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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Oct 28. 2021

지노 배낭여행기 - 지중해를 찾아서 40

말타수도 발레타에서

2009년 11월 19일(목) 맑음

Pozzallo에서 말타 발레타로

시실리 남부 POZZALO에서 차를 페리보트에 싣고 말타 수도 VALLETTA로 내려온 것이 1차 삼천포 타령이고 다시 말타에서 2차 삼천포 타령이 전개된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지도를 불러왔다. 관광 안내서 보니까 말타 북부에 있는 섬이 GOZO섬인데 아름다운 섬이라고 소개되어있어 2번째로 다른 섬으로 빠졌다는 이바구다.

 

   

해안 성벽

바다로 접한 도시 외벽이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다. 옛날부터 해적을 비롯하여 외세의 침입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말타 역사도 유구한데 1814년 영국 식민지였다가  1964년에 독립국가가 되었다. 언어는 말타어, 영어, 이태리가 통용되는데 영어가 거의 통한다. 차도 영국식으로 좌측통행에 핸들이 우측에 있다. 지금 이런 식으로 운전하는 데가 영국, 지불알타 , 바하마, 말타 그리고 일본. 또 다른 데에도 있겠지.

 

말타에는 석기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했던 흔적이 있다고 한다. 기록으로는 기원전 800년경 지중해 연안의 페니키아 인들이 이주해서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말타(MALTA)의 뜻이 페니키아어로 섬 또는 피난처란다.

 



해안 성벽

말타도 고대에는  막강한 해상국가 패니키아가 개척한 도시인데 그 뒤 로마제국, 북부 아프리카의 아랍 민족에 지배당하고 심지어 바이킹의 후예 노르만족에게도 잠시 역사가 유린당한 적이 있다. 말타가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 되는 것이 아프리카와 유럽의 중간에 위치해서 해군기지로 가치가 있는데 영국이 여기에 눈독을 들이고 지불알타처럼 1814년부터 식민지로 관리해 왔다.

말타가 영국 식민지로 접수된 이유가 1798년 나폴레옹 군대가 말타 섬에 상륙하여 통치하기 시작하자 섬 주민들이 시실리 공화국 국왕의 도움으로 프랑스 통치자와 싸우다가 나중에는 영국의 도움으로 프랑스군을 몰아내었지만 그 뒤로 영국 식민지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해안요새

예전에는 ST. ELMO 요새로 도시를 방어하는 성채였으나 지금은 POLICE ACADEMY와 군사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위 사진은 군사박물관 입구.

 

 


군사 박물관 안에는 주로 2차 세계대전시 육해공군의 사진과 대포 등을 전시해 놓고 있다.

 


해안 성벽

성채는 낡기는 하였지만 전체 형태는 잘 보존되어 발레타 구시가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지로 지정되어 있다.

 


해변 쪽으로 나 있는 성채 외벽 가장자리.

 

말타 수도 발레타 항구

몰타 면적이 1282 평방 키로 이니까 시실리섬의 절반인데 41만 인구가 몇 개 도시에 집중되다 보니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높다. 국민소득은 2만 불 정도로 세계 36위. 말타가 총 7개의 섬으로 되어있는데 사람이 사는 곳은 3개 섬으로 말타본토와 GOZO(이름 좋다) 그리고  

COMINO이다. COMINO에는 한 가구가 딸랑 살고 있단다. 지도를 보니까 GOZO가 먼 것 같지 않아 또 호기심이 발동하네.

 


시내버스종점 앞에 있는 분수대. TRITON FOUNTAIN. 로마 시내에 널려 있는 분수대와 비스무리하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 옆 야자수 가로수. 그 사이로 멀리 있는 성당의 쌍 종탑이 희미하게 보인다. 마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중세 영화의 세트장


왕궁 입구

옛 거리에 있는 왕궁 입구다. 포세이돈이 삼지창 들고 있는 동상 옆에 웬 추기경님이 어슬렁거리기에 옆에 큰 성당이 있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로마 바티칸 근위병

로마 구경 갔다 온 사람들은 이 사람 누군지 다 안다. 얼굴을 아는 게 아니고 이 친구가 입고 입는 옷 말이다. 이 옷이 바티칸 근위병들이 있는 근무복인데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고 한다. 내가 바티칸 시티투어에서 언급하려고 했는데 잘 나온 사진이 없어서 못 했는데 여기서 설명하게 되는구나. 그런데 바티칸 시티에서 열근해야 할 근위병이 말타 발레타에는 어떻게 왔담. 되기 궁금하되. 그래서 물었다. "니 여기서 뭐하는데?" 궁금해서 졸라 빠른 영어로 물었다. "일하고 있대이." 짤막하게 답한다. "무슨 일?". 이 친구가 약간 실실 쪼개더니 하는 말 "영화 찍는데 근위병 엑스트라야." 아하, 그러고 보니 내가 어디서 말타에 대해 들은 이야기 중 여기 성채와 옛 도시가 잘 보존되어 중세기 영화를 많이 찍는다는 걸 읽은 적이 있다. 앞에 사진 추기경 복장도 영화 찍는 배역이었다. 이 친구와 몇 마디 하면서 물어보니 많은 영화가 여기서 제작되는데 그 이유가 세트 설치하는 비용보다 여기서 찍는 게 싸게 치이고 대부분 영어를 할 줄 아니까 사람 구하기도 쉬워서 많이들 이용하는 모양이다. 호텔에 가서 인터넷 디비 보니까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유명한 영화 "트로이"도 여기서 촬영했다고 하더라.

