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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Nov 15. 2021

지노 배낭여행기 - 지중해를 찾아서 51

잘츠부르크 성

2009년 12월 1일(화) 맑음


요즈음 특종기사가 없다가 오늘 소금 도시에서 국자 하나 펐다. 국자(scoop)는 영어로 특종 기사란 말인데 유추해보면 아마도 큰 건더기를 이걸로 펐다는 것이 특종 기사감이라는 이바구이겠지.  



모짜르트 생가

일단 소금 도시 관광 포인트는 보통 모차르트가 태어났던 그리고 살았던 집을 보러 가는데 그라면 빵점이다.  



언덕위의 짤쯔부르 성

소금 도시의 관광 포인트는 잘츠부르크 성이다. 이건 내 견해이니까 본인들 알아서 결정하면 된다. 저 언덕 위에 있는 하얀 성으로 시간이 없는 여행객이라면 여기 와서 저 성만 구경만 해도 알차게 보고 가는 것이다.



 

짤쯔부르크 성

성이 의미가 있는 것이 유럽에 잘 보존된 성중 규모가 제일 큰 부류에 속하는데 자그마치 50개 단독 건물이 들어있어 총면적이  33,000 제곱평방미터다. 성은 1077년에 축성해서 살면서 점점 넓혀가 1619년에 현재의 규모로 완성되었다.  


성내에 있는 건물

이런 규모의 단독 건물이 꽉 들어 차있다.  



짤쯔부르크 성 입구

성으로 올라갈 때는 성밑에 가서 tram 타지 말고  옆으로 가면 걸어서   있는 산책로가  되어있어  길로 가면 도시 전체를 사방팔방 구경하면서   있다. TRAM 타면 여기서 내려서 성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런 호젓한 산책로 겸 오솔길이 성까지 이어진다.  



   

짤쯔부르크 성 입구

7.50유로 입장료 받는데 성안에 들어가면 조그마한 박물관과 전시장에서는 따로 돈 받지 않아 들어가 볼 만하다.

  

박물관과 전시장 수준은 보잘것없지만 야들은 저그들이 퍠전한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세세한 전투 사항, 지도, 사진, 군복, 무기 등 전쟁 박물관은 잘해놓았다.





      박물관내의 고문 도구


중세기의 고문 도구

특히 중세 성안의 생활상을 소개한 것 중에 죄인들 취조 및 고문하는 방법과 형벌에 관하여 자세히 소개되어있어 몇 장 찍어왔다.  



칠성판 위레서 고문받는 죄수

이게 소위 말하는 칠성판인데 우리나라 것은 밑에 쇠침은 없는데 이건 철심을 박아 놓아 더 심한 것 같다. 칠성판이란 염할 때 관 밑에 까는 판에 북두칠성을 새겨 넣어서 칠성판이라 부르는데 칠성판에 누워야만 망자가 편안하게 저승길로 간다고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칠성판 고문방법이 쿠바 관타나모에 있는 미군 포로수용소에서도 자행되었다고 하니 어느 나라고 말할 것 없이 가혹한 고문방법은 똑같은 모양이다.     



주리를 트는 고문 벙법

우리나라 사극에서 죄인을 취조하는 방법의 하나로 보여 주는 것이 주리를 트는데 양다리를 묶은  다리 사이에 굵고  막대기 주릿대  개를 끼우고 양쪽으로 비틀어 정강이를 비트는 고문으로  사진이 그와 비스무리한 주리 틀기 고문이다.



주리 틀기

위 사진도 주리 틀기의 일종인데 자세히 보면 끈을 묶은 손목에 주리를 틀고 있는 광경이다. 아래 부분은 끈을 묶은 다리에 주리를 트는 형틀을 돌려가며 고문을 가하는 장면이다.



성고문까지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일종의 성고문을 행하는 것 같다.

위쪽에는 손을 펴게 하고 나무망치로 내리치는 고문을 하고., 아래쪽 오른편에는 끈으로 손을 뒤로 묶고 발에는 무거운 쇠뭉치를 달아 매달아 놓고 도르래로 상하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자백을 받아내는 장면이고, 아래 왼편은 여성 죄수를 홀딱 벗겨 놓고 술이 달린 몽둥이를 들고 취조하고 있는 장면이다.



