절벽 위로 집들과 성당이 각각 제자리를 찾아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볼수록 감탄사가 나오는 게 어떻게 저런 절벽 위에다 저렇게 건축물을 지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벼랑 위에다 세워 놓은 집들이 아찔하다. 파도에 깎인 바다 동굴 위에 붙어있는 4층짜리 빨간 창의 집이 아슬아슬한데 저런 데서 바다를 바라보면 전망하나는 끝내줄 것 같다.
계곡과 계곡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해변가를 따라 같이 나란히 달린다. 그 계곡 사이로 때로는 백사장이 들어앉아 해수욕장이 형성되기도 한다. 그 해변이 좀 더 큰 경우에는 근처에 대형 관광버스 주차장도 생기면서 아말피 해안의 한 마을이 형성되는 것이다.
산계곡이 겹겹이 겹쳐져 있다. 길은 멀리서 보니까 확연히 보이는데 문제는 좁은 길에다 계곡과 계곡 사이의 커브길이 사람 죽인다. 이런데는 유럽형 소형차를 가지고 가야 되는데 난 멍청하게 중형차를 운전했으니 게다가 핸들이 오른쪽에 있는 영국차를 말이야. 다음에 갈 때는 무조건 작은 차를 갖고 가야지.
절벽 위의 집도 단층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집 위에 또 다른 집이 있는 층층 구조로 깎아지른 절벽 경사면을 결국은 대단한 집념으로 집들로 채우고 마는 아말피 해안의 절경들.
가다 보면 중간중간에 호텔이라고 간판 붙어있는 곳이 많다. 거의 민박집 수준같이 보이는데 여름 성수기에는 아마 이런 허접한 숙박시설도 예약 없으면 방 얻어걸리기 힘들 것 같다.
저렇게 갓길에 차를 세우니까 나머지 좁은 길로 차 두대가 지나가려면 조심해야 된다. 그리고 차 두 대가 서로를 볼 수 없는 커브길에서 만날 때에는 진짜 손에 땀난다.
구비 구비마다 집들이 전부 다 있는 것은 아니고 위와 같이 집이 드문 곳도 있다. 그 말은 아직도 저런 절벽 위에 집을 세울 곳이 있다는 말인데 말년에 어디 단층집이나 하나 지어가지고 지중해만 바라다보고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무슨 교회당 같은데 생긴 모습으로 보아서는 그리스 정교 예배당 같기도 하고.
여기도 한 폭의 그림이다. 별로 높지도 않은 산허리 밑에 집이 있고 바로 밑에는 지중해 파도가 넘실거리고....
저런 집에 앉아서 비 오는 날 커피 한잔에 괜찮은 오디오 시스템에 비발디 CD라도 한 장 때리면 천국일 텐데.
저런 산자락에도 집들이 오밀조밀하다. 자세히 보니 좀 완만하게 경사진 곳에는 어김없이 집들이 쳐들어온다.
여긴 도선장 같기도 한데 작은 배를 댈 수 있는 곳이다. 한국이면 틀림없이 생선횟집이 들어설 자리다. 가만 보니까 부산 태종대도 이런데가 옛날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런 집들은 그냥 절벽에 붙어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마치 고목나무에 붙어있는 매미처럼 말이야. 거의 90도 경사의 절벽에 어떻게 저렇게 집들을 세울 수 있을까. 사진 찍는 내가 더 아찔해진다.
계곡을 돌아보면 또 다른 계곡이 어서 오란 듯이 기다리고 있다. 길이 거의 끝나는 나중에는 너무 지겨워 우리 인생 구비길처럼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그런 길을 달리는 것 같았다.
혹 다음에 아말피 가는 독자는 복덕방에 함 들려보세요.
싼 매물로 나온 게 얼마 짜리가 되는지 궁금해서요
내가 이사진 찍을 때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는 부산 앞바다에 있는 오륙도였다. 그것과 너무 비스무리하게 닮아서 넘 반가웠다.
이것 역시 ONE OF BEST PHOTOS. 아말피에서 사진을 한 300장 찍었는데 그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왜 이렇게 샤터를 많이 눌렸냐 하면, 편도에 두세 시간 걸리는 아말피 해안 도로를 세 번이나 왔다리 갔다리 했기 때문이다. 첨은 동쪽 끝에 있는 살레르노(Solerno)에 호텔을 구하러 갔었고, 두 번째는 담날 아침에 아말피 해안으로 출근하러 서쪽으로 달렸고, 세 번째는 시칠리아로 내려가기 위해 다시 아말피 해안 도로를 동쪽 편도로 달렸기 때문이다.
바로 위 사진은 부산 영주동 산 중턱에 따닥따닥 붙어 있는 집들과 흡사한데 느낌이 틀린다. 이국적인 정취 때문일까 아니면 한옥과 슬래브집 차이일까. 일단 여기 집들은 거의 모양이 흡사하다. 절도 있는 직사각형에다 색상은 하얀 집으로 그런 정형성에서 오는 통일된 규격화가 두 가지 색조, 하양과 빨강, 그런 것들이 함께 어울려 색다른 정취를 자아 나게 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집 주인장이 누군지 부럽다. 바로 앞에 지중해라는 거대한 풀장이 있는데도 이 집주인은 공간을 살려 실내풀장까지 만들었다. 파놓은 집 창문을 보니 조그마한 게 꼭 독일군 대공포 초소 같다. 내가 본 집들 중에 진짜 마음에 드는 것들 중에 하나였다.
ONE OF BEST PHOTOS.
서너 개 계곡이 겹쳐져 있는 사진 구도도 안정적이고 산 중턱에 질펀하게 걸쳐있는 구름도 인상적이다. 아무리 보아도 지겹지 않은 아말피 해안의 풍광이다.
산 아랫도리로 난 길들이 구비구비 돌아간다. 혼자 운전하는 게 지칠 적에는 저 길을 내가 기어코 가야만 하는지
의문스러웠다. 때로는 가지 않고 그냥 주저앉아 마냥 보고만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
낙조를 본다는 것은 또 하루가 저물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가다 보면 언젠가는 마지막 낙조를 어디선가 보게 되겠지. 문제는 그게 마지막 낙조라는 걸 모르면서 본다는 것이다. 미리 다 알고 살면 인생의 재미가 반감이 돼서 그럴까. 아말피에서의 낙조라 그런지 운치가 촉촉하다. 때로는 붉어지는 것은 바다만이 아니고 내 눈시울도 붉게 물든다. 지나온 날들에 대한 회한인가, 아니면 살아갈 날들에 대한 환희 때문인가. 그래, 살아 숨 쉬는 것이 감사해서 눈물이 날 정도가 되야니까 그렇게 후회 없이 야물게 살아야 되겠지.-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