 


시내 공원에 세워 논 황금 독수리상.

 


1570년도에 세워진 교회. OUR LADY OF MOUNT CARMEL.  불행히도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 공습으로 일부 파괴되어 1958년 재건축하였다 한다.  오른쪽 폼나는 DOME 지붕 높이가 64미터가 되어 키다리 소년의 머리처럼 시내 어디서 봐도 잘 보인다.

  

돔 지붕만 따로국밥처럼 한 컷.

 


사람들이 그러는데 이런 구도로 찍아야 잘 찍은 사진이라카길래 나도 한번 따라 해 보았다.

 

 

재밌는 문양

술통 위에 올라 탄 꼬끼요. 문양치곤 좀 웃기고 그 위에 별은 또 뭐야.

 


Omnibus Idem

이 문양도 옛 거리에서 찍은 것인데 저 라틴어를 내가 알길래 찍었는데 해석이 잘 안된다. OMNIBUS 란 여러 가지 다른 이야기를 한 주제 밑으로 집어넣어 글을 쓸 때 흔히 OMNIBUS STYLE이라 하듯이 통합이란 뜻도 있고 한꺼번에 몰아넣는다 해서 합승 버스를 OMNIBUS라 하는데 앞에 OMNI를 줄여 BUS가 된 거다. IDEM은 영어로 말하면 IN THE SAME인데 두 개를 붙여 봐도 뜻이 안 통한다. AMOR OMNIBUS IDEM은 사랑은 전체적으로 보아 예전과 동일하다는 진부한(CLICHE)  표현인데 여기서 주어가 빠져 있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라틴어 잘하는 사람 번역해다오. 무슨 말인지.


인터넷 찾아보니 알려준다. THE SAME TO ALL. 만민에게 평등하게.

 

폼나는 다른 부조상.

난 어떤 때는 이런 문양이나 부조 같은데 흥미가 많아 어디 가면 맨날 이런 것만 찍어댄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안치환처럼 사람도 찍어야 하는데.  근데 찍어야 할 사람이 별로 눈에 안 뜨인다. 아까같이 엑스트라나 눈에 보이고.

 

말타 순경

드디어 찾았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찾았다. 말타 총각 순경이다. 모자가 폼난다.

 

 

또 지붕 위에 걸린 문양.

위 라틴어 해석이 안 되는 것은 당연한데  AD 1814년이 영국군 도움으로 프랑스 군대를 몰아낸 바로 그 해인데 그걸 기념해서 세운 걸까.

 

또 문양인데 왼쪽에 있는 야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경복궁 앞에 있는 해태상을 이리 말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발레타 중에서도 옛 거리로 들어가는 입구인데 제일 붐빈다. 안에는 100% 관광객 상대로 하는 기념품, 보석상, 식당 등 눈요기할게 많다.

 


벌레타 신 시가지

이 쪽 성채 구시가지에서 물 건너 반대편으로 본 전망. 중간에 희미한 것은 바다 안개 해무다. 노란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저 쪽은 신시가지다.

 


해무  속에 가린 OUR LADY OF MOUNT CARMEL CHURCH.

 

 

옛시가지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마차. 말상을 보니 손님이 안 와서 기분 좋아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바닷가 바로 위로 놓여 있는 성채. 높아서 특공대가 성으로 기어오르기가 힘들다.

 

 

또 하나 오래된 교회인 CHURCH OF ST. PUBLIUS 18세기 초에 처음으로 주교를 말타로 파견하였는데 그것을 기리기 위하여 건축된 교회. 역시 2차 세계대전 때 공습으로 일부 파괴되었으나 후에 보수.

 

 

공원에서 바라본 키다리 학생들의 행렬.

 

 

견고한 성채의 외부 모습.

 

 

높은 성벽

높고 야물게 지은 놓은 성벽. 높이로 보아서도 수 십 미터는 족히 될 것 같은데 성벽을 기어오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잘 빠진 교회 돔을 딱 한 번만 더 보고 헤어지자.

 

 

말타 시내버스. 꼭 하얀 모자를 쓰고 있는 난쟁이 같다.

 


 말타 시내버스 종점.  분수대가 오른쪽 옆에 있다.

 

 

발레타 옛거리 길

 옛 거리에서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는 길. 차 몰고 구경 가면 한 서너 번 시내를 왔다 갔다 하니 곧 말타 택시 운전수 수준 된다. 내가 워낙 눈치도 빠르고 길눈이 좋아서 그렇겠지. 그런 표현 있잖아 "홍길동이 점점 자라 10세 되매 하나를 배우면 열을 통하니"처럼 내가 한 길을 가 보면 곧 다른 열 길을 깨우치는 것하고 일맥상통하다는 말이다.  


