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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Nov 01. 2021

지노 배낭여행기 - 지중해를 찾아서 43

시라쿠사와 위대한 선생님


말타 북섬 고조 섬

아침 7시에 말타 발레타에서 시실리 파졸라로 가는 페리보트를 타고 나오면서 말타를 그냥 지중해에 고스란히 두고 왔다. 영원히 잊어야 하는  그리운 님을 두고 오듯이.


말타하고 고조 섬에 가서는 좀 편하게 구경하고 잘 지낸 셈이었다. 워낙 면적이 작다 보니 대도시 관광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다. 그래도 곧 다가오는 추수감사절에 여행을 떠나지 않고 미국에 있었더라면 잘 보낼 수 있을 텐데 나는 그때 밥이나 안 굶고 어디서 죽치고 있을지 알 수가 없네. 이게 나그네의 설움인가? 아니면 배고픈 방랑자의 행복인가?

 

 

 

 

고조 섬의 창문바위와 곰팡이바위

그래도 고조 섬의 풍광이 조금 마음에 아롱거렸는데

 

 


시실리 파잘로에 도착하자마자 이제는 시라쿠사와 활화산 mount etna 보고 더 이상 시실리에서 삐대지 말고 이태리 본토로 돌아가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으며 힘차게 다음 경유지 시라쿠사로 달렸다..

 

 

 

시실리 아그리젠토의 신전의 계곡

어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을 정리하고 나서는 이제 자꾸 그쪽으로 마음이 쏠리는데 근데 실제로 유산지에 가서보면는 아무것도 없거든. 그냥 신전터, 구석기시대 주거지터 또는 지하무덤터. 진짜는 이런 걸 보면서도 역사의 향기를 제대로 맡을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제.

 

 

 

시실리 시라쿠사의 돌무덤터

시라쿠사는 활화산 Mt. Etna 가는 길목에 있어 잠시 들릴 수 있고 여기에도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이 있는데 바위 무덤이다. 형태는 저번에 아그리겐토에서 본 것과 유사한데 대량으로 있어서 지정된 것 같다. 로마 시내에 있는 지하무덤 까다꼼하고 형태가 매우 비슷하다.

 

 

 

시실리 시라쿠사

  





   아르키메데스의 고향, 시라쿠사


시라쿠사의 유명 인사 한 분 소개하는데 우리들이 너무너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궁금하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이다.

 

그가 시라쿠사에서 출생하였지만  당시 시실리가 그리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인으로 알고 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더라도 우리는 니혼징이 아닌데요.

 

 


아르케메데스(Bc 287-212)

아부지가 천문학자라 집안이 좀 괜찮은 모양인지 아니면수재라서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는지 하여간 당시 학문의 중심지인 이집트 알랙산드리아 왕립학교로 유학

갔는데 그곳에서 많은 지식을 배워 다시 시라쿠사로 돌아와서 연구도 하고 저술도 하고 해서 이름을 떨쳤다.

 

 

 

재밌는 일화는 당시 지렛대의 원리를 발견하고서는 지렛대로 지구도 움직일 수 있다고 큰소리쳤는데 시라쿠사 왕이 그라면 군함을 건조해서 많은 무기와 병력을 태우고 이를 물에 띄우라 해서 아르키메데스 선생이 역시 지렛대를 사용해서 군함을 물 위에 띄었다네.

 

 

 

다시 왕이 새로 만든 금관을 주면서 금관이 순금인지 감정을 명했는데(실제로 금관 만든 업자가 순금을 약간 야마시해 묵고 은을 넣어 무게를 같이 했는데) 선생이 이를 고민 고민하다가 우연히 목욕하다가 물속에서는 몸 부피만큼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금관 분량의 순금과 금관을 물속에서 달아보니 저울대가 순금 쪽으로 기울어지네. 그래서 금관이 100% 순금이 아니고 야마시한것을 알았는데 아마도 그 금관 제조업자는 바로 목이 달아나겠지요.

 

 

 

유레카(eureka)는 그리스말로 "알아냈다"는 것으로 바로 선생이 욕탕에서 이를 알아내고 발가벗고 뛰어나오면서 외친 말로 지금도 많은 연구가와 발명가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유레카란 이름을 제일 많이 사용하는 제품은 진공청소기 제품이다.

 

 


선생은 기원전 212년 무렵 로마와 카르타고가 붙은 제2차 포에니 전쟁 통에 돌아가셨다. 견고한 시라쿠사 성이 함락될 당시에도 선생님은 어려운 기하학 문제를 놓고 전쟁과는 관계없이 씨름하고 있었다고 한다. 시라쿠사가 함락되자 로마 군인이 선생에게 찾아와 로마 장군을 접견하기위해 예를 갖추라고 명령하였지만 선생은 문제를 푸는 도중이라며 거절하며 <내 원을 건드리지 마라>고 고함치며 저항하자 이에 열 받은 로마 군인이 선생을 칼로 찔러 살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내 원을 건드리지 마라>는 선생의 말은 후대 사학자들이 지어낸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선생이 시라쿠사 함락 와중에 사망한 것일 수도 있다고 보는 이유가 선생이 들고 있던 해시계, 구와 같은 도구가 생전 첨 보는 보물로 오인되어 이를 약탈하려는 병사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위 사진들은 시라쿠스에서 제일 큰 묘지에서 몇 장 찍었다.-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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