보고 있노라니 취조 방법이 대한민국 고문 기술의 대가 이근안 경장(당시 경기도경 대공분실장)이 생각나더라고. 이 자식이 여기 나보다 먼저 와서 보고 한 수 배워갔나 싶더라고. 이근안 경장은 박정희 - 전두환 정권 때 대한민국 최고의 고문 기술자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로 대공분실장 재직 중 재야인사 및 학생운동권 등을 고문하였고, 특히, 1985년에 김근태 전 열린 우리당 의장을 고문했던 혐의로 퇴직 후 수배되었으나 10년간 도피생활을 하다 1999년 자수하여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받고 수감되었다가 2005년 가석방되었다. 이근안 고문 기술자를 다른 영화가 이경영이 연기한 <남영동 1985>로 2012년 정지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정치인 김근태가 민주화 운동 시절 민주화운동 청년연합 사건으로 1985년 9월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22일 동안 받은 고문을 다룬 영화이다.



죄수 형벌 마스크

죄수들이 형벌로 머리에 쓰는 도구가 있는데 지금 보니 형별의 도구라기보다는 거의 현대 유명 작가의 작품 수준에 가깝다.   



오늘 특종은 다른 게 아니고 음악의 나라에 와서 음악회라도 한번 가보는 것이 맞는 도리인데 비엔나에서 가보지 못한 것을 오늘 소금 도시에서 와서 우연히 해결됐는데 그 사연이 다음과 같다.   


하이웨이에서 빠져 소금 도시로 들어오다가 차 신호등에 섰는데 오른쪽으로 고개 돌려보니 무궁화라고 한국말로 된 한국식당이 있더라고. 현지어로 hibiikus. 호텔 첵인 해놓고 저녁시간에 밥 먹어러 갔다.

 

텅 빈 홀에 주인 포함하여 조선 동포 3명이 chewing the

 fat(한담을 하다 또는 농담 따묵기하다는 미국 슬랭인데 재미있는 표현이다. 미국 놈한테 써보면 재밌다고 깔깔거린다. 유사한 표현으로 shooting the breeze) 하면서 질긴 기름 덩어리를 질근질근 씹고 있었다.


한 20년 소금 도시에서 장사했다는데 반갑게 맞아주네.

사실 부다페스트에서는 아침에 민박집에서 한식 먹고, 저녁에는 한국식당에서 등심구이 먹었고, 비엔나에서는 중국집에서 뷔페로 실컷 먹었기에 별로 한식이 땡기는 편은 아니었는데 저녁은 먹어야지 하면서 김치찌개로  먹고 시내 관광포인트를 물어보니 짤츠부르크 , 모차르트 , 성당과 교회 등등 내가 아는 일반적인 소리 하다가 미라벨 성도 가보면 좋다 하더라고.  


 

미라벨. 처음 듣는 소리인데 호텔에 돌아와서 여행 가이드 북 찾아보니 미라벨 성(schloss mirabell)에 대해서 짤막하게 소개되어 있더라고. 당시 대주교인 울프 다이트리히가 정부(mistress)인 살롬 알트를 위해서 축조한 바로크 양식 건물로 성 뒤쪽에 있는 정원이 아름답다고 아주 짤막하게 소개되어있어 궁금점이 생기네. 대주교가 정부가 있다니.  말이 좀 안 되는 소리 같아서 인터넷으로 디비보니 상세하게 나오네.   


살롬 알트(alt) 아버지는 jewish 장사해서 요즘 식으로 말하면 거부 실록에 오른 윌헴 알트로 소금 도시에서 한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직책은 시의원 정도 councilor). 그런데 알트는 대주교인 울프 하고 깊은 관계(통상 내연의 )이었기에 어마어마한 저택(가보니 성은 아니고 대저택 정도) 지어 주겠지. 처음에는 이름을 연인의 이름을 따서 altenau 했는데 울프가 죽고 그다음 후임자가 mirabell 개칭하였다고 하는데 아름답다고 하는  정원을 해지고 나서 가서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운데 밤에 보아도 그리 화려하지도 않은  같았는데.(다음에   사람은 낮에 가서 보는  좋겠다) 정원이 매우 아름답다 하니까.