옛 거리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건물인데 자세히 보면 처음에는 잘 만들어진 건물 같다. 지금은 맨 아래층은 상점이고 위에는 아파트 같다.

 

어제 늦게 발레타 들어와서 자고 오늘 하루 부지런히 구경하니 발레타는 거의 다 봤다. 책자를 꺼내 읽어 보니 북쪽에 있는 큰 섬, 이름 좋은 그 섬 GOZO가 조용한 게 좋다고 자랑들 한다.

 


2차 삼천포 타령

어제 시실리에서 삼천포로 빠져 말타까지 왔는데 여기서 또 삼천포로 한번 더 빠져야 한다는 것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가 보는 것이 뒤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가기로 마음 굳게 먹었다.


예전에 본 한국영화 제목이 생각나네. "그 섬에 가고 싶다." 섬은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섬만이 갖고 있는 완전한 고립과 그리고 그 고립된 환경이 가져다주는 혼자만의 고독감. 갑자기 류시환의 그 시가 생각나네. 개인의 고독함을 표현한 이 시 한 구절이 가슴에 잔잔하게 와닿는다. "그대가 내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나는 개인적으로 류시환 시는 좋아하는데 그 시인은 별로 안 좋아한다. 처음에는 별 볼일 없는 시인이었는데 갑자기 베스트셀러 시인이 되어 인지세가 제법 들어왔는지 돈 좀 벌었는지 갑자기 인도에 가서 일 년 체류하다가 돌아와서 도통한 신선처럼 행동하는데 요새는 한물간 것 같다. 요즈음은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이 뜨는 것 같다.

 

 

 

본섬 북쪽 끝에 있는 해안의 풍경.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에는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gozo 가는 배를 타려면 marta point로 가야 되는데 이정표가 시원찮아 길을 잃어 가다 보니 중국 한문 글이 보여 와 여기에도 중국집이 있네하고 감탄했는데 그게 아니네. 마침 중국 아지매와 딸이 같이 있어 길을 물어보는데 보니까 마사지 집이다. 친구가 서울에서 맹인 마사지받은 것이 생각나 한번 받아 볼까 생각했는데 갈길이 바빠 길만 물어보고 말을 재촉하여 북쪽으로 바람같이 달아났다.

 

 


배 타는 곳에 와보니 45분 간격으로 배편이 있다네. 왕복 요금도 차 실고 16유로. 진짜로 싸네요. 타자. 가자. 고조로.

 

배 타기 전에 영국서 온 노부부를 만나 잠시 한담을 나누고 여행정보를 챙겼는데. 내 차를 보더니 영국 번호판을 담박 감지하고 말을 먼저 걸어왔다. 영국 웨일스에서 2주 휴가 왔는데 휴가지가 말타도 아니고 GOZO란다. 내가 물었다. 왜 GOZO에서 2주씩이나 보내야고. 노부부 왈, 10년 전에  GOZO에 처음으로 왔는데 너무 좋아 다시 왔다나. 그래 무엇이 그래 좋은데요. 경치도 좋지만 매우 조용한 것이 너무 맘에 든다나. 무엇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구나. 자알 온 것 같은 예감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그리고 GOZO에 가면 SAN LAWRENZ에 별 5개 특급호텔이 있다고 정보를 주네요, 가보라고. 영감님 TIP은 고마운데 혼자서 별 5개 호텔에 갈 필요가 있나요.

 



고조와 본섬을 오가는 페리 보트. 4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배 타고 30분쯤 지나니 gozo 항구 므가르(mgarr)에 도착해서 차를 몰아나가니 드디어 말타 최북부 섬 gozo에 내가 왔다. 이게 2차 삼천포 타령의 전모다.

 



배위에서 맞이한 고조의 낙조.

날이 어둑해지며 어둠이 그대의 손수건처럼 조용히 내려앉아 말을 재촉하여 SAN LAWRENZ로 갔다. 내가 전생에 착한 일을 많이 해서 복이 참 많은가 보다. 호텔이 삐가번쩍하면서도 조용하게 말없이 앉아있네. KEMPINSKI HOTEL인데 독일 호텔 체인점이란다. 성수기에는 방값이 250-300유로인데 지금 비수기에는 85유로. 띵호와. 하루로는 부족해서 일단 2박으로 체크인하고 식당으로 갔다.

 

 


양고기 스테이크

메뉴 보니까 양고기 갈비가 있어 한번 먹어볼까 해서 미디엄 쿡으로 오다 하고 보니 내가 너무 호화스러운 배낭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나, 이 짓도 뭐 그냥 한 때지 하면서 스스로 위로해 보았다. 거나한 저녁을 마치고 팁까지 합해서 저녁값으로 물경 30유로를 사인해 주고 방으로 돌아와서 오늘 여행기를 정리하면서 포도주 반 병 까고 얼큰한 기분으로  신부도 없이 GOZO의 첫날밤을 맞는다.-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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