미라벨 성 야경

지금은 이 건물을 시에서 운영하는데 시장 집무실이 있고 잘츠부르크 쉬라즈 콘서트가 주관하여 제일 아름답다는 marble hall에서 일 년에 약  300회 이상 콘서트가 열려 콘서트 시리즈면(연주 횟수)에서는 세계 최고라 한다. 그리고 marble hall은 당시 대주교의 연회가 주로 열린 방인데 아름다워 세계에서 제일 예쁜 결혼식장이라는 별명이 있다길래 절친의 곧 결혼할 딸내미 생각이 문득 나서 내일 가서 예약이 되는지 한번 알아볼까나.



영화 아마데우스 포스트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는 이 아름다운 marble hall에서 대주교 연회가 열릴 때에는 모차르트 아부지 leopold가 아들 wolfgang 하고 딸 nanner를 손잡고 데리고 가면 가들도 여기서 종종 연주를 했다고 한다. 모차르트 아부지가 궁정 교항악단 단장이면서 바이올린스트이었다지.



영화 아마데우스 포스트

여기 와서 모차르트에 대해서 다시 찾아보니 첫째, 통상 아마데우스가 말년에 경제적으로 빈곤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고 단지 수입에 비하여 지출을 크게 하여(예로, 입고 다니는 옷도 당시 명품만 입었는지 화려한 옷이라는 거지) 그런 거지 경제적으로 구질구질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고 둘째, 통상 돈이 없어 공동묘지에 묻혔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중산층 부류도 공동묘지에 묻히게 되어 있다는 것이고 셋째, 통상 영화에서처럼 살리에르와 적대적 관계로 살아 심지어 아마데우스 사인이 살리에르의 독살설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게 아니고 살리에르는 당시 비엔나 궁정 악장으로 모차르트만큼 음악가로서 큰 성공을 거둔 인물로 그런 이야기는 극적 효과를 위해 꾸민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니, 영화만 보고 알은 상식은 때로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이 각색되어 있으니까 그렇다.





       잘츠부르크 성을 찾아서


언덕위의 하얀 성 짤쯔부르크 성

호텔에서 실컷 자고 아점을 챙기고 먼저 잘츠부르크 성 주소를 gps에  입력하고 말을 몰아갔는데 꼬불꼬불 길을 돌고 돌아 더 이상 갈 수 없는 산등성에서 멈추었다.



짤쯔부르크 시내 전경

내려서 보니 시 뒷산인데 시전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여기가 성이고 나하고 생각하고 저 멀리 보니 큰 성이 산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어서  



짤쯔부르크 성

저게 무슨 또 다른 성이야 궁금해하면서 마침 지나가는 할머니 두 분에게 물어보니 저게 바로 그 성이고 여기는 성 옆으로 난 산책로이라고 한다.



성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저기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고 물어보니 산책로를 쭉 따라가면 성으로 간다고 하여 차를 세워놓고 걸었다.



성으로 이어지는 삼책로

성으로 가는 길이 조용하고 먼 거리도 아니고 길이 너무 아담한 게 그냥 걷고 싶었다. 차를 파킹해 놓고 카메라 3대만 양쪽 어깨에 걸고 걷기 시작했다.



강이 흐르는 짤쯔부르크 시내

뒤로 가면 시 반대쪽 시야도 한눈에 들어오는데. 시를 가로지르는 강 양쪽으로 중세기풍의 건물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짤쯔부르크 시내 전경

조그마한 강이 소금 도시 한가운데로 흐르고 있었고, 강 양쪽을 이어주는 작은 다리들이 중간중간 걸쳐 있었다. 강 양쪽에는 강을 따라가는 도로와 산책로가 반뜻하게 놓여 있었다.



성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산책로가 숲 속으로 길을 틀면 바쁘게 움직이는 관광객보다 현지의 노부부들이 천천히 산책하는 것이  띄엄띄엄 보이고 간간이 노천 cafe도 있어 힘들면 쉬어가기도 좋았다.



 

성밑의 산책로

성으로 가는 산책로의 주위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때론 한 폭의 수채화 같아 내가 화가라면 여기에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멀리서 실루엣같이 희미한 성채 윤곽이 배경으로 그려지고, 중간에는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들이 큰 키를 자랑하고, 가까이는 이름 모를 어린 나무들이 이제 막 변하는 낙엽의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먼 산들이 겨울준비로 바쁘고

성으로 가까이 가니 먼 산들이 벌써 머리에 하얀 눈을 이고 다가오는데 그 모양들이 이방인에게는 조금은 낯설게 보이지만 벌써 겨울이라는 생각이 확 들었다. 늦여름에 시작한 지중해 여행이 벌써 초겨울로 접어드는 모양이다.



교회 탑

산책로를 따라가면서 전망이 좋은 곳에서는 도시, 교회, 성당 등 사진을 한 바구니 담아 가면서 다리 아픈 줄 모르고 성까지 걸어갔다.


반뜻한 시내 모습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시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시내를 관통하는 강 양쪽으로 둥근 돔 양식의 교회 지붕이나 고딕 양식의 뾰족한 교회 첨탑이 눈길을 끈다. 한치의 어긋남도 보이지 않은 중세 마을을 보는 것 같았다.



짤쯔부르크 시내

이곳에 교회당이 몇 개나 있는지 눈에 밟히는 것이 전부 교회당 건물이다. 그중에서도 똑같은 돔 양식의 둥근 교회당 지붕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자매 탑

이렇게 폼나는 쌍디(쌍둥이) 교회 종탑도 보이고



뾰족탑

탑을 자세히 보니 지붕 탑 밑의 네 귀퉁이에  또 작은 탑을 세워 놓은 특이한 교회탑을 이었다. 내가 만들면 작은 지붕 탑 밑에 또 작은 탑을 네 귀퉁이에 세워놓으면 더 멋질 텐데.



성 입구

이렇게 시름시름 걸어서 성안으로 들어갔다.



성 입구

성안에는 이런 조그마한 문들이 많다. 아무래도 성을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침입자들이 들어올 수 있는 입구를 좁게 만들고 미로같이 찾기 어렵게 설계하는 것이 도움이 될듯하다.



성안의 카페

성안에 있는 이곳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으로 야외 카페를 꾸며놓았다. 왼편에 높은 성벽이 있어 이곳은 1차 방어선을 설치하는 곳으로 밑으로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야외카페의 테이블

이곳에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니 참으로 평화스러운 풍경이었다. 성 주위로 난 먼 산책길을 힘들게 걸어 걸어 성안으로 들어온 수고가 이곳에 앉아 차 한잔하면서 눈 아래 펼쳐지는 평화스러운 마을을 조망하면 따사로운 햇살에 봄눈 녹듯 사그라진다.



성안의 또다른 건물들

성안을 돌아다니면 시골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좁은 길도 지나고



좁고 낮지만 오밀조밀한 석굴 같은 길도 만난다.



낙조에 물든 예수 고난상

성안에도 큰 교회가 있다. 교회 벽면에 고난 받는 예수 그리스도 상이 있어 마침 저물어가는 낙조에 짙은 명암으로 사진이 붕 떠버렸다.



박물관의 조각상

위에서 취재한 고문 도구와 고문 사진이 있는 박물관은 그냥 조그마한 방 하나 정도다. 성안의 옛 유물 정도를 보여주는 그런 수준의 마을 박물관이다.



역광으로 잡은 석양

넘어가는 햇빛을 역광으로 받아 성 뒷산을 잡았는데 이건 기술이 좀 필요한 작품이다. 역광을 잡을 때 적정노출을 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부득불 TRY AND ERROR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저 멀리 눈 덮인 산이 초겨울의 정취를 한껏 더해준다.


성 뒤쪽의 높은 산

근처 높은 산에는 벌써 눈으로 덮였다. 겨울이 시작되는 문턱에 서있는 것 같다. 계절이 이렇게 바뀌면 먼 길을 떠난 나그네의 심정도 예전 같지는 않았다. 무언가 흘러가버린 것이 엄청 아쉽고, 실가닥같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외로움이 가슴 한 구석에 자리 잡으려고 한다. 분주하게 다니다 보면 그런 것이 쳐들어올 틈새를 주지 않겠지만 이렇게 확연하게 바뀌어버리는 자연의 시간 앞에서는 당해낼 장사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성안을 혼자서 헤집고 다니면서 다리 아프면 앉아 쉬었다가 또 사진 찍고 구경하면서 해가 넘어갈 때까지 성안에서 혼자 잘 놀았다.-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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